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시편 강해

시편22편 연구

에반젤(복음) 2019. 9. 8. 20:37




고난 뒤의 감사 찬양[22]

[내용개요]

본시는 내용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고난에 대한 처절한 탄식과(1-11) 메시야적 고난에 대한 묘사(12-21) 궁극적인 승리의 찬양이다(22-31). 본시는 다윗의 개인적 고난의 체험을 노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공식적인 형벌의 집행에 대해 노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경우든지 본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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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해]

본시편은 원수들의 조롱과 박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겪는 시인의 고통을 통해 메시야 예수의 고난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 시편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겪은 심각한 생의 위기를 사형 집행의 상황으로 비유해서 표현한 듯한데, 이것은 다만 비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들의 손에 의해 받은 고통에서 말 그대로 실제적인 성취를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보통 다른 비탄시에서 볼 수 있는 시편 기자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악인을 저주하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 시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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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버림받은 자의 고통스러운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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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통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짐

시편 기자는 비록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음을 느끼면서 어찌 버리셨느냐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절규에도 거의 그대로 나타나는 이 구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자의 극심한 고통과 좌절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엘리)이라고 반복해서 부르고 있지만 그렇게 부른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신 듯합니다. 낮에도 밤에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부르짖지만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시인은 그 고통과 하나님의 침묵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의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을 가집니다. 이스라엘의 찬송을 받으시는 주님은 이교도들 이 섬기는 잡신들과 달리 거룩하시며 살아 계신 신입니다. 또한 다윗의 조상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a. 고통은 두려움을 상징하기도 함(48:6)

b. 고통은 기도함으로 치유됨(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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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만을 의지함

다윗은 사람들의 극심한 훼방과 조롱을 받고 있지만 다윗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아니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무가치한 벌레처럼 여기며 절대적인 모욕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이미 버렸다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아무 결과도 없다고 비난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도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었는데(참조, 27:42-43),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이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므로 예수께서 고난당하는 메시야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태에서 나오게 하신 때나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도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한 절대 절명의 위기와 고독을 겪으실 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a. 아담과 언약하신 하나님(2:16-17)

b.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15:18)

c. 다윗과도 언약하신 하나님(8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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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난당하는 왕의 슬픔과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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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난 때에 하나님께 간구함

다윗은 자신의 고통이 극심할 때에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위대하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완전한 그분의 해결책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가를 언급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대적들을 황소와 사자와 개로 비유하면서 그들의 잔학성과 극한 횡포를 고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망의 진토'에 놓이게 되었다고 절규하고

습니다. 원수들의 공격으로 인해 다윗의 힘은 쏟아진 물같이 말라 버렸고 그의 뼈는 비틀어 꺾였으며 마음은 녹은 촛밀처럼 사라져 저항할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였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일지라도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습니다. 고통이 극심하고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태도야말로 오늘 날 고통 중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고통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키고 성숙하게 하여 더욱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한 것임을 바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a. 아내가 잉태하지 못할 때 간구함(25:21)

b. 기근이 들었을 때 간구함(삼하21:1)

c. 의를 의해 핍박받을 때 간구함(6:11)

d. 병 고치기 원할 때 간구함(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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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든 재산이 약탈당하는 고통

다윗은 자신의 육신이 고통받는 것에 이어 모든 재산이 약탈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겉옷을 나누며 속옷마저 제비뽑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재산이 원수들에게 강탈된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참조, 23:34;19:24).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시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고난이 우리 성도들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도행전에서 묘사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물질의 공유와 같은 삶을 통해 성도들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a. 포학을 당했을 때 기도해야 함(19:7)

b.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함(6:19)

c. 말세에 재물을 쌓으면 안 됨(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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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통 중의 기도 응답과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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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에서 구원받았음을 확신함

다윗은 다시금 악인들의 행패에서 자신을 지켜 보호해 주일 것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 기도를 드린 후 다윗은 주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록 현재의 삶은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확신하게 된 다윗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a. 이스라엘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45:17)

b.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음(16:31)

c.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구원이 절정에 이름(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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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함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한 다윗은 백성들에게 자기와 함께 여호와를 찬송하자고 그들은 초청합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태도는 이 시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는다고 부르짖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찬양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윗은 그의 관심을 세계로 넓혀 온 세상이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라고 찬송합니다.

a. 하늘에서 구원을 찬양함(7:10)

b. 영적인 씻음으로 구원을 얻음(22:14)

c. 찬송으로 하나님 경배를 나타냄(대하23:18)

d. 하늘에서 큰 찬송이 있음(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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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본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잘 보여 주는 메시야 시편입니다. 특히 이 시는 처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어조로 부르짖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감사의 찬양을 부름으로 끝맺는 감격적인 시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삶을 살아 나가면서 겪는 호통의 순간에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알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맡기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결책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찬송은 하나님의 위대하면서 세세한 섭리를 찬송하는 구체적인 간증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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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해설]

3. 이스라엘.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이름. 후에 열두 지파를 형성하였으며 그 이름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민족 명칭이 되었음.

7. 머리를 흔들며. 비천한 사람에게 경멸을 나타내는 행위.

14. 촛밀. 꿀에서 나온 찌꺼기를 끓여서 만든 기름.

15. 진토. 원어 <rp;[;:아파르>', 먼지, 티끌, 무덤'의 뜻을 지님.

16. .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천시한 동물. 시체의 살을 먹으며 전염병을 옮기므로 율법에서도 부정한 짐승으로 규정함.

29. 풍비한 자. 재물이 많고 먹을 것이 많아 기름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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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주제]

침묵하시는 하나님.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시편 기자의 처절한 외침은 수백 년 후에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재현된다. 현대의 위대한 독일 신학자 본회서는 바로 이 외침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간을 고난 가운데 던져두시고 방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그는 새로운 신학적 착상을 얻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생의 무력함과 곤경에 대한 문제 해결책의 하나님이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내가 필요할 때에 사용할 수 있다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의 고난을 꿋꿋이 이겨 나가도록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다. 걸핏하면 하나님께 매달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졸라대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치 하나님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신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마치 자기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심으로써 자기를 계시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부재의 자기 계시는 인간들에게 고난의 참 의미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그러나 본회서는 이러한 신학적 사고를 극단까지 몰고 감으로써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율적 인간을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급기야는 세속화 신학으로 가는 문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인간의 고난의 긍정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본회서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고난 속에 버려 두시는 하나님은 신자들도 고난 속에서 버려 두실 수 있는 분이다. 다만 우리는 그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를 긍정하고 고난의 상황을 움켜쥐고 나아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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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교훈]

이 세상에는 모순이 많다. 악인들이 흥하는 일도 많고, 진실한 신앙 인들이 고난 당하는 일도 많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새벽 기도를 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신자들의 경우이다. 왜 이러한 고난이 발생하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지 알 수 없다.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옛사람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죄인이기에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죄를 있는 그대로 다 심판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앞에 머리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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