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고전,후서 강해

[스크랩] 고린도전서 (개론)

에반젤(복음) 2019. 12. 17. 18:36



            고린도전서(개론)




[1] 고린도 시
[2] 고린도 교회의 기원
[3] 서신의 저자
[4] 기록된 장소
[5] 기록된 시기
[6] 기록된 동기
[7] 이 서신의 주요 특징
[8] 이 서신의 구성


[1] 고린도 시

고린도는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좁은 지협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로 부유한 도시였다. 그 도시의 중요성은 사도 바울의 선교적인 열심에 영향을 끼쳤다.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고린도는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사는 도시였다. 고린도는 전략상의 중심지였다. 고린도는 그 도덕적인 특징으로 볼때 메시야의 복음이 열매 맺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고린도는 타락과 방탕과 음란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에 고린도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바울은 인간의 죄에 대해 기록함에 있어서 고린도보다 더 많은 자극을 준 도시는 없었던 것이다. 바울이 가이오의 집에 유하면서 고린도 시를 살펴본 바가 로마서 1:18-32에 나열된 인간의 사악한 행동에 대한 위대한 목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성화(聖化)의 서신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어떤 사람이 죄악된 현대 도시에 사는 신자들의 어떤 모임에 성결의 편지를 띄운 것과 같은 것이다.

[2] 고린도 교회의 기원

고린도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8:1-17에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A.D. 50년에 제 2차 전도여행차 그 도시에 이르렀다. 고린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은 바울이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안 회당에서 18개월 동안의 사역을 시작했다. 사도행전 18:4은 사도 바울의 전도 방법을 두드러지게 간파하고 있다. 그는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 예언의 성취라고 전파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께서 친히 사용하신 방법을 따랐다.
주님께서는 그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셨다(참조 눅 24:27). 바울의 전도에 대한 반응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한 반응과는 달랐다. 대개의 경우 바울의 전도를 듣는 자들의 마음은 진리에 대한 관심으로 타오르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의 마음은 진리에대한 반발심으로 타올랐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행 18:6). 바울은 거기서 옮겨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고전 1:14과 롬 16:23에 나오는 가이오와 동일 인물인듯 하다)의 집으로 들어 갔다.
바울은 "약하며 두려워 하며 심히 떠는 가운데서" 전도를 계속했다(고전 2:3). 그러한 상황 아래서 누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인가? 작은 집회를 이루는 장소는 회당의 옆집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환상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고린도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 10)는 약속으로 격려하셨다. 이 약속은 이 후에 바울이 신자들의 도덕적 회의나 방종으로 그곳에서 선교하는 일에 회의를 품을 수 있었을 때 큰 위로가 되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마친후 예루살렘 과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3] 서신의 저자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한 사실에 대한 외적인 증거와 내적인 증거는 너무나 확실해서 사실상 주제로 삼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A.D. 95년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이 서신을 "복된 사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기자에 대해 이름으로 밝혀진 인용문의 최초의 실례이다(IC C. P. XVii).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과 그외 다른 사람들은 많은 외쳐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문체, 어휘, 내용과 같은 내적 증거들은 우리가 바울과 고린도에 대해 알고 있는 바와 일치되고 있다.

[4] 기록된 장소

이 서신은 흠정역 성서에 주어진 대로 빌립보에서가 아니라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참조: 고린도전서 16:8).

[5] 기록된 시기

기록된 시기는 절대 확정적으로 정할수 없으나 아마도 바울의 에베소 체류 기간 후반에 기록된듯 하다(참조, 사도행전 19:1-20:1). 만일 그렇다면 그 시기는 A. D. 55년경이 될 것이다.

[6] 기록된 동기

기록된 동기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관계를 맺고 편지 왕래를 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1)바울이 맨처음 고린도 성도들과 접촉하게 된 것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시작된다.

2)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으나 그것은 분실되었다(참조:고린도전서 5:9).

3)바울에 관한 소석을 기다리던 성도들로부터 근심스런 소식들이 왔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다.

4)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사도 바울은 아픈 마음으로 황급히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다.

5)이 방문 후에 바울은 매우 준엄한 편지를 보낸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2:4에 언급되어 있다.

6)사도 바울의 근심은 너무나 컸으므로 바울은 편지 전달자인 디도를 드로아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급히 마게도냐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디도를 만나 그 편지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린도 교회의 상태는 좋았던 것이다.

7)고린도 후서를 기록한 후에 바울은 기록상으로 볼때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다(참조:행전 20:1-4). 교회의 분쟁에 관한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다(참조: 고린도전서 1:11. 16:17). 더욱 심각한 것은 아마 유대 주의자들 이었을 것이다(참조 1:12; 9:1).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에서 에베소로 왔다(참조, 고전 16:17). 그들은 바울의 답변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포함한 편지를 가져 왔다. 그 문제들은 "...에 대하여는"이란 반복되는 중심 어귀에게 나타나고 있다(참조: 고린도전서 7:1, 25. 8:1. 12:1

[7] 이 서신의 주요 특징

이 위대한 서신은 13장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서정시로 인해 가장 유명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힐 때 신령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얼마나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 바울의 천재성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 속에서 번득이고 있다.

[8] 이 서신의 구성

바울의 논의는 명료하고 알기 쉽다. 명확하게 구분되어 질서 정연한 방법으로 하나의 주제가 다루어진 후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있다. 이 서신은 그 지역 교회에 맞는 생활 양식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