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1장 상편
글쓴이: 카이로스
단11장 3절 (단5-8.)
[1].페르시아 제국의 침략 전쟁 편 (그리스 편)
{1}.페르시아 제국(바사국)의 지중해 건너 그리스 침략
1.단11:2.이제 내가 참된것을 네게 보이리라 바사에서 또 세왕이 일어날것이요
1).바사에서 왕들이다. 즉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세왕 들(초대 고레스 왕은 제외)
①2대왕캄비네스 BC.530년경-BC.526년경
②3대왕스메르디스 BC.526년경-BC.521년경
③4대왕 다리오1세 BC.521년경-BC.486년경.그리스와 전쟁을 일으킴(다리오1세 때 전쟁)
2.단11:2.네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 진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하여 헬라국을 칠것이며
①5대왕 크세르 크세스 (483년경-465년경) 즉 성경상 아하수에르왕이 넷째 왕으로 심히 부요할것이며 BC.483년경 -BC.474년경 에스더가 왕비에 오른다 므르드개 사건 1).페르시아 왕 순서 (단11:2.에서 해당된 일어날 3명왕과 부요할 넷째왕 즉 성경에서는 4명이 기록되었으나)
①원년 고레스 BC.538년경-BC.530년경
②2대왕캄비네스 BC.530년경-BC.526년경
③3대왕스메르디스 BC.526년경-BC.521년경
④4대왕 다리오1세 BC.521년경-BC.486년경.그리스와 전쟁을 일으킴(다리오1세 때 전쟁)
⑤5대왕 크세르 크세스 (483년경-465년경)
(아하수에르왕이 넷째 왕으로 심히 부요할것이며 BC.483년경 -BC.474년경 에스더가 왕비에 오른다 므르드개 사건)
⑥6대왕 아닥사스1세 (BC.465년경-BC.423년경)
a).페르시아와 그리스 1 차전쟁 BC.492년경(해군의 실패) 4대왕 다리오 왕때
①다리우스 1세가 600척의 대함대로 페르시아내 반란을 진압한후 아테네를 침공한다
②그러나 아토즈 곶에서 풍랑으로 2만명이 수몰되고 그렇게 전쟁이라 할것도 없이 페르시아 계획은 무산된다
b).페르시아와 그리스 2차 전쟁 (육 전. 일명 마라톤 전쟁) 4대왕 다리오 왕때
①2차 페르시아 전쟁인 마라톤전투는 그리스의 대승으로 끝나고 만다
②그리스 병력은 1만명이고 지휘관 말티아데스. 192명전사
③페르시아 병력은 보병2.5만명 기병1천 다리우스1세 6400명이 전사
2.단11:2.그후에 넷째 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 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것이며
1).에스더을 왕비로 맞이한 아하수에르 왕 (BC.486년경-BC.465년경)
①5대왕 크세르크세스 (아하수에르는 인도서 구스까지 일백이십 칠 도을 치리한 강력한 왕이였다)
②페르시아와 그리스 3차 전쟁 살라미스 해전과 테르모 필레 전투. BC.480년경
a). 크세르크세스 30만 대군이 침공을 하게 된다
b).페르시아 3차전쟁이 결과 살라미스 해전 대패
c).페르시아은 3차 전쟁인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를 당하고
d).그리스 배 366척 6000명이였고 테미스토 클레스 지휘관 40척 파손
e).페르시아 1207척 18만명 .크세르 크세스 200척 파손
{2}.마케토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
1.단8:5.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수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2.단8:6.그것이 두뿔 가진 수양 곧 내가 본바 강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서
3.단8:7.내가 본즉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수양을 쳐서 그 두 뿔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 게 할 이가 없었더라
(그 손에서 .헬라 수염소 알렉산드리아 대왕)
(단11: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
4.단8:8.수염소가 스스로 스스로 강대 하여 가더니 강성할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2}.페르시아 5대왕 크세르 크세스 (483년경-465년경) 그리스 침공 시대
단11:2.그후에 넷째 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 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것이며
1.아름다운 해양의 도시 그리스 땅 (헬라에 대한 소개와 페르시아의 선제 공격)
