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스크랩] 제 53강/ 쉰 세 번째 구원드라마(행6:1- 8:40; 10:1- 11:18)

에반젤(복음) 2019. 10. 5. 12:28




쉰 세 번째 구원드라마(행6:1- 8:40; 10:1- 11:18)

 

 

첫 순교자 스데반과 첫 이방인 개종자 고넬료 이야기(행 II)

 

 

I. 배경


  초대교회의 처음 선교 대상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종교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두 종교 사이의 관계가 대립과 긴장의 관계로 악화되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은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즈음에 초대 기독교는 이미 이방지역으로 확대되어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했으며 그 결과로 초대 기독교 안에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물론 이방 지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의 개종자 수효도 상당수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안에 이방지역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초대교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유대계 기독교인들과 이방계 기독교인들 간의 갈등이었다. 이 갈등은 주로 사회적 문화적 또는 종교적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런 갈등과 마찰이 심화되면서 주로 유대인 출신이었던 12 제자들로 구성된 지도층의 지도력에도 한계가 느껴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대 교회는 이런 마찰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미 많은 수에 이른 이방계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II.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이야기 - 새롭게 등장한 이방인 지도자들(6:1-15)
  1) 선택된 동기(6:1)
  행 2, 4장에서 소개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초대 교회 안에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원망과 불평은 교회 안의 구제금 사용에 있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자주 제외당하는 일이 생겼다. 아직 헬라파 사람들 곧 이방계 기독교인들의 발언권이 강화되지 못해 여러 가지 점에서 무시당하다가 그들의 불평과 원망이 심각해지자 초대교회는 그들의 입장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들 가운데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지도자를 인정하여 선택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일곱 지도자(6:2-15)
  초대교회는 헬라파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일곱 사람을 선택했다. 그래서 구제하는 일이나 공궤하는 일을 책임을 지고 맡아 수행하게 하였다. 이로써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나 기도하는 영적 사역은 12 제자가 맡고, 교회 내의 여러 행정적인 사역은 7 지도자가 맡기로 하였다.
  초대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을 7 지도자로 세우기로 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선택했다. 저들이 사역할 때의 모습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고”(6:8),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다.(6:10) 사실 이들은 교회 밖에서는 복음을 전했고, 설교했고, 많은 표적을 행했고, 심지어 세례까지 베풀었다.

 

2. 두 번째 이야기 -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7:1-60)
  1) 설교(7:1-53)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설교들 가운데 가장 길고 중요하다. 이방계 기독교인의 설교답게 기독교의 세계적인 관점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이방 땅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이다.(1-34) 스데반은 상당부분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설명한다. 그런데 강조점은 이스라엘이 현재의 팔레스틴에 들어오기까지 이방 땅에서 유리할 때 하나님이 늘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점에 있다. 스데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나안, 예루살렘 혹은 성전에만 현존해 계신 분이 아니라 이방 땅 어느 곳에서도 현존해 계신 분이며 하나님이 현존해 계신 그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방 땅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내려오시는 분이다.
  둘째,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이다.(7:35-43)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 하나님께 반역하여 우상섬기는 일을 저질렀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돌이키사 그들을 우상 섬기는 일에 내버려 두셨다. 저들이 우상을 섬기게 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바벨론에 종살이 하게 하셨다. 스데반은 이렇게 손으로 만든 것 즉 사람이 만든 것을 숭배하고 섬기는 것을 우상 숭배로 정죄하면서 그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셋째, 손으로 지은 성전에 대한 공격이다.(7:44-53) 스데반은 장막과 성전을 대비시키고 있다. 장막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준대로 만든 것이며 하나님이 늘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하셨던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성전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지은 집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데반이 성전을 손으로 만든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전 건물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막 14:58) 말씀하신 것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에 예수의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순교(54-60)
  스데반은 예수처럼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예수처럼 처형을 당했다. 그리고 예수가 죽었을 때 아리마대 요셉이 장사했던 것처럼 스데반이 죽었을 때도 경건한 사람들이 그를 장사했다. 스데반의 순교는 예수 죽음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스데반은 죽는 순간에도 예수처럼 기도했다.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스데반은 이렇게 죽는 순간까지 예수를 잘 본 받았으며 최후의 발언까지도 그대로 본받고 있었다.

 

3. 세 번째 이야기 - 빌립의 활동(8:1-40)
  1) 사마리아의 복음화(8_1-25)
  7인의 지도자 중 하나인 빌립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주 대상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자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이것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었다. 사마리아가 빌립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기도하면서 저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
  2)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8:26-40)
  빌립은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이사야의 글을 해석하여 주면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까지 준다. 그리고 빌립은 더 나아가 여러 도시 여러 성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8:40)

 

4. 네 번째 이야기 - 고넬료의 개종(10:1-11:18)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했다. 본문에서는 그를 경건한 사람이었고, 의인이었고, 그래서 온 유대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된 자를 첫 개종자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꺾으셨다. 하늘로부터 내리운 그릇에 담긴 생물들은 한 마디로 율법에 먹지 말라고 규정한 것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으라고 명하신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 것인데 이제 유대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의 만남을 이루시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말하지 말라 하심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분을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으로 하셨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이방인들을 맞아들이고 또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설교를 한다. 그 설교는 보편주의적이며 세계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 우선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는 분이며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모두 받으신다고 선포한다.(10:3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 즉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주님임을 선포한다. 나아가 만민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평을 즉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장벽을 넘어선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평화를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이제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10:43)
  베드로가 설교할 때 즉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이 임했다. 베드로와 함께 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이방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놀랐다. 후에 베드로는 이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하면서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했다”라고 말했다. 이제 저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하나가 이루어지게 된다. 바로 성령의 띠로 하나가 된 것이다.

 

III. 신학적 의미

  1. 예루살렘 교회의 변질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출범한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를 실현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문제가 생겼다. 내부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그 원인은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자기편의 사람들을 챙기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차별한 것이다. 저들이 자기중심적 사고,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성령의 생각을 거스린 것이다. 이로써 성령께서 이루신 “하나됨”이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오늘도 교회 안에 이와 유사한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 성령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생각을 고집할 때 얼마든지 언제든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구속사의 도도한 흐름
  자칫 초대기독교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매몰될 뻔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로 일이 급전되었다. 박해가 일어났고 어쩔 수 없이 저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유대 지역으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강제로 베드로를 고넬료와 만나게 하셔서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확인케 하셨다. 이로써 복음은 예루살렘을 뛰어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나아가 땅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