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마태복음 강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2 (예수님의 생애 두 번째 이야기) 마태복음 1장-16장

에반젤(복음) 2019. 8. 17. 08:44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II


I. 배경


  예수님 당시의 로마가 팔레스틴 지역을 통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분봉왕을 세워 통치하는 것이었다. 주전 63년 이 땅을 손안에 넣은 로마는 주전 40년 암몬 족속의 피를 가진 왕자 헤롯을 팔레스틴의 분봉왕으로 임명한다. 헤롯은 철저한 아부로 통치 영토를 넓혀 가게 되어 처음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베뢰아와 갈릴리까지로 확대하게 된다. 헤롯이 죽은 뒤에 황제 아우구스도는 헤롯의 세 아들을 다시 분봉왕으로 세워 분할 통치를 하였다.
  다른 하나는 총독 정치를 펼쳤다. 주후 6년에서 66년까지 약 60년간 총독 정치가 이어졌는데 이 때 14명의 총독이 와서 통치했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반로마 저항에 강력하게 대처하기 위해 힘있는 총독을 파견하여 이 지역을 통치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본디오 빌라도였다. 이 총독들의 통치는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더욱 저항운동이 심화되어갔다. 그러다 결국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했고, 성전을 파괴시켜버렸다.


II. 본문과 해석


  예수의 공생애 활동의 후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의 배반과 부인, 그리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배척과 살인 음모 등으로 예수는 완전히 버림받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 첫 번째 이야기 - 예루살렘 입성에서 체포되기까지(막 11:1-14:42, 마 21:26-46, 눅 19:22-26, 요 12:12-17:26)
  1) 예루살렘 입성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점은 무리들이 예수의 길에 자기들의 옷과 나뭇가지를 깔아놓은 것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친 데서 나타나고 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의 칭호이며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랄 뜻으로 예수를 ‘구원자’로 나타내는 말이다. 이 기록은 예수가 구원자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함을 강조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누가는 ‘제자들의 온 무리’가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라고 ‘찬송’했다고 기록함으로써 사건의 의미를 평화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2) 성전숙정
  마가의 경우 성전숙정 사건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있다. 예수가 형식만 화려하고 내용은 없는 유대교의 성전 제사제도를 숙정한 것과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을 같은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증거하고 있다. 마태의 경우 예수가 성전에서 병자들을 고쳐주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성전에서 쫓아낼 자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에서 고쳐줄 자들을 고쳐주는 이야기로 즉 유대교의 형식적인 성전제사 종교와 고통당하는 자를 돕는 예수의 구원종교를 대조시키고 있다. 누가의 경우 이 사건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성전숙정 이후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고 말함으로서 장사마당을 예수의 마당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3)최후의 만찬
  예수가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만찬을 가진 때는 ‘유월절 양 잡는 날’(막 14:21)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이 마지막 식사 때 소위 성만찬을 제공한다. 그래서 떡을 떼사 “이것은 내 살이다”라고 그리고 포도주 잔을 드시고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은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즉 속죄의 죽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는 이 마지막 식사 때에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자기를 배반할 것과 또한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예언하신다.
  4)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인간적인 고민에 빠져 제자들을 데리고 가끔 기도하러 다니던 겟세마네 동산을 찾아 기도하신다. “가능하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제자들은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기도하는 예수와 잠자는 제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 있고 예수는 위기의 때에 기도했기 때문에 당당히 자기 길을 성공적으로 갈 수 있었으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잤기 때문에 시험에 들어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버린 채 다 도망하였다고 기록함으로서 이 이야기의 서론과 결론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고, 또 ‘무릎을 꿇고 땀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을 일종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2. 두 번째 이야기 -체포되어 재판받기 까지(막 14:43- 15:15, 마 26:47-27:26, 눅 22:47-23:25, 요 18:1-19:16)
  1)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
  복음서 기자들은 유다의 배반의 원인을 사탄의 사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마태의 경우 은 30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을 언급함으로써 유다의 배반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고 있다. 체포 당시 약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당당히 스스로 체포에 응했음을 강조하고 있다.(요 18:6-8)
  2) 대제사장 집에서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
  대제사장의 집에서 안뜰에서는 예수가 대제사장에게, 그리고 바깥뜰에서는 베드로가 종들에게 심문을 당했다. 예수께서는 “내가 그니라”고 답하셨으나 베드로는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3)빌라도 총독의 심문
  빌라도의 예수 심문 장면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가와 동시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알고 얼마나 그를 구해주려고 노력했는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제사장은 “우리의 왕은 가이사 뿐입니다”(요 19:15)라는 신성 모독적 발언과 함께 백성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히려 강도인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빌라도는 세 번씩이나 예수의 무죄를 선언하면서 예수를 방면하려고 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죽음의 마지막 책임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3. 세 번째 이야기 - 십자가에서 처형되어 매장되기까지(막 15:16-47, 마 27:27-66, 눅 23:26-56, 요 19:17-42)
  1) 십자가 처형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에 먼저 로마 군인들로부터 조롱을 당한다. 군인들은 예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그 앞에 절하며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군인들의 이 행위들은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께 대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홀로 면류관을 쓰고 경배를 받아야 할 왕 중의 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는 골고다라는 곳으로 끌려 나가 다른 두 죄인과 함께 못 박히는데 이것 또한 진정 예수다운 최후로 생각되어진다. 왜냐하면 예수는 죄인을 구하려 오신분이며 평생 죄인들과 함께 사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분답게 죄인들 한 가운데서 죽으시며 또한 죽으시면서도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구원하신다.
  2)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다. 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5:34, 마 27:46) 2.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4.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5.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6. “내가 목마르다”(요 19:28) 7. “다 이루었다.”(요 19:30)
  3) 매장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자 아리마대 요셉이 시신을 거두어 새 무덤에 장사지낸다. 요 19:38, 마 27:57을 보면 이 요셉은 예수의 제자였다. 그런데 요한은 요셉이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를 장사지낸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와 무덤에 매장될 때 갈릴리로부터 따라왔던 여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 제자들이 아닌 여자 제자들을 예수의 최후 장면 즉 쳐형과 매장과 나중에 부활의 목격자로 강조한다.


