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느헤미야 강해

느헤미아[Nehemiah] - 진리탐구

에반젤(복음) 2019. 11. 27. 19:11



    

느헤미아[Nehemiah]

 

 

(느 13:6-31)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B. C. 536년 페르사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50,000명의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을 앞세워서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20년이 지난 B. C 516년경에 성전을 겨우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457년에 에스라가 부흥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여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화재가 발생해서 성문도 불타 버렸습니다. 그때가 B. C. 약 445년경이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페르사로 옵니다. ‘하나니’인데 느헤미아의 동생입니다. 그 땅에 사람들이 큰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성벽은 무너진 그대로 있고, 성문은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고 보고합니다. 느헤미아는 이 말을 듣고 주저앉아 웁니다. 그리고 4개월을 금식기도하며 슬퍼합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세계 최강국인 페르사의 신임 받는 왕의 신하였습니다. 왕은 그를 보고 말합니다.

 

느헤미아야 '무슨 일이냐, 아프지도 않은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니 너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구나.' 라고 말합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황제 폐하께서 오래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성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탄 채 그대로 있으니 어찌 내 얼굴에 수심이 없겠습니까?' 그러자 황제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습니다. 그때 그는 잠시 기도한 다음 '만일 황제 폐하께서 나를 좋게 보시면 나를 고향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황제는 '얼마나 오래 걸리겠느냐, 지금 가면 언제 돌아오겠느냐.' 하고 물으며 그의 요청을 승낙합니다. 그는 날짜를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합니다.

 

그의 신분은 총독입니다. 예루살렘에 3개월 만에 도착합니다. 그때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 사람이 온다는 말을 듣고 대단히 분노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사마리아 도에 편성되어 사마리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는데, 바벨론에서 들어온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등 과거 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한다고 하자, 사마리아 도백인 자신의 권한 방해꾼으로 여기면서, 공개적으로 조롱을 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고, 또 음모를 꾸미며 성벽 재건 공사를 방해합니다. 느헤미아는 한손에 무기를 들고, 한손에 도구를 들고, 나팔수를 세워놓고 공사를 진행합니다. 느헤미아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42개 조를 편성해서 공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백성 전체를 상대로 방해공작을 하던 대적들은 이제 느헤미야 한 사람에게 집중적인 공격대상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느6:2-14) 첫째로 회담을 제안합니다. 느6:2에서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고 썼습니다. “오노”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30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유다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데 이곳으로 유인해서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느헤미아는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느6:3)고 거절하지만 대적들은 단념하지 않고, 4번이나 회담을 제안합니다(느6:4). 이것이 통하지 않자 산발랏은 봉하지 않는 편지를 보냅니다.(느6:5). 이것은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알게 하려는 속셈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느6:6에나오는데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진짜 목적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며, 그런 소문이 이미 주변의 지역에 다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느헤미야를 모함해서 그를 끌어내려는 것입니다. 또 이 반역에 바사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이라는 소문으로 백성들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성벽건축을 단념하게 만들려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느6:8에서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어떤 것도 먹혀들지 않자 산발랏과 그 공모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또 이제는 뇌물주고 (느6:10-12) 선지자 스마야라를 매수해서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아라.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고 합니다. 이 사람은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기도합니다. 느6:14에서 그는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며 간구합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대적들의 모든 위협과 음해공작을 이겨내며 성벽 수축 공사를 52일 만에 완성합니다. 그리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유다 백성 중 10분의 1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키고, 성은 수비하게 합니다.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느 11:1-2). 이 일들은 느헤미아가 있는 12년 동안 진행됩니다.

 

그만큼 일을 한 후 느헤미아는 페르사로 갑니다. 그리고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나왔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첫째 제사장 엘리아십이 예물을 보관하는 큰 방을 대적 도비야에게 준 것입니다. 느헤미아는 도비야의 물건을 밖으로 내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한 다음 성전 기구와 제물로 바칠 곡식과 향을 들여놓습니다. 둘째 백성들이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성가대원들이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는 지도자들을 소집해서 그것을 바로잡고, 레위 사람들과 성가대원들을 성전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직무를 다시 수행하게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와 성전 창고에 채웁니다. 느헤미아는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성전 곡간 책임자로 세우고 삭굴의 아들 하난에게 그들을 도와서 동료들에게 예물을 분배해 주는 책임을 맡깁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의 성전을 위해 성실하게 행한 일을 기억하시고 잊지 마소서.'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포도즙을 짜고, 곡식을 운반하고,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은 어째서 이런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있소, 여러분의 조상들이 이런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 성에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신 것이 아니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지금 안식일을 범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더 많은 분노를 사게 하고 있소.' 하고 안식일이 시작되는 전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성문을 열지 말라고 명령하고,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장사꾼들은 안식일에 오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과 결혼하여 그 자녀들이 태어났는데, 아스돗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그 부모들을 책망하고, 곤장을 치고, 그 몇 사람은 머리털을 뽑고 다시는 그들의 자녀들을 이방 사람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게 한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솔로몬왕도 이런 일로 죄를 범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으나 그는 이 이방 여자들 때문에 범죄하고 말았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여 악을 행하고, 우리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단호하게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그는 그를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 시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레위인 들과 제사장들에 대한 규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소행을 기억하소서.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 들이 그들의 직무를 맡아 수행하게 하게 합니다. 그는 한 사람이 이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방향을 잡는 일을 하였습니다. 성을 쌓는 육적인 것과 신앙을 개혁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1. 느헤미아