1).바사왕 다리오1세가 욕심냈던 지중해 건너의 아름다운 땅
①지중해 건너편 삼면 바다로 된 작은 대륙 땅의 있었다
신비의 땅은 시리아 바벨론 거쳐 터어키(당시 페르시아 점령지) 북단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마케토니아라 작은 왕국의 는 땅의 나온다 이땅을 거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삼면 바다 로된 아름다운 땅이 전개된다
이주위 해안에는 마치 하늘의 별처럼 많은것처럼 지중해 연안에 수많은 섬들로 조화을 이룬다
이땅을 다리오왕은 꿈속에서 까지 탐냈다
②이 해양낀 작은 세왕국을 합해서 그리스라 하였다
남쪽 끝땅을 아테네란 해양 도시 있었고 그
옆에 스파르타라는 왕국이 있엇다
산악에는 테베라는 왕국이 있었다 삼면이 바다였다
③관문인 마케토니아을 까지 합하면 이것을 헬라라 하였다
아테네 스파르타 태배 마케토니아 합하여 헬라 하였다
2).그리스란 땅에서 는 작은 이세왕국은 참으로 극과 극을 이루는 개성이 뚜렸한 세계의 최강의 전쟁에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육. 해 .산악.이였다
①아테내는 해군력 많큼 세계의 강자 였다 배의 기술력이든 해군력이든 해전에서 최강이였다
②스파르타라는 육지 전쟁의 무사들은 목숨을 초개같이 하며 엄마 뱃속에서부터 전쟁을 훈련한다는 정신적 강인한 전쟁교육을 받으며 무예사들이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군인들이였다)또한 여자들도 특수 예는 어디 견줄때가 없을 정도로 날랬다
③스파르타는 300명의 용사로 페르시아 대군을 협곡에서 막아내는 승리을 얻는다 후일 로마에서 스파르타의 정신과 무예을 이어받는다
④테배란 왕국은 산악전에서 최강이였다 산악에서 신출귀몰한 전법은 마치 공산군의 게릴라 산악 전법과도 같은것인줄안다
3).문제는 이 세왕국은 같은 지역에서 원수처럼 시대을 이어 오며 전쟁터 에서 싸운다는것이다
오래도록 서로서로 싸우면서 그들은 전쟁들의 용병의 되면서 시대가 흘렀다
(후일 알렉산드리아 예하부대로 용병으로 명성을 높인다)
4).지중해 건너 큰 대륙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오왕이란 황제가 수십만을 이끌고 작은 땅덩어리를 공격함으로 이들은 모두을 힘을 합치게 된다
5)3차 걸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은 어른과 아이에 싸움이였다
결과는 3차걸친 전쟁에서 해전에서 육군에서 모두 페르시아가 대패하고 말았다
6).페르시아의 대전쟁을 치루기 위해 스파르타와 아테내가 힘을 합쳐 동맹하여 승리로 끝내자 또 서로 전쟁이 시작됐다
(스파르타와 아테내의 싸움에서 성안에 흑사병으로 인해 아테내가 패전한다)
(거듭된 전쟁이 이어져므로 스파르타와 테배와 전쟁에서 테배가 승리한다)
7).그리스 지역 내에서 구경만 하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부친 필립스 2세가 전쟁에 개입하여
테배와 한판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그리스을 통일한다
8)알렉산더대왕의 가정은 불운했다 부모는 불화가 극심했다 전쟁에 돌아온 필립스 2세는 공청회에서 암살당한다 알렉산더가 20세 초반으로 등극한다
( 의심은 알렉산더 모친이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이의을 제기 하지 못한다 알렉산더가 대왕에 올랐기 때문이다 )
9) 이틈을 노려 산악전에 강한 테배왕국아 반란을 일으키지만 알렉산더가 직접개입하여 평정한다
(약관 25세의 알렉산도 대왕의 진가 결정됐다 )
10).그리스(헬라)에는 이러한 세계을 정복할수 있는 막강한 저력이 숨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학문과 철학과 의회 정치 에도 출증하였고 그리스의 건축양식도 남달리 뛰어났다
과연 세계을 정복하고도 무엇하나 빠지질 않었다
11).헬라가 세계을 정복하면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헬라 안에 있는 모든 군사.문화.기술을 학문등을 집대성하여 알렉산더왕은 전쟁에 활용하는 반면 정복중에 있던 나라들의 문명들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집트 문명을 을 합하여 발전시켜 헬레니즘 문명을 만들어내며 인도 문명까지 흡수하기도 하고 전하기 도 하였다
12)이모든것을 활용하며 실천하며 성과을 올린것은 로마제국이었다 로마제국은 헬라니즘문명을 발전시켜 로마의 중심적인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이러한 모든 문명 중세가 이룩할수 발판으로 유럽이 형성하게 되여 오늘날 문명을 이루는 모든 기초가 된다
2.알렉산더 대왕 (재위 BC 336∼BC 323).
