***신구약 성경강해***/- 이사야 강해

이사야서 최종형태 구성의 신학

에반젤(복음) 2019. 12. 28. 20:49


         

◈이사야서 최종형태 구성의 신학                  -출처보기-


 

“이스라엘의 정의와 민족들의 구원: 이사야서 최종형태에 나타난 제의, 성전,

종말론, 사회정의 주제들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 본 이스라엘과 민족들”  주1)


박경철  주2)



◑1. 성서의 최종형태 구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


독자가 어느 책을 읽고 그 책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대전제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독자가 책의 이곳, 저곳을 임의로 선택해서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책의 지금의 형태 그대로, 그 순서대로 읽는 것을 말한다.3) 이러한 가장 일반적인 독서의 원칙이 성서 읽기와 해석 나아가 설교에 있어서 그동안 얼마나 적용되어 왔으며, 또 지금은 어떤가?


어떤 성서 본문일지라도 그것을 독립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본문을 그 맥락 속에서 읽어야만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게 될 것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어느 한 단락의 문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각 책, 그 전체를 의미한다. 성서 각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의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재의 성서(최종형태) 각 책은 분명한 의도로 잘 짜여진 구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최근 성서학의 한 동향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성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구성비평 작업이다. 성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비록 성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 수집, 편집등 여러 단계들을 걸쳤다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그렇다고 현 성서의 본문을 그런 역사적 제단계들로 구분하고 추려 내거나 갈라내지 않는다. 지금의 모습, 그 최종형태를 읽어 내려가는 방법이다. 이 때, 최종형태의 구성에 대한 관심은 바로 본문의 현 위치, 그 자리매김을 전체의 구도 안에서 조명한다는 말이다.


최근의 성서학 연구물들을 보면 성서의 최종형태 구성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관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날 시편연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궁켈로 대표되는 양식비평 작업이다. 150편의 시들을 각 양식별로 구분해서 탄원시, 찬양시, 감사시, 제왕시…등으로 구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시편 150편을 한 권으로 보고4) 시편의 신학을 얘기하는 것이다. 시편의 150편은 잘 알듯이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모세 오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많은 시편의 시들이 “…의 노래”라는 표제어들이 있는데, 이 표제어들을 통해 보면 시편의 시 모음집은 중앙에 다윗의 시(51-72)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아삽의 시들(50; 73-83)이 있고, 그 앞, 뒤로 고라의 시들(42-49; 84-89)이 서로 대조적인 구성으로 짜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할렐루야 시들 역시 가장 뒤에 함께 모여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편 1편(“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은 잘 외우고 있지만, 왜, 이 시가 시편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셋(토라, 예언서, 성문서)으로 나뉘는 구약성서 제3부 성문서의 첫 책인 시편 1편은 그 앞에 있는 히브리성서 제2부 예언서의 첫 번째 책인 여호수아서와의 연결을 염두에 둔 것이다(시 1:2; 수 1:8 비교). 또한 시 1편은 히브리성서의 구성상 바로 앞의 책인 예언서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주제인 ‘의인과 악인의 구분’과도 연결된다. 제2부 예언서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결론(3:22-24, [한글]4:4-5) 역시 제1부 토라와 제2부 예언서의 결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저 유명한 시편 23편의 경우도 그렇다. 단지 이 시를 개별적인 것으로만 읽을 때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로 끝을 맺지만, 현 시편의 최종형태의 구성에서 보면, 그 다음 시편 24편은 “누가 여호와의 집에 머물 수 있는가?”를 묻는 새로운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 윤리적 행위가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종교적 제의 행위와 사회 윤리적 행위가 한 하나님 신앙 안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경 안에 들어있는 숱한 법률집들은 그 내용과 형식상의 차이로 크게 분류한다면, 순수한 종교, 제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종교법과, 고대 근동에도 널리 퍼져있던 일반 사회법률조항들, 그리고 사회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령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상의 개별 법률조항들이 비록 서로 다른 삶의 자리와 상이한 각자의 문서화 과정을 거쳤다 할지라도 현 오경의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것은5) 이 모든 법률조항들이 유일신 하나님 신앙 안에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이나, 소외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지 않는 것’이 모두 한 하나님 신앙에서 위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이것이 오경의 최종형태 구성이 보여주는 곧, 오늘날 기독교인의 종교적 신앙행위와 사회윤리적 책임 행위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12소예언서의 경우만 해도 각 권의 신학을 논했던 것에서, 이제는 12권을 한 권으로 보는 관심6)이 부쩍 일어나고 있다. 12소예언서를 한 권으로 본다는 말은 이를 지금의 순서대로 마치 일련의 시리즈물로 읽어간다는 말이다. 이는 우상숭배에 대한 비난과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회개의 예언서 호세아서만 강조되거나 사회정의를 외치는 아모스서만 각자의 입장에서 취사선택되기 보다는, 종교적 회개와 함께 사회적 불의와 부정을 씻고 사회 정의를 실천하라는 호세아와 아모스서를 일련의 연속물로 읽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거의 백 년 이상을 지배해 온 이사야서의 셋으로의 구분(제1이사야 1-39장; 제2이사야 40-55장; 제3이사야 56-66장) 역시 최근에 와서는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오히려 전체 한 권 이사야서의 신학에 대한 관심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논하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책들은 각자 매우 복잡한 생성사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난 세기 역사비평방법론은 이렇게 복잡한 구약성서의 각 문서층들에 대하여 그 연대 및 서로 다른 문서층들간의 관련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비평방법론의 모든 연구작업들은 구약성서 각 문서층들에 대해 분명하게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7) 아울러 성서의 다양한 문서층들이 어떻게 발전되어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8)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게 형성된 현 구약성서의 각 책들은 어떤 신학적 의도를 지니고 각자의 최종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200년간의 역사비평방법론들은 현 최종형태를 지니고 있는 성서의 각 책들의 신학적 의도를 묻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9) 구약성서신학에 새로운 해석학적 관심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역사비평방법론들이 구약성서의 각 책들을 숱한 문서층들로 구분하고 찢어온 것들로 인해 교회에 주어진 현 성서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성서의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데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는데 있다. 이로부터 새로운 관심은 성서를 찢지 말고 오히려 지금 있는 그 최종형태로 읽자는 주장이다. 구약성서의 다양한 문서층들이 이루어낸 현 최종형태 그 완결이 보여주고 있는 신학적 관심과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있다. 무엇보다도 성서의 최종형태는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분명한 신학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점을 주시한 것이다.


