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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꼬마 삭게오집사Ⅰ

에반젤(복음) 2024. 3. 27. 11:27

 

 

 

💌땅꼬마 삭게오집사Ⅰ

 

 🌺🍀💙💠30대 중반의 한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거창 읍내 거리를 쏘다녔다. 여인은 여자의 부끄러운 곳을 다 보이면서도, 얼굴엔 수심 하나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부터 그 여인은 거창 읍내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심심하면 화젯거리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은근히 그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입가심으로 삼았다. 점잖은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사람들은 '허~참' 하고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만, 구잡스런 사내들은 오히려 즐기며, 천한 웃음을 흘리곤 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곤 여인에게 옷을 걸쳐 대충 가리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는데 바로 '삭개오' 집사였다.

 

 삭개오 집사는 키가 매우 작았다. 뒤뚱 거리며 걷는 모습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아주 신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전해준 그의 속 이야기는 이러했다. 6.25 전쟁이 막 끝난 후 거창 읍내에는 아침마다 두 개의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오는 한 꼬마 거지가 나타났다. 삭풍이 부는 추운 겨울에 덜덜 떨면서 양손에 두 개의 깡통을 들고 아침마다 나타났다. 동네 사람들은 이 불쌍한 전쟁고아에게 저마다 인정과 동정을 베풀었는데, 특히 거창교회의 김 장로와 그의 아내 박 권사는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다. 나이에 비해 키가 아주 작아 보이는 소년은 늘 두 개의 깡통을 들고 다녔다.

 

 어느 날 김 장로는 이 거지 소년의 특이한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처음엔 그저 깡통 하나론 부족해서 두 개를 가지고 다니는 거겠지 생각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보통의 음식은 왼쪽에 담았으나 떡이나 고기 같은 맛있는 음식은 꼭 오른쪽에 담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장로는 어느 날 땅꼬마 거지의 뒤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땅꼬마 소년의 거처는 거창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냇가의 다리 밑이었다. 거적을 쳐서 허술하게 거처를 만들었는데, 뒤를 따라가 조금 열린 틈 사이로 보니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거기엔 그 꼬마보다 더 어린, 4-5살쯤 돼 보이는 거지 아이가 하나 더 있었는데 동생이었다. 땅꼬마 거지는 어린 동생에게 동냥을 얻어다 먹이고 있었다. 아주 작은 꼬마가 자기보다 더 작은 어린 동생을 먹이는 모습에 김 장로는 가슴이 찡한 감동을 받았다. 한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진짜 큰 감동은 조금 뒤에 있었다. 바로 두 개의 깡통이었다. 이 꼬마 거지는 맛없는 깡통의 음식은 자기 자신이 먹고, 맛있는 깡통의 음식은 어린 동생에게만 먹여 주는 것이었다. 한 번쯤은 자신도 맛있는 깡통의 것을 먹겠지 하고 지켜봤지만, 단 한 숟갈도 자신은 먹지 않고 동생에게만 먹여 주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김 장로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서 감동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김 장로는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였고, 이후부터 동네 사람들은 꼬마 거지를 위해 음식 동냥을 두 가지로 준비해 주었다. '이건 이 쪽, 요건 저 쪽.' 어떤 때는, '야야. 맛있는 거 네도 묵어라. 니 동생 줄 것은 따로 줄 거니까. 걱정 말고.' 그리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기특하데이, 참말로 기특 하데이. 야야. 배고프면 언제든지 오너라. 알았지이.' 어느 날 김장로와 박권사는 큰 결심을 하였다. 이 꼬마 거지 형제를 데려다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하고,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돕도록 한 것이다. 김 장로는 당시 거창 읍내에서 '태백산맥'이라는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땅꼬마는 김 장로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성장하여 결혼도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그는 신임을 받아, 김 장로는 그에게 가게 하나를 차려 독립시켜 주었다. 교회 성가대를 하기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별명을 하나 붙여 주었는데, '삭개오 집사'였다. 성경에 나오는 키 작은 세리였던-?. 자기 동네에 오신 예수님을 보려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올리브나무 위에 올라갔다던, 그 세리장 삭개오의 이름을 딴 별명이었다. 삭개오 집사의 동생도 결혼하여 부산에서 살았다. 전쟁고아였지만 두 형제는 부모를 잃은 아픔과 상처를 잊고, 둘 다 포목점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던 삭개오 집사에게 큰 비극이 닥쳐왔다.-내일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