1).마케도니아의 왕
(별칭 알렉산더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 )
(국적 마케도니아 )
2).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서 알렉산더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한다.
①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 알렉산더 대왕의 탄생에 관해서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작가)가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②또는 “필립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
③그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遠征)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의 탐험(探險) ·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일 등은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 ·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④BC.338년의 카이로네이아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다.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니,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를 열고 아버지와 같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혔다.
⑤때마침 마케도니아의 북방에 만족(蠻族)이 침입하고 서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친정(親征)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그리스가 동요하고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즉시 테베를 토벌하고 테베시(市)의 전시민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⑥BC.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軍)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小)아시아로 건너갔다. 먼저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으며, 사르디스 그 밖의 땅을 점령한 뒤 북(北)시리아를 공략하였다.
⑦ BC.333년 킬리키아의 이수스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며,
이어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인 티루스(티로스) ·가자 등을 점령하였다.
⑧그리고 시리아 ·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를 공략하였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시(市)를 건설하고 1,000 km가 넘는 사막을 거쳐 아몬 신전에 참배하였다.
⑨BC.330년 다시 군대를 돌려서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軍)과 싸워 대승하였다.
⑩이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하였으나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하여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⑪그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軍)과 그리스군(軍) 중의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江)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다.
⑫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땅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다고 한다.
⑬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 동점(東漸)의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의 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다. 그가 죽은 뒤 대제국 영토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의 세 나라로 갈라졌다.
2).그리스 북방의 작은 마케도니아왕국
①그리스 북쪽 반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던 마케토니아 작은 왕국
②처음에는 그리스가 지배하고 있었으나, 페르샤 전쟁때 페르샤령으로 지배 받다가
페르샤제국이 쇠약해지자 그리스측에 붙게되었다.
③그리스내전 이라고 할수있는 페레폰네소스전쟁때(스파르타와 아테내의 내전)
마케토니아왕국은 관망을 하며 세력 을 축적하게되었다.
④ 마케도니아가 역사의 주역의 발판이 된것이 알렉산더스 부친 필립포스2세때이다.
⑤ BC.338년 ,마케토니아가 전쟁을 일으켜 그리스 전지역은 통일에 들어갔다
카이로네이아의 싸움에서 아테네와 테베연합군을 격파하고 그리스의 스파르타 이외의 포리스도 수중에 넣어 각 포리스의 독립성은 상실되고만다.
⑥필립포스2세가 다음에 목표한것은 페르샤였다.그래서 원정군을 조직하고 여차하면 출병할 찰나 암살당하고 만것이다.
⑦그를 계승한것이 아들 알렉산더3세 알렉산드로스대왕(알렉산더라고 불림)은 유명한 청년왕이다.
⑧ BC.336년,왕위에 취임하고 BC.334년 ,아케메네스조 페르샤에 원정을 개시
3만7000명이라고하는 군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⑨알렉산더는 군사의 천재라고 평가되어지고 중장보병,기병을 적절하게 이용해 싸움에 임하고 통솔력을 발휘하였다.
⑩ BC.333년 ,잇소스 싸움에서 다레이오스3세가 이끄는 페르샤군을 격파하고
BC.331년 ,카우카메라의 싸움에서 페르샤군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⑪페르샤의 다레이오스3세는 패주하는 도중,측근의 반역에 암살당하고 이래서 페르샤제국은 젊은 알렉산더의 수중으로 된것이다.
⑫그런, 알렉산더는 이것으로 만족하지않고 동쪽으로 진격해 에집트도 지배하게되고
알렉산더제국은 인도까지 확장되어갔다.
⑬이것은 이때까지 각각의 곳에서 발생해서 발전한 문화가 동서문명의 융합이라는 의미를 갖게된다.
⑭군사력으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인 알렉산더대왕이었으나 정복해서 지배한 나라에서는 관용정책을 폈다.
⑮본인은 그리스문화를 신봉하고있었으나 피정복민에게는 강요하지않고 좋은 문화는 이문화라도 받아드릴줄도 알았다.
⑯이래서, 동서문화의 교류가 성행하고 그 결과 생겨난것이 헬레니즘문화이다.