구약성서의 현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지난 20년간 이사야서 연구에 있어서도 크게 늘어났다. 최근 이사야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어떻게 현재 66장의 이사야서의 최종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가?” 하는 통시적 연구와 “현재 최종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사야서 전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공시적 연구방법이다. 최근의 최종형태에 대한 통시적 연구 방법의 관심은 최종 편집자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오랜 역사 과정에 어떻게 숱한 단편들이 모아지고 편집되어가면서 현 최종형태의 전체 이사야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전(全)역사 과정에 관심한다.10) 그러나 이러한 통시적 방법론은 그 시작에서부터 현 최종형태의 모습을 다시 각 문서층으로 찢는 일로부터 시작해야하는 그 방법론상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각 문서층들에 대한 구분 역시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못한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11) 이에 반해 최종형태에 대한 공시적 연구의 관심은 각 문서층의 발전과정의 전(全)역사를 쫓아가는 일이 아니라 최종형태 본문 자신이 드러내 주고 있는 전체 책의 통일된 주제를 말하는데 있다.


예언서들의 연구에 있어서 예언자들의 선포의 내용에 따라 시대별로 구분하는 일들이 있었다.12) 포로기이전, 포로기 그리고 포로기 이후로 나누는 일이고, 또한 그 내용들에 따라서 심판-, 구원-, 제의-, 제의비판-, 종말론적-, 묵시적-, 사회정의 예언자들로 나누는 일들이다. 그러나 각 예언서들이 이러한 선포의 내용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실제 각 예언서들의 최종형태의 모습은 그 어느 하나의 주제와 내용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포로기 이전 예언자를 심판 예언자로 포로기 시대 예언자를 구원 예언자로 구분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심판과 구원의 주제는 모든 예언서들마다 함께 갖고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13) 궁켈(H.Gunkel)의 예언서에 대한 양식사 연구 이후14), 예언서 연구는 무엇보다도 예언자들의 선포에 드러난 그 주제들의 의도에 대한 논의들이 주된 테마로 진행되어 왔다.15) 그러나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예언서 연구들은 이상의 서로 다른 주제들로 보이는 것들이 실상 현 예언서 각 책들 안에 함께 들어와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예언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상의 상이하다고 생각되었던 주제들을 서로 구별해 내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각 예언서들의 신학적 내용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일이다.


◑2. 이사야서 연구사 요약


역사비평 이전까지 이사야서의 저자는 시락 48:24f16)에 따라 기원전 8세기 아모쯔의 아들 이사야 (사 1:1)라고 여기고 있었다.17) 몇몇 보수주의 학자들에게서 여전히 이사야서의 한 저자에 대한 믿음이 발견되지만18), 일반적으로 학계에선 한 사람 이사야 저작설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 1-39장과 구별하여19) 사 40-66장을 ‘제2이사야’(Deutero-Jesaja)라고 처음으로 부른 이는 아이히호른(J.G.Eichhorn, 1780-1783)20)과 되덜라인(J.G.Döderlein, 1789)21)이다.22) 1892년 둠(B.Duhm)의 이사야서 주석23)이 나온 이래 거의 1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사야서는 셋으로 구분되어왔다.24) 둠의 연구이래 이사야서 연구의 모든 논의는 1970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거의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것25) 아래에서 각 책마다의 저자문제, 연대문제들이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다.26)


1980년대에 이르러 이사야서 연구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27) 이는 무엇보다도 현재 최종형태의 이사야서 전체 한 권28)의 의미에 대한 관심으로의 전환이었다.29)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이사야서 연구는 “한 예언자로부터 세 권에 대한 연구를 지나 한 권에 대한 연구”(von die »Ein-Prophet-Interpretation« über die »Drei-Bücher-Interpretation« zur »Ein-Buch-Interpretation«)30)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서 전체 한 권에 대한 연구의 방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 두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다.31)


◑3 전체 이사야서 최종형태의 구성


이사야서 전체 한 권의 현 최종형태에 대해서 묻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이사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의 순서대로 읽어 가는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첫 부분이 무엇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지를 주의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이사야서의 현 최종형태는 우연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더 그렇다.


이사야서의 첫 단락인 1:2-2:432)에서는 제의, 사회정의, 종말론적 표상인 시온의 회복과 야훼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온 민족들의 시온순례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사야서 전체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2장에서 이상의 주제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제의를 비난 하는 예언자의 말이 이스라엘의 사회적 불의에 있는 것과 연관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다시 깨끗하게 회복되는 것이 곧 시온과 예루살렘에 공의와 정의가 세워지게 된 다는 말은 무엇인가? 아울러 이상의 시온/예루살렘에 대한 회복의 종말론적 모습 그 이후에 나타나는 온 열방이 시온으로 몰려온다는 예언자의 이상은 이사야서 전체 신학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상의 이사야서 서론부에 나오는 모든 주제들이 이사야서 전체에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특별히 이 주제들은 전체 이사야서의 결말부에 가서(사 65:17-66:24) 모두 함께 다시 나타난다.33) 또한 이곳 전체 이사야서의 서론부에는 이상의 주제들과 함께 ‘안식일’이 언급(1:13)되는데, 전체 이사야서에서 ‘안식일’ 이 언급된 곳은 앞서 언급한 서론부와 결론부 그리고 사 56장과 58장에만 나온다. 그런데, 전체 이사야서 내에서 사 56장과 58장안에 이사야서 서론과 결론부에 나왔던 이상의 모든 주제들이 하나의 의도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함께 언급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 56장과 58장의 주제들 역시 전체 이사야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이상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사야서 서론부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이한 여러 주제들이 결코 개별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들이며, 이는 전체 이사야서의 구성을 매우 의도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의 모습이다. 현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의 모습에 대한 신학적인 질문은 현재 모습의 그 순서에 있다. 즉 이스라엘의 불의와 부정한 모습의 정화와 공의와 정의에 의한 시온/예루살렘의 회복에 이은 온 민족들의 구원인 시온 순례로 이어지는 구도이다. 이것이 전체 이사야서의 서론부와 결론부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 56장과 58장의 순서와 동일하다. 즉, 이사야서의 구도는 철저하게 이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 시온/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의의 회복과 실현 이후 온 민족들의 구원의 장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이사야서 첫 큰 단락의 결론부에서(사 11-12장), 열방신탁의 단락들(13-23장), 이사야 묵시록(24-27장), 야훼의 종의 노래들(42장, 49장)과 예언자 소명기사 단락 (61-62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본 논문은 이상에서 언급한 문제들로부터 이사야서 서론부에 나타난 제의, 사회정의, 종말론의 주제들은 전체 이사야서의 통일된 하나의 신학적 주제라는 점을 이상의 주제들이 모두 함께 나오는 사 56장, 58장 그리고 마지막 전체 이사야서의 결론부인 65-66장의 연구들로부터 이끌어 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주제가 되어 보여주려는 전체 이사야서의 신학적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정의가 온 민족들의 구원과 어떤 상호 관련서이 있는가를 살펴 본 것이다.


