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요한계시록 강해

묵시문학으로 본 계시록

에반젤(복음) 2019. 11. 9. 14:26




  

◈묵시문학으로 본 계시록       



오늘은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필수적인 묵시묵학에 대해 잠시 공부해 봅시다.

이것을 남에게 가르칠 필요는 없지만,  남이 설명할 때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묵시문학적 요소가 있지만, 그것을 고려하되

묵시문학과는 차원이 다른 '계시록'이라는 주제의 글.



◑묵시문학 개요


▶1. 계시록은 묵시록이라는 주장

① '계시'(아포칼립퓌스)라는 말은 ‘베일을 걷어 보여준다’

즉 ‘미래의 사건을 미리 예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② 그러나 또 다른 뜻이 있는데, 그것은 ‘묵시문학’(아포칼립틱 literature)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학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들은 한글로 ‘계시록’보다는 ‘묵시록’으로 번역함을 좋아한다.


▶2. 묵시문학의 탄생 배경

헬라의 청년 장군 알렉산더는 B.C. 3백년 경 유럽에서 소아시아와 팔레스틴을 거쳐

애굽까지 단숨에 정벌하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그 헬라 제국은 장군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는데,

시리아 지역은 안티오쿠스 장군(왕가)에게 할당되었다.


그래서 안티오쿠스 1세, 안티오쿠스 2세, 안티오쿠스 3세를 지나

B.C. 170년경에 안티오쿠스 4세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악명 높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유대교 파괴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①모세의 율법 읽는 것을 금지시켰고, 읽다가 발각되면 처형시켰다.


②성전에 유대인이 혐오하는 돼지 떼를 끌어 들여 죽여서 그 피로 더럽혔다.


③유대 남자아이가 받는 할례를 금지시켰고, 받으면 아이와 아버지를 처형했다.



이러한 유례없는 환난 속에서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분파들이 생겨났다.


①바리새파-이런 박해에 항거하고 유대교와 전통을 고수하려 했던 순교주의자들


②사두개파-유대교를 포기하고 헬라 문화에 동화된 융통성이 뛰어난 사람들

  그래서 이들은 헬라 통치자들 아래서 지위와 권세를 얻었다.


③마카비 가문-군사적으로 항거했던 사람들


④에쎄네파-에피파네스의 핍박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탈속세적 신비주의.

이 분파에서 묵시문학이 발생했다. (이 말을 하려고 배경을 길게 설명한 것임) 

그들은 사해 근처의 황무지 동굴로 나아가서 쿰란 공동체를 창설했다.


이 세상은 에피파네스와 같은 사탄이 지배한다고 믿은 결과, 세상을 떠난 것이다.

또한 세상적인 것들-쾌락, 식욕, 부부관계-을 모조리 단죄하고

금욕주의를 강조했다

<이 세상은 사탄의 통치를 받고 있다> 이런 ‘비관적 세계관’이 가장 큰 특징이다.

 

▶3. 묵시문학의 특징

① 앞서 말한 대로 이 세상은 사탄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비관적 세계관


② 그러나 최후에는 사탄이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적 희망


③ 상징성-당시 정치 권세를 사탄적으로 보는데,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가는

모두 처형되고 문학은 압살될 것이므로, 그들은 상징적인 표현을 썼다.


④ 현재성-그들은 ‘12족장의 언약’등을 통해 과거 시대를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현실 비판 서적’이다.

현재 사건을 과거 사건에 빗대어 표현했던 것이다.

결국 현재 괴로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묵시문학과 예언서의 차이점

이 양자는 임박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역사, 곧 '종말'에 관해 말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언서에 나오는 종말론은, 기존 역사 안에서의 종말과 대변혁을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서 묵시문학에서는, 기존의 인간역사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더 이상의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 역사의 완전한 종말과 완전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선포한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에 특히 팽배했던 사고이다.

 

 

 

◑묵시문학의 관점에서 본 계시록


▲1. 현재적 예언

계시록이 묵시문학이라고 볼 때, 묵시문학은 ‘현재적 사건’을 다룬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미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한다.

계시록은 당시 도미시안 치하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했다.

<계시록을 묵시문학이라고 볼 때> 그렇다는 주장한다.


갈라디아서는 당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위한 서신이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당시 시대 정황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 소아시아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글이었다.

