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넘어지는 사람 (대상 21:1-8)
세계적인 카메라 브랜드 가운데 “캐논”(Canon)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재미있습니다. 영어로 "canon"이라는 말은 원래 “자”,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카메라의 이름을 캐논이라고 붙인 것은 자기들이 만든 카메라가 모든 카메라를 측정하는 자요, 모든 카메라의 기준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대단한 자부심이요 어찌 보면 교만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캐논으로 삼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신앙인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다윗입니다.
열왕기를 보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왕들을 평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 왕들에 대한 평가에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왕상 15:1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 왕이 하나님께 합격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다윗과 같이 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왕하 16: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육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아하스 왕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다윗과 같이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캐논처럼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올바로 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다윗과 같았으면 합격인데 다윗과 같지 않았으면 불합격인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다윗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기에 이렇게 캐논으로서 기준 역할을 하게 됐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삼상 13:14)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맞는다고 말씀하실만한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골리앗과의 싸움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골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또한 사울에 쫓기던 피난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10년이 넘는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견뎠고 끝까지 선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후 그가 한 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의논하며 진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나의 구체적인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앙생활의 캐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일생을 살펴볼 때 한 가지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그가 보통사람들이 범하기 힘든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삼하 11장에 나오는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멀쩡히 남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덮기 위해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 최 일선에 보내 죽게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기준으로 삼으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대신 범죄 후 다윗의 모습을 모델로 내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저가 범죄했지만 철저하게 회개의 과정을 밟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와 보면 더 혼란스럽습니다. 다윗이 또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인구조사를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때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또 넘어지는 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넘어진 뒤 다윗이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밟은 것을 또 다시 하나의 모델로 제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이 큰 죄를 저지르고 회개했는데 하나님께서 이 사건 이후 다윗이 성전 건축에 대한 비전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범죄 후 철저한 회개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남다른 은혜가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평상시 믿음을 잘 지키는 것도 힘들지만 죄 짓고 회개를 잘하는 것은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회개에 성공한 사람이 의외로 적습니다. 죄를 범하고 회개한 뒤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다윗이 어떻게 하다가 또 넘어지게 됐을까? 이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다윗을 통해 보여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또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충동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사탄이 다윗을 충동질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을 품게 했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인간이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 “생각”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잘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잠자면서까지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생각이 영적 전쟁터라는 점입니다. 사탄은 우선적으로 이 생각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이 생각을 지배하려고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생각을 지배당했고, 결국 멸망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룟 유다입니다. 요 13: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가룟 유다가 3년간 따르고 모셨던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겼습니다. 스승을 배반했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게 사탄이 가룟 유다의 생각을 충동질 한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을 팔고 싶은 생각을 넣어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그 마음속에 인구조사를 하고 싶은 생각을 넣어놓은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의 출발점이 바로 사탄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은 사탄이 넣어준 생각을 자기가 스스로 한 생각으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점이 영적 전쟁에서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닐 앤더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탄의 전략은 그의 생각을 당신의 마음속에 심어놓고, 그것이 마치 당신 안에서 생겨난 것인 양 믿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인구조사하려는 생각이 자기의 생각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심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이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혹시 사탄이 내 안에 이 생각을 넣어둔 것은 아닐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소망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생각을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각을 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14: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장차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때때로 선한 생각을 넣어주십니다. 선다 씽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말씀하시면, 우리는 즉시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생각을 넣어주신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넣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그 생각을 소중히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잘 걸러내야 합니다. 반대로 성령이 넣어주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소중하게 받고 잘 따라야 합니다.