▲1.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문제: 사 56:1-8


사 56:1-8은 이스라엘의 정의와 민족들의 시온순례를 다루면서 그 안에 무엇보다도 ‘계약’(תירב)과 ‘안식일’ 주제를 그 중심으로 두고 있다. 이사야서 전체를 통해 이 ‘계약’(תירב) 개념은 언제나 민족들의 구원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24:5; 42:6; 49:8; 55:3; 61:8)는 점은 사 56장이 전체 이사야서 구성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사 56:1절은 ‘정의’(הקדצ), ‘공의‘(טפשׁמ), ’구원‘(העושׁי) 이라는 세 주제어를 함께 씀으로써 ‘정의’(הקדצ), ‘공의‘(טפשׁמ)만 언급하고 있는 이사야서 제1부와(1:27; 5:7.16; 9:6; 16:5; 26:9; 28:17; 32:1.16; 33:5), 오직 ‘공의‘(טפשׁמ), ’구원‘(העושׁי)이라는 주제어만을 다루고 있는 이사야서 제2부(45:8.21; 46:13; 51:5.6.8)를 의도적으로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34).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해서 제사문헌(P,HG,Ez)이 안식일의 문제를 ’성소‘와 ’성전제의‘ 그리고 ’거룩‘(שׁדק)35)과 ’영광’36)이라는 주제들과 관련시키는 것37)과는 달리38) 이사야서는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구원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사 56장 안식일 언급은 8절의 민족들의 순례의 주제와 함께 나온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이사야서 전체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사 66:22f.). 또한 구약성서에서 오직 이곳 사 56장에만 나타난 ‘안식일이 더렵혀지는 것으로부터 지키라’(וללהמ תבשׁ רמשׁ)는 표현은 당시 안식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이는 포로기 직후 제2성전 건립과 관련되기보다는 그보다 이후인 에스라-느헤미야 시기와 관련한다39). 이는 단순히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라기 보다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사회 하층민들과의 연대문제이며,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 상류층들에 대한 대항의 배경을 두고 있다. 이는 사 58장에 더욱 분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전체 이사야서의 구성과의 관련에서 사 56장은 야훼의 구원의 도래가 이스라엘의 정의 실현과 함께 온 민족들의 시온순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 56장이 전체 이사야서 구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이스라엘의 제의와 사회정의: 사 58장


사 58장은 전체 이사야서 내에서 무엇보다도 제의(금식)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이다. 사 56장과 마찬가지로 사 58장의 구성은 제의, 사회정의, 종말론 그리고 안식일의 주제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역사비평방법들의 결과들은 한결같이 사 58:13이하의 안식일 언급을 후대 편집으로 그 앞에 나오는 제의와 사회정의 문제와 구별해 낸 것40)과 달리, 현 최종형태의 사 58장의 모습은 13절 이하가 그 앞의 주제들과 매우 의도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41). 이는 사 56장에서의 안식일 준수가 지니는 사회적 문제와 동일하게 이사야서 전체에서 이를 가장 자세하게 언급해 주고 있는 장이다.


무엇보다도 사 58장은 자체의 의도적 구성42)뿐 아니라 현 본문의 순서가 전체 이사야 구성의 핵심이 되고 있는 서론부 1:2-2:4; 결론부 65:17-66:24과 56:1-8과도 그 공통의 주제들과 함께 연관되어 있다. 사 58:2-5의 이스라엘의 제의 행위의 거짓된 모습에 대한 고발은 사 1:11-14/66:3-4, 58:6-10의 사회정의 실천의 요구는 1:16-17/56:1-2a/65:21f., 58:8-12의 회복과 구원의 표상은 1:26-27/65:17-25/66:7-14, 58:13의 구원의 조건인 안식일 준수는 56:2b-7/66:20-23 그리고 58:14의 구원 약속은 2:2-4/56:7f/66:18-22 온 민족들의 시온 순례의 주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상의 사 58장의 현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그 구성은 전체 이사야서 구성의 핵심 장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모든 주제들이 결코 별개의 주제들로 구분되어지지 않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해 줄 뿐 아니라 이상의 주제들은 이사야서 전체가 이스라엘의 정의 실현이 곧 온 민족들의 구원의 표상이 된다는 구도를 동일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3. 이사야서의 결론: 사 65:17-66:24


성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이해는 각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있다고 하였다. 이때, 그 책의 가장 마지막에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를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서의 가장 마지막 부분43)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사 65:17-66:24은 65:17과 66:22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제어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구성을 보여 주는데,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결론부에는 이사야서 처음에 등장했던, 제의, 사회정의, 종말론, 온 민족들의 시온 순례의 주제들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44).


