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계1:9 08.12.18.설교녹취/대강 정리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1;9
▲1.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 : 환난과 평강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만 알고 있다.
그러나 위 롬14:17절은, 계1:9절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나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계1:9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환란과 (하나님의) 나라와 참음’이다.
둘을 조합하면,
‘의와 평강과 희락’은
‘환란과 참음’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세상 재미에서 오는 ‘의와 평강과 희락’은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이 아니다.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된 것처럼,
‘환란과 참음’을 통과할 때,
역설적으로 거기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의, 평강, 희락이 동전의 한 면이라면,
동전의 다른 면에 환란과 인내가 있다는 양면성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이런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말씀이 또 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은,
그냥 세상 즐거움이 아니라,
<환난 중에 즐거움>이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또한 <환난 중에 인내>하는 것이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환난과 희락>의 양면성으로 봐야 한다고 했는데,
롬5:3절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어디에 임재 하시는가?
주님은
예수 믿는데 아무 환난이 없는
(지금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한국에 임재 하시기도 하지만,
주님이 더욱 강력히 임재하시는 곳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강하게 나타나는 곳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 사는 곳
즉 북한과, 강성 회교국가 등
또는 환난 받는 그 곳에, 주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나라가.. 더 강력히 나타나신다.
▲2. 결국에 세상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포함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계11:15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사도행전 후반부에, 사도바울이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 받는 것을 (불필요한 것 같은데) 너무 자세하고 길게 기록한 것은
사도바울에게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나라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포함’된다는 신학이었다. 계11:15↖
그래서 사도바울은, 누가를 통하여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세상 나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전도하려 했으며,
결국 세상 나라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아래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보았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연장선상에 놓인 ‘세상 나라’,
그 ‘세상 나라’에 대한 바울의 관심이.. 사도행전 후반부에 길게 배여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세상 나라가 마귀(↔하나님 나라)에게 속해 있다는
눅4:6, 계13:7, 계17:17절 등과 균형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이런 사도바울의 관심은, 아래 구절에도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2:1~2
여기서 ‘첫째로 권하노니’ 라는 말씀에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임금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바울이 ‘첫째로 권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것인가? .. 하는 질문이다.
사도바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세상 나라도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포함 될 것이며’ 계11:15
지금은 아직 완전히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세상 나라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지금 부분적으로라도 나타나야 한다’는 신학이다.
그래서 제자 디모데에게
위정자들을 위해 ‘첫 번째로 기도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세상 나라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복속된다.
아래 구절에, 미래 천국에, 세상 모든 나라 백성들이 함께 모일 것이 예언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7:9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21:24
▲개교회주의는 하나님 나라에 걸림돌
오늘날 개교회주의가 너무 발달한 나머지
‘교회=하나님의 나라’ 라는 공식이 위협을 받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개교회(이기)주의는.. ‘反하나님의 나라’요, ‘안티 하나님의 나라’임을 명심하자.
‘개교회주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가장 실패하신 목회자의 전형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전에 교회 개척에 거의 실패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모으기는 했으나, 다 흩어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개교회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성공적으로 이루셨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강조하는 것도
‘개교회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이다.
▲캐나다의 피플스 쳐치의 담임목사였던 O.J.스미스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단히 두렵고도 엄숙한 다섯 가지 사실을 말했다. 첫째, 마지막 심판 때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할 것이다. 셋째, 구원받으리라고 여겨졌던 사람들 중에도 멸망 당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넷째, 죽은 뒤에는 구원받을 기회가 다시 없다. 다섯째, 지금이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이다. 모두 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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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사라진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란 쉽게 말하면,
‘시험을 통과한 후에/ 시험에 합격한 후에’ 이다.
예를 들면, 물질의 유혹에 취약한 사람이
더 이상 물질의 유혹에 취약해지지 않을 때가 되면, 물질의 유혹에 강해지면
그 시험이 그칠 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이다.
‘시험이 그친다’는 말은 위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문맥으로 봐서 그렇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당하는 시험이 계속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그 시험에 ‘옳다 인정하심을 아직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통과하면.. 풍부한 곳에 들어간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66:10~12
주께서 우리를 시험에서 끌어내실 때
‘전에 있던 그 자리’가 아니라, ‘풍부한 곳’에 들이신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으시면, 온전히 기뻐하시기 바란다. 약1:12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눈여겨 볼 점은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이다.
그러니까, 내가 시험(어떤 연단, 괴로움, 고난)에 빠질 때,
내 스스로 빠져나오려 하지 말고,
주께서 나를 끌어내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빠져나오려고 하다가.., 결국은 시험에서 낙제하고 만다.
또 비슷한 시험이 닥치면.. 견뎌내지 못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애쓰지 않았다.
주께서 끌어내실 때까지.. 감옥에서 인내했다.
그 결과, 간수의 가정이 구원받았다.
감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계1:9
한국인들은, 유교의 영향으로 ‘호칭’ 이런 것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가 대부분 다 그렇다.
어쨌든 모든 직분은 섬김과 봉사를 위한 목적임을 명심하고,
대 사도 요한이(계1장 상황에, 생존한 사도는 요한뿐임)
자신을 ‘형제’라고 부른 사실을..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하겠다. ▣ 하나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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