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연구
서 론
1.적어도 13개의 서신은 바울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의 첫 서신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렇지만 현대의 많은 보수적 학자들은 갈라디아서가 그이 첫 서신이라고 생각한다.
2.이 책의 기록 연대를 결정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수신인에 관련된 것이다. 이 편지는(바울이 2차 및 3차 전도 여행 당시에 방문하였던) 북부 갈라디아의 교회에 보내진 것인가? 아니면(그가 1차 전도 여행 때에 설교한 바가 있는) 남부 갈라디아의 교회에 보내진 것인가? 만일에 남부설이 타당한 것이라면 갈라디아서는 그가 쓴 최초의 편지가 될 것이다.
3.갈라디아 사람들 자신은 감정적이고 열정적이 켈트족 사람이었다. 씨저(Caesar)는 "그들은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러우며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은 바울이 그들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입증되었다. 아침에 그들은 그에게 경배하려고 하였으나 오후에는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행 14장).그들은본래발틱해의 북부에서 유래한 갈리아족(Gauls)의 일족이다. 그들은 프랑스를 향해 서쪽으로 이주하던 게르만 민족대이동 대열로부터 이탈하여 주전 3세기 경에 소아시아에 정착하였다.
4.갈라디아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체로 수많은 이방인 무리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곳을 떠난 후에(합법적으로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단의 유대인들이었던) 유대 교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고자 하면 율법의 멍에를 반드시 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에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들의 가르침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할례라는 유행병이 만연되었다.
5.그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반박했을 뿐아니라 그이 사도직까지도 부인하였다.
6.갈라디아서는 속기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도 바울이 직접 기록한 유일한 책일 것이다(갈 6:11).
7.그것은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고린도후서 다음으로 가장 자서전적이며 수신처가 여러 지역 교회들인 바울의 유일한 편지이다.
8.핵심 단어는 '자유(liberty)이며, 이 서신 가운데 11회 사용되고 있다.
9.유대교는 기독교의 요람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무덤과 같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바울을 그리스도 교회의 모세와 같은 자로서 세우셨다.
10.갈라디아서에서 완결된 그의 사도직에 대한 문제가 고린도후서에서 다시 거론되며, 로마서에서 완결될 이신칭의에 대한 교리가 갈라디아서에서 싹트고 있다.
11.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놀라우리만치 평행을 이루고 있다. 최소한 19개의 구절이 서로 좋은 비교가 될 수 있다. 로마서가 완성된 그림임에 반하여 갈라디아서는 그 그림의 개략적인 스케치이다.
12.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연대를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1)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 주후 29년(행 2장)
(2)바울의회심-주후 31년(행 9장)
(3)아라비아방문- 주후 31년(갈 1:17)
(4)다메섹으로 돌아옴 - 주후 33년
(5)구원받은 자로서의 예루살렘 첫 방문 - 주후 33년(갈 1:18; 행 9:26)
(6)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남 - 주후 33년(행 9:30;갈 1:21)
(7)안디옥에서의 초기 선교 - 주후 35년(행 11:25-26)
(8)예루살렘 2차 방문 - 주후 46년(행 11:29-30;갈 2:1-10)
(9)안디옥에서 제1차 전도 여행을 떠남 - 주후 46년(행 13장)
(10)안디옥으로돌아옴 - 주후 49년(갈 2:11;행 14:26)
(11)안디옥에서 시몬 베드로와 만남(갈 2:!1-14)
(12)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함(이는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고자 하는 시도이며, 그가 베드로에게 말로써 했던 것을 편지로써 하고자 하는 것이다).
(13)예루살렘 회의 - 주후 49년(행 15장)
13.갈라디아서의 성격 - 맥기(J.Vernon McGe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그것은 단호하고 가혹하며 준엄한 메시지이다(갈 1:6-9;3:1-5). 그것은 고린도전.후서들 처럼 행실을 책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위한 개선책이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교인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의 기초가 공격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이 위협을 당하는 것이었다.
이 서신에는 칭찬, 찬사, 혹은 감사의 말은 한 마디도 없다. 기도에 대한 요구도 없으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한 언급도 없다.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그의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보자.
