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베드로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유언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너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사도베드로가 다시 생각나게 하고 싶은 너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6절에 나와 있습니다. 1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재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여기서 보면 왜 사도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 즉 재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이 인간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그것은 인간적으로 만든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초대교회 당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인간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라고 주장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가 벧후3장에 나옵니다.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죽은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합니다. 말세에 진리에 대해서 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거짓선생들입니다. 이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는 벧후 2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거짓 선생들이 나와서 과연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조상들이 죽고 난 후에도 이 만물이 창조 때와 같이 그대로 있지 않느냐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유는 먼저 초대교회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자기 세대에 오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몇 천 년 뒤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 안에 몇 십 년이 되면 곧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곧 오신다고 하니까 자신들이 죽기 전에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일 때 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같이 모여서 물질조차도 서로 나누면서 생활하게 된 것도 주님이 자기 세대 안에 곧 오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생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이 땅에 종말이 온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도 그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종말을 믿고 살아 왔는데,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믿고 죽었는데도 아직 이 세상이 창조 때와 같이 그대로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주님이 오시고 이 땅에 종말이 온다는 약속은 인간이 만든 거짓된 이야기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사도베드로는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재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거짓 선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든 교묘한 이야기 아니다” 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림하실 때 오실 주님과 재림하실 예수님의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베드로가 재림하실 때 오실 예수님을 미리 본 것은 어떤 사건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재림 때 오실 변모하신 모습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막9장 “막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고 합니다. 변화산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장차 재림하실 때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변화산에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재림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17-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알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한 진리라고 하는 이유는 그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변화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재림하실 주님을 직접 보았고, 또 변화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예언은 확실한 예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그런데 베드로가 직접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20절과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19절에 더 확실한 예언과 20절에 성경의 모든 예언과 21절에 예언에 밑줄을 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드는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변화 산에서 재림하실 주님을 보지 못했어도,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어도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더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재림한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살전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재림하실 주님을 직접 보지 못했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이 사도를 통해서 준 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성경의 말씀을 더 믿습니까? 아니면 내가 직접 하나님을 보고 들은 것을 더 믿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더 확실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강사가 직접 하나님과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간증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이 더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강사가 오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성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보여주시는 것을 절대시 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어떤 환상을 보여주신다 하더라도 그것을 성경보다 더 우위에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환상은 성경에 비추어서 다시 해석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 보는 환상이나 귀로 듣는 음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성경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다시 한 번 더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성경)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어두운 마음에)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성경)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인 성경을 어떻게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성경을 볼 때 먼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이 보라고 합니다. 또 이른 새벽에 어두운 밤에 샛별이 우리 마음가운데 떠오르기까지 이 말씀을 보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도 여두운 데와 어두운 밤을 밑줄을 치시고, 또 등불과 샛별을 밑줄 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어두운 데라고 하는 것과 어두운 밤은 말씀을 보기 전에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은 어두운 마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우리 마음으로 이 성경을 보는 가운데 무엇이 떠오를 때까지 이 말씀을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가운데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이 성경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등불 혹은 샛별은 무엇을 나타내겠습니까? 여기서 등불과 샛별은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성경의 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들어도 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삶에는 그 어떤 희망의 빛이 없습니다. 아 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구나/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구나/또 이 말씀은 다른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구나/라고 한다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의 희망의 빛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성경을 보고 들을 때다 이 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역사와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이 성경 말씀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방법을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빌4장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밑줄을 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 단순이 이 말씀을 “그냥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지 기도해야지” 라고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할 것을 지금 개인적으로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적용에는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적용합니다. 두 번째는 구체적으로 적용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가능하게 적용해야합니다. 네 번째는 행동으로 적용해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사도베드로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깨달을 때까지 이 말씀을 주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삶으로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20절과 21절에서 이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성령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하시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필이 있다면 내가 지금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간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성령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대로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것을 절대 남에게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만 볼 수 있도록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가정에서 염려하는 문제일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인간관계에서 염려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야 너는 지금 네 가정의 문제로 염려하고 있지-그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 문제를 가지고 염려가 되면 기도해라 기도해도 안 되면 더 간절히 기도해라 그리고 그 문제를 가지고 염려가 되어도 감사하면서 기도해라 그렇게 기도하면 네가 염려하는 것보다 너를 더 염려해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네 마음가운데 평강을 주실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환상보다 더 확실한 이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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