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시선
1.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주제나 문체의 유사성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서와 본 서의 저자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1인칭 화법 사용과 체험적인 내용과 목격에 대한 현장감 있는 묘사로 보아서 본 서의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느헤미야가 느12:26에서 '느헤미야의 때'를 회고하듯이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그러한 이것은 느헤미야가 동시대 인물들과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과거의 행적을 회고하며 쓴 글인 것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2) 기록 연대
비평주의적인 학자들은 본 서를 에스라서의 저작 연대와 비슷한 주전300년경으로 본다. 그것은 느12:11,12에 나오는 얏두아를 요세푸스의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로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에 나오는 사건들이 주전 444년의 제3차 포로귀환에서부터 느헤미야의 제2차 귀국(주전 432년)까지 약 10년 사이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서 본 서는 느헤미야가 총독에서 은퇴한 후인 주전 420년경에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 기록 목적과 주제 및 특징
1) 기록 목적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와 같은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다룬 성경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편이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과 종교적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선택하신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이에 대한 순종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하였다.
2) 주체 및 특징
본 서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종교개혁을 통한 예루살렘의 실제적 회복과 영적 회복과 영적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서의 특징은 첫째, 회복의 책이라는 데 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언약의 갱신 등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이스라렐 백성의 성결에 큰 비중을 둔 책이다. 본 서나 에스라서는 한결같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셋째, 언약 백성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드러내는 책이다. 이사야의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에 대한 예언(사10:21,22)이 하나님이 섭리하에 그대로 성취되는 사실이 본 서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인데, 그들이 결국 유다 땅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3.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와 구성
1)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
본 서는 저자인 느헤미야가 바사 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온갖 고난과 수모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겪었다는것과 '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언약 백성의 귀환과 재건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성벽 재건과 언약 갱신을 통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이 선민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드러난다.
2) 구성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 운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는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서 구약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는 바사 제국의 융성기요, 그리스와 로마도 서서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본 서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상황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본 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되어있다. 첫 번째 부분인 1-7장은 예루살렘 귀환과 성벽 재건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주전 444년경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성벽 재건 준비와 성벽 재건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인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은(8-10장) 율법의 낭독과 해석 그리고 언약 갱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인 언약 민족의 개혁(11-13장)은 백성들은 재 정착과 성벽 낙성식 그리고 백성들의 부흥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4. 느헤미야가 주는 의미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귀환 과정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3차 귀환을 주로 다룬 느헤미야서는 구약의 역사 중 맨 마지막에 해당된다. 느헤미야서 이후 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 약 40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러므로 본 서는 우리에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신앙을 보여 주고 있다. 본 서는 성벽 재건과 부흥 운동을 통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의 현실적, 영적 회복을 통해 회복의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를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백성들의 부흥 운동은 우리에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을 보여 주며, 안일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5. 내용 분해
Ⅰ.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재건(1-7장)
1. 느헤미야가 에루살렘으로 귀환함(1:1-2:20)
2. 성벽의 증축(3:1-7:4)
3. 돌아온 백성의 계보(7:5-73)
Ⅱ.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8-10장)
1. 율법의 낭독(8:1-8)
2. 백성들의 슬픔과 기쁨(8:9-18)
3. 백성들의 회개(9:1-38)
4. 언약서에 인침과 책임(10:1-39)
Ⅲ. 민족의 개혁(11-13장)
1. 지역과 인구의 재조정(11:1-12:26)
2. 새 성벽 봉헌식(12:27-47)
3. 백성의 부흥 운동(13:1-31)
본문 해설
1. 느헤미야서의 특징
에스라가 역대기의 속편인 것처럼 느헤미야서도 에스라의 속편이다. 그 세 권 모두는 아마도 같은 저자에 의해 쓰여졌던 것 같으며, 하나의 연속적인 연대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역대기가 앞 부분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책은 느헤미야에 대한 영웅적인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에스라의 인도로 제2진이 도착한지 13년 만인 B.C. 444년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돌아온 제3진의 귀환을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왕에 의하여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느헤미야와 그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바사의 수도인 수산에서 귀환한 반면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은 바벨론에 귀환하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는 그의 성서인 율법서를 가지고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느헤미야의 주요 임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강한 도시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바사 왕으로부터 권위를 받아서 정부 비용으로 요새를 건립하고 전에 그 성벽의 건립을 연기하게 하였던 강한 이웃들의 적의와 음모에 저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원래의 히브리 성서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가 한 권의 책이었다. 그것들은 원래의 히브리 성서를 헬라어 번역자들이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도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고, A.D.390-405년에 번역된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역이 나왔을 때까지도 역시 한 권의 책이었다.
2. 저자에 대한 새로운 고찰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 3부작의 저자는 제사장이자 1서기관인 에스라였다고 하는데, 에스라는 모세 율법에 대한 뛰어난 작가이자 학자였으며, 자기 시대에 가장 특출한 교사이자 설교가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 자신이 썼다고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느헤미야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1인칭 화법은 주인공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느1:1-7:5; 느12:27-42; 느13:4-31). 뿐만 아니라 본서에 나타나는 생동감 있는 표현과 자세한 통계자료는 본 서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본 서를 썼을 것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바 자료들을 참조하여 기록하였음이 확실하다(느7:5-73; 느12:1-26).
3.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가 '술 맡은 자'의 신분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아하수에로(Xerxes)의 아들이었다.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인 B. C. 473년 3월 8일에 부림절이 제정이었다. B. C.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축복을 받으면서 유대인들의 한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 풍습을 백성들 사이에서 근절시켰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에스라가 주도한 부흥 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분노한 르흠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 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 쥔 르흠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 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쥔 르흠과 심새는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가 성벽을 허물고 성문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역사를 중지시켰다(스4:23; 느1:3). 느헤미야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이 유도 이러한 비극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B.C. 445년 12월에서 B.C. 425년까지 최소 2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B. C. 425년 무렵 느헤미야는 B.C. 433년 이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예루살렘과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여러 가지 악습을 척결하고자 다시 귀국하였다.
4. 느헤미야 성벽재건의 신학적 의의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통해 성전을 회복시켰으며,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느헤미야는 성을 재건하고 유다 민족의 정치·사회적인 제반 여건을 충실히 재정리하였다.
폐허가 되었던 성벽이 재건됨과 동시에 그 성은 견고해져 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불의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전한 회복이 아니었지만, 이러한 잠정적인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삶에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삶의 근원적 관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느헤미야의 개혁적 회복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나타날 공의를 지칭하는 예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회복시킨 예루살렘 성벽은 장래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