사 1:2에서 야훼의 자녀들로 표현된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낼 증언자로 하늘과 땅을 부르는 장면이 이스라엘의 불의의 문제가 바로 온 세계와 관련된 것임을 암시한다면, 마지막 65:17의 야훼의 새 하늘 새 땅의 창조는 곧 이스라엘의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고, 66장에 시온/예루살렘의 회복의 문제가 온 민족들의 시온 순례를 향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야훼 앞에 있다고 말하는 66:22의 언급은 전체 이사야서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야훼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 들어 있는 전체 이사야서 마지막 결구와 66:16은 이사야서 첫 부분 1:27이하에서 대적들에 대해 심판을 언급하고 있음이 전혀 앞.뒤의 주제들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이사야서 구성을 염두에 둔 의도적인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65:25의 평화사상 역시 사 11:6-9와 동일하면서도 뱀에 대한 언급이 다르게 나타난 것은 야훼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선언과 동일한 의도를 담고 있다.


◑4. 결론


현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이사야서는 여러 예언서들 안에 흔히 등장하고 있는 주제들인 제의, 성전, 종말론 그리고 사회정의의 주제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주제들이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서로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면이다. 그런데 이런 주제들을 담고 있는 전체 이사야서를 현 최종형태가 보여주는 그 모습 그대로의 순서로 보게 되면 이스라엘의 정의의 실천 문제가 전제되어 있고 이는 온 민족들의 구원의 표상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특히 이런 모습이 전체 이사야서의 가장 앞부분과 가장 뒷부분에서 놀랍게도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이사야서가 서로 다른 세 책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한 권의 책이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현 최종형태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현재 최종형태의 모습을 서로 다른 문서층으로 구분하고 찢어내게 되면 그 동시로 전체 이사야서의 의도적 구성이 보여주려 했던 이스라엘의 정의와 민족들의 구원이라는 모습은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이사야서 앞부분과 뒷부분의 주제들이 모두 함께 나오는 사 56장과 58장은 전체 이사야서 최종형태 구성의 의도를 보여주려고 했던 가장 중심이 되는 장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사야서 전체에서 이상의 4곳에만 나타나는 안식일 언급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사야서 최종형태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회적 배경은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 에스라-느헤미야 시기로 보여졌다.


이상이 최근 공시적 연구 방법론을 중심으로 한 이사야서 최종형태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들이다.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의 문제는 구약성서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문제가 되고 있다. 급기야 문명의 전쟁으로까지 번져나가는 양상을 보이려고도 하는 오늘, 이사야서는 이방 민족이며 기독교인인 우리들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도록 하게 하는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 5:16)



주1) 본 논문은 2001년 7월 독일 빌레펠트 베텔 신학대학교(Kirchliche Hochschule Bethel)에 제출된 박사학위(Th.D) 논문(원문: “Die Gerechtigkeit Israels und das Heil der Völker: Israel und Völker in bezug auf die Themen “Kultus, Tempel, Eschatologie und soziale Gerechtigkeit” in der Endgestalt des Jesajabuches” 이스라엘의 정의와 민족들의 구원: 이사야서 최종형태에 나타난 제의, 성전, 종말론, 사회정의 주제들과의 관련 속에서 살펴 본 이스라엘과 민족들”)을 요약 정리한 것이며, 학위논문은 그 후 새로운 연구들을 보충하여 2003년 “구약성서와 고대 유대교 연구 학술 시리즈”인 BEAT(Beiträge zur Erforschung des Alten Testaments und des antiken Judentums) 제 52권으로 출판되었다(Frankfurt/Berlin/Wien/Bern/Bruxelles/New York/Oxford, Peter Lang). 본서에 대한 서평은 JSOT 28.5(2004), 98 와 JETh 18(2004), 230-232 에 실려 있다.


주2) 박경철은 호서대학교 신학과(1987)와 한신대학교신학대학원(1991)을 졸업하고 그해 독일로 유학을 가서 독일 괴팅엔 대학(Uni. Göttingen)과 프랑크푸르트 대학(Uni. Frankfurt) 신학과에서 수학하고, 독일 빌레펠트 베텔 신학대학(Kirchliche Hochschule Bethel)에서 프랑크 크뤼제만 (Prof. Dr. Frank Crüsemann)교수의 지도하에 위에 이사야서 연구로 2001년 7월에 박사학위 (Dr. theol.)를 취득하고 현재 전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3) O.H.Steck는 그의 예언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에 대해 이러한 독서법이 성서 해석에 있어서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 Die Prophetenbücher und ihr theologisches Zeugnis (Tübingen, 1996), V,를 참고하라. 그러나 Steck는 현 성서의 최종형태 그 자체의 의미를 묻기 보다는 그 이전에 어떻게 해서 각 예언서가 지금의 최종형태의 모습을 지니게 됐는지, 그 전 역사과정에 대한 편집사비평 방법을 제안한다.


4) 이에 대해서는 특히 Matthias Millard, Die Komposition des Psalters: Ein formgeschichtlicher Ansatz, FAT 9, Tübingen 1994를 참고하라. 그 외에 새로운 시편 연구들로는 특히 Frank-Lothar Hossfeld a. Erich Zenger, Psalmen 51-100,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im Breisgau, 2000; Erich Zenger, Dein Angesicht suche ich: Neue Psalmenauslegungen, Freiburg i. Br.; Basel; Wien : Herder, 1998; Erich Zenger, Die Psalmen: mit Meisterwerken des Mittelalters und der Renaissance ; der ökumenische Text der Einheitsübersetzung, Stuttgart, 1997 등을 참고하라.


