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3장 연구

에반젤(복음) 2019. 8. 17. 14:07



1328-32

싹트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하나님 나라의 비유(7)

오늘 묵상할 말씀은 막 13장입니다.


우선 28-32절을 한번 읽겠습니다.

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우리가 예수의 비우에 대해서 계속해서 하려고 그러는데 지난 번에 했던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 관한 비유들이었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와서 구원의 힘을 나타내기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 여러 가지 씨의 비유들 그리고 누룩의 비유 등으로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성장해 감, 점점 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힘을 우리에게 끼치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들에 관한 비유들을 공부했어요.


오늘 부터는 몇 가지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 성장의 끝, 그러니까 종말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관한 비유들. 예수께서 역사속에서 세상속에서 특히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불어 성장해 가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에 어떻게 될 것이고 그때에 심판과 구원이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그런 것을 오늘부터 살펴보려고 그래요.


그 중에 첫 비유가 여기 막13장에 여러가지 비유들이 나오는데 그중에 첫 비유가 여기 오늘 읽은 28-32절 까지 있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여요. 그런데 벌써 읽으면서 알았겠지만 이 비유를 이해, 하려면 예수의 종말에 관한 가르침 전체를 좀 알아야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 비유의 뜻을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막 13장을 여러분과 내가 다 한 번 읽어 보아야겠어요. 길지만 앞으로 우리가 토론할 비유들도 다 이 맥락에서 해야 되므로 13장을 한 번 읽겠습니다.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

보신바와 같이 이 마가복음 13장은 종말에 대심판의 날 대재앙의 날 그 날은 동시에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어요. 26-27절 인자가 오셔서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 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아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구원의 완성을 보는 그 날이어요. 그 날은 우선 대재앙의 날 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그 날까지 믿는 자들에게 특히 환란이 심할 것을 예수께서 예고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잘 참고 믿음을 지키고 기다려야 됨. 무엇보다도 주의하고 깨어있어야 함. 거기 33절 부터 몇 번씩 되풀이 되는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 여기 삼가하라 그 말도 주의하라 그런 말이지요. 몇 번씩 되풀이되는 경고 깨어서 잘 살펴야 한다.

무엇을 잘 살펴야 되나 때의 조짐들을 잘 살펴야 된다. 종말이 이르는 조짐들을 잘 살펴야 한다. 그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여기 싹트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여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가지 끝이 말랑 말랑해지고 거기서 물이 올라서 말랑말랑해지고 잎사귀가 트면 아 이제 여름이 가까왔구나 하고 이제 농부들은 또는 마당에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화과나무의 싹틈에서 여름이 금방 임박했음. 여름은 이스라엘의 계절로 결실의 수확의 계절이어요.

수확은 밀과 가라지들의 비유에서도 보았지만 마지막 심판과 구원의 날을 상징하는 때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싹튼 것을 보고 곧 여름이 닥치고 곧 수확의 계절이 오리라는 것을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때의 조짐들을 깨어서 주의 깊게 잘 살핌으로서 잘 대비해야 된다는 것. 구원의 완성의 날은 이렇게 환란을 동반하고 엄청난 재앙을 동반하고 핍박을 동반하고 심판의 날과 함께 오기 때문에 그때 깨어서 조심하여 믿음을 지키면서 그 날을 맞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재앙에 휩쓸림. 그 가르침을 여기서 지금 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29절에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들이 아는 것을 보거든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싹트는 것이 곧 여름이 올 것이라는 것에 대한 조짐이듯이 29절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곧 인자가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 올 것임에 대한 조짐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요.

이런 일들이 곧 종말에 심판과 구원에 대한 조짐들인데 그러면 이런 일들이 무엇이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왔음. 여기 사실은 인자가 주어일수도 있고 종말이 주어일수도 있고 우리 한글 개역번역에는 인자라고 했는데 원래 원본에는 좀 불분명해요. 대명사로 되어 있어요. 헬라어 대명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3인칭 대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사물을 가르치는 3인칭 대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영어로 He로 번역할 수도 있고 It로 번역할 수도 있고 그래서 조금 불분명해요. 개역번역에는 인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는데 아마 그것이 무리가 없는 해석일 거여요.

