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셋집

에반젤(복음) 2019. 10. 5. 12:33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셋집

 

 

(행 28:30)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이 2년 동안 살았던 셋집 내부(행 28:30)

 

 

바울의 셋집

 

우리는 지금 문명이 최고로 발전된 세상을 살아가는데 왜 집 없는 사람들이 그리 많을까? 오히려 원시 시대에는 누구나 자신의 움막을 손쉽게 소유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뉴욕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숲을 이루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뉴욕에 홈리스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뿐인가? 김포 공항에서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할 때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성냥갑 갚은 수많은 아파트들, 그 많은 아파트들이 서울의 공간을 모두 잠식하여 버릴 정도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아파트들은 전혀 틈새를 남겨두지 않았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 땅이란 땅은 아파트라는 건물들로 다 먹어치워 버리고 있다. 그런데도 집 없는 사람들은 그리 많다고 하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싶다.

 

하기야 나 역시 서울에 살 때 삭월 셋방을 찾아 정처 없이 떠 돌아다녀야 했었다. 얼마나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던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셋방살이는 언제나 한 숨과 설음이 기다리는 삶이다. 왜 그리 월세를 지불해야하는 날은 빨리 오는 건지---

 

그래서 그 서러움을 극복하려고 집을 장만하지만 그 서러움을 안겨주는 놈은 잠깐 동안 휴가를 갔다가 또 친구까지 데리고 와 거머리처럼 찰싹 붙어버리는 우리네 삶, 그러기에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은 불가능하지 싶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천 년 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한 바울도 이태동안 셋집에서 지냈다는 점이다. 재판을 받기 위해 전도자로 왔기에 내 집에 대한 향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로마에서 30여년을 셋집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이년 동안 살았다는 기록에 동질성을 느낀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바울이 로마에서 셋집에 살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그 셋집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하도 오래된 일이니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막연히 로마시대에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지역의 어디쯤으로 이해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아니 이 천 년 전의 일이 아닌가! 하고 관심을 접어 버리기 일수였다.

 

역사적으로 복음이 공인된 것은 약250년 후인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던 313년 인데, 어떻게 바울의 셋집이 유지되고 후대에 전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나의 셋집에 대한 의구심을 진전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우연히 H 집사에 의해 그 셋집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토록 오랫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곳인데 말이다. 당장 그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그곳은 유대인 회당이 있는 근처였다.

 

로마시대에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강 주변이 유대인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게토(Ghetto) 였다고 한다. 물론 게토란 이태리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중세 때인 1516년 베니스라고 하지만 이미 로마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특히 그 당시에 테베레 강이 바로 옆으로 흐르고 있었기에 이곳에 많은 곡물 창고들과 천막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천막은 배의 돛대에 공급되었다.

 

바울은 천막제조의 기술자였고 또한 일을 해서 셋집의 돈을 지불하여야 했기에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공장이 딸린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어서, 그의 곁에는 그를 지키는 로마의 군병이 있었고 이곳은 강에 잇대어 있는 곳이기에 항상 습도가 많아 눅진했다고 한다. 찾아가보니 지금도 그 주변에는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식당, 바, 여러 종류의 상점들---

 

아마도 이들은 이천년 전부터 군락을 이루며 이곳에 살아왔지 싶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바울의 셋집을 찾아 나섰다.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기를 계속하면서, 그곳은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San Paolo alla Regola)라는 명칭이었다. 큰 길을 건너 청소원에게 물어 보고서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사이로 서있는 성당이었다.

 

육중하게 닫혀있는 성당의 초인종을 오랫동안 누르니 젊은 수사님이 나오기에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담당자가 없으니 오후에 방문해 달라고 한다. 낙심한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는데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아마도 동양인으로 방문한 우리를 그냥 보내기가 안쓰러웠나보다. 셋집으로 사용하던 곳은 성당 앞 우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 허물어졌는데 고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밝혀낸 곳이다. 지하에서 4층 정도의 건물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지하의 모습은 문이 잠겨있어 볼 수 없었다.

 

들어가 보니 열 평정도 되는 방이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연금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복음을 전했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옥중 서신인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를 여기서 썼다고 하니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바울이 이년동안 연금 생활 중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도 믿게 하였고, 자신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기도 했다.

 

더더구나 이곳을 이년동안 수많은 제자들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하니 주변에 있는 돌 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바울이 머물렀던 바로 그 자리를 나도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바울은 이곳에 머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바울이 가졌던 생각, 그가 품었던 고민에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