그 시대 정황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사도 요한이 2천년 후 먼 미래의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중 예언

그러나 당시 1세기에 본 ‘미래의 종말’이,

21세기에서 보는 ‘미래의 종말’과 상당 부분 관련성(반복성)이 있다고 본다.


계시록의 예언은... 그 당시 1세기를 위한 예언이지만,

동시에 21세기의 종말(22세기가 되더라도 마찬가지)에 관한 예언도 된다고 본다.

이것을 <이중 예언, 원근통시법>이라고 한다.


사실 구약 예언서(학개, 스가랴 등)도 일차적으로 그 시대 종말과 예수님 초림을 예언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와 동시에’ 세상 종말과 재림을 예언한다는 식으로

이중 예언 설을 지지하는데, 편집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계시록 2~3장을 보시라. 거기 7교회는 당시에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7교회였다.

사도 요한이 당시에 자기가 알고 있던 7교회를 위해

계시록을 썼다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그 주제는 황제숭배에 핍박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먼 미래 21세기 종말의 7교회를 바라보고 쓴 것이 아니라는 뜻)


▲2. 상징적 표현

4장부터 마지막장까지는 묵시문학 형태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그 내용은 교회를 성결케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로마황제를 통해 환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녀와 바벨론은 로마를,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로마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도미시안을 상징한다고 본다.

                                                                         13:1

“잠시 동안 사탄을 풀어놓는다”(계20:3)도 장래에 있을 어떤 특정 시기가 아니다.

지금 도미시안이 광포하게 날뛰는 것이 바로 잠시 풀린 것이다.


*제기되는 문제

계시록은 묵시문학의 장르로서 상징적 표현이 맞다.


그런데 1:1절~끝까지 모든 구절이 ‘상징적’이란 표현은... 조금 난감하다.

‘사람이 죽는다’고 했는데 - 그것도 상징이며,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 그것도 상징이라면,

현실은 아무 것도 없게 되며, 계시록은 ‘그리스 신화’처럼 된다.


상징적 표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실제적 표현과 뒤섞여 있다.

‘과연 어느 것을 상징으로 보고, 어느 것을 실제적 표현으로 볼 것인가?’

- 솔로몬의 지혜와 다니엘의 해석이 필요하다.


신학에서 학문적 깊이가 깊은 쪽은, 계시록을 주로 <상징적>으로 보고

신학에서 신앙적 깊이가 깊은 쪽(근본주의, 세대주의)은, 주로 <문자적, 실제적>으로 본다.


편집자는, 이 둘을 잘 섞어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계시록은 1세기 당시의 미래를 예언하면서도, 세상 종말을 예언한 것이며

묵시묵학 장르로서 상징적 표현을 썼지만, 문자적 해석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 쪽 면만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들이 많은데...

안전하게 보려면, 양 쪽을 다 봐야 한다. 



▲3. 종말의 희망

그런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은 14만4천을 인치시며,

결국 흰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묵시문학적 특색을 배제하고서,

계시록을 무조건 미래종말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계시록 해석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반론 : 묵시록이 아니라 계시록이다.

‘계시록이 묵시문학이다.’ 라는 주장은

‘계시록이 저자의 상상이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쉽게 말해서 ‘홍길동전’ 같은 상상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계시록은 창작 소설도 아니고, 몽롱한 환상을 보고 나서 쓴 신비주의도 아니다.

계시록은 <분명한 영적 환상>이다.  

계시록이 당시 유행하던 묵시문학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묵시문학과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다;

이것은 <예언서>이다.


계시록을 묵시문학으로 보는 자들은,

계 21-22장의 천국 환상을 미래적으로 보지 않는다.

계 21-22장의 천국 역시 로마 정권이 물러난 이후의 상태로 보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다.    


계시록은 그 범주가 팔레스틴이나 소아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범세계적’이다.

7인, 7나팔, 7대접의 범위는 결코 소아시아 7교회가 아니라 ‘온 세상’이다.

고로 계시록이 당시 7교회를 위해서만 주어졌다는 주장은 일면 맞지만,

다 맞는 말은 아니다. 


물론 계시록의 당시 시대 정황을 무시한 채,

오로지 21세기 현재 시대 정황 속으로 국한시켜 계시록을 해석하려는

어떤 시도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계시록을 21세기 현재 시대 정황 속에서만 해석하려 든다.


<「요한계시록」제임스 칼라스 저, 박창환 역, 컨콜디아사 를 읽고 정리,  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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