(2)사도 바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여기에는 깊은 감정과 강한 충동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그이 전투적 서신이다. 즉 그는 전투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율법주의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하기를 로마서는 바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에 반하여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가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을 논쟁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3)그것은 모든 형태의 율법주의로부터의 해방선언이다. 이것은 마틴 루터가 애독하던 성서이며 종교 개혁의 정점에 있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이고, 기독교의 행방 선언이며, 난공불락의 거점이고 복음의 핵심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참된 지브라올터 즉 견고한 요새이다. "불멸의 승리가 그 이마 위에 놓여 있다."
(4)그것은 성서 안팎 전체를 통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가장 강력하게 선포하며 또한 수호하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공격 앞에서도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장이다.
죄인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받은 죄인도 은혜로 말미암아 삶을 살아간다. 은혜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며 생활양식이다"([성서개요], p.108).
I.변론 - 변호(1-2장)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변호한다.
1.그들의 현재의 분쟁으로 인한 바울의 괴로움(갈 1:1-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6).
1.이 "복음"은 실제로(종류는 같으나 다른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 알로스(allos)가 아니라(종류 자체가 다른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 헤테로스(heteros)이다.
2.이 "복음"은, 비록 그것이 천사나 바울 자신에게서 온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3.만일 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믿게 된다면, 그 수용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 1:8-9의 "저주를 받다"는 말의 헬라어는 아나테마(anathema)이다(참조, 행 23:14;고전 12:3;롬 9:3;살후 1:9).
2.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바울의 약술(갈 2:1-10).
분쟁을 일으키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의 권위와 합법성에 대해 공격했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들은(필경 고린도전서 9:22를 잘못 해석하여) 바울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이고, 다른 사도들의 지휘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자유의 몸이 아니라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가 원래 12사도들 가운데 속하지 않은 신출내기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제 이러한 비난들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1.그의 구원과 사도적 소명의 근원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뿐만 아니라 구세주는 바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또한 보여주셨다.
(1)최후의 만찬(고전 11:23)
(2)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고전 15:3-4)
2.그의 구원과 사도적 소명의 필요성(갈 1:13-15).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으며 회심 이전에 그가 살던 끔찍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말하기 좋아하였다(참조,행 22:1-16;26:1-20;딤전 1:12-16).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그가 마침내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부름받은 것은 실제로 그의 출생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라고 그는 말한다(갈 1:15).
이처럼 태중에 있는 아기가 부름을 받은 경우가 바울 외에도 성서에 두 번 더 기록되어 있다.
(1)선지자 예레미야(렘 1:4-10)
(2)세례 요한(눅 1:15-17)
3.그의 구원과 사도적 소명의 목적(갈 1:16). 그것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바울은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려고 바울 안에 그리스도를 계시하였다.
4.그의 구원과 사도적 소명에 수반된 사건들(갈 1:17-2:21).
(1)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게 되었다(행 9:1-22)
(2)그는 약 3년동안아라비아에가있었다(갈 1:17)
(3)그는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갈 1:17;행 9:23-25;고후 11:32-33)
(4)구원받은 후 처음으로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갈 1:18-20;행 9:26-29).
이 때 그는 불과 15일 동안 머물면서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다.
(5)그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다(행 9:30;갈 1:21;행 22:17-21).
(6)그는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선교하였다(행 11:25-26).
(7)그는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하였다(갈 2:!-10;행 11:29-30). 이는 그의 회심 이후 14년만의 일이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바로 이 때부터 유대계 기독교도들이 바울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들의 악마 같은 율법주의와 하나님의 순결한 은혜를 혼합시키도록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막다른 벽에 브딪히고 말게 될 것이었다. 즉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울을 격려하며 계속하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도록 하였다.
(8)그는 바나바 및 요한 마가와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 12:25).
(9)그는 안디옥에서 바나바 그리고 요한 마가와 함께 제1차 전도 여행을 떠났다(행 13장).
(10)그는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 14:26).
(11)그는 안디옥에서 시몬 베드로를 만났다(갈 2:11-14). 이 만남이 정확하게 언제 있었는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만남이 예루살렘 회의보다 늦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베드로는 몇몇 유력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을 때, 언제나 따라다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물러나오고 말았다. 바울은 이로 인해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였다. 이러한 행동을 함으로 베드로는 다섯 가지 중요한 교리를 부정한 셈이 된다.