여러분들은 그 정도로 알아두시고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온 것을 알라. 앞에 인자가 와서 뭐한다고요 2623절에 대심판을 행하고 택한 자를 구원하신다. 그 날이 가까운 것을 알라. 그런 말이어요. 그러면 이런 일들이 뭐냐 이런 일들은 앞에 쓴 일들. 앞에 쓴 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우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임박했음.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다시 지은 이른바 헤롯의 성전이라 하는데 그것은 고대세게에서 요새 말로하면 몇 대 불가사이에 속한 위대한 건물이었어요. 엄청나게 크게 엄청나게 아름답게 지어서 로마역사가의 책에도 나중에 로마랍비들의 책에도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고 그랬지요. 누구든지 헤롯의 성전을 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 일생에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럴 정도로 위대한 건물이었어요.

그래서 갈릴리의 시골뜨기들이 이 건물을 보고 놀라서 1절에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얼마나 위대하면 이 건물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하지요. 예수께서는 이 건물이 완전히 부서지리라. 여기의 부서지리라는 수동태지요. 이 건물이 파괴된다고요. 이런 것을 신적 수동형이라고 해요. 하나님이 파괴하신다는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기를 꺼려했던 유대인들은 주어인 하나님을 피하기 위해서 수동형으로 표현을 한다. 하나님이 여기서는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는 그렇게 예수께서 제자들을 경고하고 그들이 미혹되지 않고 그들이 종말에 있을 환란과 심판의 과정을 잘 지날 수 있도록 이렇게 여기 지금 설명을 해요.



여기 막 13장에 종말에 대한 가르침들인데 여기 해석이 아주 어려워요.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학자들 간에 논란도 많고 주석도 굉장히 복잡하고 아주 어려워요. 그런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고 다만 여기 한 서너 가지 분명히 드러나는 요점들만 말씀드린다면 첫째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중심으로 해서 엄청난 환란의 때가 이를 것인데 그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을 당할 것이다. 그 핍박을 당함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선포를 위해서 또 그리스도인들이 더 핍박을 당한다. 당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선포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을 텐데 거기 9절 공회에 넘겨주겠고 회당에서 매질을 당하겠고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이지요. 그 다음에 임금 앞에 서고는 이방인의 왕들에 의한 핍박이지요. 유대인들로 부터나 이방사람들로 부터 많은 핍박을 받을 것인데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선포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 재판의 과정이 예수의 주이심에 대한 하나님의 왕 되심에 대한 증거가 되는 복음선포의 기회가 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그때에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증거할 말을 줄 것임을 말씀하셔서 안심도 시키시며 이렇게 예수께서 말씀해 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종말은 어떤 때냐면 그리스도인들이 선교를 열심히 해야 되는 때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을 받게 되는 때이다. 그러니까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성장해 가는 그런 때이다.

둘째로 분명한 것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엄청난 물질적인 파괴가 있을 것임


여기 1314절을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말은 다니엘서에서 온 말이어요. 다니엘서 9:27, 11:31, 12:11절 등에 있는 거기서 나오는 특수한 용어인데 그것은 주전 169-168년에 당시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4세가 조금 역사를 여러분들 알 필요가 있지요. 주전 326년쯤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팔레스티나를 점령했어요. 그리고 알렉산더가 지금의 인도의 동북부 인더스강 까지 갔지요.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동부까지 다 점령했어요. 동쪽으로는 인도동부에서 서쪽으로는 이탈리 이집트까지 다 점령하는 광활한 제국을 세웠지요. 그런데 알렉산더가 그리고 나서 10년 후에 전쟁터에서 병사해서 죽었어요. 그래서 그의 광활한 영토가 그의 장군들 4사람에 의해서 사분이 되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팔레스티나가 유대 땅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다서 창건된 지중해를 면한 곳에 창건된 지중해를 면한 곳에 새로 세운 도시이지요. 원래는 알렉산드리아에 본거지를 둔 톨레미 왕조의 통치를 받았어요.