5) 최근 창세기 연구를 보아도 “오경을 여는 책으로서의 창세기”(Matthias Millard, Die Genesis als Eröffnung der Tora: Kompositions- und auslegungsgeschichtliche Annäherungen an das erste Buch Mose, WMANT90, Neukirchen-Vluyn, 2001)라는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최근 학계는 성서의 어느 한 권만을 보는 것에서 전체 구성 안에서 그 연관성을 찾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6) 이에 대해서는 특히 Erich Zenger (Hg.), "Wort JHWHs, das geschah ..." (Hos 1, 1): Studien zum Zwölfprophetenbuch, Herders biblische Studien ; 35 Freiburg im Breisgau [u.a.] : Herder, 2002; Ruth Scoralick, Gottes Güte und Gottes Zorn: die Gottesprädikationen in Ex 34, 6f und ihre intertextuellen Beziehungen zum Zwölfprophetenbuch, Herders biblische Studien ; 33, Herder, 2002, Münster (Westfalen), Univ., Habil.-Schr., 2001; Nogalski, James D.(Hg.), Reading and hearing the book of the Twelve, Atlanta :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0; 2. Richard J. Coggins, "The Minor Prophets: one Book or Twelve?," in Crossing the Boundaries ( ed. S.E. Porter Et al.; Leiden: Brill, 1994), pp. 57-68. Terence Collins, "The Mantle of Elijah: The Redaction Criticism of the Prophetical Books" in: The Biblical Seminar, 20, 59-87. Sheffield: JSOT Press, 1993; Edgar W. Conrad, "The End of Prophecy and the Appearance of Angels/Messengers in the Book of the Twelve," in: JSOT 73 (1997), 65-79; ders., "Messengers in the Book of Isaiah and the Twelve", in: JSOT 91 (2000), 109-124; ders., "Reading Isaiah and the Twelve as Prophetic Books," in: C.C. Broyles and C.A. Evans (eds.), Writings and Reading the Scroll of Isaiah: Studies of an Interpretive Tradition,  VTS, 70, Leiden: Brill, 1997, 3-17 등을 참고하라.


7) 예언서 연구에 있어서 이상의 방법론들의 시초는 B. Duhm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예언서들 안에 들어 있는 각 양식들의 리듬들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무엇이 본래적(ursprünglich)이고 무엇이 이차 첨가구(sekundär)인지를 가려내었다. 그런 구분의 목적은 본문에서 무엇이 더 권위적(authentic)이며 덜 권위적(inauthentic)인 것인가를 구분해 내는 일이었다 (B.Duhm, Die Theologie der Propheten, Bonn, 1875). 이상의 방법론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R.E.Clements, one Hundred Years of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Philadelphia, 1976) 51-57 과 H.G.Reventlow, “Die Prophetie im Urteil Bernhard Duhms”, in: ZThK 85, 1988, 259-274를 참고하라.


8) 이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O.H.Steck, Die Prophetenbücher und ihr theologisches Zeugnis (Tübingen, 1996), V,를 참고하라.


9)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하여는 특히 R.F.Melugin, “Prophetic Books and the Problem of Historical Reconstruction”, in: Stephen Breck Reid (Hg.), Prophets and Paradigms, Essays in Honor of Gene M. Tucker, JSOT.S 229, (Sheffield, 1996), 63-78 과 B.S.Childs, “Die theologische Bedeutung der Endform eines Textes”, in: ThQ 167, 1987, 242-251를 참고하라. R.Rendtorff는 그의 이사야서 연구에서 “이사야서 전체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를 단순히 여러 문서층들로 떼어놓고 무엇이 더 근원적인 것이었고 무엇이 편집층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그 모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연구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Rendtorff, “Jesaja 56,1 als Schlüssel für die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in: ders., 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1991, 172-179), 172f. 최근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시적 방법론과 공시적 방법론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특히 Johannes C.De Moor, Synchronic or Diachronic? A Debate on Method in Old Testament Exegesis, OTS XXXIV (Kampen, 1994)를 참고하라.


10) 이 방법의 대표적인 학자가 O.H.Steck이다 (참고 Steck, 위의 책).


11) Crüsemann은 그의 토라 연구를 통해 문서비평의 결과들로 인해 본문이 각각 “파편 (Geröll)으로 해체 되었다면 이제 그 방법을 바꾸어야 할 단계에 왔다“ 고 지적하고 있다. F.Crüsemann, Die Tora. Theologie und Sozialgeschichte des alttestamentlichen Gesetzes, (München, 1992), 42.


12) 예언자의 각 선포 내용에 따른 구분에 대해서는 H.D.Preuß,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Israels Weg mit JHWH, Bd.2 (Stuttgart u.a. 1992), 82-87를 참고하라.


13) 참고, R.Rendtorff, Das Alte Testament. Eine Einfürrung (Neukirchen-Vluyn 51995), 특히 128. 한 예로 미가서의 전체 구조는 심판과 구원으로 잘 짜여져 있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1:2-3:12(심판) - 4:1-5:14(구원) - 6:1-7:7(심판) - 7:8-20(구원). 이에 대해서는 E.Zenger u.a.,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Stuttgart, 31998), 405-410을 참고하라


14) H.Gunkel, “Einleitungen, 3. Die Propheten als Schriftsteller und Dichter”, in: H. Schmidt, Die grossen Propheten: Die Schriften des Alten Testaments Band II (Göttingen 1915), XXXIV-LXX


15) 예언서 연구사에 대해서는 F.Vawter, “Neue Literatur über die Propheten”, Concilium 1, 1965, 848-854; J.Scharbert, “Die Prophetische Literatur: Der Stand der Forschung”, in: De Mari à Qumrân: l'Ancien Testament; son milieu; ses Écrits; ses relectures juives. FS. J.Coppens, (Gembloux/Paris, 1969), 58-118; J.M.Schmidt, “Probleme der Prophetenforschung”, in: VF 17, 1972, 39-81; 같은 이, “Ausgangspunkt und Ziel prophetischer Verkündigung im 8. Jh”., in: VF 22, 1977, 65-82; L.Markert/G.Wanke, “Die Propheteninterpretation: Anfragen und Überlegungenen”, in: KuD 22, 1976, 191-220; D.Kinet, “Künder des Gerichts oder Mahner zur Umkehr? Ein Literaturbericht über die neuere Prophetenforschung”, BiKi 33, 1978, 98-101; J.Limburg, “The Prophets in Recent Study: 1967-1977”, in: Interp. 32, 1978, 56-68; P.H.A.Neumann(Hg.), Das Prophetenverständnis in der deutschsprachigen Forschung seit Heinrich Ewald, WdF 307, (Darmstadt, 1979); W.McKane, “Prophecy and the Prophetic Literature”, in: G.W. Anderson (Hg.), Tradition and Interpretation: Essays by Members of the Society for Old Testament Study, (Oxford, 1979), 163-188; J.Jeremias, Grundtendenzen gegenwärtiger Prophetenforschung, in: EvErz 36, 1984, 6-22; E.Osswald, “Aspekte neuerer Prophetenforschung”, in: ThLZ 109, 1984, 641-650; G.M.Tucker, “Prophecy and the Prophetic Literature”, in: D.A. Knight u. G.M. Tucker (Hg.), The Hebrew Bible and Ist Modern Interpreters, (Philadelphia, 1985), 325-368; W.H.Schmidt, “Die Prophetie”, in: ders. u.a. (Hg.), Altes Testament, Grundkurs Theologie Band 1, UTB 421, 1989, 50-69; H.M.Barstad, “No Prophets? Recent Developments in Biblical Prophetic Research and Ancient Near Eastern Prophecy”, in: JSOT 57, 1993, 39-60; R.P.Gordon, “A Story of Two Paradigm Shifs”, in: R.P. Gordon (Hg.), The Place is Too Small for Us: The Israelite Prophets in Recent Scholarship, (Indiana, 1995), 3-26.


