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믿음의 사람

[스크랩]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 (창 12:1-4)

에반젤(복음) 2024. 5. 6. 12:32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 (창 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 시간에 인물강해로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비교적 길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를 통해서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의 모델이 되게 하시고 나아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바라함을 연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진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몇 가지의 비밀이 봅니다.


1. 선택의 비밀입니다.


수24:2-3에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말씀한 것으로 아브라함이 어떤 가운데 자라왔는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오기 전 갈대아 우르에 살 때 그의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경건한 가정에서 신앙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행7:2-3에는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도 모르고 불신앙과 우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위대해서도 특별해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1:4-6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밖에는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거룩의 비밀입니다.


창11:31-32에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으나 하란에 머물러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데라가 갈대아를 떠나 변방인 하란까지 가족들을 거느리고 온 것을 보면 데라도 아들 아브라함의 계시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라가 죽은 다음에 가나안을 향하여서 간 것을 보면 아버지의 믿음이 상당한 거침돌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7:4에도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 데라의 죽음의 의미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데라의 믿음은 하란이 그의 한계였습니다. 하란을 넘어서 이방세계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갈대아는 그 당시에 문명권이었고, 하란은 갈대아 문명의 최변방으로 이들이 고향을 떠나기는 했으나 국경은 차마 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갑시다.' 데라는 '안 된다. 난 책임질 수 없다.' 이 데라의 태도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는 길에 많은 지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데라의 이름의 뜻이 ‘지연하다’ ‘연기하다’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창12:5에서는 이를 ‘마침내’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방해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우리가 세상 떠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갈대아우르는 세상이요, 데라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아직도 세상의 변방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육신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육신의 생각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데라가 죽듯 예수님께서 우리의 옛 사람을 포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갈6:14) 그러므로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쉬자하는 육신의 생각 다 십자가에 내어놓고 지체 없이 저 천국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의 비밀입니다.


본문 창12:4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아브라함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창12:1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 하나님이 명령은 약 4가지입니다. 1. 본토를 떠나라. 2. 친척을 떠나라. 3. 아비를 떠나라. 4.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렇게 4가지 명령을 받았지만 본토만 떠났지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였습니다. 몇 세에 본토를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4절에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한 말씀대로 하란을 떠난 나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나이가 암시하는 것은 그가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4가지 명령 중에 한 가지는 지키고 3 가지는 지키지 못하는 25%의 믿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갈데아의 변방에서만 머물며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라가 죽은 후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50%밖에는 되지 못했기에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니 그의 아내와 함께 웃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보호를 의심하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가 빼앗길 뻔한 위기를 당했습니다. 이것이 100% 믿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사랑하고 동시에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믿고 세상 말도 믿고 방황하는 50%의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방법으로 하갈을 받아들여 가정에 갈등을 증폭시킨 것처럼 믿음 없는 일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었으면 그런 편법 쓰지 않아도 될 것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100%의 믿음을 갖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다 바칠 때였습니다. 창22:10-12에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히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 아들을 통해 민족으로 이루고 메시야가 탄생하신다고 약속하신 아들이기에 죽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100%의 믿음입니다. 이 100%의 믿음이 있어야 죽어도 살리라는 천국 소망이 생깁니다. 100%의 믿음이 없으니까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못 믿으면 내가 불행합니다. 100%의 믿음 가져야 편안히 다리 뻗고 잘들 수 있고 만사형통합니다.


어떻게 100%가될까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해 나약하고 좌우로 흔들렸지만 성령 받고 온전해졌습니다.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담대함이 큰 상을 얻게 합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말씀을 100%믿고 100% 순종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츰이 아니라 100%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온전히 육신의 생각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복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