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출애굽기의 내용과 비슷하며,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것이다.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은총을 주셨다. 성도들은 그 은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고난에 처할 때가 있다. 그 고난은 외적일 수도 내적일 수도 있다.
본 서에서는 이러한 고난의 삶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사역을 발견할 수 있다.
1.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시42-50편)
인간들에게는 목마름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에도 쓰인다. 본 서에서 저자는 자신의 목마름을 표현하면서 세상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시42:3,10)고 조롱할 때 자신에게 오는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헤어나 올 수 있었는가? 만약 이러한 소리를 듣는 성도들이 있다면 본 서의 저자처럼 고통스러워 할 신앙의 자세가 도어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그 고통을 해결하겠는가?
1)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된 삶
시인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시42:1). 즉 자신이 당한 어려움이나 괴로움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절대 신앙인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가치들을 의지한다면 그것들로 인해 도리어 멸망하고 말 것이다(행8:20).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두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질 때 그러한 목마름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2) 헌신적인 삶의 실천이 필요
물질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소외 현상이 극도에 치닫고 있으며, 인간들의 삶은 절대적인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물질에 의지하는 경향이 짙어져 가고 있다. 자연히 진리의 말씀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와 같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시편 기자의 헌신적인 삶의 실천(시42:8; 시63:63)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진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시51-61편)
아담이 지은 최초의 죄악으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의 단절된 생활(롬3:23)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59:1,2).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성 파괴는 인간 자체의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회복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1)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시51:4)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은 다윗은 밧세바를 간음하였고(삼하11:1-12,13),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보내 죽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죄악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너무나 큰 탓에 그것에 의해 가리워지고 만 것이다 .어쨌든 다윗은 자신의 죄악성을 하나님께 아뢰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시51:2-9), 회개치 않는 삶은 죽은 삶인 것이다.
2) 구원의 확신을 갖고 간구
위기에 처해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시54:4).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이 간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흔히 간구 하면서도 정말로 응답해 주실까? 라는 의심을 갖곤 한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고 한다(사55:22). 인간사에 펼쳐지는 질고 속에서도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고 확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 절대의지의 신앙(시62-72편)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나 물질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린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롬5:2). 왜냐하면 목적을 잘못 정했을 때 오는 좌절은 결국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은 나의 구원
시편 가지는 하나님을 가리켜 자신의 구원자이시며, 산성이시다(시62:2)고 한다. 그리고 어려울 때 피할 수 있는 피난처라고 한다(시51:13). 이 세상의 구원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다(행4:12). 그 누구도 인간들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주시는 그분에게는 참된 소망이 있다. 이 소망은 인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잠10:28), 부활에 대한 소망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인간의 생사 화복이 달려 있는 것이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이세상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삶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떠나지 말기를 간구하는 시인의 모습(시71:9)은, 세상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즉 세상에서의 인간의 노년은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은 노년이 되어갈수록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축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다(시71:20)고 하였다. 특히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연합체로 본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고난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고난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 -->
인간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부패되고 타락되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주셨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영적인 구원 외에 외적으로는 구원을 말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시72:14).
이 부분을 가리켜 칼빈(Calvin)은 "이 세상의 의인들이 악인들에게서 겪는 억압과 핍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속 사역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 -->
본문 해설
1. 성도의 소망(시42:5)
대개 사람들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낙담하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고난중에도 전혀 낙담할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들을 예로 들면 첫째, 성도의 난관은 오히려 본인의 인격을 훈련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실락원」의 저자였던 밀톤(J.Milton)도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44세에 비로소 명저를 남기게 되었고,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많이 있다. 둘째, 난관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케 만든다. 사실 인류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무궁 무진하며 한량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기억치 못하는 것이 상례인데, 고난은 이들에게 감사하도록 가르친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즉 어두움 가운데서도 염려치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 얼마든지 염려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소망을 찾게 된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다(창18:14; 렘32-27; 눅1-37). 더욱이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들을 눈동자와 같이 감찰하신다. 그러므로 어떠한 난관이나 역경이 올지라도 성도는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능히 이길 수 있어야 하겠다.
2. 정의가 충만하신 하나님(시48:10)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우리의 행위대로 보응 하시는 심판의 주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자기의 죄로 인하여 멸망을 받기에 충분한데, 하나님은 공의의 덕을 베풂으로 자기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 따라서 모든 구원받은 백성들은 자신들의 자의적선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공의의 덕으로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신7:6-8; 신9:6).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는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나는 행동으로서 원수들도 이것을 이유로 무어라 말할 수 없게 하셨다. 결코 우리의 구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이룩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하며, 그것만이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3. 죄로 인한 고통(시51:3)
첫 사람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류는 범죄한 순간부터 고통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이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인가?
첫째,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죄를 짓는 그 순간까지 일반 은총으로 허락된 양심은 계속 고통을 받으며, 죄를 짓고 난 이후에도 우리의 영혼은 잠재적으로 불안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지은 죄로 인하여 분명히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각 개인의 영혼이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가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여 친히 하나님의 화목 제물이 되셨으며, 따라서 회개를 통하여 그분의 중재를 힘입는 것만이 죄로 인한 고통을 앨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나님은 죄의 모양이 어떠하든 결코 용납하시거나 기뻐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을 피하게 하며 대적케 한다. 그러므로 죄지은 인류는 결코 마음 편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범죄자는 반드시 우주질서와 상충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숨결이 내재되어 있는 우주는 조화로우며 결코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죄는 이것에 역행한다. 그래서 질서를 파괴하고 조화를 깨뜨린다. 때문에 죄지은 인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다윗의 신관(시65:1-3)
1) 찬송받으실 주님
하나님은 결코 세상의 군왕들처럼 찬송과 경배를 강제로 취하시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우주 만물은 그가 찬송하기를 기다리고 있다(시 65:1). 하나님께서는 샘솟는 참된 기쁨을 결코 중단하시지 않으신다. 따라서 찬송하는 무리들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찬송해야 하며, 결코 외식하는 자와 같이 형식에만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 어린 간구에 결코 냉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다윗은 인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교회사를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어 있다. 공익을 위하여 불타는 기도를 드렸던 모세(신9:25-29), 담대한 기도의 주인공 여호수아(수1:12-14), 백성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주인 느헤미야(느1:4-11)등이 모두 좋은 예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기도에 각각 응답해 주셨다.
3) 죄를 사하시는 주님
다윗의 침상을 적시는 회개의 기도는 하나님의 사죄를 받기에 충분했다. 비록 죄인의 몸이었지만 회개하였을 때 비로소 아들의 위치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백성들을 결코 외며하지 않으시며 눈물 어린 간구를 들어주신다.
) -->
'***신구약 성경강해*** > - 시편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4권연구 - 대부분이 작자미상 (0) | 2019.09.08 |
---|---|
시편3권연구 아삽의 시 (0) | 2019.09.08 |
시편 1권 연구 (0) | 2019.09.08 |
시편총론 (0) | 2019.09.08 |
시편 23편과 하나님의 속성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