 

지난 수요일 ccf 인도 선교사를 거성 김수복 목사님이 데리고 왔습니다. 이름은 최철수이고 인도 비하르에 2년 있다가 지금 바라나시에 가서 8년째 된 사람인데 평신도로 은혜를 받고 나니, 지하철을 타도, 눈물이 나와서 견디지 못해서 직장 사표를 내고 인도에 가서 오트바이로 한 사람을 뒤에 태우고 인도 전체를 3바퀴나 돌면서 교회 없는 마을에 가서 예수 영화를 보여주고 현지 선교사와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아 그는 페르사에서 태어난 2세입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입니다. 그런데 그가 왜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고 백성들이 조롱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금식을 하고, 울어서 왕이 알아 볼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곳도 아니요, 또 자기 책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못 견디고 가슴이 아픈 것입니까. 이것은 그의 신앙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해도 누가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요청해서 총독의 직위를 가지고 그 먼 길을 가고 그 위험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안하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 반대로 자기보고 누가 하라고 한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5년 전 쯤 캘리포니아에서 로라라는 소녀가 가출했습니다. 마약하고, 문란한 생활을 합니다. 로라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딸의 연락처를 알려고 노력합니다. 누가 로라를 봤다는 말을 듣습니다. L. A 어느 지역에서 창녀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L. A 인근 지역이 얼마나 넓습니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찾기 위해서 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전단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립니다. “이 전단지를 보면, 로라가 얼마나 창피해할까? 나중에 시집이나 갈수 있을까.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전단지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쇄했습니다. “이 사진의 엄마가 딸을 애타고 찾고 있습니다.” 3일 후에 딸 로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사진을 넣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요, 신앙입니다. “무너져도 내가 무너지는 것이 낫다. 창피를 당해도 내가 창피를 당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말입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항상 칭찬이 있고,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사고, 매도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느헤미아는 생명의 위협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힘들어도, 위험해도 합니다. 당해도 계속합니다. 자기가 나서면 될 수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아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살지 않겠느냐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친구 목사님들이 모였습니다. 일산 최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식을 먹다가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일인데 전도사들은 순식간에 튀어 나가더랍니다. 그런데 자기는 방석으로 그 가스를 덮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도망을 가는 사람이 있고, 감당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물이 넘치거나, 불이 붙었다는 것은 위험입니다. 그럴 때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무슨 일이 생겨보세요. 사람의 마음이 다 나타납니다. 앞장을 서고 희생이 필요할 때 느헤미아처럼 앞장을 서는 사람이 되어라 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하늘에 닿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때로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나오기 전에 세수를 하고, 소금으로 양치질을 합니다. 그리고 욕실 거울을 닦고, 변기도 한번 닦습니다. 그리고 나올 때 신발을 질서 있게 두 짝씩 맞추어 가지런히 놓고 나옵니다. 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른이요, 가장이니까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바닥에 떨어진 주보를 줍고, 성경찬송을 정리해 놓고, 찬양대가 불렀던 유인물을 챙겨놓고, 나가면서 불을 끄고,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온풍기를 끄는 이런 일은 주인이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손님 같은 사람은 이쁜 꽃이나 나무를 보아도 사다 놓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하고, 작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큰일이 앞에 닥치면 나설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신발하나를 바로 신지 못하고, 인사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유치원에서 물 컵에 물을 붓고 마시고 놓은 것을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제가 엄청난 역사를 한 느헤미아를 이야기하다가 왜 소소하고 쪼잔한 이야기를 합니까. 인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던지고, 희생이나,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강원대학에서 이전에 데모가 끝나고 들어갑니다. 막걸리 통이 굴러다니고, 잔디밭을 밟아 놓고, 쓰레기 천지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데모를 하는데 자기 발밑에는 엉망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아를 보면서 현실의 안일과 평안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뜻있는 삶을 위해서, 길을 떠나고, 위협을 당하고, 재물을 희생하고, 기꺼이 10년 세월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신앙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선교지 소식만 들을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에 가서 1년이라도 봉사할 수 있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야합니다. 할 일은 많습니다. 자동차운전부터, 밭에 푸성귀를 심고, 시장을 봐오고. 아이들을 씻어주고, 이런 사람들 때문에 무너진 성벽은 보수되고, 흩어진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며, 중단된 역사는 시작됩니다.