그런데 주전 198년에 시리아의 안디옥 그러니까 나중에 바울의 선교의 중심지가 되는 안디옥이라는 곳을 알지요. 우리가 유명한 시도행전에서 아는 도시의 안디옥 거기에 본거지를 두었고 셀루키드 왕조로 넘어가요. 톨레미 왕조나 셀루키드 왕조가 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 왕조들이어요. 그런데 둘이 팔레스티나를 경계로 유대 땅을 경계로 한쪽은 이집트 쪽을 차지하고 살았고 한쪽은 저 위에 시리아 쪽을 차지하고 살았는데 처음에는 유대 땅이 톨레미 왕조 이집트 왕조에 속하다가 주전 198년에 셀루키드 왕조의 힘이 세 가지고 팔레스티나가 셀루키드왕조에 속하게 되어요. 다시 말하면 시리아의 통치를 받게 되어요. 다 헬라 사람들이어요.



그런데 거기서 특별히 혹독한 왕이 나와요. 안티오쿠스 4세라는 자가 스스로를 제우스의 현현이라 해서 헬라말로 에피파니우스(나타남이라는 뜻) 제우스의 성육신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에루살렘 성전에 제우스의 상을 세우고(자기상이겠지요)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을 제우스에게 제사하는 제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유대교의 안전을 폐해버렸지요. 안식일도 못 지키게 하고 할례도 못하게 하고 기타 율법의 모든 것을 금하고 음식 가리는 법 이런 것을 못하게 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제우스의 성전으로 둔갑시켜놓고 각 동네마다 제우스의 신당을 만들어 놓았어요. 일제 때에 한국의 동네마다 신사를 만들어 놓았듯이 유대인들을 강제로 거기 가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주전 168년에 유명한 마카비 반란이 벌어진 거여요.



모딘이라는 동네에 살았던 제사장 마키비우스가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그의 아들들 중의 하나가 유다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유다의 별명이 메카비우스였어요. 메카비우스라는 말은 큰 망치라는 뜻이어요. 그래서 보통 메카비 형제들이다고 알려졌는데 여러분들 역사는 몰라도 헨델의 유명한 오라트리오 쥬다는 메카베우스 알지요. 그것이 이 배경이어요. 이 마타티우스가 그 아들들과 더불어 모딘이라는 동네에 와서 에피파니우스 안티오쿠스 4세의 명을 받아가지고 유대인들을 강제로 제우스 신전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제사하게 하는 그 광경을 보고는 시리아의 장교를 죽이고 그 강요에 못 이겨서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유대인들도 죽이고 하나님과 율법과 이스라엘의 순결을 위해서 열성을 가진 자들은 따르라 해서 반란이 벌어지지요. 그래가지고 이 반란이 성공을 하지요. 게릴라전법을 해서 크게 성공을 해서 나중에 처음에는 165년 쯤에는 예루살렘을 탈환을 해요. 그래서 깨끗이 정화해 가지고 하나님께 바치고 그것을 지금도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 조금 전에 우리 달력으로 12월 초에 기념하는 하누키 절이라는 거여요. 미국에 가면 여러분들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가면 그 잔치를 볼 수 있어요. 지금도 기념하는 절기이지요. 처음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고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고 점점 더 정치적인 자유도 확보해 가지고 155년 쯤 되면 독립을 확보해요.



그러나 주전 64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서 점령이 되어 가지고 그 때 부터는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지요. 이러한 아주 다이나믹 하고 환란 많았던 역사가 지금 예수의 세대의 직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어요. 그런데 여기 지금 다니엘서 91112장 등에서 에피파니우스가 세운 신상을 그렇게 부른 것이어요.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그것이 서지 못할 곳이 어디여요 서서는 안 되는 곳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에 서게 되면 그런 일이 발생할 거여요. 그때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파괴되는 시작이 되어요. 그때에 엄청난 환란이 있을 텐데 그때에 사람들은 내려가지도 말고 피신하라. 그때 피신하지 못하는 임신한 여자들 젖먹이를 인고 있는 자들은 피신할 수 없어서 엄청나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지요. 그 날은 긴 겨울 같은 날이 될 터인데 겨울에 피신하기 어려운 그때에 그런 날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리고 19절은 심지어 창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후에도 그런 큰 환란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서 20절에 하나님께서 기간을 감해 주시지 않으면 살아남을 자가 없다고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살아남을 자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께서 종말에 무슨 일이 발생한다고요 주전 2세기 중반쯤에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유대교를 초토화하고 유대인들을 엄청난 환란을 주어서 메카비 전쟁으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많은 환란이 일어났듯이 그 환란의 상당부분을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읽을 수가 있어요. 그와 같은 환란이 되풀이 될 것으로 아니 그보다 더 심한 그와 비슷한 그러나 강도에 있어서는 더 심한 환란이 있을 것을 지금 예고하고 그것은 무엇으로 종결이 된다고요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는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파괴되는 돌이 돌 하나에 얹혀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는 엄청난 환란으로 종결이 될 것이다.



