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벧전,후서 강해

벧후강해(2) 은혜와 평강이 많을지어다(벧후 1:2)

에반젤(복음) 2019. 11. 28. 11:07



    

이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죽기 직전에 유언처럼 남긴 서신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죽기 전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었습니까?

돈도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또 신앙의 특별한 체험도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특별히 베드로가 죽고 난 다음에 거짓선생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부인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에 더 굳게 서 있게 하기 위해서 이 베드로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 베드로가 죽은 이후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진리를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재림의 진리를 부정하는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째.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더 자라고, 성숙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이 베드로후서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쓰여 진 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더 자라고 성숙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의 신앙이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보배로운가에 대해서 사도베드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입니까?

1)첫째는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사도와 동일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둘째는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은 우리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게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또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이유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또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이유는 우리의 이 믿음은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오는 것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미리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으로 기도한 것이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서신 서를 볼 때마다 나오는 은혜와 평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서신 서들을 보면 항상 어떻게 시작합니까?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러니까 거의 내용이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후서에 사도베드로는 어떻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벧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여기서 여러분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이 세상의 사랑은 항상 그러니까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어떤 것을 말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56절에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강할 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강할 때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없고 약할 때 우리를 버립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도리어 우리가 더 연약할 때는 더욱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의 약점을 보이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약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찬송사 가사에도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서 높은 보좌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를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죄를 지었을 때 사랑하신다하고 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인 되었을 때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였을 때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평강입니다. 평강이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평강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심으로 우리에 있는 모든 환난을 물리쳐 주심으로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심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우리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원하옵나니 우리 자녀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푹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기도가 좋으십니까? 여러분이 만일 이 기도를 좋아하시면 여러분은 아직 젊으십니다. 저도 청년시절에는 정말 이 기도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평안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의 길로 인도하셔서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기도를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고난이나 환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면 어쩔 수 없이 받지만 우리가 일부러 고난과 환난을 달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재 인생의 고난이나 환난을 많이 격어 본 사람은 고난과 환난이 정말 이제 싫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실 고난이나 환난은 없는 것이 좋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가 좋습니다. 야베스는 평생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대신 싸워주심으로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환난이 다 없어지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강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은혜와 평강에 어떻게 우리에게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많을지어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단어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앎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앎이란 에피그노시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15절에서 지식이란 그노시스라는 말입니다. 15절에서 지식이란 공부하여 얻은 지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앎이란 단순히 공부하여 얻은 지식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에피그노시스란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얻게 되는 완전한 앎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배우자가 있습니다. 그 배우자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부하여 지식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배우자의 족보를 다 알아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집니다. 또 내 배우자에 관한 모든 글을 다 읽어 봅니다. 이렇게 아는 앎을 그노시스적인 앎, 지식적인 앎입니다.

그런데 에피그노스시의 앎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배우자와 먼저 결혼을 합니다. 첫 날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면서 70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이 배우자를 결혼해서 만나서 격어보고 살아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바로 에피그노시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우리에게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모든 환난이 없는 평강을 알 수 있습니까? 또 우리에게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평안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알 수 있습니다.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은 다릅니다. 종교생활은 내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또 지금도 매일 만나고 계십니까? 우리가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합니다. 저도 대학 1,2학년까지 종교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학3학년 때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내가 그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내가 몇 시간 기도 했는가 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또 내가 몇 시간 기도해야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냥 주님과 함께 있는 그 시간에 너무 즐겁고 좋았습니다.

그때 제일 많이 부른 찬송이 찬송가 433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였습니다. 그 찬송가 가사 4절에 “4.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 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비나이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을 알아 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을 통해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그냥 있을지어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많을지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계속해서 더 많아져야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두 가지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성화가 되면 될수록 하나님 앞에서는 더 큰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같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보다 지금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십니까?

여러분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보다 지금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를 보시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살까? 빨리 죽어야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앞으로 더 살아가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얼마나 더 풍성하게 누릴까를 기대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은혜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하게 없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더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덜 의지하면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은 조금 느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평강과 평강은 더 많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 하나님의 은혜가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를 더욱더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평강과 평안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