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는 네로황제의 박해가 있을 때 베드로가 고난가운데서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쓴 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죽기 직전에 유언처럼 남긴 서신입니다.
그래서 1장 13절-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후1:13. 내가 이 (육신의)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육신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죽은 후에)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절에 보면 사도베드로는 자신이 육신의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대 김영민 교수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어떤 분이 쓴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인간은 소멸하기 위해 살고 있으며 그것이 인생의 스포일러라고 한다. 죽음과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인간사의 섭리여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남기며 소멸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비로소 생기며 매듭지어진다. 결국 내 인생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간다. 그렇기에 잘 소멸할 수 있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또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죽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소멸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이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남겨두고 싶어 합니까?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는 베드로가 그가 죽기 전에 경험했던 특별한 체험을 생각나게 하려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가 죽기 전에 이미 있는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베드로가 죽기 전에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이미 있는 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진리를) 조롱하는 자(거짓선생)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는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거짓선생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부정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가 죽고 난 다음에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이 베드로후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1장16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벧후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재림)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은 베드로가 떠난 후에 일어날 거짓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2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과거에)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미래)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거짓선생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이미 있는 진리위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후서는 썼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베드로가 떠난 후에 사람들이 거짓선생들에 미혹이 됩니까? 왜 사람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에 대해서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더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후서는 거짓선생들의 위협을 앞두고 그들의 믿음이 더 성숙하고 자라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5절-11절까지는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성숙해질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 죽기 직전에 유언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그가 죽은 이후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진리를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재림의 진리를 부정하는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넷째.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더 자라고, 성숙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더 자라고 성숙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보배스러운가에 대해서 사도베드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서 보시면 먼저 베드로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더 높은 것 같습니까? 아니면 사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사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입니다. 또 사도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계시로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무엇을 먼저 앞세웁니까? 내가 사도이기 전에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이기 전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베드로는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후서는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사도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어떤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이 본문에서 왜 사도베드로는 우리가 이미 가진 이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첫째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사도와 동일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일하게 라는 말은 사도와 동일하게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사도와 동일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가진 믿음이 사도와 동일한 믿음이기에 우리의 믿음이 그 무엇보다 더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왜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이겠습니까?
2)우리의 믿음이 보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입니다. 만일 다이아몬드가 길에 널려있다면 그것은 보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금이 길에 깔려 있다면 그것도 보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배라고 하는 것은 희소성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쉬운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기서 보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나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는 집안의 혈통 때문이 아닙니다. 또 내가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해서 내 뜻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 사랑받기로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가장 큰 기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과 같은 사람은 신약성경을 헬라어로 완벽하게 읽고 연구하고 가르쳐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가장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절에 우리의 믿음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믿음이기에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4)우리의 이 믿음은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오는 것이 때문에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합2:3. 이 묵시(악인의 심판)은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악인의)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 악인에 대한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라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당장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은 “반드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당장 우리의 답답한 사정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직장의 문제로 기도하고 있는데 당장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결혼의 문제로 기도하는데 당장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분은 가정의 문제로 기도하는데 당장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몇 달이 갈수도 있습니다. 또 몇 년이 갈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당장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의인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기도의 응답이 현재에 당장 이루어져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현제에 당장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희망의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당장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제목들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불의가 난무하고 불신앙이 난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에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그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막11장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척스미스 목사님은 “믿음이란 미래에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그 일이 되기 전에 미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추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요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미래에 노년에 어떻게 될까 불안 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비록 지금 부족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잘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래에 잘 되어 있는 나를 현재에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고 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반드시 축복하고 잘되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짓고 살고 악하게 살아도 무조건 미래에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살고 악하게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고 바르게 살면 현재에는 고난과 고통이 있더라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잘 되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믿음으로 희망의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사는 삶을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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