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書 : The Book of Micah
[영] The Book of Micah구약성서의 1서. 특히 소선지서 중의 하나로 말해진다.
1. 본서의 위치
미가서는 12소선지서 중,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여섯 번째, 요나서와 나훔서사이에 두어져 있고, 그리스어역 구약성서(칠십인역)에 있어서는 세 번째, 아모스서와 요엘서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2. 본서의 저자(미가와 그 시대)
미 1:1에서 그는 [모레셋 사람]으로 말해져 있다. 즉 그는[모레셋 가드](1:14)의 주민으로서, 예루살렘의 약 40km서남의블레셋과유다 산악지와의 중간의 낮은 구릉지대, 블레셋의 경계에 가까운 소촌 출신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 같으시랴]인데, [미카예후- Why]k;ymi (mikayehu)(삿 17:1,4)의 단축형이다. 그는 유다 열왕 요람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렘 26:18,19참조)에 활동하고 있다(1:1). 그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예언하고(1:6), 렘 26:18-19의 언급에 의해 히스기야왕의 시대에도 활동하고 있었던 것을 알수 있으므로 늦어도 기원전 730년 후반에서 690년대에 있던 선지자로 여겨진다. 따라서 미가는 아모스 후 그리고 호세이의 후기, 이사야와는 거의 동시대의 선지자이다(→사 1:1, 호1:1,암 1:1). 아모스, 호세아와 한가지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멸망을 예언하고, 또 아모스처럼(북왕국뿐 아니라 남왕국 유다에 있어서도), 저변에 사는 민중에 대한 압박 및 사회부정을 규탄했다. 이사야가 상류계급, 지도자층의 외정면(外政面)에 대해 예언한 것에대해, 미가는 지도자의 내정의 부패, 민중의 종교면에 대해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이 시대의 국제정세로 말하면 전 722년에사마리아를함락시킨 앗수르군은, 유다와의 동맹을 무시하고 남왕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여, 유다는 위기에 빠졌다. 앗수르왕 사르곤 2세는 애굽을 후원자로 삼은 아스돗을 중심으로 한 반 앗수르 동맹을 깨치고, 아스돗을 점령했다(전711년).다시다음왕산헤립(전 705-681)은,전701년에라기스(모레셋가드 부근)를 점령하고, 유다에 침입하여 [46의 성읍을 공략하고, 히스기야를 [조롱 속의 새처럼, 그 왕국의 성읍예루살렘 안에 가두어 버렸다](산헤립의 6각 프리즘에 의함). 미가의 고향 모레셋 가드는,바로 이 외국군의 진로에 있었다(이 성읍은 산헤립이 정복했다는 유다의 46의 성읍, 또는다른 작은 성읍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의 산 미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타락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패전, 포로 등의 형벌로서 임하시리라는 것을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시대, 또는 동 시대의 다른 선지자들의 말에도 청종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이외에 방법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3. 본서의 사명
미가 당시의 유다국은 북에 앗수르, 남에 애굽이라는 대왕국이 세계 제패의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때이고, 유다 국내에도 현세적인 앗수르 문화, 애굽 문화가 교착하여달리 비류없는 유다의 전통적 정신문화는 사라지고, 폭력이 숭상되고, 정의가 무시되었다.관리도 종교가도 돈에 의해 움직이는 형편이었다(미 3:9-11). 그러한 때 미가는 산간에서 부르심을 입어, 본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을 한 것이다. 불의한 자에 대해서는 아모스와도 같은 예리함으로써 그 멸망을 말하고, 눌린 사람들에게는 호세아와 같은 애정으로써 이들을위로했다. 특히 그는 신분 낮은 자의 편에 서서, 아모스처럼 사회 부정을 책망하고(미 2:1,2,3:2,3), 또한 이익을 탐하는 제사장, 거짓 선지자를 공격했다(미 3:5-12). 그의 예언이 감명을 준 것은 약 1세기후에도기억되어예레미야에 인용된 것에 의해서도(미 3:12,렘26:18) 알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히기야를 회개케 한 외에, 국민으로 크게 반성케 하고,한편 커다란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4. 본서의 사상과 내용
사상적 또는 선배들에 비교할만한 독특한 것은 없는 것으로 말해진다. 그러나 6장 후반은 유명한 것으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아모스), 인자를 사랑하며(호세아),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사야)이 아니냐](미6:9)고 하여, 3자를 잘 총합하고 있다. 그는 선배들로부터 전해진 바를 잘 음미하여, 참으로자기의 것으로 하여 실천한 사람이고, 거기에 그의 특색이 있다. 5:2의 베들레헴의 예언도 이사야의 임마누엘 사상에 통하는 것이고, [남은 자]는 이사야로부터(미 5:3,7-8), [그 때],[그 날]은 아모스에게서(미 2:4,4:6,5:10), 각각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본서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대별된다. 본서에는 하나의 주목할 말이 3회 씌어져 있는데, [들을지어다]라는 말이다(1:2, 3:1, 6:2).
