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다니엘 강해

[스크랩] 다니엘서 파노라마

에반젤(복음) 2019. 12. 27. 16:47


            

다니엘서 파노라마

 


주제 : 열왕의 때에 하나님께서 세우실 한 나라

 


다니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1:1) 하고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1차 침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손에 붙이시매”(1:2)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성전 기명들과 귀족들을 사로잡아 갔는데 그 중에 본서에 등장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끼어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를 대할 때에,

 ㉠ 어찌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대적에게 붙이셨는가 하는 원인과,

 ㉡ 그런 중에도 “남은 자”가 있게 하셨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염두에 두어야만 바르게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원인


어찌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 내어주셨는가?

이점을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서 자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犯罪)하여 패역(悖逆)하며 행악(行惡)하며 반역(叛逆)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9:5-6) 하고 자백(自白)합니다.

 그러면 저들이 범한 “반역”이 무엇인가?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구약교회가 징벌을 당하게 된 원인이 윤리적인 죄 때문만이 아니라, 치명적인 죄는 우상숭배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메시아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았음을 가리킵니다.

이를 다니엘은 “반역”(9:5)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유대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叛逆)이 있도다(렘 11:9),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하리라”(겔 17:20) 하십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멸망당하게 되는 원인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기 때문이요,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다”(9:13) 하고 진술합니다.

모세는 유언과 같은 마지막 설교에서,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신 30:15, 17-18) 하고 경고했는데, 슬프게도 그대로 임하고만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교회가 심판 당하게 된 원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이럴 경우, 즉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경우 중요하게 대두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 영예”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성전(聖殿) 기명들을 가져다가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神)의 보고에 두었더라”(1:2) 합니다

. 블레셋 사람들도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삼상 5:2) 합니다.

또한 삼손을 끌고 가서도,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제사를 드리고 즐거워”(삿 16:23)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자신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이겼음을 과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성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모독을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기를,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8-19)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렘 14:7) 합니다.

시편 기자도,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시 79:9) 합니다.

 

하나님이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시 115:1) 합니다.


무슨 뜻인가? 포로에서 귀환하게 해달라는 것이,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죄 값으로 징벌을 당해 마땅하지만 자신들 때문에 하나님이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포로귀환)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 36:22-23).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聖所)가 되리라”(겔 11:16) 하시는 망극하신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자기 백성들이 잡혀가고 있는 바벨론으로 따라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바벨론에 임시 성전이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점을 다니엘서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6장은 포로 중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진술하는 내용이고,

 7-12장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건설에 대한 묵시적인 말씀입니다.

 전반부(1-6장)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내려가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하심을 어떻게 나타내셔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셨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세운 신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절하지 아니하는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불 가마 속에 집어 던지면서 말했습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3:15).

그러나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대하고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3:27-30) 한 조서를 내립니다.

이것이 거룩하심을 나타내신 일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승리인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원해내셨을 때에도

다리오 왕은, “내 나라 관할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6:26-27) 하고 찬양을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스 1:1)시키셔서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 36:23)는 의미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따라가신 하나님


그런데 명심해야할 점은, 불 가마나 사자 굴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 아니요, 바벨론의 포로가 돌아옴으로 파괴당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건설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팔려간 사탄의 포로가 돌아와야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만이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중이며, 다니엘서의 기록목적도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임을 놓치지 말아야만 합니다.

다니엘서에는

“금령”(禁令)이라는 말이 6번(6:7, 8, 9, 12, 13, 15), 그리고 “변개(變改)치 못한다”는 말이 4번(6:8, 12, 15, 17)이나 등장합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하려 애를 쓰지만 “변개할 수 없는 금령” 때문에 사자 굴에 던지라 명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금령(禁令)으로 인도해줍니다. 바벨론이나 메대와 바사의 금령도 변개할 수가 없다면, 하물며 의로우신 하나님이 발하신 금령(禁令)이겠습니까?


다니엘서의 중심주제


그리하여 온 인류는 하나님의 금령대로, “법 아래 →죄 아래 →심판 아래”(롬 3:9, 19)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9:11, 13) 바벨론에 내어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불 가마, 사자 굴”에서 구출되듯이 기사이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말씀합니다.

 “허물을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續)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9:24),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죽임을 당하여) 없어질 것”(9:26),

즉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가능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니엘서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왕(9:25), 고난(9:26), 속죄(9:24), 부활(12:2), 재림(7:13), 심판, 나라를 얻음(7:22) 등, 복음의 요소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서의 중심주제요 또한 구약성경의 중심주제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한 나라와 왕


다니엘서에는 “열국(列國)들과 열왕(列王)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정금 머리, 은 가슴, 놋 배, 철 다리”(2장) 신상(神像)과, 다니엘이 본 “사자, 곰, 표범, 넷째 짐승”(7장) 등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것이 세속국가와 왕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건설을 대적하며 백성들을 박해를 합니다. 이 기간이 주님이 말씀하신 “이방인의 때”(눅 21:24)입니다. 종주국이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로 바뀐다하여도 그것은 동일한 신상(神像)일 뿐입니다.