 

2. 산발랏과 도비아 같은 사람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52일 만에 완공하고, 바로 성벽 봉헌식을 하지 않고 먼저 성전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대 부흥을 위해서 회개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84명의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여 변화 선언문, 헌신 선언문을 선포하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새 시대, 새 세상이 되었으니 바르게 살겠다는 내용입니다. 10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29). 세상 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녀들을 이방 사람들과 결혼 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30).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안식일을 잘 지키겠다는 것입니다(31). 예배의 회복입니다. 넷째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37).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원리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위와 같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 네 가지를 고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성벽 봉헌식을 하고 잠시 페르시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난 것입니다. 13장6절에 ‘며칠 후’ 라는 ‘레케츠 야밈’는 직역하면 '날들의 끝에, 한 해가 저물 때'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궁으로 돌아갔다가 1년이 다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일 년 사이에 백성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 가 버렸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성벽은 재건하였지만 실제적인 삶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서 개혁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 악합니다. 쉽게 옛 생활로 돌아 가버립니다. 쉽게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돌아와 보니 그 적대자 도비아가 성전 예물을 보관하는 방을 차지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악은 끈질긴 것입니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해가 나면 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밤만 되면 나타나는 이리요, 늑대가 바로 악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으면 천사도 부러워하는 존재가 됩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지금 죽어도 미련이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 돌아가면 내 속에 죽어있던 욕심과 본성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고집을 피우고, 부딪치고,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입니다. 좋은 말만 할 줄 알았는데 여러분의 입에서 축복이 살아진 것을 본인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방되어야 할 도비야는 느헤미아야 없는 사이에 성전 안방을 차지하고 들어와 앉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분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갈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의 기준을 말씀으로 삼고, 마음에 있는 도비야를 다 몰아내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을 몰아내야 합니다. 근심과 불안과 염려를 몰아내야 합니다.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못하게 하는 옛 습관이나 취미를 몰아내야 합니다. 나를 늘 넘어지게 하는 것이나, 나는 좋아하나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물질을 왕으로 삼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결론

 

22살까지 두 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이없고 기막혀 한동안 방황하다가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다시 정신 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저는 10대 때부터 몸에 통증이 늘 있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통증이 지금처럼 이렇게 큰 절망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비록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없고 통증에 이골이 날 만큼 늘 밤 잠 설치는 나날들을 살수 밖에 없었지만 늘 감사했습니다. 스스로 밥 먹을 수 있고, 화장실 갈 수 있고, 기본적인 것을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큰 소원이요, 또한 가장 큰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기본적인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게 도와주세요라고요, 그런데 그 소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밥을 혼자서 못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터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양치하는 거며, 침대 올라가는 거며, 이러한 일상생활의 아주 지극히 사소한 보통의 사람들은 전혀 의식조차 하지 않고 하는 것들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바로 얼마 전까지 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터 되지 않으니, 이것으로 부터 오는 절망이 견디기 힘이 드네요, 그로 인해 하나님께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봅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당신께 남들처럼 건강하게 해 달라고도, 돈을 달라고도, 그 무엇도 해달라고 한적 없고, 오로지 한 가지 내가 이 땅에서 살 동안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욕심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의 뜻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통증은 참고 견디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계속 이렇게 밖에 살수 없다면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나 그만 살고 싶어요, 이것이 지금의 제 마음상태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난 수요일 새벽에 패북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시고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와 기도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제 기도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현제 일어나는 이 상황을 제가 받아들여야 한다면 의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의 마음을 주십시오. 라는 기도 부탁드립니다. -조성희 자매의 글-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몸이 성하고, 마음만 먹으로 무엇이던 할 수 있는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 느헤미아처럼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 것입니까. 도비아처럼 움켜쥐는 삶을 살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느헤미아처럼 살기 원하십니다.

 

지난주에 오셨던 손님께서 많은 질문 끝에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꿈 혹은 소원이 있으세요 라고 물으셨다. 저요, 웃으며 조용히 말씀드렸다. 순교요.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예요. (보은 예수마을 강동진목사 페이스북에서.)

 

눈앞 있는 자신의 삶에 허우적거리다가 인생을 마치기에는 너무나 여러분들의 존재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해봅시다. 잘 믿어 보시지요. 아멘입니까.

 

(사 60:1-3)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조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