그때에 세 번째로 2627절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셔서 심판과 구원을 할 것이다. 불신자들에게는 그때는 심판의 시대가 될 것이며 택함 받은 자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응한 자들은 그때에 모아져 가지고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그러니까 지난 번에 우리가 공부한 비유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수확의 계절이 되어서 밀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그런 양과 염소가 갈라지는 그런 때가 될 것이다. 지금 그렇게 설명을 하면서 예수께서 이 일들이 벌어질 때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큰 반란이 일어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 그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도 많이 일어나 가지고 백성을 미혹하게 할텐데 그런 일이 벌어지는 때 그런 것들이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싹트는 것 같은 종말의 조짐이다. 그런 것들을 살펴서 거짓선지자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고 이런 믿음의 준비 없이 환란을 맞이함으로 해서 마지막 끝까지나마 구원받는 자들의 대열에 속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경고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어요.



자 그래서 대충 뜻을 알겠는데 우리에게 큰 문제가 예수의 이 예언이 일부 주후 70년에 성취가 되었어요. 잘 알다시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기되었어요. 누구에 의해서 주전 169년에는 셀루키드 왕조의 왕 안티우쿠스 4세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파괴될 뻔했지만 이번에는 로마의 세력에 의해서 주후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어요. 그때 유대인들이 대부분 포로로 당시 전쟁포로라는 말은 노예가 된다는 말이어요. 노예로 붙잡혀 가서 엄청난 살육도 일어났지만 그 후에 노예생활이 엄청난 반란이 유대인들에게 있었어요.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 경고에 힘입어서 유대인들의 반란에.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한 이유가 주후 66년에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것이 유명한 유대전쟁이라고 그러지요. 그런데 이 전쟁을 일으킬 때에 누가 주동이 되어서 일으켰냐면 열혈당이 중심이 되어서 일으켰어요. 예수께서 많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열혈당과 바리새당의 보수 우익당이 합세를 해 가지고 나중에는 제사장들도 많이 동참을 해가지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이들은 누구를 모델로 삼아서 일으켰느냐면 아까 이야기한 주전 168년이래로의 메카비 형제들을 모범으로 삼아서 자기들을 열혈당이라고 불렀어요. 아까 메카비 반란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어요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열성을 가진 사람은 반란을 하자 그때 열성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 성전 열성이 이방 왕을 숭배하는 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어긴 우상숭배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때 로마 황제를 위해서 아침마다 제사를 드렸어요. 그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 성전에 선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훼손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과 성전에 열성을 가진 사람 이들이 주동이 되어서 반란을 일으켰지요.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오랜 동안 포위를 하다가 드디어 불화살로 주로 불화살을 사용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 태워 버리고 다 부숴버렸어요.



진짜 예수의 말씀대로 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다 부서 버렸어요. 서쪽 벽만 조금 남았어요. 기념으로. 얼마나 어렵게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 했는가 그래서 이 반란을 종식 시켰는가 기념을 하기 위해서 서쪽 벽만 조금 남겨놓고 모두 파괴해 버렸어요. 그래서 거기서 엄창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했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거여요. 그때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부딪혔어요. 그들이 같은 유대인들로서 이 열심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의 반란에 동참을 해야 되느냐 로마 식민지 제국에 대한 반란에 동참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하느냐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경고를 힘입어서 예수가 여기서 뭐라고 그럽니까 14절 이하에서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을 가라. 도망을 못가는 젖먹이 딸린 여자들 임신한 여자들 걱정을 하고 있지요. 예수께서 도망하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도망을 갔어요. 페트라라는 곳으로(아라비아 땅) 많이 도망을 갔어요. 화를 많이 면했어요. 이와 같이 예수께서 지금 예고하는 예언들이 예수께서 주후 30년에 이런 예언을 했다면 40년 후에 거의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어요.



