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방언보다 예언이 더 나은 이유(고린도전서 14:13~25)
* 본문요약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이 나은 이유를 계속해서 말합니다.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1만 마디의 방언보다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듣는 자들의 덕을 세우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고,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언은 듣는 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마음에 숨은 비밀을 드러내게 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합니다.
찬 양 : 278장 (새 220) 사랑하는 주님 앞에
175장 (새 195)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 본문해설
1. 믿는 자들에게 예언이 더 나은 이유(13~19절)
13)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할지라도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으로도 기도하고,
또한 영으로 찬송하면서 마음으로도 찬송하겠습니다.
16) 만일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영으로만 축복한다면(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면),
알지 못하는 자들은(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은)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러분의 감사에 “아멘”할 수 있겠습니까?
17) 여러분이 훌륭하게 감사의 기도를 잘 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합니다.
18) 내가 여러분 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9) 그러나 내가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방언으로 1만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깨달은 마음으로(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섯 마디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13절) :
방언을 통역하여 자기가 하는 방언의 뜻을 아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라는 뜻.
- 알지 못하는 자들(16절) :
훈련을 받지 못한 자, 외인의 위치에 있는 자,
방언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자를 뜻합니다.
- 아멘(16절) :
아멘은 ‘진실’이나 ‘참되다’의 뜻으로, 구약에서 기도나 시편을 낭독할 때 그것에 찬성과 공감을 표하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설교를 들을 때나 대표기도를 들을 때에,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하는 마음을 담아 “아멘”하고 화답합니다.
2. 불신자들에게 예언이 더 나은 이유(20~25절)
20) 형제들이여, 지혜에는(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지혜에는(생각하는 데는) 장성한 자가 되십시오.
21) 율법에 기록되기를 “내가 다른 말을(방언을) 하는 자와 다른 입술을 통해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고,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만일 온 교회가 모여 모두 방언으로 말한다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듣고,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24) 그러나 모두가 예언을 하면 (방언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
서 듣고는, (예언을 하는) 그 모두에게 책망(질책)을 듣고 판단을(심판을) 받아서
25) 그 마음속에 숨은 비밀이 들어나게 되므로, 그들이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율법에 기록되기를~(21절) : 이사야 28:11,12 인용
유대인들이 다른 방언을 하는 자인 앗수르(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한다면 듣는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 마음속에 숨은 비밀이 들어나게 되므로(25절) :
1)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마음속에 숨겨 둔 죄들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
2) 성령께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에게 숨겨진 마음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그 비밀을 드러내어, 듣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
그 믿음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
* 묵상 point
1. 방언하기보다 예언하기를 원하라.
고린도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자들이 교회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많아지자 바울은 방언하기보다 예언하기를 원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방언보다 예언이 나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1)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구하라.
방언을 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만일 대표기도나 설교를 방언으로 하게 된다면 알아듣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문제는 방언을 하는 본인 자신도 자기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자들은 통역하기를 구하여 자기가 지금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아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니 마음에는 열매가 없다.
방언은 비밀스러운 영의 언어로 기도하는 것이니 기도하는 자의 영에는 도움이 되지만, 마음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도 자기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를 아무리 오래해도 그것이 회개하는 기도인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인지 알지 못하므로, 그 기도를 통하여 회개하려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고, 감사하거나 섬기려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3) 만일 영으로만 감사한다면 누가 그 감사에 아멘 할 수 있으리요
유대인의 격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멘을 말하는 자가 축복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아멘을 말하는 자가 누구이든 그에게는 낙원의 문이 열리게 된다”, “아멘을 짧게 말하는 자는 그의 날이 짧아질 것이다.”- 쇠트겐(Schoettgen)』 쇠트겐은 이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말했으나, 우리는 그의 말에서 유대인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아멘”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멘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찬양하는 것 이외에 성도들이 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성도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아멘”하고 화답함으로써 설교나 대표기도에 참여합니다. 이것은 판소리에서 관객들이 단순한 추임새를 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포되는 그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여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멘” 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방언으로 말하면 듣는 이가 아무도 그 뜻을 몰라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으니, 그 설교나 기도에 대하여 아무런 화답을 못하여 그 복이 나에게 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4) 1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1만 마디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알아듣는 말로 다섯 마디를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주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니, 교회를 세우는 것은 주님을 직접 모시고 대접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자기의 영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보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훨씬 복이 되는 일입니다.
5) 지혜에는 장성한 자가 되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합니다. 방언으로 자기를 과시하려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버리고, 어른처럼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6)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고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
방언이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되는 이유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방언은 더 이상 신기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알아듣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이 더 귀하고 중요합니다.
2. 그러므로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방언이 우리에게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신령한 영의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사람이 알아듣는 말로도 기도하며, 또 방언으로도 찬양하고 알아듣는 말로도 찬양하리라고 말합니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남이 듣지 않는 데서 혼자 있을 때 하십시오. 방언은 결코 자기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3. 예언은 듣는 자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찬양하게 한다
방언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니 듣는 자가 전혀 그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예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니 듣는 자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찬양하고 경배하게 합니다.
1) 예언은 책망과 질책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한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자가, 그 시대나 교회나 성도의 영적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냥 성경을 읽을 때에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어려우나,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수지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선포하니, 듣는 자로 하여금 말씀을 통하여 책망과 질책을 듣게 하여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2) 예언은 말씀으로 판단(심판)을 받게 한다.
자기를 향하여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듣는 자는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3) 예언은 마음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나를 심판하시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죄를 드러내어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꼭 성도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 죄를 드러낸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드러내어 고백하게 되는 뜻입니다.
4) 이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하나님을 고백하게 된다.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성령께서 예언하는 자에게 그가 가진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셔서, 그의 마음속에 숨겨진 죄를 강제로 드러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말하지도 않았음에도 예언하는 자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에 놀라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묵상을 위하여 : 듣고 회개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렇게 죄를 깨닫고, 그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 속에서 회개하는 일들이 예언하는 자에게서도 일어나지만, 성경말씀을 보고 묵상하는 가운데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며 스스로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에 힘쓰지 않으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를 통해 강제로 회개하는 자가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가 책망과 질책을 선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도 거부한다면 그는 결국 멸망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 기도제목
1. 방언과 통역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사를 내려주옵소서.
2.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그러나 이 모든 은사를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글쓴이 : 송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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