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0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면 형제들아 더욱 힘서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이란 우리를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입니다.
또 택하심도 우리를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십니다.
그러니까 부르심과 택하심은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형제들아 너희가 더욱 힘씀으로 너희의 구원을 굳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더욱더 힘쓰라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은 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벧후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여기서 보면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데 더욱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욱더 노력하고 힘씀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된다는 말씀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믿음만 가지면 안 된다.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재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욱 힘써야지만 부르심과 택하심 즉 너희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보는 것이 과연 맞는 말씀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 믿음에 덕과 지식과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더 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엡2: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엡1장 4절부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더욱 힘씀으로 부르심과 택하심 즉 구원을 굳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까?
다시 10절 말씀 전체를 보겠습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구원)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구원에서 있어서)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이것을 행하면” 도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더욱 힘써 행하면 구원에서 있어서 넘어지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또 그 다음 말씀도 같은 말씀입니다.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구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여기서도 “이같이 하면” 이라는 것도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덕 지식 인내 경건 사랑을 행하면 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넉넉히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에 무엇을 더해야지 구원이 완성이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7장 2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7:1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함이 더해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겠습니까? 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까?
이것은 앞에서 이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니까 이 말씀을 종합하면 “열매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확인되어야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또 우리 인간 편에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사람이 정말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단순히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단순히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 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 단순히 내가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 선지자 노릇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열매가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받은 것이 삶의 열매로 나타날 수밖에 없겠습니까?
그 비결은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벧후1장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후3. 그의 신기한(신적인) 능력으로 (예수님의) 생명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셨으니”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믿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더욱 힘써 덕을 즉 신앙의 열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더욱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절제하는 살 수밖에 없고, 인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또 경건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의 열정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절제하지 않습니다. 인내가 없습니다. 경건이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도무지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다루면서 마지막으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고후12: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리는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고린도교인은 정말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 합니다. 즉 너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너희 자신을 테스트 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우리가 부족하지만 구원받은 자로서 삶의 열매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인간적인 노력으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려고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인간적인 노력을 힘을 쓸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자신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정말 내 안에 내가 없고 내 안에 왕좌에 예수님이 계신지 자신을 날마다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다고 하면서 더욱 예수님의 생명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을 의지함으로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고, 확실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삶의 열매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사랑의 열매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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