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한1,2,3서 강해

[스크랩] 요한1서 (개론)

에반젤(복음) 2019. 11. 27. 21:05



     요한1서(개론)




1. 요한의 생애
사도 요한의 생애는 두 시기로 나뉜다. 전반기는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을 떠나는것으로 막을 내리고, 후반기는 이 때부터 그의 임종까지 이어진다.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 요한은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그외 집에 삯군들이 있었고(마가 1:20) 그의 어머니는 그리스도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였으며(마가 15:40-41). 그가 대제사장을 알고 있었는데 (요한 18:15) 대제사장은 상류 계층에서 선택된다는 것 등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의 형은 야고보였다. 요한은 랍비 학교에는 다니지 않았던 듯 하지만(사도행전 4:13). 그가 가정에서 받은 종교 교육은 철저한 것이었다. 요한이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기간은 확실치 않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곳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나(갈라디아서 1:18-19), 나중에 예루살렘 공회원의 자격으로 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사도행전 15:6) 그가 생애의 후반기를 소아시아 그 중에서도 주로 에베소에서 보냈다고 하는 증거는 너무도 확실하여 이론이 제기될 수 없다. 저스틴마터 (드리보와의 대화 81편), 이레니우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5편20장 4,5절), 폴리크라테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5편 24장 3절)등의 교부들과 요한계시록이 소아시아에서 기록되었다는 계시록 자체의 강한 암시 등이 모두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그는 또한 말년까지 이단을 결코 용납치 않았던 엄격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요한의 성격의 양면인 엄격함과 사랑은 본서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열정적인(inte-nse)' 이라는 단어이다. 그를 한마디로 가장 잘 묘사해주는 말은 활동, 형제사랑, 이단 논박등 어느 것에 있어서나 그는 열정적인 사도였다.

2. 저자
종종 제기되는 문제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이 정말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었는가 아니면 장로 요한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헌에는 에베소의 장로 요한이 언급되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에베소의 요한과 다른 인물이었으며 복음서와 서신들을 기록한 요한은 후자 즉 에베소의 요한이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따르면 이레니우스, 파피아스, 폴리크라테스 등이 이에 속하며 무라토리 경전도 이것을 주장한다). 복음서의 요한저작설에 대한 권위있는 논증은 내적 증거에 근거한다. 이 논증은 세개의 동심원(同心圓)과 비슷하다. (1)제일 바깥에 있는 원은 저자가 팔레스틴의 유대인이었음을 입증한다. 이것은 그가 구약을 인용한다는 것(요한 6:45;13:18;19:37)과 유대 사상, 전승 및 장래 소망을 알고 있다는 것 (요한 1:19-49;2:6,13;3:25;4:25;5:1;6:14,15;7:26 이하 ; 10:22;11:55;12:13;13:1;18:28;19:31,42). 그리고 팔레스틴에 대한 지식 (요한 1:44,46;2:1;4:47;5:2;9:7;10:23;11:54)으로 증명된다. (2)가운데 원은 저자가 목격 자였음을 입증한다. 이것은 시간, 장소 및 사건등의 세부 사항이 정확하다는 것 (요한 1:29,35,43;2:6;4:40,43;5:5;12:1,6,12;13:26;19:14,20,23,34,39;20:7;21:6)과 요한복음 특유의 인물 묘사로 암시된다. (3)제일 안에 있는 세번째 원은 저자가 요한이었다고 결론내린다. 여기서 사용된 방법은 먼저 제자의 범주에 속하는 다른 모든 제자들이 저자가 아님을 보인 다음에 사도 요한만이 저자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시킬 확증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을 구분하고 장로 요한이 요한 서신들의 저자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학문없는 사람(사도행전 4:13)이 제4복음서를 기록했을리 없다. (2)어부의 아들이 대제사장을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 (3)사도가 스스로를 장로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4)저자가 마가복음을 자료로 이용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사도 요한이었을리 없다. 사도가 사도 아닌 사람의 작품을 자료로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의 저작설을 지지하여 이것들에 대한 답변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학문없는이란 '무식한'의 의미가 아니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뜻한다. (2)어부라고 해서 모두가 다 하층 계급 출신은 아니었다. (3)사도 베드로는 스스로를 장로로 칭하였는데(베드로전서 5:1) 왜 사도 요한은 그렇게 하면 아니되는가 ? 이러한 증거들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의 저자가 한 사람 곧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임을 분명하게 시사하는데, 그는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낸 장로 요한과 동일인물이다.

3. 저작 시기 및 장소
요한 서신들의 저작 시기는 요한복음의 저작시기와 관련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를 주후 110년에서 165년 사이로 잡으면서 요한이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만약 복음서가 그렇게 늦은 시기에 저술되었고 그들의 주장대로 요한이 실제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째서 요한의 말년에 그를 알았던 당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서를 위조된 책이라거나, 적어도 그것이 요한의 작품이 아니라고 공격하지 않았는가? 애굽에서 발견된 요한복음의 라일랜드(Rylands) 단편(이것은 전면에 요한 18:31-33,후면에 37,38절을 수록하고 있는데 현재 영국 맨체스터의 존 라일랜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주후140년 또는 그 이전의 것이 되려면 요한복음은 세기가 바뀌는 길목에서 또는 그 이전에 기록되었어야 한다. 저자가 지난 일을 회고하고 있음이 복음서에 분명히 드러나는데 (요한 7:39; 21:19). 그것은 요한이 저자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기록은 주후85-90년 이전에 이루어졌을수도 있으나 소개된 것은 이 기간이었음에 틀림없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장로들은 요한이 그들에게 말로써 가르치고 있었던 사항들을 그가 죽기 전에 글로 옮길 것을 원하였다. 요한1서의 메시지가 요한복음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고, 주후 95년 도미티안 치하에서의 박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후 90년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2서 및 3서도 이와 동일한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믿을만한 전승에 의하면 요한 서신들은 모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