16) 이사야서 저자와 시락서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J.Schildenberger, “Die Bedeutung von Sir 48,24f. die Verfasserfrage von Is 40-66”, in: H.Junker und G.J.Botterwecker (Hg.), Alttestamentliche Studien, FS Friedrich Nötscher, BBB 1, (Bonn, 1950), 188-204; P.C.Beentjes, “Relations between Ben Sira and the Book of Isaiah. Some Methodical Observations”, in: J.Vermeylen (Hg.), The Book of Isaiah - Le livre d'Isaïe, BEThL 81, (Leuven, 1989), 155-159을 참고하라.


17) 이사야서의 전체 통일성에 대해 가장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 했던 이는 Abraham Ibn Ezra (†1167) 이다. 이에 대해서는 M.Friedlaender, The commentary of [Abraham ben Meir] Ibn Ezra on Isaiah, (London, 1873), 특히 170ff. 와 Jean M.Vincent, Studien zur literarischen Eigenart und zur geistlichen Heimat von Jesaja, Kap. 40-55, BET 5, (Frankfurt a. M. u.a., 1977), 특히 15ff.를 참고하라.


18)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O.T.Allis, The Unity of Isaiah, (Philadelphia, 1950); E.J.Young, Studies in Isaiah, (London, 1954),; 같은 이, The book of Isaiah. Bd.1 Chapters 1 to 18, 1965 (Nachdruck 1985), Bd.2 Chapters 19 to 39, 1969 (Nachdruck 1992), Bd.3 Chapters 40 through 66, 1972 (Nachdruck 1992); J.A.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Leicester, 1993); J.N.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 1-39, (Grand Rapids, 1986)등이 있다.


19) 사 1-39장과 40-66장의 전통적인 구분의 이유들에 대해서는 J.Werlitz, Redaktion und Komposition. Zur Rückfrage hinter die Endgestalt von Jesaja 40-55, BBB 122, (Bonn, 1999), 특히 95 참조. 그는 40-66장은 결코 1-39장의 8세기 예언자 이사야와 동시대일 수가 없으며, 40-52장은 포로기때의 것이며, 40-66장 전체는 포로기 이후에 가서 비로소 이사야서 안으로 들어 온 것이라고 보았다. (J.G.Eichhorn,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Leipzig, 1780-1783, Göttingen, 41823/25), 83-97).


20) 그는 40-66장은 결코 1-39장의 8세기 예언자 이사야와 동시대일 수가 없으며, 40-52장은 포로기때의 것이며, 40-66장 전체는 포로기 이후에 가서 비로소 이사야서 안으로 들어 온 것이라고 보았다. (J.G.Eichhorn,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Leipzig, 1780-1783, Göttingen, 41823/25), 83-97).


21) J.Chr.Döderlein, Esaias. Ex recensione textus hebraei ad fidem codd. quorundam mss. et versionum antiquarum latine verti notasque varii argumenti subiecit, (Altdorf, 1775, Nürnberg u. Altdorf, 31789), XII-XV.


22) 둘 사람 중 누가 먼저 였는 지의 논의는 K.Pauritsch, Die neue Gemeinde: Gott sammelt Ausgestoßene und Arme (Jesaja 56-66), Analecta Biblica 47, (Rom, 1971), 4 주1, 과 Vincent의 위의 책, 17ff.를 참고하라.


23) B.Duhm, Das Buch Jesaia, (Göttingen, 51968).


24) 둠은 40-55장의 연대를 기원전 540년으로, 13:2-22; 14:4b-21.22f. 와 21:1-5은 제2이사야와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익명의 작품이며, 이른바 ‘종의 노래’라 불리는 42:1-4; 49:1-6; 50:4-9; 52:13-53:12는 포로기이후 익명의 작품이고, 56-66장은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의 한 사람 제3이사야의 것으로 보았다. 또한 56-66장안에서 에스라와 사마리아 사람들간의 신정론에 대한 사상의 차이가 나타나고, 전체 이사야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70년경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연대가설은 1947년 쿰란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경으로 밝혀진 이사야 대(大)두루마리(1QIsa)로 인해 그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25) 이사야서의 세 구분에 대한 반대하는 논의들에 대해서는 Chr.R.Seitz, Zion's Final Destiny. The Development of the Book of Isaiah, (Minneapolis, 1991), 특히 그의 참고문헌들을 보라.


