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와 지혜자의 특징[잠 12장]
[내용개요]
본장은 계속해서 악인과 의인의 특징을 대조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외적 삶의 형태를 비교한 전장과 달리 여기서는 내면적인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나 악인은 경솔히 취급한다. 그 결과 의인은 사람에게 칭찬받고 왕성하나 악인은 남의 피를 흘린 대가로 소멸하고 만다(1-8절). 또한 악인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나 결국 망하고 의인은 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된다(9-14절). 미련한 자는 남을 해하는 말을 하고 거짓말로 사람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나 의인은 혈기를 발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함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다(15-23절). 부지런한 자는 힘들어도 소득을 위해 성실하게 일해서 남을 다스리는 자가 되지만 미련한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게 된다(24-28절).
[강 해]
의인과 악인의 특성은 그들의 삶에서 잘 나타나지만, 또한 그들의 언어 생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본장은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의인과 악인의 대조를 통하여 그들의 결국을 극명하게 보여 주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장은 그런 가운데서도 의인과 악인의 언어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언어 생활
1) 훈계
본문의 메시지는 훈계에 대한 교훈으로 시작됩니다. 본장 1,15-16절은 훈계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의와 지혜는 개선과 비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훈계란 도덕적인 훈련이나 교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더욱 발전하기를 원하므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훈계를 받습니다. 그는 때로 그 훈계와 징계로 말미암아 수욕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잘 견뎌냅니다. 그러나 악인과 미련한 자는 훈계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행동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말은 들어볼 것도 없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래서 누가 그들에게 훈계를 하면 당장 분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짐승과 같은 자들인 것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짐승과 같아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귀한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밟아 버리며, 심지어 그것을 준 사람을 해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훈계나 책망을 할 때에도 지혜롭게 상대방을 보아가면서 해야 한다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a. 책망에 대한 두 반응(잠9:8)
b. 짐승의 반응(마7:6)
2) 언어 생활
본문의 14,18-19,22-23,25절은 의인과 악인의 언어 생활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과 행한 것에 따라 복을 받거나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악인은 재앙을 받을 만한 말을, 의인은 복을 받을 만한 말을 합니다. 악인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며, 거짓을 말하고,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는 미련한 말을 합니다. 반면에 의인은 양약과 같은 말로 근심과 번뇌를 가진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또한 그는 진실된 것만을 말하며 슬기롭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익한 말 한마디까지도 심판하신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언어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고려되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불과 같아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불사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은 항상 소금으로 고루게 함과 같이 은혜로운 말이 되어야 합니다(참조, 골4:6).
a. 무익한 말과 심판(마12:36)
b. 불과 같은 혀(약3:6)
2. 삶의 지혜
1) 두 여인
본장 4절은 두 종류의 아내에 대해 교훈합니다. 어진 여인은 현숙한 여인이요, 덕망 있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여인입니다. 그녀는 가정 주부로서의 능력과 여인으로서의 고결함, 강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게 있어서 면류관과도 같이 명예와 영화를 주게 됩니다. 반면에 욕을 끼치는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통하여 남편을 실망시키며 남편에게까지 부끄러움을 끼칩니다. 뼈는 힘이나 생존을 가리키므로 그녀는 남편의 육체적, 정신적인 힘과 생명력을 점차적으로 피폐하게 만듭니다. 어질고 현숙한 여인은 구하기가 힘든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런 아내를 주신다고 이야기합니다.
a. 현숙한 여인(룻3:11)
b. 하나님이 아내를 주심(잠19:14)
2) 근면과 게으름
본문은 의인과 악인을 그들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가지고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악한 자는 게을러서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잡을 수 있는 것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는데 있어서는 게으르면서도 방탕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방탕하고 잘난 체하고 다녀도 실상은 먹을 것도 없어 허덕이게 됩니다. 성경은 이처럼 게으르고 안락을 좋아하는 자는 죽은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의인은 부지런하여 자기의 토지를 열심히 경작하며 풍족한 삶을 삽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많은 재산보다도 그의 부지런함이 가장 큰 재산이 됩니다. 그는 게으른 자보다 앞서게 되어 게으른 자를 부리는 위치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는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a. 일락을 좋아하는 자(딤전5:6)
b. 손으로 일함(살전4:11)
3. 의인과 악인
1) 의인과 악인의 삶
본장 5-6,10,12,17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양식을 논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득을 탐내어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고자 합니다. 그의 입은 궤휼을 말하며 그의 마음은 잔인합니다. 그는 자신만을 위할 줄 알아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해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생각이 바르므로 사람뿐 아니라 육축의 생명까지도 돌볼 줄 압니다. 그는 진리를 말하며, 그의 정직한 말은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그는 불의한 이익을 원하지 않고 자신이 수고한 것에 따른 이득을 정당하게 취합니다. 그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이 항상 좋은 열매들을 맺는 것입니다.
·동물에 대한배려(신25:4)
2) 의인과 악인의 결국
본문의 2-3,7,13,20-21,26,28절 등은 의인과 악인의 결말에 대해 대조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들의 악을 생활 방식으로 삼는 바, 그러한 악은 그 자신을 미혹하여 그물에 걸리게 하며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받게 합니다. 그에게는 앙화가 가득해서 엎드러져서 소멸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의인은 그의 의를 인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으며, 그를 인하여 어떤 재앙도 받지 않으며 재앙 중에서라도 온전히 보전되어집니다. 그는 여러번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며 그의 길에서 사망을 제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의인과 악인의 결국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a. 악인의 소멸(잠21:7)
b. 의인은 넘어져도 일어남(잠24:16)
결론
의인과 악인은 그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에서 판이하게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은 비그리스도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구별된 삶,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들에서 자신의 그리스도인 됨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4절. 면류관. 여왕이나 귀족, 신랑이 쓰는 관인데 은유적으로 영예와 권위를 나타낸다. 이 관은 금, 은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꽃으로 만든 화관도 있다.
6절. 엿보아. 악인들이 혐의 없는 의인들을 해치기 위해 숨어 있는 것을 나타낸다.
16절. 수욕을. 자신의 실제적 위치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21절. 앙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23절. 전파하느니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말한다.
24절. 부지런한 자. '날카로운, 부지런한'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의 날카로움은 타작 썰매에 사용되는 것처럼 활동적이며 부지런함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올바른 언어 사용. 본장은 언어의 사용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입의 열매로 인하여 사람의 축복과 저주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어의 중요성은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을 포함하여 성경 전체가 강조하는 가르침이다(참조, 마15:11;엡4:29). 원래 하나님이 사람에게 언어를 주신 것은 축복이었다. 언어를 통해 하나님과, 또한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을 이를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 사람은 통일된 언어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언어가 분열되고 그 결과 인간 공동체가 분열되고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전개시키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인간의 교만이 나타난 바벨탑 사건 때문이었다(참조, 창11:1-8). 이와 같은 언어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성경이 말하는 언어의 올바른 사용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활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삶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참조, 엡5:19). 뿐만 아니라 인간의 분열과 투쟁이 언어의 혼란으로부터 파생되었듯이 인간 공동체의 화패와 통일은 언어의 일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의 언어는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는 진실되고 공의로운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언어사용은 결코 인간의 내면적 각성으로 되어지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가능하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이 방언을 하고 동시에 여러 지방 사람들이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의 시대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 언어가 통일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참된 언어사용과 통일성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선언하는 것이다.
[영적교훈]
말이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말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말을 함에 있어서 진실하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으나 결국은 진실이 드러나고 그 죄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경우라도 솔직하고 진실된 말을 하여야 한다. 또한 남에게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그럴 때 성도들의 말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