1)교회의 통일성(갈 2:14)
2)이신칭의론(갈 2:15,16)
3)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갈 2:17-18)
4)내재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갈 2:19-20)
5)하나님의 은혜(갈 2:21)
이러한 책망에 대한 베드로의 즉각적인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매우 솔직하게 깊이 회개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바울에게 악의를 품거나 하지는 않았다(참조, 벧전 3:15).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은 성서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말씀 중 하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I.경고-재난(갈 3-4장)
바울은갈라디아 교인들이 형식의 멍에를 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율법주의와 자유의 차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세 가지 강력한 예를 들고 있다.
1.인격, 이는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끌어낸 예이다(갈 3:1-5).
여기에서 바울은 오직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1.먼저 너희들은 어떻게 하여 새로운 성품을 얻게 되었는가?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2.너희가 새로운 성품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느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워렌 윌스비(Warren Wiersbe)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에서 인간의 탄생을 예로 든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한 아기가 잉태되어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가 모두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한 아기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영적 부모가 필요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3:1-8;벧전 1:22-25). 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게 마련이다. 즉 더 첨가되어야 할 것이 필요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게 되면 그는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게 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덧붙일 것이 필요없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음식, 운동 및 깨끗케 해주는 것 뿐이다. 만일 부모가 첫 달에는 귀를, 둘째 달에는 발가락을......부여받기 위해 아기를 의사에게 데려가야 한다면, 이처럼 기이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자유하라], p.57).
2.율법-모세의 율법에서 끌어낸 일련의 예들이다(갈 3:6-4:20).
1.아브라함과 율법
(1)아브라함은 율법이 인간에게 주어지기 훨씬 전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갈 3:16-17).
(2)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도 또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갈 3:8-9).
(3)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죄인들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그들을 지켜주신다.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갈 3:11). 지극히 중요한 이 말씀은 구약 성서의 하박국에서 인용한 것이며(합 2:4), 신약성서에서 세 번 사용되고 있다(참조, 롬 1:17;히 10:38).
2.죄인들과 율법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참조, 신 27:26).
신약성서 가운데 야고보 기자는 이미 이렇게 쓴바가 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약 2:10).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율법은 긴 사슬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고리만을 부러뜨리면 된다. 그러면 전체 사슬이 끊어지지 않는가!
3.이스라엘과 율법
(1)이스라엘에 율법이 주어진 것은(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약속이 주어진 후 430년 만의 일이었다. 워렌 윌스비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갈라디아서 3:16의 430년이란 햇수는 성서연구자들을 아주 오랫동안 당황케 만들어 왔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때(창 12장)로부터야곱이애굽에 도착(창 46장)하기까지는215년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1)아브라함이 75세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100세에 이삭을 주셨다(창 12:4;21:5) 여기에서 25년이 산출된다.
2)이삭이 60세 되던 해에 야곱을 낳았다(창 25:26).
3)야곱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는 130세였다. 따라서 위의 햇수를 합하면 215년이 된다(25+60+130=215).
4)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 머무른 기간이 430년(출 12:40)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약속에서 율법에 이르는 총 햇수는 430년이 아니라 645년이 된다.
5)애굽 체류 기간은 창세기 15:13과 사도행전 7:6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400년이라는 대략적인 숫자가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바울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던 때,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확증하셨던 때(창 46:1-4)로부터 계산하고 있다. 430년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야곱에게 확증해 주셨던 때로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던 때에 이르기까지 기간이다"([자유하라], pp.77-78).
(2)율법은 죄로 인하여 주어진 일종의 첨가물이다.
즉 "율법은......범죄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갈 3:19).
(3)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다"(갈 3:19). 율법을 주실 때 시내산에서 천사의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음 구절들을 주의하여 보라.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신 33:2).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시 68:17).
"너희(즉 범죄한 이스라엘)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3).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었다"(히 2:2).
(4)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의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다"(갈 3:24;여기의 '몽학선생'이란 헬라어의 '파이다고고스'(Paidagogos)의 역어로 그 의미는 '아동-교육자'란 것이다). 맥기(J.Vernon McGee)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에서 핵심 낱말은 몽학선생이며, 그것은 오늘날의 학교-교사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 말은 로마 가정에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노예 또는 하인을 지칭하였다. 그는 그 가정에 태어난 아들을 먹여주고 옷을 입히며 목욕을 시켜 주고 코를 풀어 주며 걸음마 연습을 시켰다. 그 어린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에 이르면,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리고 갔다. 이것이 바로 그가 파이다고고스, 즉 아동-인도자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율법은 인간의 손을 잡고 그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며, '애야, 너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아래에 있는 것이다"([성서개요],p.110).
