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마태복음 강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교훈과 고난

에반젤(복음) 2019. 8. 17. 08:47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교훈과 고난

 

 

I. 배경


  마태복음을 가리켜 흔히 ‘교회 교과서’ 또는 ‘신앙 훈련독본’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선교적인 문서가 아니라 교회 안의 신자들을 위한 교과서란 말이다. 그래서 마태는 그토록 ‘소자 중 하나’, 혹은 ‘형제’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고 또한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이 행한 ‘선행’으로 인해 그들 모두가 ‘축복 받은 자’가 되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신앙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가 바울처럼 믿음을 강조하지 않고 야고보처럼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울처럼 개종시켜야 할 이방인들이 아니라 제자훈련을 시켜야 할 ‘이미 믿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태에게는 전도적 관심보다는 목회적 혹은 교육적 관심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점에서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위해 가장 적절히 이용될 수 있는 교재는 바로 마태복음이라 할 수 있다.

 

II. 본문과 해석


1. 세 번째 이야기 - 예루살렘을 향한 길(마 16:21-25:46)
  1) 갈릴리 사역(16:21-18:35)
  #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16:21-28)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 수난 예고가 나타난다. 내용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람의 손에 넘겨져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수난 예고는 세 번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난다.
  # 예수의 변모(17:1-8)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다. 그리고 변모하셨다. 그 이유는 장차 죽었다 부활하실 것을 저들에게 미리 경험케 해 주시려 함이다.
  # 귀신에 사로잡힌 아이(17:14-20)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왔으나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아이를 고쳐주신다.
  #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17:22-27)
  갈릴리에서 수난을 예고하신다. 그리고 성전세를 요청하는 것에 대해 그대로 따르도록 지시하신다.
  # 소자 중의 하나에 대한 관심(18:1-14)
  이 본문에서는 ‘소자 중의 하나’라는 용어로 서로 이어지는 세 교훈이 나온다. 첫째는 ‘소자 중의 하나를 실족케 말라’이고, 둘째는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이며 그리고 셋째는 ‘소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이다. 소자 중의 하나라도 실족케 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까닭은 이런 소자 중의 하나 곧 어린 아이 하나가 천국에선 제일 큰 자이기 때문이다.
  마태는 이런 교훈의 구체적인 예화로 ‘길 잃은 양의 비유’를 제시하고 있다. 이 비유는 ‘소자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서론과 함께 소개하면서 ‘이와 같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는 결론으로 끝맺고 있다. 마태의 교훈 점은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므로 잃은 양이 생기면 다른 양을 다 버리고서라도 잃은 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 점에서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를 기독교인들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는 목회적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 형제에 대한 용서의 교훈(18:15-35)
  이 본문에서는 ‘형제’라는 용어로 세 교훈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는 범죄한 형제에 대한 교훈이고, 둘째는 내게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되느냐에 대한 교훈이며, 셋째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이다. 첫째 교훈에서는 형제들 가운데서 죄 지은 사람이 있을 경우 먼저는 혼자서, 다음에는 두 세 사람이 나서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온 교회가 나서서라도 회개하고 교회 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둘째 교훈을 통해서는 내게 죄 지은 형제가 있을 경우 랍비 등은 3번, 베드로는 7번, 용서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는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무한정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쳤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해서 만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가르친다.
  2) 베뢰아 사역(19:1-20:34)
  # 결혼과 이혼(19:1-15)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일이 옳은 지 그른지에 대해 묻는다. 예수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음행한 연고 외에는 버릴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 재물 포기와 제자직(19:16-30)
  이 교훈이 포함된 문맥의 중요 관심사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예수를 따르는 것의 관계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결혼 문제, 어린아이 문제, 재물 문제 등이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다루고 있다. 마 19:29에서는 영생을 얻을 자는 예수를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을 버린 자라고 말한다. 
  본문에 나오는 청년은 사람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다. 이렇게 사람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예수를 따를 수 없게 된다. 마태는 여기서 재물 포기를 제자직의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다. 재물이 자신에게 위로나 만족을 위하여 주어진 것으로만 한다면 그 경우 그 재물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끊어버려야 할 쇠사슬이다. 그러나 자기의 재물이 이웃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 재물은 그에게 있어서 축복이 된다. 마태는 재물을 포기하되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말함으로서 제자직과 재물포기, 그리l고 제자직과 이웃사랑이 밀접히 관련됨을 말하고 있다.
  # 포도원 일꾼과 품삯(20:1-16)
  집주인이 각각 다른 시간에 일하러 온 일꾼들에게 품삯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먼저 온 자들이 이에 항의한다. 주인은 그것은 자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 세 번째 수난 예고(20:17-19)
  #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20:20-28)
  수난 예고가 있은 뒤 제자들은 높음을 두고 다시 논쟁한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예수를 찾아와 그들의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좋은 자리에 앉혀 줄 것을 요청하자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예수는 반문한다. 종이 되어야 으뜸이 되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임을 일러준다.
  # 여리고의 두 소경(20:29-34)
  여리고를 떠날 때 두 소경이 소리쳐 긍휼히 여김을 요청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눈을 뜨게 하신다.
  3) 예루살렘 사역(21:1-25:46)
  # 종려주일(니산월 9일)
  -. 예루살렘 입성(21:1-11)
  -. 성전 청결(21:12-17) / 예루살렘에서 다시 베다니로
  # 월요일(나산월 10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심
   -.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21:18-22)
  # 화요일(니산월 11일)
  -. 권위에 대한 질문(21:23-27)
  -. 두 아들의 비유(21:28-32)
  -.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21:33-46)
  -. 혼인 잔치의 비유(22:1-14)
  -.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22:15-22)
  -. 부활에 대한 토론(22:23-33)
  -.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22:34-40)
  -.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22:41-46)
  -. 위선자 책망(23:1-36)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23:37-39)
  -. 예루살렘 멸망 예고(24:1-2)
  -. 재난(24:3-28)
  -. 인자가 오시는 날(24:29-44)
  -.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24:45-51)
  -. 열 처녀의 비유(25:1-13)
  -. 달란트 비유(25:14-30)
  -. 최후의 심판(25:31-46)