욕망의 분출
다윗이 왜 사탄이 넣어준 생각을 분별하지 못했을까요? 그의 마음속에 욕망이 분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인구조사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와 같은 고대 시대에는 인구조사는 왕들이 왕권을 강화하는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세금 징수입니다. 인구조사를 세밀하게 하면 세금을 정확하게 납부할 수 있고, 또한 세금을 철저하게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게 되면 왕권이 강화될 수 있고 나라를 크게 키울 수 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병사 징집입니다. 인구조사를 철저하게 하면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의 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병사의 수가 전쟁 승패의 결정적인 변수였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병사를 많이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사 수를 철저하게 파악하면 병사를 많이 징집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더욱 강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탄이 다윗의 마음속에 인구 조사할 생각을 넣어두자 다윗의 마음 한 켠에서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인구조사를 통해서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해 보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욕망 때문에 사탄이 준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생각을 따르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금까지 다윗의 행적입니다. 본문 바로 앞을 보면 18장에서 20장까지 다윗은 승전보가 길게 그리고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았고(18장), 암몬과 아람을 공격해서 무너뜨렸고(19장), 그리고 랍바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20장) 하나님의 놀라우신 도우심으로 연전연승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일약 중동의 맹주로 부상했습니다.
그랬으면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면 됐을 텐데... 오늘 본문에 와 보면 바로 인구조사를 감행합니다. 더 강한 군대를 만들고 더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탄이 그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욕망이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끝없는 욕망이 우리를 사탄의 생각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수필가 이 명선님이 쓴 [당신의 살구기름]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여우는 살구기름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구기름에 독을 넣어 여우가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단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여우는 살구기름이 놓인 길목에 다다르면 빨리 지나간다. 왜? 똑똑하니까.
욕망 앞에 자유로울 자는 생각보다 적은 법. 그만두고 돌아서기에는 왠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여우는 먹지 말고 냄새나 맡고 가자며 슬며시 마음을 돌린다. "에이, 입만 대보고 가지 뭐. 그런다고 죽기야 하겠어?"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신과 타협을 하고 혀를 살짝 댔을 뿐인데, 살구기름은 목을 타고 저절로 넘어가 버린다. 허겁지겁 살구기름을 먹던 여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살구 기름은 반으로 줄어 있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여우는 남은 기름을 마저 먹어 치운 뒤 살구기름이 놓인 길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단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구기름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욕망과 싸워 이기십시오. 욕망과 이겨야 사탄이 주는 생각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충고의 무시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에게 충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압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하자 요압이 나서서 부당함을 충고했습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니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니이까 어찌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로 다윗의 조카였습니다. 그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 왕에게 쫓겨 도피할 시기부터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된 후 군대장관으로 때로는 다윗과 함께 또 때로는 다윗을 대신해서 전쟁을 지휘해서 연전연승을 거둔 전쟁의 영웅이었습 니다. 그래서 당대 다윗에 이어 2인자로서 다윗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런 요압이 다윗에게 인구조사가 왜 부당하며, 이 일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윗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면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라고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요압의 충고를 묵살하고 자기 뜻을 밀어 붙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주변사람들의 충고가 브레이크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밀어붙일 때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충고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들을 귀”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개신교회의 “청각장애인을 돕는 봉사회”는 독특한 십자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 하여 “들을 귀 십자가”입니다. 넓게 뚫린 십자가로 한 가운데 귀를 크게 그려 놓고 고막의 파장을 과장스럽게 강조한 모습입니다.
이 들을 귀 십자가는 십자가를 통해서 열린 귀를 뜻합니다. 즉 그 마음속에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열린 귀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 듣습니다. 그렇게 많은 소리가 들려와도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만 귀를 열어 듣고 나머지 소리들은 흘려듣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줘도 듣고 싶지 않은 것은 흘려듣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대체로 그 충고가 자기에게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고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십자가가 없는 사람들은 충고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늘 십자가를 세워두십시오. 그래야 들을 귀가 열립니다. 들을 귀가 열려야 마음속에 사탄이 생각을 넣어줄 때 그것이 사탄이 준 생각이라고 충고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욕망이 일어나도 그것이 욕망이라고 충고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윗처럼 또 넘어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넘어지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우선 마음속에 사탄이 넣어준 생각을 분별하여 제거하십시오. 다음으로 욕망과 싸워 이기십시오. 그리고 들을 귀를 열어 충고를 귀히 들으십시오.
'***신구약 성경강해*** > - 역대상,하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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