26) 이사야서 각 세 책들에 대한 연구사에 대해서는 사 1-39장: H.Wildberger, Jesaja. 3. Teilband Jesaja 28-39, BK X/3, (Neukirchen-Vluyn, 1982), 1529-1547; C.Hardmeier, “Jesajaforschung im Umbruch”, in: VF 31, 1986, 3-31; U.Becker, “Jesajaforschung (Jes 1-39)”, in: ThR 64, 1999, 1-37.117-152; M.A.Sweeney, “Reevaluating Isaiah 1-39 in Recent Critical Research”, in: Currents in Research, Biblical Studies 4, (Sheffield, 1996), 79-113; 사 40-55장과 56-66장에 대해서는 C.H.Cornill, “Die neueste Literatur über Jes. 40-66”, in: ThR 3, 1900, 409-420; J.Nikel, “Die Die neuere Literatur über Jes 40-66, insbesondere über die Weissagungen vom Gottesknechts”, in: ThRv 1, 1902, 73-77.105-111; G.Dahl, “Some Recent Interpretations of Second Isaiah”, in: JBL 48, 1929, 362-377; S.Mowinckel, “Neuere Forschungen zu Deuterojesaja, Tritojesaja und dem Äbäd-Jahwä Problem”, in: AcOr 16, Leiden 1938, 1-40; G.Fohrer, “Neue Literatur zur alttestamentlichen Prophetie (1961-1970)”, in: ThR 45, 1980, 1-39; A.G.Auld, “Poetry, Prophecy, Hermeneutic: Recent Studies in Isaiah”, in: SJTh 33, 1980, 567-581; A.Richter, “Hauptlinien der Deuterojesaja - Forschung von 1964-1979”, in:  C. Westermann, Sprache und Struktur der Prophetie Deuterojesajas, (Stuttgart, 1981), 89-131; H.-J.Hermisson, “Deuterojesaja-Probleme. Ein kritischer Literaturbericht”, in: VF 31, 1986, 53-84; H.Leene, “Auf der Suche nach einem redationskritischen Modell für Jesaja 40-55”, in: ThLZ 121, 1996, 803-818; J.Goldingay, “Isaiah 40-55 in the 1990s: among other things, deconstructing, mystifying, intertextual, socio-critical, and hearer-involving”, in: BI 5, 1997, 225-246.


27) 새로운 이사야서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의 논의들에 대해서는 M.A.Sweeney, “The Book of Isaiah in Recent Research”, in: Currents in Research Biblical Studies 1, (Sheffield, 1993), 141-162; H.G.M.Williamson, “Synchronic and Diachronic in Isaian Perspektive”, in: Johannes C. de Moor (Hg.), Synchronic or Diachronic? A debate on method in Old Testament exegesis, OTS 34, (Leiden u.a., 1995), 211-226; M.Tate, “The Book of Isaiah in Recent Study”, in: J.W. Watts u. P.R. House (Hg.), Forming prophetic literature: essays on Isaiah and the Twelve, in honor of John D.W. Watts, JSOT.S 235, (Sheffield, 1996), 22-56 등을 참고하라.


28) 렌토르프(R.Remdtorff)는 이런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관심을 내 비취면서 “현 최종형태 이사야서 전체에 대한 구성을 묻는 일은 그 동안 구약성서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어진 주제가 아니었다” 고 말한다. R.Rendtorff, “Zur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in: VT XXXIV, 3 1984, 295-320, 295.(= ders., 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1991), 141-161).


29) 이사야서 연구에 있어서 이런 관심이 처음으로 나오게 된 것은 챠일즈의 구약정경개론 이사야서에서이다. B.S.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Philadelphia, 1979).


30) 참고, Berges, Jesaja, 15; Tate, Recent Study, 45.


31) 참고, Williamson, Synchronic and Diachronic; R.Rendtorff, “The Book of Isaiah: A Complex Unity. Synchronic and Diachronic Reading”, in: R.F. Melugin und M.A. Sweeney (Hg.), New Visions of Isaiah, JSOT.S 214, (Sheffield, 1996, 32-49) (SBL.SP, Atlanta 1991, 8-20의 것을 개정 보완해서 나온 것)


32) 이사야서의 첫 단락에 대한 논의는 J.T.Willis, “The First Pericope in the Book of Isaiah”, in: VT 34, 1984, 63-77를 참고하라.


33) 참고, Anthony J.Tomasino, “Isaiah 1.1-2.4 and 63-66, and the Composition of the Isaianic Corpus”, in: JSOT 57, 1993, 81-98; M.A.Sweeney, “Prophetic Exegesis in Isaiah 65-66”, in: Craig C. Broyles/ Craig A. Evans (Hg.), Writing and Reading the Scroll of Isaiah, VT.S LXX,1, (Brill u.a., 1997), 455-474; D.M.Carr, “Reading Isaiah from Beginning (Isaiah 1) to End (Isaiah 65-66)”, in: Roy F. Melugin und M.A. Sweeney (Hg.), New Visions of Isaiah, JSOT.S 214, (Sheffield, 1996), 188-218


34) 이에 대해서는 특히 R.Rendtorff, “Jesaja 56,1 als Schlüssel für die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in: ders., 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1991), 172-179; 같은 이, Komposition, 312-314; 같은 이, Einführung, 211등을 참고하라. 그는 56장 1절이 전체 이사야서 구성을 위한 중요한 하나의 열쇠 구실을 한다고 본다.


35) 참고, 창 1장 이하와 출 16장.


36) 참고, C.Westermann, “Die Herrlichkeit Gottes in der Priesterschrift”, in: H.Stoebe (Hg.), Wort-Gebot-Glaube, FS W.Eichrodt,  Beiträge zu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Zürich, 1970), 227-249(=ders., Forschung am Alten Testament. Gesammelte Studien II, ThB 55, 1974, 115-137); U.Struppe, Die Herrlichkeit Jahwes in der Priesterschrift. Eine semantische Studie zu kebôd YHWH,  Österreichische biblische Studien 9, (Klosterneuburg, 1988). 참고로 출 24:16이하 이스라엘에 나타난 야훼의 영광은 40:34이하에 가서 성막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제사문헌에서 성막/성소는 무엇보다도 야훼의 임재를 나타낸다. 출애굽기 마지막과 레위기 처음은 바로 이 연결을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보여준다(출 40:34-38; 레1:1).


37) 이에 대해서는 Crüsemann, Tora, 328f. 참고.


38) 제사문헌과 다른 이사야서의 독특한 관점은 또한 이사야 소명기사를 다루고 있는 성전환상 기사 가운데 나타난다. 사 6:3은 야훼의 영광이 단지 성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 땅으로 넓혀져 있다.


