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 삭게오집사Ⅲ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집 단칸방에서 이제 딸 하나를 낳고 알콩 달콩 가정이 무엇인지 깨달아 갈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급한 전화 한 통이 아내로부터 걸려왔다. '여보!. 큰일 났어요. 빨리 좀 와보세요.' '왜 무슨 일인데?.' '삭개오 집사님이 쓰러지셨어요. 연탄가스 중독으로요.' 나는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집에 도착하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아내가 삭개오 집사의 안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삭개오 집사는 의식이 없었고, 의식이 없는 그를 나는 타고 왔던 택시에 싣고 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중태였다. 삭개오 집사는 벌써 며칠 째 의식이 깨어나지 않았다. 나와 아내, 그리고 교회 성도들은 정성스럽게 돌아가며 그를 돌봤고, 그의 백치 부인은 나의 아내가 먹이고 돌봐주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입원한지 1주일 만에 삭개오 집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참으로 비극이었다. 백치가 된 아내를 남겨두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였다.
사실 거창읍민 거의 모두가 삭개오집사 부부를 알고 있었다. 삭개오집사는 길거리에선 이웃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매사에 성실하던 선한 이웃이었고, 백치 아내에겐 그토록 헌신적이던 착한 남편이었다. 그의 싸늘한 시체를 안고 집에 돌아온 건 나였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를 집으로 모셔왔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작은 삭개오 집사의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두 손으로 안고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때 그의 아내가 마루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밖에서부터 보였다. 백치 아내가 나의 손에 들려 있는 죽은 남편의 시체를 보자 백치인 그녀가 갑자기 어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흐. 어흐.' 반가운 얼굴을 하며 두 손을 저어대며 빨리 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시체를 마루에 올려놓자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시체를 여기저기 만지기 시작하였다. '어흐. 어흐.' 옆에서 이를 보던 동네 사람들이 놀라 한 마디씩 하였다. '아이고. 저를 어쩌나. 쯧쯧.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편이 죽은지는 아는 가베.' 모두의 눈 가에 물기가 촉촉이 적셨다. 삭개오 집사의 아내는 백치였다. 평상시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거의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삭개오 집사의 장례는 거창교회의 온 성도들과 동네 주민들이 가슴 아파하며 슬퍼하는 가운데 치러졌다. 그의 사연을 알고 있는 거창 읍내 사람들은 모두가 안타까이 여기며 슬퍼하였다. 장례가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삭개오 집사의 아내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남편은 좋은 곳에 갔겠지만, 이제 남은 백치 부인은 어떡하나?.' '친정에서 데려가겠지. 뭐.' '불쌍해서 어쩌지.'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를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 장례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그녀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모든 음식 먹기를 거부하였고,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입에 강제로라도 먹이려 들면 이를 굳게 다물고 저항하며 거부하였다. '으음~ 으음.' 고개를 돌리며 뿌리치는 그 녀에게 아무것도 도저히 먹일 수가 없었다. 그러기를 열흘 째. 아침에 나의 아내가 그 녀의 방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튀어나왔다. '여보. 여보. 빨리 이리 와보세요.' 나는 놀라 급히 그 녀의 안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잠자는 듯 누워 있었는데 호흡은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남편을 보낸지 딱 열흘 만이었다. 백치 부인은 남편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그녀의 죽은 얼굴은 평상시 살아있을 때와 달랐다. 참으로 근심이나 두려움 하나 없는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고, 늘 보던 맹한 얼굴이 아니라 한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마치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의 장례도 부탁해요. 저는 사랑하는 남편의 뒤를 따라갑니다. 천국에서 다시 봬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그녀의 장례도 치러 주었다. 그날 거창 읍 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희한한 것은 며칠간 한 겨울 강추위가 극성을 부리다가 삭개오집사는 백치 아내 장례식 날 만큼은 이상하게 따뜻하였다. 계절은 바로 수 십 년 전 땅꼬마 거지가 거창에 나타난 그때와 같이 추운 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눈보라 치고 맹렬히 추웠지만 그의 아내가 따나던 날은 마치 봄날처럼 따뜻하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한 마디 하였다. '참 날씨 좋데이~ 아마 하늘에서 삭개오 집사가 지 각시를 불러 갈라고 날씨를 이렇게 좋게 만들었는가 보데이'. 한 두어 주간이 충격 속에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장례가 끝난 후 그 집을 떠났다. 학교도 옮겨 서울로 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도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나의 아내는 불행히도 60 이 넘어 중풍으로 쓰러졌다. 나의 인생도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아내는 결코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 늘 아내는 잔소리로 나를 피곤하게 했고,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삭개오집사가 그 날밤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가 그의 백치 아내를 목욕시켜주는 장면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옛날 거창에서 술 취해 귀가했던 그 어느 날 밤의 결심 이후로 지금까지 난 내 아내와 단 한 번도 다투어 본 적이 없다. -END- 이 이야기는 거창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전성은 선생님의 특강을 지금으로부터 약 30 년 전에 듣고 감동했던 청년이 가슴에 품고 있다가 쓴 실화 소설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세요. -오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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