I. 1-3장 회개의 요구와 심판의 예언
Ⅱ. 4-5장 종말적 구원과 이상의 왕
Ⅲ. 6-7장 죄의 논고와 구원의 찬미
-내용 분해-
1:1 표제. 미가의 활동 연대와 출신.
1:2-8 사마리아에 대한 진노.
1:9-16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2:1-13 하나님의 진노 이유와 장래의 구원.
3:1-12 백성의 죄와 예루살렘 멸망의 선언.
4:1-5:1 하나님의 영광의 왕국.
5:2-16 새로운 왕의 탄생과 그 왕국.
6:1-16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논쟁.
7:1-20 꾸짖으심과 약속
5. 본서의 진정성
본서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의 선고로 된 세 부분(1:2-2:11, 3:1-12, 6:1-7:6,그 각각이 [들으라]로 시작되어 있음)과, 하나님의 축복, 희망과 약속으로 찬 세 부분(2:12,13, 4:1-5:15, 7:7-20)으로 이룩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는데, 이렇듯 위협과 축복이라는 두가지 다른 주제가 취급되어 있는 것, 문체나 형식이 다르다는데서, 본서의 저자(저작 연대)를 달리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축복의 주제를 취급하고 있는 부분의 사상이, 포로기 후의것으로 여겨지는 이사야의 후반(제2, 제3)과 유사하고, 바벨론 포로의 예언이 있는 것 등으로써, 다수의 학자는 이것은 포로기 후(전 5세기경)로추정한다.위협, 심판에 관한 부분은거의 미가의 진정한 작으로 보고들 있다. 그렇다면 한 저자가 위협과 축복을 병행하여, 그리고 문체 및 형식을 달리하여 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구약의 선지자가 이러한 방법을 쓰고 있는 예는 달리도 있는 것으로(사 29:1-8,암 9:7-15), 다른 사람의 저작으로 볼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것과 함께 본서에 있어서는, 이 심판의 선고와 축복의 약속은 내용상 잘 결합되어 있고, 이것을 분리시키면, 서로 보완하여 하나의 주제를 이루어가는 논리적 진전과 사상의 결합을 깨뜨려버리는 것으로 됨이 지적된다. 바벨론 포로의 예언(4:10 등)은 기원전 8세기의 선지자에게는 불가능하다고 하여(바벨론은이 시대에는 앗수르의 속주였다), 이것을 후대의 것으로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이 예언은 확실이 의외의 일로 여겨졌을 것인데, 이 의의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기회로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선지자는 종종 먼 미래에 일어나는 사건(내용적으로 당연히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을 가짐)을 예언하는 데 있어서, 그것과 성취되는 것에 의해 먼 미래에 예언의 확실성을 사람들에게 확증했다. 그리고 본서에 보여지는 종말적 축복의 사상은, 동시대의 아모스, 이사야 등에도 보여지는 것이고, 포로기 후의 것으로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되고 있다.6. 본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1) 출생지에 관하여(미 5:2).(2) 왕이신 그리스도(미 2:11,13).(3) 의로써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미 4:1,7).
7. 본서의 취지
미가의 예언은, 특히 유다에 대한 것인데, 또한 전 이스라엘에도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미가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한 하나님에 의해 격려되었는데, 그것은 십계 중에 보여져 있는 하나님의 품성에 의한 것이다(2:7, 4:3-5, 7:15). 하나님은 친히 공의를 행하시고, 긍휼을 사랑하시는데, 하나님은 또한 이러한 성질을 그 백성에게도 요구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선지자에게 있어서 힘과 분발의 원천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안전은 그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도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7:20), 또한 다윗의 아들에 집중되어 있는 약속(5:2-6, 눅 1:72-76)이다. 그러므로이룰 수는 없다. 제5장은 시2편과 같은 진리에 기초해 있다. 또한 사죄와 회복의 메시지도,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다(미 7:8-20).