4.그리스도와 율법
(1)그리스도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건져내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3;참조, 신 21:23). 버논 맥기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자.
"이것은 매우 이상한 법이다. 왜냐하면 율법하에서 가장 주요한 형벌 방법은 돌로 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 행위가 더욱 악하고 흉포한 경우에는, 범죄의 중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범죄자의 몸을 사후에 나무에 매달았던 것이다"([성서개요],p.110).
(2)주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인간의 몸을 입고 완수하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3)주님은 회개하는 모든 죄인들을 성령 세례를 통해 그의 지체가 되게 함으로써 그들을 연합시키셨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6-29).
로마세계는 세 가지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대별된다.
1)인종 및 종교적 측면-유대인과 헬라인
2)사회 계급적 측면-자유인과 노예
3)성적 측면-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영적' 구별이란 전혀 없다.
(4)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아들이 된 것을 보증하신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1-7).
물론 여기에서 바울이 뜻하는 것은 율법은 우리를 하나님의 어린 자녀(갈 4:3)가 되게 한 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로마법에 의거하여 어린 자녀와 아들의 차이를 구별하고 있다.
1)'어리다'(childhood)는 것은 하나님의 가정내에서의 나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나 '아들이 되었다'(adoption)는 것은 그 안에서의 나의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2)'중생함'으로 사람은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는데 반하여 '아들이 됨'으로써 그는 그 가정에서의 삶을 향유하는 것이다.
3)어린 시절의 원인이 되는 환경들은 사적인 것이지만 '아들이 되는 것'과 관련된 환경은 공적인 것이다.
4)'어린이'는 후견인의 보호를 받고 있으나 '아들이 된 성인'은 온전히 자유를 누린다.
(5)바울은 동시에 아들과 종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갈 4:7).
1)종(servant)은 자신의 옛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잇는데 반하여 아들은 아버지의 성품을 함께 나누어 받는다.
2)종에게는 주인이 있으나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계신다.
3)종이란 법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복종하지만 아들은 자유와 사랑으로 인하여 순종한다.
4)종에게는 아무런 유업도 약속되어 있지 않지만 아들은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을 법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5.언약과 율법
(1)율법은 약속을 변경시킬 수 없다(갈 3:15-18).
(2)율법은 약속보다 우대할 수 없다(갈 3:19-20).
(3)율법은 약속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갈 3:21-26).
(4)율법은 약속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갈 3:27-29).
6.갈라디아 교회와 율법(갈 4:8-20).
사도 바울은 이제 독자들에게로 되돌아와서 다음의 것들을 알고자 한다.
(1)영적 노예로부터 해방괸 이후에, 어찌하여 그들이 다시 그 멍에를 짊어지기를 원하게 되었는가?(갈 4:9-10). 그들이 다시 멍에를 짊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안식일 및 특별한 축제일 등과 같은 유대 성일인 "날"과 유대 음력에 따라 매달 첫날에 시작되는 신월제인 "달"과 장막절, 무교절 등과 같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절기"와 안식년 및 희년 등의 "해"를 지킨 것에서 입증된다.
(2)이전에 사도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이 누렸던 즐거운 영적 교제는 지금 어디로 가버렸는가?(갈 4:11-15). 그는 자기를 위하여 기꺼이 눈이라도 빼어 줄 것 같던 과거 갈라디아 교인들의 사랑을 회상시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갈라디아서 4:15의 이 말을 고린도후서 12:7에 나타난 바울의 육체의 가시에 대한 말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3)어지하여 그들이 바울에게 등을 돌리고 그들의 참된 영적 어머니인 그를 적으로 여기며 합법적인 거짓 교사들을 따르게 되었는가?(갈 4:16-20).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고뇌와 그로 인하여 회심한 자들에 대한 열정을 집약적으로 가장 잘 나타낸 것을 바로 갈라디아서 4:19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4)우의적 예증-이는 하갈과 사라에게서 끌어낸 예이다(갈 4L21-23).먼저분명히밝혀 두어야 할 것은 바울이 창세기에 나타난 이 여인들의 역사적 실재를 부정하거나 또는 이전에는 숨겨져 잇던 보다 심오한 '영적 의미'를 가르치려고 시도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 가지 내용을 비유적으로 말하기 위해 단순히 구약성서의 교리적 사건을 인용하고 잇는 것이다.
