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고전,후서 강해

[스크랩] 제 58강/ 쉰여덟 번째 구원드라마(고전 1:1-13:13)

에반젤(복음) 2019. 12. 17. 18:27


                  

제 58강/ 쉰여덟 번째 구원드라마(고전 1:1-13:13)

 

 

허영의 도시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II)

I. 배경


  고린도 후서는 고린도 전서보다는 훨씬 다른 분위기에서 온 복잡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사이의 감정적인 갈등에서 온 위기 때문이다. 바울로부터 고린도 전서를 받은 이후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회개는  커녕 거짓 교사들을 추종하면서 바울을 불신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 후서 중에 10-13장에서 유대 지도자들의 도전에 대해 강한 어조로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그리고 1-9장은 디도가 고린도 교회에 가서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많은 사람이 회개를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울을 만난 이후에 쓰여진 것이다.

 

II.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주제 - 인사와 감사(1:1-11)


  고후 1-9장은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울을 다시 사도로 받아들인 다음 기쁜 마음으로 쓴 편지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문안 인사를 하고 아시아에서 겪은 환란과 아시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2. 두 번째 주제- 위기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와 사상들(고후 1:2-7:16)

  1) 여행 변경의 이유(1:12-2:4)
  바울은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회가 자신과 화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기쁨을 안고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고자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 후 팔레스틴 유대 땅으로 가고자 계획했었다. 그러나 고린도 여행을 취소한다. 그 이유는 자신으로 인해 다시 분열이 생길까봐 저희를 아끼려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그리고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돕는 자가 되려함이라고 한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쓴 것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 책벌 받은 자들과의 관계 개선(고후 2:5-11)
  바울은 디도편에 고린도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한다.

  3) 바울의 근심(2:12-13)
  바울은 디도편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격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나서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향한다.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 상황을 보고 받고자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향한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고 고린도 교회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4)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2:14-17)
  바울과 화해한 고린도 교회에게 믿음의 성숙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5) 직분의 우월성(3:1-11)
  그리스도파 사람들이 여전히 바울을 비난하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선동하자 추천서가 필요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추천서는 종이에 불과하고 믿음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의 편지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친 편지 즉 성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한다.

  6) 새 사역자(3:12-4:6)
  모세가 장차 없어질 것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시내산에서 수건을 쓰게 했다. 그러므로 율법이 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은 없어진 것이다. 주님은 영이시므로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고 얼굴에 쓰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의 종된 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7) 사도의 시련과 승리(4:7-5:10)
  사도의 시련과 승리에 관한 글이다.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며 믿음을 가지고 답답함을 만나도 낙심치 아니하며 예수의 죽음을 날마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땅의 장막이 무너지면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 있다. 덧입기를 사모한다.

  8) 화해의 임무(5:11-6:10)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온전하면 너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온다. 구원의 날이다.

  9) 바울의 호소(6:11-7:1)
  믿지 않는 자와 짝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제단이 같이 있을 수 없다.

  10) 바울의 기쁨(7:2-16)
  디도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마게도냐로 온 후 바울과 만나 기쁜 소식을 전한다. 디도는 고린도 교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의 글을 후회하지 않는다.

 

3. 세 번째 주제- 가난한 현제들을 위한 헌금(8:1-9:15)

  1)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8:1-15)
  마게도냐 교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자원하여 헌금한 것에 대하여 바울은 감사를 표현한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연보를 넘치게 해주었다. 힘에 지나도록 했으며 사랑과 진실함으로 행했다. 헌금을 통해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어 서로 어려울 때 보완할 수 있다.

  2) 디도 일행의 파견(8:16-24)
  디도와 형제를 시켜 연보를 보내는데 거액이었으므로 아무에게도 훼방 받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디도의 인간됨을 소개한다.

  3) 헌금에 대한 교훈(9:1-15)
  바울은 연보를 모금하는 일이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완료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마게도냐인들에게 이미 “아가야에서는 일년전부터 예비하였다”고 자랑했으며 또한 고린도 교회가 그들의 모금을 완료하지 못함으로써 자기를 부끄럽게 만들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바울은 왜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해야 하는 지 그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한다. 누구든지 일시적인 흥분으로 마지 못하여 헌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즐거움으로 하는 이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창고에는 모든 것이 넉넉하여 너희들의 살 것과 더욱 좋은 일에 쓸 것을 넉넉히 주신다. 헌금이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할 뿐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이 될 것이다.

 

4. 네 번째 주제- 사도권에 대한 바울의 변호(10:1-13:10)

  1) 바울의 변호(10:1-18)
  육체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 외모로만 사람을 보는 사람들, 편지로는 힘을 인정하나 몸으로는 시원치 않다고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은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능력에 귀속시킨 것이다.

 

  2) 바울의 자랑(11:1-15)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열심을 따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모색하는 동안 고린도 교인들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하고 추종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반박한다. 말은 졸하지만 지식에는 자신이 있다. 그것마저도 너희를 높이고 섬기기 위함이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3) 고난과 섬김의 사도직(11:16-12:13)
  바울은 매도 맞고, 옥에 갇히고, 파선 당하고, 주리고, 춥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었다. 그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4) 바울의 경고(12:14-13:10)
  고린도 교회에 세 번째 방문을 결심했으나 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너희 영혼을 기뻐하고 너희를 세우려 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다툼, 시기, 분쟁, 당 짓는 일, 수군수군, 음란과 호색을 일삼고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5. 다섯 번째 주제- 결론과 축복(13:11-13)

  기뻐하고 온전키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여 평안하며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기도를 보낸다.

 

III. 신학적 의미

  바울은 이 편지 안에서 다음 몇 가지 중요한 상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1. 교사상
  참 교사는 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가 가르친 진리는 모든 지식을 완성하고 모든 지식 위에 있고 모든 지식을 비추는 궁극적인 빛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가르침이었다.

  2. 사도상
  바울은 “사도성”은 계승도, 계급도 아니며 사도성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거짓 사도들이 자신들의 권위만을 자랑하는 반면 바울은 사도의 권위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종과 섬김의 직임을 강조하는 것은 대조적이다.

  3. 목회자상
  바울은 자신이 세우고 또 심었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속임수에 빠져 자신을 배신하고 배척하는 비참한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권으로 통제하거나 지배하지도 않았다. 끝까지 사랑으로 설득하고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