[文獻]
J. Calvin:Commentaries on the Twelve Minor Prophets, 3 vol., Wm. B., ErdmansPublishing Co., 1950;
T. Laetsch:Bible Commentary, the Minor Prephets, Concordia Pub.House, 1956;
H.L. Ellison: The Prophets of Israel, Paternoster Press, 1969;
H.McKeating:Amos, Hosea, Micah(The Cambridge Bible Commentary), Cambridge,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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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Mica(인명)
(ak;ymi , Mica) I.「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
[1]다윗 왕의 은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므립바알)의 아들이다(삼하 9:12,대상 8:34,35,9:40,41).
[2]레위 사람이며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이자 맛다냐의 아비이다(대상 9:15,느 11:17,22). 느헤미야 12:35에는 미가야로 되어 있다.
[3]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통하여 인간의 부패성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거국적인 회개운동을 벌였다. 이때 느헤미야와 같이 반성과 자숙을성문 체약하고 날인한 제사장의 한 사람이다(느 10:11).
II.(Micah)
[1]에브라임 산지에서 살던 사람이다. 미가는 어머니의 은 1,100개를 훔친 결과 어머니에게 저주를 듣자 그 벌이 무서워 어머니에게 자복하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어머니는 저주 대신 아들에게 축복을 받게 하려고 그 은을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것 200으로 아들을 위해 신상을 부어 만들어 자기 집에 두었다. 미가에게는 신당이 있어 제사장이 입는 에봇과 우상인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아서 섬기게 하였던 것이다. 그때 한 레위인 소년이 미가에게 오니 그는 기쁘게 은 열과 의복 그리고 음식을 준다는 조건하에 제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미가는 레위인이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줄 믿은 그릇된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때에 단 지파 사람 정탐꾼이 미가의 집에 와서 레위 소년의 음성을 듣고 그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후에 600명을 에브라임 산지로 올려보내 미가의 집을 습격하고 우상과 에봇, 그리고 드라빔을 탈취하는 동시에, 레위 소년 제사장도 이들과 합류하여 가버렸다. 미가는 추격하여 그것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삿 17장-18장).
[2]르우벤 지파 자손 시므이의 아들이며 르아야의 아비이다. 미가의 손자 브에라는 르우벤 자손의 두목으로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로잡혀 갔다(대상 5:5,6).
[3]그핫 자손 웃시엘의 아들이다(대상 23:20,24:24,25).
[4]요시야 왕 때 성전 수리 중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을 사반이 낭독하니, 왕은 옷을찢고 여호와께 묻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낸 사람 중의 하나인 압돈의 아비이다(대하 34:20).
[5]모라셋 사람이며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때의 사람이다(미 1:1). 소선지서 `미가'의 저자이다. 모라셋이란 가드모레셋이다(미 1:1,14). 그것은 가드근방에 있었으므로 얼마동안은 블레셋의 속령(屬領)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곳은 예루살렘의 남서 35km 지점이니까 미가는 농촌 출신인 것 같다. 미가는 미가서에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26:18, 19에 그의 이름이 나와 있고, 미가 3:12의 예언귀절까지 인용되어 있는 것은 주의할 만하다.미가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서에 인용된 기사로 미가는 히스기야 시대에 멸망의 에언을 담대히 말하여 백성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와 미가는 동시대의 인물이었지만, 양자는 처지와 성격이 판이하였다. 즉, 이사야가 귀족 출신으로서 당당한 정치가였는데 반에 미가는 농민출신으로서 민중적 선지자였다. 그러나 사회의 부패를 통탄하고 동포의 불신앙을 근심한 점에 있어서, 또 백성을 여호와를 배반했기 때문에 멸망된다고 남조(南朝) 유다의 멸망을 부르짖었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았다. 또, 미가 1:1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묵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예언의 중심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는데 있었다. 그는 동포의 악행을 통감했다. 그는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그것을 행하는 자"를 보았다(미 2:1).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미 2:2)를 보았다. 그들은 정말로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고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미 3:2,3) 죄악된 모습을 보았다. 이와 같은 백성의 상태를 보고 당시의 통치자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공의를 몰랐다. 위에 선 자들은 모두 뇌물을 받고 재판을 했다. 심지어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점을 치는"(미 3:11) 상태였다. 이와 같은 백성은 여호와의 진노에 의해 멸망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는 백성에게 부르짖었다. 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것과(미 1:6,3:12)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한다는 것까지도 예언했다(미 5:2).미가의 생애에 대해서는 과히 알려져 있지 않다. 위(僞) 에피파누스서(書)에 의하면,미가는 요람 왕의 죄를 질책했기 때문에 절벽 위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하고, 고향 므라셋의 에나김의 무덤 가까이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또는 예레미야 26:18, 19에 의해 미루어 보아 히스기야 왕 때에 평안히 죽은 듯하다는 설도 있다.
<출처: 호학의 지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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