대표적인것이 그리스풍문화와 인도불교문화가 융합된 간다라미술이다.
⑰알렉산더대왕의 최종옥표가 무엇인지는 잘모르나 세계제국이라는건 확실한것같다.
⑱그런, 이러한 야망은 BC.323년 동방원정에서 돌아오다 바빌론에서 열병에 결려
32세8개월이란 나이에격동의 생애를 마감하게된다.
⑲그들의 조상에는 전쟁에 있어서 돌파정신은 그들의 조상인 아킬레스의 정신이 있었다
소수정예 부대로 견고한 성을 파고들어가 문을 열어 최정예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있었기
단8:5.온지면을 두루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을 하였다
다니엘서 11장. 상편
[1].단11장:4.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과 네명의 장군 등장
단8:8.수염소가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알렉산도대왕이 전쟁중 사망하자 헬라제국의 영토분할의 시대가 왔다
네명의 장군중 두장군들은 그리스 및 타 지역으로 분할되였고 시리아와 애굽지역을 관할 할 두장군들이 남게된다
성경에 관계된 이집트을 남방 왕과 시리아을 북방왕으로 명칭된다
{1}.단11장:4절. 남방과 북방
단11: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단11:4.그러나 그가 강성할때 그 나라가 강성 할때에 그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것임이니라
1).알렉산더 사후(BC.336년경-BC.323년경)
①알렉산더는 애굽을 정복하면서 나일 강가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 시를 건설하였다 그는 신의 아들이란 신탁을 받았지만
②BC.323년경 아라비아 원정중을 준비하던중 말라리아을 앓다 32세로 사망한다
③그 나라의 장래는 그의 아들에게 유업으로 넘겨주지 못하고 그아들중 하나는 휘하의 장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이복 형제도 암살당함으로 권력승계에 희생재물이 되었다
④헬라제국은 처음에는 12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되었다가 이후 네 부분으로 재 분활 되었는데 알렉산도 네 장군에 의해 4대 열강으로 이루어졌다
2.단11:4.그 나라가 강성 할때에 그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단8:8.수염소가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1).현저한 뿔넷의 정체
2).4대 장군들의 국가로 등장
①카산더--마케토니아 지역
②리스 마쿠스--트리키아 지역
③셀류쿠스--시리아 지역
④프틀레미--애굽지역
3).이들은 4장군 나라들은 로마에 의해 합병까지 분쟁이 끝치지 않았으며
성경의 11장 남방과 북방은 프트레미 제국(남방)과 셀류쿠스 제국(북방). 사이에 전쟁을 의 미하고 있습니다
4).이전쟁에서 이루어진 단11장의 핵심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①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인물이 작은 뿔로 등장합니다
②또한 이전쟁은 종말의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는 놀라운 계시의 진전을 보게
됩니다
③단11장의 남방과 북방의 끊임없는 전쟁을 주제로한 진행 상황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등장을 역사적 사실로 보여 주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그의 등장을 통해서 종말에 고개을 들고 나올 적그리스도의 실체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3.단11:5.남방의 왕은 강할것이나 그군들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것이요
1).남방왕은 프틀레미 소테르 1세 BC.321년경-BC.305년경
① 애굽을 통치 하며 강력한 나라로 부상시킨 왕이다
2).그 군들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을 떨치리니
시리아 왕으로 등장할 셀류쿠스 니카톤 1세 이다
①알렉산더 왕시절에 두장군들은 대왕아래 같은 동료로 있었다
②잠시 애굽으로 피신해와 프트레미로부터 환대와 많은 도움을 제공하였다
③애굽의 도움으로 셀류쿠스는 시리아. 앗시리아등에서 자신의 세력을 뻗쳐 애굽과 대등한 강력한 나라를 이룰수 있었다
[2].남방과 북방의 전쟁의 발단
1.단11:6.몇해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이 딸이 북방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자의 그를 낳은자와 그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1).남방과 북방은 서로의 유익을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연맹관계를 맺으나 정략결혼은 왕가의 가족간에 사건으로 인하여 실패는 물론이고 서로의 철전지 원한관계가 맺게 됩니다
2).북방 왕가의 대사건의 개요 BC.250년경
①국제간의 정략 결혼
남방왕 프틀레미 필라델푸스 2세인 그의 딸 베레네스 공주가