거기까지는 참 좋은데 이제 문제가 무엇이냐 그러면 어쩐다는 거여요 이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고 엄청난 재앙이 있고 그러면 26절 인자가 와서 심판을 통해서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서 종말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있으리라는 것인데 이 예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성취된 것입니까 안 된 것입니까 주후 70년에 예수의 재림이 일어났습니까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부서지고 지금 예수가 말하는 엄청난 재앙은 일어난 것은 사실인데 그러면 그때에 예수의 재림이 있었느냐 인자의 옴이 있었느냐 그래서 그때에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완성에 들어가는 일이 있었느냐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이어요. 지금까지도. 그래서 지금 1924년이 흘렀지요.



그러니까 그동안에 간간이 사람들이 지금 예수가 예언한 막 13장 마 24장 눅 21 22장에 있는 이 예수의 재림이 곧 임한다고 해가지고 거짓선지자들 거짓메시야들이 자꾸 일어나서 백성들을 미혹하는 일이 자꾸 있어요. 최근에 우리 한국에 크게 일어난 것이 이장림 사건. 10. 28일 날 . 하여간 그런 일이 교회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예수의 재림이 안 일어난 거여요. 자 그러니 문제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의 예언이 잘못되었느냐 이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느냐 이것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어요. 그래서 이것에 대한 여러 가지 토론이 있었는데 여러분들에게 그런 토론을 세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한두 가지만 좀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요.



두가지가 다 연결이 되는데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것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 여러분들 지금 예수의 예언과 비슷한 예언이 하나 있지요 구약에 여러 개 있겠지요. 그런데 그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요나서 2장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 악의 도성 니느웨를 40일 후에 완전히 파괴하겠다. 가서 알려라. 여기 예수는 앞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정확히 그것이 어느 날 어느 시에 오는 가는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도 모른다고 여기 32절 아버지만 안다고 그러지요.



아 그런데 자꾸 이장림이 자기가 안다고 주장을 하고 이장림 외에 무슨 산속에서 계시를 받았던 사람 하나 둘 나타나 가지고 그 날이 언제라고 하며 자꾸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미혹하지요. 지금 예수는 천사들도 모르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도 모른다고 그러는데 하여간 예수는 미래에 재앙이 오고 종말이 오는데 그 날은 정확히 알지 못해요 다만 그것이 언제 일어난다는 거여요 다만 이세대가 다 가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거여요. 그래서 그중에 일부는 주후 70년에 그러니까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세대 안에서 사실은 일어났지요. 문자 그대로 일어났어요.



그러나 그중에 제일로 핵심부분인 인자의 오심 예수의 재림 이것은 그 세대에도 안 일어났지만 그 후에 1900년이 흐른 우리 세대에도 안 일어났어요. 이 말이어요. 그래서 문제가 있다. 이 말이어요. 하여간 이 세대에 일어나리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정확히 몇 년 후에 어떤 해에 일어나리라 그렇게 까지는 말을 안했어요.



그런데 요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은 뭐여요 예수의 예언보다 훨씬 정확하게 40일 후에 멸망한다. 그런데 그 예언이 들어맞았습니까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신 메세지 또는 요나가 가서 해야 할 예언 40일 후에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을 다 멸망시킨다. 하는 예언이 다 일어났어요 안 일어났지요. 니느웨 성의 왕과 온 백성이 철저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용서를 하고 멸망을 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 보시겠어요 눅 136-9절 까지 보십시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리라. ” 이 비유도 나중에 공부하겠지만 이 비유로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 아까 니느웨의 경우는 인간들의 회개와 믿음의 반응에 따라 도는 하나님 자신의 오래 참으심으로 변경이 될 수 있다. 연기될 수 있어요. 니느웨를 40일 후에 다 없애 버릴려고 그랬는데 그들이 철저히 회개함으로 그 파괴를 면해주는 거여요. 지금 여기 예수의 비유이지요. 아까 우리가 눅 13장에서 읽은 비유.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과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유예하고 있음, 오래 참음 가운데 회개하고 의의 열매가 혹 맺힐까 해서 23년 유예하고 있음.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 326절에서 하나님께서 오래참음 가운데서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이 이미 하늘에 있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계시자들에게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에게 미리 인간들에게 예고케 하지요.



