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가 증거하는 그리스도
요한복음 5: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갈라디아서에서 예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사항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몸으로 드린 희생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1:4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업의 여러가지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구속사업 주관자
구속사업을 전체적으로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라고 말씀하였으니 이 전체 구속사업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나를 보내신 이(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8, 39).
(2) 구속사업 내용
구원의 내용은 악한 세대에서 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심을 받는 것입니다. 죄악에서 건져 주심을 받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8에서는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수렁에 빠져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를 이 죄악의 수렁에서 죄악의 홍수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는 것은 육신을 구원하는 것이고 죄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3) 구속사업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드리셨으니’라는 말의 본뜻은 ‘준다, 내어준다, 희생한다, 바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고 희생하여 주셨습니다. 죽어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자기는 죽으시면서 우리는 살려 주셨고 자기는 희생하시면서 우리는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님 자신은 죽으시면서 우리는 살려 주셨고 자신은 희생하면서 우리는 구원하여 주신 이 사랑에 감격하여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하면서 한 평생 이 사랑을 전하고 가르치고 증거하였습니다. 성자라고 별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별사람이 아니었고 프랜시스도 별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하게 권고하여 주심을 받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께 기원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옛날에 바울 사도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여 주신 것과 같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2. 내재하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2:20에 보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직역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산다 그러나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신다.”이러한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나는 산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주께서 와 계십니다. 주께서 임재하십니다. 요한복음 6:56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사람들은 다 주 안에 있고 주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께서 십자가에서 살 찢으시고 피 흘리신 공로를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여러분은 주 안에 계시고 주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니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불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불경건하게 사는 것은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한번 대통령이 타고 가는 자동차를 보았는데 그 운전기사는 복장도 아주 단정히 하고 운전도 아주 조심조심하여서 안전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대통령을 모시고 가는 차의 운전기사가 그 복장을 너절하게 하고 운전도 막 이리저리 왔다갔가 하면서 갈지(之) 자 운행으로 차가 흔들리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 차에 타고 있는 대통령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불신앙, 불의, 부정, 불경건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주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있는 이 입 가지고 먹을 것 못 먹을 것 다먹고, 할 말 못할 말 다 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주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입뿐만이 아니라 눈과 귀와 코와 손과 발 오장육부 사지백체 그 어느 것을 가지고서도 불신앙, 불경건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곧 우리 안에 모시고 있는 주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모시는 사람은 미신이나 사교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담배, 성문제에 있어서 방탕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정직하고 성실하고 진실하여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찬송가 208장에 보면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주 예수 내 맘에 임하여 오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모시는 사람들은 새 사람되어서 망령된 행실을 끊어야 합니다.
3.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5:1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사탄의 종이요 죄의 종이었습니다. 아담과 같이 사탄에게 유혹되어서 죄만 지었습니다. 죄를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민하였습니다. 로마서 7:23, 24에 보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를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어 자꾸만 죄를 짓게 되니 바울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민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죄의 종이 되어서 죄의 수렁에 빠져서 어찌할 줄 모르고 고민하는 죄인들을 주께서 해방시켜서 자유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6:17, 18, 22에 보면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죄의 종되었던 우리를 해방하여서 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셨다는 말씀입니다. 어찌 할 수 없이 죄만 짓고 죄의 종으로 죄의 포로가 되었던 우리를 해방하여서 의의 종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유하는 사람으로까지 만들어 주셨습니다. 해방한다고 다 자유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죄에서는 해방되었으나 또 율법의 종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참으로 자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일본에서는 해방되었으나 다른나라에 예속되거나 신탁통치 아래 있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참 해방이 아니고 참 자유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아무것에도 예속되지 아니하고 참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1에 보면 뜻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무엇에 예속시키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자유요, 방법도 자유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자유하게 되었으니 이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하겠고 율법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죄의 종노릇하거나 율법의 종노릇을 한다고 하면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쓸데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세 가지 사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하여 주셨고 우리 안에 와 계셔 주시고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희생하여 구원하여 주셨고 내재하여 주시고 자유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세 단어를 기억하십시다.
구원, 내재,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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