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서가 증거하는 그리스도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와 같이 고린도전·후서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증거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고 또 은혜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의 능력
고린도전서 1:24에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22, 23절의 결론으로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22, 23절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이렇게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니 능력이 필요하였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니 지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입지 못한 유대인들은 호기심으로 표적 보기를 좋아하였고 부르심을 입지 못한 헬라인들은 사색적으로 지혜 얻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데,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부르심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밖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이 그 소원과 목적을 달리하고 있으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소원과 목적이 통일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능력도 되고 지혜도 되어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1) 하나님의 능력-성육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고 여러가지 이적을 행하시고 죽었다가 다시 사시고 승천하시고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또 십자가의 은혜로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는 역사는 진실로 표적 중의 표적이며 능력 중 최고의 능력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지혜-천지창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의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또 지혜로 죄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잠언 8:30에 보면 지혜가 말하기를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으며……”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지혜가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었다”고 한것은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 곁에서 창조하시는 일에 동참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대신 속죄로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이 대신 속죄의 제도, 이 방법은 참으로 지혜로운 제도요 지혜로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십자가의 도 이상의 지혜는 없습니다. 진실로 십자가의 도는 제도 중 최고의 제도요, 지혜 중 최고의 지혜요, 또 방법 중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2. 성경을 이루신 분
고린도전서 15:3, 4에 보면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의 계시대로 죽으시고 성경의 원리대로 다시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만 성경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것도 성경대로 나셨고(사 7:14),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도 성경대로 나셨고(미 5:2), 애굽으로 피난가신 것도 성경대로 가셨고(마2:15),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도 성경대로 대답하셨고( 마 4:4-10), 연약한 것과 병자들을 고치신 것도 성경대로 고치셨고(사53:4), 가르치고 전파하시는 것도 성경대로 하셨고(마 5:17, 18), 나귀타고 입성하시는 것도 성경대로 하셨고(슥 9:9), 반항하지 아니하고 잡히신 것도 성경대로 잡히셨고(사 53:7; 마 26:53, 54),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성경대로였고(사 53:5), 부활하신 것도 성경대로 하셨고(마 28:1-10), 승천하신 것도 성경대로 하셨고(눅 24:50-53; 행 1:9-11), 장차 재림하시는 것도 성경대로 하실 것입니다(마25:31-33, 행 1:1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성경대로의 생애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성경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문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나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나도 침묵한다”고도 말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칼빈주의는 곧 성경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신학을 정립하고 성경으로 신앙의 기초를 삼고 성경으로 생활의 원리를 삼는 것이 칼빈주의요 개혁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성경읽고 성경 상고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 왔습니다. 모든 공 예배시간에 그 날의 본문을 읽기전에 먼저 성경을 계속하여 한 장씩 읽어왔고 성경연구 문제는 오늘 1142번을 내 놓았으며 권찰심방도 성경교안을 가지고 하고 있으며 구역예배도 가정예배도 성경교안대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 일년 일독, 성경 신학원도 다 성경읽고 성경 연구할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랑으로 강권하시는 그리스도
고린도후서 5:14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하게 끈다, 강하게 요구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하여서 우리를 견딜수 없게 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한다, 어찌할 줄 모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주께서는 자기의 사랑(십자가의 사랑)으로 바울 사도를 강하게 끌고 억지로 요구하여서 바울 사도로 하여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였고, 어찌할줄 모르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최고의 사랑, 절대적 사랑, 십자가의 사랑으로 바울 사도를 사랑하여 주시니 바울 사도는 주님의 사랑이 너무도 감사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감격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렇게 된 사정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서는 헐벗고 굶주려도 좋고 욕먹고 매맞아도 좋고 쇠사슬에 매이고 옥에 갇혀도 기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바울 사도에게만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대의 모든 성도들을 다 강권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강권하여 주십니다. 역대의 모든 신실한 성도들이나 충성하던 종들도 별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로잡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자 프랜시스는 길가다가 문득 그리스도의 사랑이 생각나서 길가에서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여! 바울 사도를 강권하시고 프랜시스를 강권하신 것과 같이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4. 교회에 충만한 성자의 은혜
고린도후서 13:13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성삼위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축복의 원형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축복의 순서가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되어 있지 아니하고 성자 성부 성령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시작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교회에 제일 먼저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제일 선두에 내세워야 합니다.
5. 그 밖의 그리스도
이 외에도 고린도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들은 간단하게 항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15에 보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였으니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고린도전서 10:4에 보면 “그리스도는 반석이다.”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1:23-26에서는 성찬식을 제정하여 주셨고, 고린도후서 4:4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8:9에서는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자이신데 이 부요하신 자가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이 고린도서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데 그는 성경대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강권하여 그 무한하신 은혜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언대로 성도들의 구원을 성취하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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