그 예는 이사야서에서도 볼 수 있지요 그랬을 때에 예언이 발생한 거여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리라. 이미 하늘에서 결정된 하나님의 계획 그것을 선지자들과 예수가 계시를 받아서 예고하는 거여요. 그러니까 그것이 뭐가 됩니까 우리에게는 예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예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또는 세상 사람들의 철저한 회개와 믿음의 반응에 따라서 그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되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눅 13장의 비유대로 유예하는 오래 참는 가운데 조금 더 기다림, 이런 것도 우리가 볼 수 있지요.



그것을 하나 생각해 보시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성취되는 것은 항상 예언보다 크다는 사실 성취는 예언과 같음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항상 결국 크지요. 이 원칙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저 결과를 미리 보고 말씀하실 때는 요만하게 말했다면 나중에 성취된 것은 예언과 연속성이 있지요. 그러나 그보다 크게 항상 나타나지요. 그래서 예수의 예언이 아까 이야기한대로 일부는 주후 70년에 거의 문자적으로 일어났어요. 그러나 예수의 인자로서의 다시 오심 재림은 지금 아직까지 안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 우리에게 고민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과연 안 일어났느냐 이 예수의 인자로서의 재림의 성취를 지금 이 예언의 문자 그대로 하면 안 일어난 것은 사실이어요. 아직 예수께서 하늘로 부터 천사들을 동반하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셔서 온 세상에 걸친 심판을 하고 악의 역사를 종결시키고 우리 모두 죄악과 죽음과 고난으로 부터 완전히 구원한 그런 성취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성취는 앞으로 종말에 크게 일어날 것인데 그전에 예수의 재림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느냐



한 번 읽어 봅시다. 요한복음 141절입니다. 요한복음 14-16장 까지가 고별사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하나님께로 돌아감.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서 다시 온다고. 와서 우리를 영접한다. 14:3절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한다는 것은 여기 막 13:27절 다시 와서 땅 끝에서부터 와서 하늘까지의 온 세상에 택한 자들을 다시 모아서 하늘나라로 영접함 그것과 일치하는 예고지요.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께로 들어감으로 해석을 해요. 그리고 부활하셔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남을 그의 제자들에게 옴. 그러니까 재림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가 성령을 보내요.



성령을 우리 요한복음에서는 뭐라고 하느냐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해요. 그것을 어떻게 번역을 해야 되는지를 아직도 몰라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개역성경에는 보혜사라고 했는데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보통 법적인 언어인데 검사와 변호사의 역활을 겸한 직책이어요. 세상에 대해서는 검사노릇을 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변호사노릇을 하는 그런 역활이어요. 성령의 그 역활을 위해서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르는데 그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리스도 자신의 제 2의 자아 성령이 제 2의 자아여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를 첫 파라클레토스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또 하나의 파라클레토스라 그래요.



그러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심은 곧 그리스도의 오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오심. 그래서 부활한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재림이 이렇게 일어나는 거여요. 너희들을 고아와 같이 두지 아니 하리라. 내가 다시 와요. 그 다시 오심은 종말에 여기 막 13장대로 인자로서 믿음 없는 자들까지도 다 인정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옴이 있지만 그전에 부활하신 주로서 또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옴. 요한복음은 이렇게 해석을 해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한 번 종말에 임하는 사건이 아니라 물론 종말에 크게 공개적으로 일어나지요. 그런데 그전에 오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오심도 원래 십자가 전에 내가 너희에게 오겠다는 재림의 약속을 적어도 일시적 성취, 성령의 오심도 그 재림의 약속의 일시적 성취, 이 성취가 일어난 거여요. 그래서 성취가 완전히 종말에 완성이 되는 거여요. 그러니까 십자가의 죽음 전에 예수께서 떠나시기 전의 예언은 조그마하게 간단하게 한마디로 다시 올 것으로 말씀하시지만 그 예언의 성취는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이 말이어요.