1)바울이 비유로 사용한 사건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과 두 아내가 있었다. 한 아들(이스마엘)은 하녀였던 하갈에게서 자연적으로 태어났다. 한편 다른 아들(이삭)은 자유인이었던 부인 사라에게서 초자연적으로 태어났다. 이삭은 "적을 떼는 날"에 이스마엘에게 조롱을 당하였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보내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다.
2)바울의 비유에 따른 적용.
ㄱ)하갈은 율법을 대표하는데 반하여 사라는 은혜를 상징한다.
ㄴ)이스마엘은 육과, 율법을 따르므로 노예의 자녀들로 남아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ㄷ)이삭은 영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로운 아들이 된 자들을 가리킨다.
ㄹ)하갈은 또한 시내산과 율법주의의 본산인 지상의 예루살렘 성을 나타낸다.
ㅁ)사라는(추측컨대) 시온산과 자유의 총본산인 하늘의 예)루살렘성을 상징한다.
ㅂ)믿는 자가 율법과 은혜를 잃어 버린다면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당했던 것처럼 핍박과 조롱을 당하게 될 것이다.
III.권면-소망(갈 5-6장)
바울은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라고 권면한다.
1.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갈 5:1-2).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이 자유를 거절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그것은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멍에를 율법의 무거운 멍에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1)그리스도의 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2)율법의 멍에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 15:10).
2.모세의 율법 전체에 빚진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갈 3:3;참조, 신 27:26). 윌스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시내의 거리를 질주하고 잇는 자동차가 고의적이든 부지 중에든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통과했다. 경찰은 그 차를 길 옆에 세우고 운전사의 면허증을 보자고 하였다. 운전사는 즉시 변명하기를 시작했다. "경찰과 아저씨, 내가 신호등을 어겼다는 것은 알아요, 그러나 나는 도둑질한 적은 없고 간음한 적도 없으며 탈세를 한적도 결코 없어요!"
경찰관은 딱지를 떼면서 웃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법을 잘 지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한 가지 위반행위를 보상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하나이며 또한 법을 준수하는 자를 보호하는 바로 그 법이 위반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법의 일부를 지켰다고 자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법을 어겼다고 하면 이는 '나는 벌받아 마땅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자유하라], pp.118-119).
3.그것은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갈 5:4). 물론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잃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그의 독자들을 다음과 같이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1)형제들(9회 사용, 참조, 갈 1:2,11;3:15;4:12,31;5:11,13;6:1,18).
(2)하나님의 아들(갈 3:26)
(3)아들(갈 4:6)
(4)약속의 유업(갈 3:29)
여기에서 "떨어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크핍토'(ekpipto)이며 사도행전 27:17, 26, 29,32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그 말은 폭풍우에 밀려 다니는 배를 가리키고 잇다. 이러한 의미가 여기 갈라디아서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멍에를 짊어진다는 것은 아름답고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미 말한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폐기하는 것 또는 무효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참조, 갈 2:21).
4.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경주하는 도중에 방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갈 5:7;참조, 히 12:1-2).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빚진 자, 노예,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경주자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윌스비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보자.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상급과 완성으로 이르는 코오스를 달리고 잇는 것이다. 율법 때문에 은혜를 포기하는 그리스도인은 노예이며 불쌍한 거지이고 코오스를 이탈한 경주자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패배자이다. 그러므로 승리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누룩'(갈 5:3), 즉 율법과 은혜를 혼합시키는 거짓 교리를 제거하고 성령에 순복하는 것이다"([자유하라],p.123).
2.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방탕한 자의 분방함(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여기에서 바울은 율법주의와는 반대로 율법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3.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육체의 소욕(갈 5:15-21)
갈라디아서 5장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서 7장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명을 육체의 타락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는 다음의 사실들을 지적함으로써 이것을 말하고 있다.
율법 자체는 선하다(롬 7:7). 그런데 근심하게 되는 것은 죄가 율법을 사용하여 그의 안에 있는 온갖 사악과 금지된 욕망들을 일깨움으로 그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갈 7:8).
그는 이렇게 말하여 결론을 맺는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 7:9-10).
갈라디아서 5장에서 그는 율법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육체의 일. 17개를 열거하고 있다.
그것들은 아래와 같다.
