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지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욜 3:6)
요엘서의 저작 연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주전 9세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요엘서 3장은 두로와 시돈과 불레셋이 하나님의 백성의 보화를 약탈하여 그들의 신전으로 가져갔음은 물론이고 유대 어린이들을 헬라의 노예 상인들의 손에 넘겨 그들의 고국에서 먼 곳으로 옮겨갔다고 하였다. 그들의 주된 동기는 유대 백성들이 꼭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상업적인 동기에서 저질러진 악이었다. 어느 시대나 배금주의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함은 물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대하게 만든다(마 6:24). 그런데 만일 저들이 헬라 노예 상인들에게 유대의 어린이들을 팔아 넘겼다면 본서가 주전 9세기에 쓰여졌다기보다는 주전 4세기 이후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초기 저작설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요엘 3:6은 그들의 국경에서 멀리 옮겨갔다고 말씀하고 있다. 만일 요엘 선지자가 주전 4세기 중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헬라 제국의 확장 이후에 쓰여졌다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변방에서부터 멀리 옮겨 간 헬라인들에게 팔았다고 푀니키아 사람들과 불레셋 족속들을 비난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헬라인들은 주전 7세기처럼 아주 초기 고대 신바벨론 비문들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크레탄 리니어 비(Cretan Linear B) 토판은 헬라의 문명과 언어가 주전 1500년대부터였음을 가리키고 있다(1).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에 헬라 족속은 매우 가까이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베니게 이스라엘 불레셋의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며 모든 행정 사무를 헬라어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요엘이 이름을 썼을 때 헬라 족속은 여전히 근동 지방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2). 당시 헬라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였던 베니게와 불레셋의 노예 습격자의 땅에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서가 기록되던 당시는 헬라가 확장되기 전이였음이 분명하므로 헬라 족속에 대한 요엘 3:6의 언급은 본서의 주전 9세기 초기 저작 연대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주전 9세기 후반에 요엘이 헬라 족속에 대한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헬라의 항구로 포로를 실어 나른 노예 상인들이 전혀 없었다고 상상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엘서의 헬라의 언급이나 헬라 노예상에 대한 언급을 보고 본서의 저작 시기를 5세기나 후대로 보는 견해는 타당성이 없으며 본서의 9세기 저작설을 반박하지 못한다.
주
1.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01
2. Gleson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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