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벧전,후서 강해

벧후강해(4) 조화로운 신앙(벧후1:4-7)

에반젤(복음) 2019. 11. 28. 11:09



    

벧후1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나다.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서 이 글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이미 가진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이 글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4절에 보면 이 글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보배로운 약속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하기 위해서 베드로후서가 쓰여 졌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구원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후 신앙이 계속 자라나서 남들을 돌아볼 만큼 신앙이 성숙된 상태에 이른 사람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고전31절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 신령하지 않은 자,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말합니다.

-- 이 사람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잇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의 중심으로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삶의 모습은 믿지 않는 자와 거의 같습니다.

즉 신분은 그리스도인인데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고린도교회가 신앙이 성숙되지 않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나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 파라 하면서 서로 갈라져 있는 교회였습니다.

--또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가 한국교회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고린도교회와 같이 열심도 있고 성령의 은사도 있습니다---또 성장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성숙되지 못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이란 성숙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교회들이 신앙의 성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신앙이 성숙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말고 항상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오늘 말씀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 더하기 더하기이런 식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7절에 마지막에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이 있는데여기서 더하라는 말은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합창단에서 서로 다른 음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화성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믿음과 덕의 조화-덕과 지식의 조화, 지식과 절제의 조화, 절제와 인내의 조화, 인내와 경건의 조화, 경건과 형제우애의 조화, 형제우애와 사랑을 서로 조화를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수동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덕이란 신앙의 뜨거운 열정입니다. 그러니까 성숙한 신앙이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수동적인 모습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또 그 다음에는 덕 즉 열정과 지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말씀에 따른 지식이 없습니다. 또 뜨거운 신앙의 열정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무시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체험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노시스라고 해서 공부해서 얻는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베드로후서에는 에피그노시스라고 해서 체험적인 지식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3절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앎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체험을 통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함께 차가운 지식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서로 조화가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항상 차가운 말씀과 의지에 통제를 받아야합니다.

--또 말씀의 지식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너무 신앙이 냉랭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차가운 말씀의 지식과 아울러서 우리 심령 속에서 폭발하는 성령의 뜨거운 능력으로 충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지식이 서로 조화가 되어야합니다. 이런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또 경건과 형제우애의 조화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고 좋은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을 봅니다.

--또 반대로 사람들과는 너무 잘 어울리고 친 합니다. 그런데 경건생활에는 소홀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된 신앙이면,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사귀고 교제하는 것만큼 사람과도 잘 어울려야합니다. 하나님사랑과 사람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또 형제 사랑과 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형제 사랑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또 이것은 단순히 내가 이 교회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해야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형제 사랑에 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라는 말씀은 우리가 교회 안에 형제들만을 사랑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밖에 믿지 않는 형제들도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형제 사랑과 교회 밖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조화가 되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나는 평생 절대 이런 성숙된 신앙이 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성숙이라는 것이 우리가 항상 모든 것이 완전한 상태에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이란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변화되어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볼 때 또는 교회를 볼 때 우리가 어떤 완벽한 기준을 놓고 판단하면, 판단하는 사람도 시험에 들고 또 판단 받는 사람도 시험에 듭니다.

우리는 절대 단정적인 표현은 쓰지 말아야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기도는 하는데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야-이렇게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 사람이 지금은 그렇지만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노력하고 있다면--분명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우리교회는 이것밖에 되지 않아-라고 절대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사탄의 시험입니다. 우리가 항상 부족하지만 더 성숙해지려고 노력하고 또 변화되어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성숙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교회는 성숙한 교회라고 믿습니다. 혹 더디게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성도님들이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열심히 노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이 한해도 계속해서 더 변화되고 성숙하게 되면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벧후19절입니다-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여기서는 이런 것이란 신앙의 성숙된 열매들을 말하는데--이런 것이 없는 경우를 영적 소경이 되고또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게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지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집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삶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또 그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엣죄를 깨끗게 하심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의 열매가 가득할때-0-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가질수 잇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해일이 일어나서 동남아시아에 큰 참사가 있었습니다-모든 나무가 뽑히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tv를 통해서 보면 그 가운데도 뽑히지 않은 나무와 건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지면 그 어떤 사탄의 도전과 시험과 환난이 와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날마다 환경에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서 더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면 교회나 세상 속에서 아무 영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현재 임하여진 하나님 나라 안에 이미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그 나라의 참맛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로마서 14:17절에 보면 "나님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도 하나님나라를 잔치라고 합니다. 잔치라는 것도 풍요와 기쁨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기쁨과 즐거움과 그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지면 하나님나라의 풍성한 모든 기쁨과 치유의 능력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면, 우리는 말로만의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무런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벧후3:18절에는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더 조화롭게 자라갈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