 

2. 네 번째 이야기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증언(26:1-28:20)
  # 수요일(니산월 12일)/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머무심
  -. 여인이 값진 기름을 붓다(26:1-13)
  -. 가룟 유다의 흥정(26:14-16)
  # 목요일(니산월 13일)
  -. 유월절 만찬(26:17-35)
  -. 겟세마네 동산 기도(26:36-46)
  # 성 금요일(니산월 14일)
  -. 체포되심(26:47-56)
  -. 대제사장의 심문(26:57-68)
  -. 베드로의 부인(26:69-75)
  -. 빌라도의 심문(27:1-31)
  -. 십자가에 못 박히심(27:32-44)
  -. 예수의 죽음(27:45-56)
  -. 장사됨(27:57-61)
  # 토요일(부활 전야)
  -. 무덤을 굳게 지키다(27:62-66)
  # 주일(부활하신 날)
  -. 부활하시다.(28:1-15)
  - 제자들의 사명(28:16-20)

 

III. 신학적 의미 

  #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가 교차하는 곳 - 십자가
  예수의 제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왜 고난을 받으셔야 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제자와 심지어 예수까지도 괴롭혔던 십자가의 고난! 할 수만 있거든 이 쓴잔을 지나게 해주기를 간구했던 고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너를 버리시나이까”를 부르짖었던 절규! 바로 그 절규 속에는 하나님의 때가 숨어 있었다 하나님의 때는 단 한번 모든 인류를 죽음과 죄의 세력을 꺾고 그것으로부터 풀어놓으시려는 종말론적 시간이었다. 인류를 살리시기 위한 자기 희생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자기 포기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후 사랑의 역설적인 표현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희생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이 축복이나 성공이나 출세에 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은 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사랑의 최후 진술 속에 내재한다. 예수마저 괴로워했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죽음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종말론적인 때였다. 예수의 가르침의 사역은 이 고난을 예고하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