1.음행(결혼자들 간의 성범죄)
2.추행(미혼자들 간의 성범죄)
3.더러운 것(부정함)
4.호색(육욕)
5.우상숭배(우상예배)
6.술수(이는 헬라어 파르마케이아(pharmakeia)의 번역이며 마술사 또는 마약으로 번역할 수 있다).
7.원수를 맺는 것(미움)
8.분쟁(헬라어 에리스(eris)의 번역이며 이것은 싸움의 신을 가리킨다).
9.시기(경쟁, 시샘)
10.분노(화를 냄)
11.당파심(파벌싸움, 도당)
12.분리(불일치, 불화)
13.이단(종파)
14.질투(탐냄)
15.살인(불법적 살해)
16.술취함(독주를 마심으로 무기력하게 됨)
17.방탕함(흥청거림, 유흥)
4.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성령의 열매(갈 5:22-23)
이에 대해 윌스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works)과 열매(fruit)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공장의 기계는 일을 하고 물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열매를 제조해 낼 수 없다. 열매는 생명에서 자라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그것은 성령이다. '일'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노력, 노동, 긴장 및 땀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열매에 대해 샹각할 때면, 우리는 아름다움, 종요함 및 생명의 전개를 연상하게 된다. 육체는 '죽은 행실(일)'(히 9:14)을 생산해 낼 뿐이지만 성령은 산 열매를 맺게 한다...... 신약성서는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열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에게 인도된 사람들(롬 1:13), 하나님에게 바쳐진 선물(롬 15:16-18), 거룩한 삶(롬 6:6), 선한 행실(골 1:10) 및 찬양(히 13:15) 등이다. 위에 열거된 성령의 열매는 인격과 관련되어야 한다"([자유하라],pp.133-134).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매들의 다양함에 대해 주목하자.
1.사랑(타인에 대한 신령한 관심)
2.희락(내적 평화와 충만함)
3.화평(영혼의 확신과 안정)
4.오래 참음(인내, 조바심 없이 견딤)
5.자비(친절)
6.양선(사랑의 행위)
7.충성(신뢰)
8.온유(힘의 억제)
9.절제(자중)
5.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1.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것(갈 5:14-15).
2.성령의 인도를 받을 것(갈 5:18,25).
3.자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생각할 것(갈 5:24). 울법주의자들은 물론 전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 할례이다.
4.자랑과 시기를 피할 것(갈 5:26)
5.떨어진 자를 신중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고할 것(갈 6:1)
6.타인의 짐을 짊어 질 것(갈 6:2)
7.율법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의 짐을 더함으로써 이와 정반대의 일을 함(행 15:10;마 23:4)
8.자기를 기만하지 말 것(갈 6:3)
9.자신의 짐을 질 것(갈 6:5)
10.자기를 살필 것(갈 6:4)
11.영적 지도자와 좋은 것을 함께 나눌 것(예;경제적 지원)
12.바른 생활 습관을 심도록 할 것(갈 6:8)
13.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말 것(갈 6:9)
14.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것(갈 6:10)
6.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바울의 흔적(갈 6:11-18)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실도우 박스터(J.Sildow Baxter)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갈라디아서는 농촌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들은 대부분 어떠한 부문이든 농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심성과 환경에 맞추어 바울은 그들에게 적절한 어휘와 비유를 특별히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던 4가지 행동이 있었다. 이것들은 열매 맺는 것, 씨를 뿌리는 것, 짐을 지는 것 및 문신을 새기는 것(농업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예였기 때문에 그들의 소유주를 밝히기 위해 문신을 새겼음)등이었다. 바울이 성령께서 주는 참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표상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1.열매를 맺는 것(Fruit-bearing)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절제이다"(갈 5:22)
2.짐을 지는 것(Burden-bearing)
"너희가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3.씨를 뿌리는 것(Seed-bearing)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4.문신을 새기는 것(Brand-bearing)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문신을 새기는 사람들은 다섯 종류로 분류된다. 즉 노예(소유권의 표시), 군인(충성의 표시), 귀의자(헌신의 표시), 죄수(전과 표시), 혐오스런운 자(비난의 표시), 등이다. 바울의 몸에 있는 주님의 흔적은 다섯 가지를 모두 하나로 합쳐 놓은 것이었다!"([성서연구], Vol,6.pp.153,154,158). 이러한 흔적들의 내력을 알고자 하면 고후 11:23-28을 참조하라.
출처 :포도나무 - Vitis 글쓴이 :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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