아까 성취는 예언보다 항상 크다는 말이어요. 성취는 예언된 만큼 일어난다고 보면 성경적 예언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말이어요. 그런데 성취는 항상 예언보다 크다는 원칙을 잘 염두에 두고 생각을 하면 예수께서 예언은 인자가 온다는 단순한 한마디 예언이지만 성취는 종말에 완성이 될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전에 부활하신 주로서 우리에게 오심. 그의 영으로 우리에게 와서 우리 가운데 내주하심. 이것이 다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겠다는 예언의 성취되어가는 과정이어요. 그것을 종결이 이제 온 세상에 걸친 심판과 구원으로 오심.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이 좋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그렇게 이해하도록 예수의 재림의 약속을 그렇게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그렇게 해석해 놓았어요. 우리에게 그렇게 이해하도록 지침을 주었어요.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의 우리 가운데 그의 영으로 오심. 우리 가운데 내주하심. 가령 로마서 8장 같은 것을 보면 바울도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심이 곧 그리스도의 우리 가운데 내주하심이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와요. 또 그리스도가 언제 우리에게 오는 것이 가장 절실하냐 객관적으로 객관화 되서 나타나느냐 예배 때 온다고요. 특히 공동체적인 예배 때에.



예배가 종말의 선취, 종말에 오시는 주께서 지금 우리 가운데 오심, 종말에 있을 심판을 지금 우리에게 체험하게 하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죄 됨을 심판하시고 종말에 있을 죄용서와 구원을 지금 우리에게 베풀게 하고 종말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지금 여기서 체험하게 하는 거여요. 예배가 성취된 오심이어요. 예배 때 주의 오심은 종말에 오심의 미리 취함이어요.



고전 1622절 제일 끝에 바울이 편지에 기도 한마디로 끝나지요. 마라나타. 그런데 왜 우리가 그것이 기도인줄을 몰라요 번역이 잘못되어서 그렇지요.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옳지 않고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 거기 초대교회의 아주 절실한 기도였어요. 아랍말로 마라나-타 그 기도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요구하는 기도여요. 종말의 재림을 위한 기도 빨리 재림하셔서 우리의 고난을 종결 지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주소서 하는 기도이며 동시에 예배 때의 오심 주여 오시옵소서 이제 종말에 완전히 베풀 심판과 구원을 지금 여기 우리에게 베푸소서 하는 기도여요. 그러니까 재림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어요. 단어적으로 종말에 한 번 오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되고 종말에 재림이 있어요. 그것은 아직 미래적이어요. 그런데 예수가 예언하실 때의 재림은 그 한 번 단어적인 것이 아니고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심. 영으로 오심. 예배 때에 우리에게 오심. 이런 것을 통해서 종말에 오실 주에 대한 확신이 커가는 거여요.



자 그러니까 지금 종합하겠습니다. 앞으로 공부할 종말에 예수의 막 13장 종말의 예언에 있어서 성경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 지 잘 모르고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이 예언의 일부는 주후 70년에 되어 버렸는데 그러나 중요한 부분 재림부분은 전혀 1900년이 흐르도록 성취가 안 되었는데 이것 예수가 잘 모르는 것 아니냐 우리가 더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고 이것을 어떻게 성경으로 읽을 수 있느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요. 이런 문제를 잘 해석을 ,하려면 성경의 예언의 해석의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좋다.



하나는 경륜 가운데 그의 계획이 유보되고 변경될 수도 있음,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위함임. 둘째 예수의 재림에 관해서 말한다면 요한복음의 해석대로 바울의 해석대로 종말에 일어날 그 재림 선취적으로 지금 부활하신 주의 오심. 그 주의 영 성령 가운데 우리 가운데 오심. 주의 오심은 심판과 구원을 동반해요. 그래서 종말에 완전히 누릴 그 심판과 구원을 지금 여기서 누리게 한다. 그것을 잘 이해하시고 우리가 앞으로 종말에 대한 예언들을 이해해가면 동시에 깨어서 기도해야 됨. 깨어 주의해야 됨. 동시에 이장림 운동같이 안절부절함 없이 주께 맡기는 평안함이 함께 있어야 된다. 그런 말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