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무엘상 강해

[스크랩] 다윗이 십 황무지로 가다(삼상 23:15~29)

에반젤(복음) 2019. 11. 12. 16:54


   

* 오늘의 말씀 : 다윗이 십 황무지로 가다(사무엘상 23:15~29)

 

* 본문요약

 

  다윗이 그일라에서 빠져나와 십 황무지의 수풀로 들어가서 숨었을 때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고 다시 한 번 언약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 사람들인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에게 다윗이 자기 마을 근처에 숨었다고 알립니다. 사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다윗을 추격할 때에 다윗이 마온 황무지에 있었는데, 그때 다윗과 사울은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포위하려 할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사울이 다윗 추격하기를 멈춥니다.

 

찬 양 : 474(486)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470(413) 내 평생에 가는 길

 

 

* 본문해설

 

1. 다윗이 십 황무지에서 요나단에게 격려를 받다(15~18)

 

15) 다윗은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다윗이 십 황무지의 수풀로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16) 그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수풀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17) 요나단이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게. 내 아버지 사울은 자네에게 손도 대지 못할

것이네. 결국은 자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일세. 그때 나는 자네 다음가는 사람이 될 것이네(그때 나를 자네의 다음의 자리에 앉혀 주게). 내 아버지 사울도 결국 그렇게 될 줄로 다 알고 있다네.”

18) 이리하여 그 두 사람은 다시 여호와 앞에서 연약을 맺었습니다(굳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계속 수풀에 머물렀고, 요나단은 자기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 (15) :

(Ziph)녹음이라는 뜻으로,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유다 최남단의 성읍입니다.

 

 

2.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함(19~23)

 

19) 그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 올라와서 말했습니다. “다윗은 틀림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는 유다 남쪽에 있는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20) 그러하온즉 왕께서는 좋으실 때 언제든 내려오십시오. 저희가 그를 왕께 넘겨

드리겠나이다(그를 잡아 왕께 넘기는 일은 저희가 맡겠나이다).”

21) 사울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나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22) 내가 듣는 바로는 그는 심히 지혜롭게(무척 교활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한다고 하니,

너희는 가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또 누가 어디에서 그를 보았는지 더욱 자세히 살펴서 (더욱 단단히 준비하여서) 알아보아라.

23) 다윗이 숨을 만한 모든 곳을 (모든 은신처를) 자세히 정탐하고 그 정확한 정보를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갈 것이다. 만일 다윗이 그 장소에 있으면 내가 유다의 몇 천 명 중에서라도(유다의 모든 마을들을 다 뒤져서라도) 그를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다.”

 

- 십 사람들의 배반(19) :

십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의 고향 사람들인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십 황무지에 들어가 숨었는데, 그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에게 고발한 것입니다.

 

 

3. 사울이 다윗을 추격함, 다윗의 위기(24~26)

 

24) 그리하여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갔습니다. 그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광야(여시몬) 남쪽 아라바에 있는 마온 황무지에 있었습니다.

25) 사울이 그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자기를 찾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마온 황무지

에 있는 바위로 내려갔습니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곧 마온 황무지로 들어가 다윗을 추격하였습니다.

26) 사울은 산 이쪽에서 쫓아가고 있었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에서 사울을 두려워

하여 급히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의 순사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잡으려고 포위하기 시작할 때에

 

- 아라바(24) :

아라바는 거친들, 사망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틴에서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저지대의 땅입니다.

 

- 마온 황무지(24) : 십 황무지에서 남쪽으로 8km떨어진 곳에 있는 황무지

 

 

4. 블레셋의 침략으로 사울이 돌아감(27~29)

 

27) 갑자기 전령 한 사람이 사울에게 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 땅을 침략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땅을 차지하려 하고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8) 이에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일을 포기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맞아 싸우려고 돌아갔

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29) 다윗이 그곳을 떠나 엔게디 요새에 머물렀습니다.

 

- 셀라하마느곳(29) :

떠나다’ ‘포기하다의 뜻.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게 하셔서 다윗이 살게 됐다는 의미로 다윗이 포위되어 죽을 뻔한 바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부름.

 

 

* 묵상 point

 

1. 다윗을 격려하는 요나단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그일라 사람들이 블레셋에 침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 블레셋과 싸워 그들의 빼앗긴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이 자기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사울에게 고발하려 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서둘러 그일라를 빠져나와서 십 황무지의 수풀로 도망합니다. 목숨을 걸고 도와준 다윗에게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그를 죽이려는 자에게 붙잡아서 넘기려는 그일라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을 합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 황무지 수풀 속에서 도망이나 다녀야 하는지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그때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러 그 수풀 속으로 찾아옵니다.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 사울이 다윗에게 손도 대지 못할 것이라고 위로하고 다윗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격려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하기 위해 다윗이 다음 왕이 될 것이며, 다윗이 왕이 되면 자기는 왕 다음의 자리로도 만족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 사울도 다윗이 다음 왕이 될 줄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며 다윗과 다시 한 번 언약을 합니다.

 

묵상 1 : 그의 일꾼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필요한 자를 보내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는 까마귀를 통해서 떡과 고기를 주시며 위로하셨고, 바울이 옥에 갇혀 힘들어 할 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지쳐 있을 때에도 그의 친구 요나단을 보내셔서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도우신 하나님께서 당신도 도우시니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십시오.

