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당하는 백성을 위한 기도[시 79장]
[내용개요]
본시는 74편과 마찬가지로 바벨론 침공에 대한 멸망의 때를 다룬 시로서 일종의 '애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대략 B.C.586년 이후에 지어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74편은 성전 붕괴를 슬퍼하는 애가임에 반해, 본시 편은 포로 이후 유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시로, 민족의 멸망을 애도한 탄식시인 동시에 대적들의 멸망을 소원한 저주시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자들에게서 받는 환난의 비참한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강력히 소원하고 원수에 대한 심판을 염원한다. 먼저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의 참혹한 상황을 하나님께 고하고(1-4절), 하나님의 진노가 이방인에게 향할 것을 염원한다(5-7절).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이 이 백성에게 임할 것을 간구하며(8-9절),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하실 것과(10-12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겠다는 서원으로 이 루어졌다(13절).
[강 해]
본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황폐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유린되는 처절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기도의 시입니다. 이 이방 나라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본시에 나타나는 이방 나라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시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견해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 때라는 것입니다.
1. 열방의 침입
1) 돌무더기가 된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이었고 그의 백성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기업이란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주의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침입하여 성전을 파괴하고 그 기물과 장식품들을 가져 가고 성전을 불살라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a.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왕하21:12)
b. 성소가 더럽혀짐(시74:7)
2) 새와 짐승의 음식이 된 시체들
유다 나라에 쳐들어온 바벨론 군사들은 주의 종들와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고 주의 백성들의 시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으로 인한 살육을 묘사한 것으로 그들의 핍박과 잔혹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국토는 바벨론 군대에게 유린을 당하고, 성전은 더럽혀지고 예루살렘 도성은 훼파되었고, 그 백성들은 살육을 당하여 새와 짐승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여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그분의 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a. 매장도 못함(렘16:4)
b. 백성의 시체가 즐비함(렘7:33)
3) 조소와 비방 거리가 됨
이스라엘이 바벨론 군대로 인하여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이웃 나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방하고 조소하며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던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민의 찬사와 존경이 쏟아졌었고 그들에 대한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까지도 이방의 거민들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떠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들을, 두려움으로 섬기던 자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족속은 그 막대기들 앞에 무기력한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a. 사면에 있는 장에게 소욕당함(단9:16)
b. 비방 거리가 됨(신28:37)
2. 파멸에서의 기도
1) 진노의 방향을 바꾸소서
바벨론의 침략과 이웃 나라들의 비웃음을 견디던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하였습니다. 곧 이어 그는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하나님께서 분노를 쏟으시라고 탄원하였습니다. 즉 진노의 방향을 바꾸시길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절규에는 당시 그들이 당하던 비참한 고통의 상황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 른 골목에 선 자만이 하게 되는 피 맺힌 울부짖음이었던 것입니다.
a. 이방인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렘10:25)
b. 이스라엘을 삼킨 이방(사9:12)
2) 주의 긍휼을 바람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징벌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께서 긍휼의 속성을 가지고 계시는 분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 전반에 걸쳐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실로 크고 확실하며 무궁합니다(참조, 사54:7;사55:3;애3:22).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그 속에서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가지고 주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a. 과히 노하지 마소서(사64:9)
b. 핍박 가운데서 건지소서(시142:6)
3) 주의 도우심을 바람
시인은 구원의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을 용서하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인이 이같이 기도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함으로 인해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에서 당면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도 큰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a. 죄악을 회개함(렘14:7)
b.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인도하심(시23:3)
3. 보응을 구하는 기도
1) 보호해 주옵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케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여기서 갇힌 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자를 말하며, 죽이기로 정한 자는 바벨론의 학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겪는 처지의 비참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은 심각한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생명의 시작을 허락하신 자만이 그 생명의 보존과 종결을 주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주의 이름의 의탁함(대하14:11)
b.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심(행7:34)
2) 주여 칠 배나 갚으소서
시인은 본시의 말미에서 주를 비웃고 모욕한 인접 국가들에게 그 죄값을 칠 배나 갚으실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이방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멸시와 비방 거리가 된 것을 보고 분개한 거룩한 열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며 그의 영광을 가리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용서치 않으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a. 주의 이름을 능욕함(시74:18)
b. 도적질도 칠 배로 갚음(잠6:31)
3) 대대에 전할 주의 영예
죽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던 자에게 죽음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해 준 이가 있다면, 그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난 자는 그 구원자에게 영원히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예를 대대로 전할 것입니다. 온 인류가 그 후손들에게 영영히 전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늘 찬양해야 합니다.
결론
본장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했을 때 겪는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죄악이라도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단어해설]
1절. 열방이. 원어<y/G :고이>는 주로 이방 나라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침공한 바벨론을 가리킨다. 주의 기업.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또는 성전을 가리킨다. 성전을 더럽히고 이스라엘을 침공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고 불태운 사건을 말한다.
2절. 주의 종들. 왕이나 선지자와 같은 특수 신분의 사람보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성도. 원어<dysij;:하시드>는 '경건한 자' 또는 '열심인 자'를 뜻한다. 따라서 성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가리킨다.
3절. 피. 고대인들은 피에 사람의 생명이 들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성경에서도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짐승을 먹을 때 피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4절. 이웃에게.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나라들을 말한다. 비방 거리가. 원어<hP;r]j,:헤르파>는 '모욕' 또는 '치욕'을 뜻한다. 이는 침공당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5절. 진노. 불길이 치솟듯이 솟아오르는 격한 분노를 가리킨다.
6절. 부르지 아니하는. '기도하지 않는' 또는 '의지하지 않는'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8절. 죄악. 원어<@/[;:아온>은 '구부러진 것'을 뜻한다. 즉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다른 길로 행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기억하여. 단순히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실제적인 행위를 수반하는 상태를 말한다.
9절. 사하소서. 원어<rp'K;:카파르>는 제사에서 희생 제물을 통해 자신의 죄를 덮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11절. 죽이기로 정한 자.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자를 가리킨다.
12절. 칠 배나. 7은 성경에서 완전 숫자로 철저히 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
본시편을 통해 시인은 이스라엘의 파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어느 정도 깨닫고 전개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자신들의 파괴가 철저히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인 것을 깨닫고 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와 같은 질문은 이러한 점을 잘 드러낸다. 시인은 도대체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 대단히 궁금해 했다. 그리고 시인은 자기들을 철저히 유린한 그들의 정체는 도무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자들임을 알고 있었다. 즉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유린하였음을 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전에 그러했듯이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시인이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놓여진 '야곱의 집'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대적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를 깨닫고 이제 오히려 희망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영적교훈]
시인은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서 기인한 것임을 자각한다. 열조의 배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나게 되었고 그 영향이 후손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구원해 줄 것을 소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현실적인 고난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단절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성도들도 고난을 겪을 때의 자세가 이러해야 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져 있다면 그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굳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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