북방왕 안티오쿠스 데오스 2세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②전부인 라오디스의 독살사건
문제는 북방왕의 안티오쿠스2세의 전부인 라오디스 계략으로 인하여
자신의 남편이였던 북방왕을 비롯하여 공주 베레네스와 그의 아들 및
그 시종들 남방에서 데리고 모든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살해 하였던 대사건이 일어났습니다
③전부인 라오디스 계략의 성공
북방왕의 전부인은 라오디스에게는 두아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④전부인의 아들 왕권 승계
라오디스 계획대로 라오디스의 아들이 셀류쿠스 칼리니 쿠스 2세 왕권승계가 이어집니다
⑤국제간 마찰과 보복원인
라오디스 질투심과 복수심 아들이 왕권승계등 이루어졌지만 국제적 커다란 국제 분쟁의 화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⑥이로인한 국제사회의 양국간의 적대관계의 원한은 전쟁으로 휘말리게 됩니다
2. 단11:7.그러나 이공주의 본족에서 난자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단11:8.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것이요 몇해동안은 그가 북방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남방왕이 북방왕에 대한 대사건에 대한 징벌 전쟁 )
1).공주의 본족에서 난자중에서 프틀레미 3세
①베레네즈 공주의 아비인 프틀레미 2세는 이런사건속에 연유인지 모르지만 곧 사망하게 됩니다
②그러자 베레네즈 공주의 오빠인 프틀레미 3세가 바로 등극합니다
③그 의 오빠는 공주인 동생의 원한에 극에 달함으로 등극과 동시에 전쟁준비에 만반의 준비을 다합니다
2)베레네즈 공주 오빠 프틀레미 3세의 보복 북방의 침공
①프틀레미 3세인 베레네즈공주의 오빠는 애굽의 최고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단숨에 북방왕을 점령합니다
②공주을죽인 전부인 라오디스및 관계 된자들을 공개 처형한다
③어찌 됐든 현재 북방왕인 셀류쿠스 켈리니커스2세 왕의 어머님이다 또 하나의 원수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④점령군으로서 시리아 도시들어가 북방의 자존심인 각종신전을 태웠다
⑤금12000KG 달하는 금은으로 만든 가구등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몰수한다
⑥남방왕은 부글부글 끊는 마음으로 점령한 그 댓가는 북방으로서는 너무나 참담했다
3.단11:9.북방왕은 남방왕의 나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1).북방왕의 셀류쿠스 켈리니커스 2세의 반격 240년경 1차 공격 실패
①북방왕은 참담했다 짋발힌 도시도 그러했지만 모친의 공개처형과 이모든 일에 대하여 보복전쟁을 몇해동안 준비하였다
②그걸모르고 있는 남방왕이 아니었다 북방왕이 공격하였으나 별로였다
결국 패전하고 돌아온다 그러한 연유인지 모르지만 곧 정권도 바뀐다
4.단11:10.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같이 나아올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것이요
1).전쟁을 준비한 그아들들이란
①셀루큐스켈리니쿠스 2세 1차 공격 실패후에 죽고 그의 두아들들이 있었으니
②셀루큐스 소테르 3세와
안티오쿠스 마그누스 3세의 두아들을 지칭한다
2)셀루큐스 소테르 3세가 왕위계승 227년경
①소아시아 전쟁에서 동료들에게 살해되었으며
3).안티오쿠스 마그누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①안티오쿠스 마그누스 3세는 남방왕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빼앗긴 재물을 되찾기 위해 원정을 나서게 되었다
②이 원정에서 처음에는 남방왕의 견고한 성까지 쳤지만
5.단11:11.남방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왕과 싸울것이라 북방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붙인바 되리라
1)남방왕 프틀레미 4세의 격노한 반격에 밀려 라피아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①북방왕 안티오쿠스 마그누스 3세 남방에 대한 2차공격의 실패
6.단11: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것이요
1)1차.2차 북방의 공격에 이긴 남방왕 프틀레미 4세의 교만
①애굽이 승리로 매듭짖자 스스로 교만해져서 수만명의 시리아군 포로들을 사형에 처하게 된다
7.단11:13.북방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해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안티오쿠스3세는 2차전쟁에 패한후 본국으로 돌아가
①주변의 영토를 확보하여 다시 국력을 배양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남방을 공격한다
②안티오쿠스3세의 3차 공격준비
8.단11:14.그때에 여러사람이 일어나서 남방왕을 칠것이요 네 백성중에서 강포한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1).안티오쿠스 3세의 남방의 3차 공격당시 시대적 배경