39) 금식과 사회정의를 다루고 있는 슥 7-8장은 포로기 직후 성전재건시기 이스라엘 사회를 보여주는 데, 아직 까지 안식일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사 58장에서는 이상의 문제들이 매우 의도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이 문제는 에스라-느헤미야 시기 안식일 문제가 사회 문제로 부각된 시점과 관련이 있다. 느 13:15-22 참고.


40) 참고, Duhm, Jesaia, 440; T.K.Cheyne, Introduction to the Book of Isaiah, London 1895, Einleitung in das Buch Jesaja, deutsche Übersetzung von Julius Böhmer, (Gießen, 1897), 327; M.Haller, Das Judentum, Die Schriften des Alten Testaments, II. Abt., Bd.3. (Göttingen, 1914, 21925),129; K.Marti, Das Buch Jesaja, KHC X, (Tübingen, 1900), 376; D.Michel, “Zur Eigenart Tritojesajas”, in: ThViat 10, 1965/66, 213-230, 특히 226-229; H.A.Brongers, “Einige Bemerkungen zu Jes 58,13-14”, in: ZAW 87, 1975, 212-216, 특히 216; P.D.Hanson, The Dawn of Apocalyptic. The historical and sociological Roots of Jewish Apocalyptic Eschatology, (Philadelphia, 1975, 21979), 101; O.H.Steck, “Beobachtungen zu Jesaja 56-59”, in: BZ NF 31, 1987, 228-246 = ders., Studien zu Tritojesaja, BZAW 203, Berlin/New York 1991, 169-186, 178; Pauritsch, Die Neue Gemeinde, 79; K.Koenen, Ethik und Eschatologie im Tritojesajabuch, WMANT 62, 1990, 88 주163. 이에 반대하는 학자로는 J.Muilenburg,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Interpreter‘s Bible V, (New York, 1956), 특히 685 참조.


41) 특히 ץפח 는 사 58장의 앞. 뒤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v2a.2c.3b과 13a.13c).


42)        A 야곱의 집에 대한 고발(V.1b)

          B 야훼를 떠난 백성들의 스스로의 즐김(V.2)

            C 백성들의 고행(V.3a)

              D 금식과 함께 불의한 폭력(V.4a)

                E 질문: 이것이 금식인가?(V.5a)

                 F 질문: 이것 야훼가 좋아하는 금식이란 말인가?(V.5b)

                E‘ 질문: 이것이 금식이 아니겠는가?(V.5aα)

              D‘ 불의한 사슬을 풀어라(V.6aβ)

            C‘ 너희들의 고행을 가난한 자에게로(V.10a)

          B‘ 안식일에 스스로의 즐김을 금하라(V.13)

        A‘ 야곱의 유산 언약(V.14)


43) 이사야서의 결론부를 어디서부터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다. 보이켄(W.A.M.Beuken)은 65-66장에 세 결론부가 있다고 본다. 65:1-66:14는 제3이사야서의 결론이고, 66:15-20a(20b-21)은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의 결론, 그리고 66:22-23(24)는 전체 이사야서의 결론이라고 본다. W.A.M.Beuken, “Isaiah Chapters LXV-LXVI: Trito-Isaiah and the closure of the book of Isaiah”, in: J.A. Emerton (Hg.), VT.S 43, Congress Volume, (Leuven, 1989), 204-221. 이에 반해 슈테크(O.H.Steck)는 63:7-64:11의 탄원에 대한 질문이 65-66장이기 때문에 전체 결론은 63장부터라고 본다. O.H.Steck, “Beobachtungen zur Anlage von Jes 65-66”, in: BN 38/39, 1987, 103-116(= ders., Studien zu Tritojesaja, BZAW 203, Berlin/New York 1991, 217-228).


44) 참고, Tomasino, Composition, 81-98. G.I.Davies는 처음과 끝의 연결을 통해 1-2:4은 전체 이사야서의 서론(Prolog)으로 그리고 65-66장은 전체의 결론(Epilog)이라고 본다. G.I.Davies. “The Destiny of the Nations in the Book of Isaiah”, in: J.Vermeylen (Hg.), The Book of Isaiah, (Leuven, 1989), 93-120. 전체 이사야서의 처음과 끝에 관한 비교 연구들에 대해서는 특히 Carr, Reading Isaiah; 같은 이, Reaching for Unity, 특히 73; Sweeney, Isaiah 65-66; Beuken, LXV-LXVI; Steck, Jes 65-66등을 참고하라 



◑The Theology of the Composition of the final form of the Book of Isaiah


This writing is to study how such subjects as cult, eschatology and social justice,  dealt with very importantly in the study of the prophet books under the subject of the righteousness of Israel and the salvation of nations, are related one another in the final form of the whole of the Book of Isaiah.

The above subjects have been dealt with as an individual subject not only in the study of the Book of Isaiah but also of the prophet books. The present text of the final form of each prophet book, however, reveals that the above subjects are not separated individually but interrelated very closely, which means that each prophet book has a certain clear, concrete and coherent intention.

This writing throws doubt on the three division accepted among academics without doubt over the last century (Proto-Isaiah:1-39, Deutero-Isaiah:40-55, Trito-Isaiah 56-6) and reveals an Isaiah theology revealed in the final composition as a whole one book of Isaiah(chap. 1-66). 

The starting point of understanding Isaiah wholly is the very proper understanding of the beginning part Isaiah 1:1-2:4, as an introduction to Isaiah. In this introductory part are the subjects such as cult, eschatology and social justice, suggested as the first issue in this writing. The subjects appear interrelated very closely and organically in the form of the people's pilgrimage to Zion.

The next step is to find, with many theological issues and questions, why the subjects are placed in the beginning part of Isaiah and in what relation to the whole book of Isaiah they proceed and develop. The chosen texts for this reason are Isaiah Ch. 56, 58 and 65:17-66:24 as its conclusion part. Above all in these texts appear all the subjects suggested in the introductory part of Isaiah.

The conclusion reached through the analysis of the chosen texts is that the  subjects of each text, cult, eschatology and social justice, show a wholeness in a form of the salvation of nations, that is, the people's pilgrimage to Zion, especially in relation to the issue of the Sabbath. Moreover the theological issue that these subjects lead commonly and clearly us to is that the righteousness of Israel becomes a stone marker for the salvation of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