그런데 핵심은, “이 열왕(列王)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2:44)이라는 데 있습니다. 세속국가는 망하고 국권이 다른 데로 옮겨지지만,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나라는 영원한 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점이 다니엘서에는 거듭 강조되어(4:3, 34, 6:26, 7:14, 27)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는 왕이 있어야 하는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9:25) 하고, 메시아가 왕이심을 말씀합니다. 이를 8:25절에서는 “만왕의 왕”이라 말씀합니다.

이 “나라와, 왕”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하고 세워주신 언약이요,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位)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王)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에서 성취된 바입니다.  


메시아 왕국


그런데 이 열국과 열왕이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한 나라와 왕을 대적한다(7:25, 8:11, 25, 11:36)는 것입니다. 열국을금, 은, 놋, 철”에 비한 것은 강하기 때문이요,

사자, 곰, 표범, 사나운 짐승”으로 비한 것은 성도들을 물어뜯는 사나운 짐승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뿔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7:21, 25) 합니다.

이들이 적그리스도요, 배후의 조종자는 사탄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2:34-35, 45) 하고 말씀합니다.

 이점을 시편에서는,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라고 말씀하면서,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시 2:1-2, 9) 합니다.

 결국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심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7:22) 합니다.

이 싸움은 창세기 3:15절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끝나는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이런 맥락에서 다니엘서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4:17) 합니다.

 이 말씀이 4장에만 세 번(4:17, 25, 32)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을 쳐서 부숴뜨린다고 말씀하는데,

 5장에는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심판을 선고하는 글을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스 7:9, 28, 8:18, 22, 31)이었던 것입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9:24),

적그리스도의 활동기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된다고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

즉 그 누구도 대적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칠십 이레의 기한


다니엘서에서 가장 난해하고 이설이 많은 것은 “칠십 이레”(9:24)와 결부된 해석입니다.

그런데 묵시를 해석하는 원리는 분명한 것으로부터 분명치 아니한 것으로, 중요한 것에서 덜 중요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분명한 중심주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중심주제가 종말에 대한 시간표(時間表)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칠십 이레”라는 말이 어째서 나오게 되었는가?

 문맥을 통해서 보면 다니엘은, “서책(예레미야서)으로 말미암아,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9:2) 합니다.

 이를 깨달은 다니엘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칠십 이레”의 기한을 듣게 된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다니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은 70년이 차고 “포로에서 귀환”하게 되면 메시아왕국이 이르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즉 다윗과 같은 왕(메시아)이 나타나서 대적을 물리치고 옛날의 영광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70년이 차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을 기대했으나 하나님의 답변은 아니다. “70×7=칠십 이레”가 지나야 끝이 오리라 하신 셈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 하신 그런 의미와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7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7)에다 만수(滿數, 10)를 곱한(7×10) 상징적인 숫자로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다니엘서에는, 70이레뿐만이 아니라, “이천 삼백 주야, 1290일, 1335일” 등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를 억지로 적용시키려고 무리를 가하기보다는 겸비한 마음으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음”(행 1:7)을 인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은, “때가 찬 경륜(엡 1:9),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 4:4) 하고 말씀할 뿐 결코 숫자놀음을 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짐승과 뿔이 아무리 많이 나타난다 하여도 그것들은 한 몸(사탄)에 붙은 지체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기록목적


이제 마지막으로 다니엘서의 기록목적을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내용과 기록목적을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다니엘서의 1차 독자들이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느부갓네살이나 바벨론 사람들이 아니라, 포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반역(우상숭배)한 자기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느부갓네살의 꿈 해석(2장), 불 가마에서의 구원(3장), 교만한 느부갓네살의 징벌(4장), 잔치자리에 나타나 심판을 선고하는 손가락(5장), 사자 굴에서의 구원”(6장) 등을 읽으면서 저들은 얼마나 통회하며 자복했을 것인가?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4-7). 이것이 다니엘서의 기록목적입니다.


둘째는, 환난 중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위로, 격려,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았을 때에 얼마나 부끄러웠을 것인가?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겠다는 약속을 생각하면서 용기와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그런데 “평안과, 소망”이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귀환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하고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 아니할”(2:44) 메시아왕국을 지향(指向)하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교회가 어찌하여 바벨론에 내어줌이 되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적그리스도에게 짓밟히게 되었는가?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다, 죄악의 일로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것”(8:12, 13)이라 말씀합니다.

“붙인바 되고, 내어준 바 되었다”점을 명심하십시오.

왜 내어주시는가?

참과 거짓을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8:23절에서는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적그리스도)이 일어나리니” 합니다. 이런 안목으로 본다면 부패한 현대교회는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내어준 바 되어 지구상에 있는 교회를 짓밟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목해야할 점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의 타락이고, 두려운 것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복음을 상실한 세속화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끝까지 견뎌라


다니엘서는,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12:13)는 “기다림”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당대에 임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평안히 쉬다가”, 즉 주님의 재림의 나팔소리에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니엘도,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히 11:13)한 것이 됩니다.

그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니엘서를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하심과,

 부활하신 후에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6) 하신 원리에 입각해서 상고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교회를 향해서 경고하며,

 점점 불법이 성해 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형제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확신을 주기 위해서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이 책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를 증거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성령께서도 다니엘서를 기록케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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