①애굽은 프틀레미 4세는 죽고 그뒤을 이어 프틀레미 5세의 등극 (당시 4세)
애굽은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에 안티오쿠스 3세의 공격을 받게된다
2).이런 전쟁에 소용돌이 과정속에 예루살렘이 미치는영향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①14절 본문에 내용은 이스라엘내의 친남방파와 친 북방파의 정책적 환란이였다
그때에 여러사람이 일어나서 남방을 칠것이요 네 백성중에서 강포한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②이전쟁이 일어날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속국처럼 예속되어 있었던 처지 였으므로 이기회을 이용하여 애굽의 세력을 남방을 축출하여 주권을
찾으려는 계획을 세우는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이 친 셀루크스파 유대인들이였다
③이같은 계획을 프틀레미 왕조의 스코파스 장군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9.단11:15.이에 북방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취할것이요 남방군대는 그를 당할수 없으며 또 그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북방왕의 침공은 치밀하고 집요하였습니다
①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들을 취했으며 이에 맞대응하는 남방왕의 군대는 비록 정예부대(택한군대)라도 시리아군을 당해낼수 없었습니다
10.단11:16.오직 와서 치는자가 임의로 행하리니 능히 그앞에 설사람이 없겠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것이요 그손에 멸망이 있으리라
1).당시 시리아 군이 이스라엘에 입성하게되었는데 그이전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보호아래 있으므로 애굽군대가 이스라엘을 방위하고 있었으나 보호하지 못함으로 결국 북방이 이스라엘 점령을 말합니다
①북방왕은 애굽 본토에 침략을 실패하다 보니 꿩대신 닭이라고 주변국인 이스라엘을 점령하였다
②북방왕 안티오쿠스의 3차 공격은 남방에 승리대신 이스라엘을 점령하였다
11.단11: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 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북방왕은 힘을다하여 남방왕을 치러하였으나 달갑지 않은 소문이 전해졌다
①애굽이 로마와 협정을 맺었다는 소문이였다
②그당시 로마는 그세력이 전유럽과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확장해 나가는 강력한 나라로 부상하고 있었다
③북방왕 안티오쿠스 3세는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북방왕은 결혼정책을 네세워 거짓화해의 미끼로 남방을 유혹했다
④여자의 딸이란 안티오쿠스 3세 의 딸인 클레오 파트라를 말한다
자기딸을 7세에 불과한 프틀레미 에피파네스에게 준것은 순전히 음흉한 미인계로 장차 애굽을 지배하려는 야욕에서 나온것이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⑤남방에 시집간 클레오파트라는 오히려 남편과 손을 잡고 로마와 동맹관계를 맺게함으로 북방에 친정아버지인 안티오쿠스3세에게 치명타을 가한다
12.단11:18.그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할 것이나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를 씻고 그수욕을 그에게로 돌릴것이므로
1).안티오쿠스 3세의 로마군과 전쟁
①로마와 전쟁에서 패배하므로 본국으로 돌아와 최후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②그후 북방왕은 뜻이 여의치 않게되자 애굽에 대한 정책을 수정하고 대담하게 로마와의 일전을 시도했다
③북방왕이 그얼굴을 돌린다는 일시적인 승리를거두는 듯하였으나
의 의미는 로마가 점령하고 지배하고 있었던 여러섬들을 말하며 이곳을 공략하여 일시적인 승리을 거두는듯 했다
④본문에 “한대장이 있어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것이라”
⑤이대장은 로마의 루키우스 스키피오로 그는 BC.190년경 막네시아 전투에서 안티오쿠스 3세을 대패시켜 대로마 제국의 수욕을 씻었다
13.단11:19.그가 드디어 그얼굴을 돌이켜 자기땅 산성들로 향한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1).북방왕 안티오쿠스 3세가 살해당함으로 한많은 인생이 끝난다
①패전으로 인한 로마의 무리한 요구를 듣지 않을수 없게 됬다
②안티오쿠스3세는 로마에 갚을 패전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각지역의 신전들을 찿아가 닥치는대로 수탈했고 엘리마이스에 있는 벨사원의 보물을 약탈하려다가 그곳에서 살해 당한다
③그의 죽음으로 남북간 제3차전쟁은 대단위로 끝나고 역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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