4. 네 번째 이야기 - 부활 후 승천까지(막 16:1-20, 마 28:1-20, 눅 24:1-53, 요 20:1-21:25)
  1) 빈무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매장된 지 3일에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했으나 무덤이 비어있었다고 전한다. 이 때 여인들은 ‘희 옷 입은 청년’(막 16:4), 혹은 ‘천사’(마 28:5)를 만나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때도 예수의 빈 무덤에서 예수의 부활 소식을 맨 처음 들은 사람은 남자 제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었다.
  2)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복음서 기자들은 부활하신 예수의 첫 목격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전한다.(막 16:9-11, 요 20:11-18) 그리고 그 다음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였고(눅 24:13-35), 그 다음이 열한 제자들이었다.(눅 24:36-43, 요 20:19-29) 예수는 다시 갈릴리 바다의 고기잡이 일로 되돌아간 일곱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다.(요 21:1-14)
  3) 예수의 승천
  마가복음은 예수의 승천과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은 것까지 언급하고 있다.(막 16:19)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는 ‘베다니 근처에서’승천하셨고, 부활한 이후 “사십 일 동안‘(행 1:3)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들을 말씀하신 다음에 승천하신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III. 신학적 의미


  예수의 수난과 죽음 이야기는 큰 도전과 교훈을 준다. 가령 박해 가운데서 신앙을 배반할 염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다처럼 예수를 배반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신앙 때문에 체포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시련이 닥치더라도 베드로처럼 비겁하게 신앙과 자신의 정체를 부인하지 말고 예수처럼 자신의 정체를 용감하게 밝히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또 그런 위기의 순간에 열심히 기도한 예수와 잠들어 있던 제자들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따라야 할 긍정적인 모델과 따라서는 안 될 부정적인 모델을 제시해 준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예수를 다시 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십자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다시 오실 예수를 대망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과 새로운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즉 교회는 부활의 후속공동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