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시편 강해

시편3권연구 아삽의 시

에반젤(복음) 2019. 9. 8. 20:25




3권은 아삽의 시로서 레위기가 그 배경으로 쓰여졌다. 쓰여지는 주요 단어는 '성소'이다. 그 내용은 한 인간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적인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외적으로 보이는 행운이나 복에 대해 유혹을 느끼며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불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갖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1. 하나님 앞에서 모순은 있을 수 없음(73-75)

아삽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한 번쯤 던졌을 질문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하고 있다. 그 질문은 아마도 예수를 잘 믿고 순종 잘하는 성도들의 삶과 그렇지 못한 불신자들의 삶의 차이에서 오는 모순에 대한 갈등에 관한 것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통을 받을 때 비그리스도인들은 왜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16:19-31). 이렇게 불공평한 현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루시는가?


1) 멸망의 종국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성전에 들어설 때에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음을 고백한다(73:17). 인간의 이성이나 생각만 가지고는 올바른 행복을 맛볼 수 없다. 결국 신앙이 필요하다. 시인은 모순된 현실의 대답을 성전의 파괴와 연관짓고 있다(74:7,8). 당시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회당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당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행해지던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당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그 드려지는 예배 위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이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 예라 할 수 있으며, 또 악인은 반드시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75:8;25:15).


2)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

시인은 자신의 간구(74,75)가 이루어짐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심판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75:4-8). 즉 악인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의인에게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바라본다. 오늘날 수없이 많이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신뢰하는 자세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될까? 만약 이러한 진정한 예배의 자세를 지니지 못한 자들은 그 종말이 형벌로 끝나 버릴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당위성(76-78)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훈을 주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있다(78).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78:2)라는 말은 누구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관심을 가져도 될 가치 있는 진리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게끔 하셨을까?


1) 참소망을 하나님께 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체험하고도 계속하여 범죄하였다(78:9-64). 이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필요하게 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필연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속 하역의 대상인 인간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수행해나가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3:25; 3:5).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조들의 죄악성을 보여 주면서 성도들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답습하지 않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78:1-8).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 대해 참소망을 두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2)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시인은 시78:69"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곧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뜻이다. 이 땅의 성도들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성도들은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28:19,20; 딤후4:2).


3. 민족구원을 위한 타원

위기에 처한 양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양 떼를 지키는 목자뿐이다. 양은 자기 목자를 알며, 목자 또한 자기 양을 안다(10:14,15). 그것은 천국 공동체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한다. 시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그 공동체의 모습은 어느 정도로 비참해져 있는가? 비참해진 현실속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황폐된 포도원 같은 이스라엘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다(80:8). 이 포도나무는 애굽에서 가져왔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의미하며, 그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옮겨 놓으신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는 황폐케 하셨다(80:12).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타락과 그 비극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79:17, 18),그러나 종국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2) 회개와 구원을 호소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시기를 간구하고 있다(85:4-7). 이스라엘 백성으로 상징된 포도밭이 황폐한 이유를 알고 거기에 따르는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구원을 호소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괴롭히는 재앙을 거둬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79:5-12). 이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늘 살피고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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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에서 시인은 세상의 모순으로 인한 불공평함을 토로하며 민족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불공평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지하고 그분께 참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지혜인 것이다. 개인의 삶과 한 민족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생 중에 가장 절망적일 때가 오더라도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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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1. 참된 예배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인류는 그를 즐거워하며,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을 다하는 것으로 성부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어야한다(4:24). 그러면 이와 같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란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이다(15:1). 누가 예배의 중심이 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어지는 일들이 많다. 사람이 중심 되는 예배와 성부께서 중심 되어지는 예배는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따라서 받으실 예배란 하나님 중심의 예배이며, 이는 모든 관심과 생각을 그분께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참된 예배는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만 완성된다(15:2-5). 일반적으로 교인이든 아니든 예배를 교회, 특히 장소 적인 교회와 관련짓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를 결코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의 삶 역시 중요한 예배이며,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교회에만 제한되는 거룩을 원치 안으시고 보편적으로 유지되어지는 거룩을 원하신다. 때문에 참된 예배는 거룩한 실천이 있는 생활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2. 그리스도인과 찬양

1) 찬양의 의미와 이유

찬양은 히브리어로 hlht(테힐라)인데, 이것은 '찬양하는 것, 찬미하는 것' 등의 의미로 단순한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포함하는 광의의 찬양이다. 신약에 와서는aijnevw(아이네오)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가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찬양을 받으실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찬양을 드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찬양은 오직 합당하신 그분께 나의 모든 것으로 경배 드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찬양을 하는가?

첫째, 우리는 피조물이요, 그분은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여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영멸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기 때문이다.

2) 찬양하는 생활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도 없이 겉으로만 체하는 사람을 외모로 받지 않으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많은 웅장한 형식들보다는 간절하고 뜨거운 영혼의 찬양 원하신다(69:30,31). 따라서 환경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으며,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없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성도는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찬양을 드리도록 힘써야 하며, 결코 형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3. 아삽(Asaph)

게르손 족속 베레갸(Berch-iah)의 아들이었던 아삽은 다윗이 거느렸던 세 음악가들 중 한사람으로 찬송을 맡았던 악사의 우두머리이다. 그는 150편의 시편 중에서 12(50,73-83)을 손수 지었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두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한 사람은 시편 50, 73, 76, 78편 등을 쓴 다윗 시대의 아삽으로 시편 75, 77, 82편도 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무튼 아삽의 시는 특이한 문체로 강하고 영적인 특성들을 지닌다(대하29:30; 12:46) 그 밖에 그의 아들들은 찬송 대원으로 불렸으며(대상25:1; 대하20:14), 성전 봉헌식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대하5:12). 법제 앞에서 찬송하는 것과 심벌즈를 치는 일 외에 아삽은 노래하는 자의 우두머리였으며, 그의 자손은 148명에 달한다(7:44), 유배 이전에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 고라 자손과 함께 음악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백성들의 신앙 회복에 크게 기여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4. 포도나무의 상징적 의미(80)

구약 성경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원은 종종 이스라엘의 비유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심으셨는데(80:1-13), 선택된 포도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후에 들 포도나무가 되어 버렸다(5:1-7; 2:21; 10:1). 이것은 패역하게 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가리키이요, 이후에는 땔감으로 밖에 아무데도 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상징한다(15; 19:10-14). 또한 에스겔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상징하기를 한 '큰 독수리'(느부갓네살)'땅의 종자'(시드기야)를 취하여 심을 것이고, 이것이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 나무로 자랄 것이나 후에 다른 독수리가 와서 옮겨 심을 것이라고 미래를 예견하였다. 한편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9:10) 하셨다고 했으며,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송이에 비유하기도 했다(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