 

묵상 2 : 내가 위로해야 할 자를 찾아보십시오.

 

  반대로 내가 요나단의 입장에서 다윗처럼 힘들어하는 자가 있는지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힘들고 지쳐있는 자를 격려하는 일은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겠습니까? 하나님의 일꾼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임을 기억하십시오.

 

 

2. 다윗을 배반한 십 사람들

 

  블레셋에 침략을 받아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구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배반을 당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빠졌던 다윗은, 다른 지파는 몰라도 유다 지파만은 다윗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고, 유다 지파에 속한 땅인 십 황무지로 피합니다. 그러나 십 성읍의 사람들 역시 사울에게 다윗이 자기 마을에 숨어 있다고 고발을 합니다.

 

  그래도 자기 고향 사람들은 자기를 편들어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를 적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 사람들까지 다윗을 죽이려는 데 참여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시련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싸움은 처음부터 이긴 싸움입니다. 다윗이 왕이 될 것이고 사울은 죽게 되리라는 것이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바로 그 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때까지 다윗이 잘 참고 견디기만 하면 다윗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인 다윗은 이 모든 고통이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시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견디고 이겨서 결국 그 승리를 맛보게 됐습니다.

 

묵상 : 우리들 역시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사울이 있는 동안 다윗이 고통을 당했던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성도들 역시 시련과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그 모든 것이 이미 이긴 싸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싸움도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리의 원수들인 마귀와 사탄의 세력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다만, 다윗이 그랬듯 우리도 끝까지 견뎌야만 주께서 이루신 그 승리의 기쁨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임을 기억하여 넘어지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십시오. 너무 힘이 들 때는 한 걸음씩만 가십시오. 날마다 내일은 주께 맡기고 그날 하루씩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면 다윗이 왕이 된 것처럼 주께서 우리에게도 그 기쁨을 주십니다.

 

 

3. 의미 없는 사울의 말 :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십 사람들이 다윗의 현재의 위치와 상황을 사울에게 낱낱이 보고하자, 사울이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자기의 부하들조차 마음속으로 다윗을 존경하며 사울의 눈치나 살피고 있는 상황에서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자기편에 섰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사울은 그 기쁨에 십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울이 던진 이 축복의 선언이 바른 것인지를 한 번 따져봅시다. 우리도 사울처럼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으니 사울의 말의 허망함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에 대하여

 

  긍휼이란 힘없고 나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힘없고 연약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울은 자기가 가진 권력을 가지고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고 있는 자입니다. 사울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는 좋아하지 않고 다윗만 좋아하고 있으니 자기야 말로 힘없고 나약한 자라고 말할 른지 모르나, 그것은 사울이 그가 가진 권력을 사리사욕을 위하여 함부로 사용하여 생긴 일입니다.

 

  그러므로 십 사람들이 사울을 긍휼히 여겼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십 사람들은 사울을 긍휼히 여긴 것이 아니라, 사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의인 다윗을 죽음으로 모는 죄악을 사울과 함께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사울에게 일종의 뇌물로 다윗에 대한 정보를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에 대하여

 

  사울은 십 사람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자 크게 기뻐하며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고 축복을 선언합니다. 사울의 선언문은 제사장이 축복을 선언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주일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들이 예배 마지막에 축도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비록 제사장의 축복의 선언의 형식과 비슷하게 십 사람들에게 축복을 선언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합니다. 그 축복을 선언하는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에는 제사장 엘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였음에도 그가 한 축복의 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한나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께 버림받은 제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셔서 사무엘이 태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십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의인 다윗을 죽이려는데 참여하는 일이므로 사울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선언하는 자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이고, 그 축복을 받는 자도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며 축복을 말합니다.

 

묵상 :

 

  복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것이지 사람이 임의로 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아주 신령한 능력이 있는 어떤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가진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같은 능력이 있는 자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복을 선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돼야지,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다더라 하면서 능력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이런 자는 자칫하면 엉터리 사교 집단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4.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을 구하기 위해 한 나라도 움직이십니다.

 

  십 황무지 사람들이 사울에게 고발할 때에 다윗은 거기에서 약 8km쯤 떨어진 마온 황무지에 있었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와서 다윗을 추격합니다. 그래서 산 하나를 두고 사울은 이쪽에서 다윗을 추격하고, 다윗은 산 저쪽에서 도망합니다. 다윗의 무리는 불과 600명밖에 안 되지만, 사울은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아예 다윗이 있는 산 전체를 포위하려 합니다.

 

  이때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때 전령 한 사람이 사울에게 와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블레셋의 침략이 심상치 않아서 이대로 두면 이스라엘이 몽땅 블레셋에 넘어갈 수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는 일을 멈추고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꾼 다윗을 구하시기 위해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움직이셨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나라를 움직이시는 하나님, 아니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 우주 전체를 움직이실 수 있으신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묵상 :

 

 우리는 오직 다윗처럼 신실하게 살아가려 힘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하신 것처럼 주께서 우리도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만 충실히 합시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내일을 어떻게 만드시는지 믿음으로 지켜보십시오.

 

 

* 기도제목

 

1. 다윗이 힘들어할 때 요나단을 통해 위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의 성령을 보내셔서 힘과 위로를 내려 주옵소서.

 

2. 요나단이 다윗을 위로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주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기 위해 블레셋까지 움직이셨음을 기억하고

    세상에지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