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 삭게오집사Ⅱ
🌺🍀💙💠당시는 전쟁 직후라 아직도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남아있던 북한 공산군 잔당과, 소위 빨치산이라고 부르는 남한 내의 공산당 동조자들이 끝까지 저항하며 양민들을 약탈하거나 괴롭히고 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꽈광. 꽝.' 포 소리가 나더니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또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 간에 포격전을 시작한 것이다. 집 안에 있던 삭개오 집사의 아내는 깜짝 놀라 집에서 튀어나와 바로 옆에 있는 보리밭에 몸을 숨겼다. 이때 포탄 한 발이 불행히도 삭개오 집사의 집에 떨어졌다. 꽝. 소리와 함께 집은 박살이 나고, 집에 확 불이 붙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이 장면을 보리밭에 숨어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는 너무나 큰 충격에 정신을 잃었고, 그날로부터 모든 기억을 잃고 백치가 되어버렸다.
삭개오 집사는 졸지에 집을 잃었고, 아내는 백치가 된 것이다. 그에게는 너무나 크고 엄청난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다니며 오직 신앙 하나로 이 모진 시련을 잘 이겨냈다. 집은 다시 지었고, 백치가 된 아내는 전보다 더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 주었다. 그 여인의 얼굴이 그렇게 평화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 녀의 남편 삭개오 집사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 거창에 와 자취방을 얻었을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고, 얻은 자취방이 바로 삭개오 집사의 집이었다. 나는 살면서 사람이 징그럽다고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내 아내에게서였다. 결혼 3 년 차에 이미 우리는 파경에 이르고 있었다. 중학교 영어 교사였던 나는 아내를 서울 처가에 남겨두고 홀로 거창중학교에 전근을 왔는데 사실은 전근이 아니라 도피였다. 잠시라도 아내와 떨어져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별거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내를 만난 것은 서울의 영어 학원에서였다. 당시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는 그 학원의 수강생이었고, 미모의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영어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우리는 수업 시간에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에 빠져버렸고,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를 당기고, 끌리는 아름다운 별들의 중력 같은 것이지만, 결혼은 접착제의 귀찮은 끈적거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불과 3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매일 싸웠다.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았다. 아내는 외동딸로 자라서인지 자기중심적이고, 이해심이 없었다. 매사에 짜증이고, 불평이 많았다. 그 기분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사소한 일로도 충돌하곤 하던 우리는 이젠 다투고 화해할 마지막 힘마저 남아있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 없이 아내와 가정을 떠나와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사랑해 본 사람도 아내였고, 목을 졸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 본 사람도 나의 아내였다. 따로따로 각자를 뜯어보면 그렇게 사악하지 않았지만 서로 맞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관계, 사소한 일이 세계 대전으로 치닫는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관계였다. 언젠가 나는 성경 말씀을 읽다가 크게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국에서는 부부로 살지 않는다. 천사 같이 형제자매로 산다. 이 얼마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인가. 삭개오 집사는 바쁘게 장사를 하면서도 점심 식사 후엔 꼭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가보았다. 자신의 아내가 집에 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아내는 가끔 집을 나가 정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옷을 훌훌 다 벗어버리고 동네 우물가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삭개오 집사에게 알려 주었고, 삭개오 집사는 얼른 달려와 자신의 아내를 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 때문에 긴 여행이나, 단 하루라도 다른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없었다. 부산에 사는 동생 집에 다녀올 때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아내 걱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삭개오 집사는 가끔씩 밤이 늦어지면 마당에 나와 '허흠, 허흠'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곤 했는데 바로 나에게 주는 사인이었다.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지금 제 아내를 목욕시키려고 합니다.' 그는 마당에서 정성스레 백치 아내를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를 빗으로 빗어주기도 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사람들은 그에게 충고도 해봤다. '백치 아내와 이혼하고 새장가를 들라고.'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아내와 전화로 큰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늘 다투는 내용은 똑같았다. 그날 밤 퇴근길엔 술을 몽땅 마시고 들어왔다. 당시 우리 부부 사이엔 자식도 없었고,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갈수록 출구가 없는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어렵게 결단하였다. '이제 별거를 지나 이혼으로 가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 거리며 집에 당도해 대문을 열었다.
내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다가가 문틈으로 보니 삭개오 집사가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를 목욕시키려 목욕물을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비틀 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술기운에 몇 마디 말을 걸었다. '삭개오 집사님 뭐 하세요?' '예, 물 데웁니다.' '아~네 아내 분 목욕시켜 드리려고요.' '예'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술기운에 그에게 해서는 안 될 말 하나를 뱉어 버렸다. '그런데요. 삭개오 집사님. 내가 물어볼게 하나 있습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눈치였는데 나는 무례하게 다짜고짜로 물었다. '삭개오 집사님!. 집사님은 왜 이혼하지 않고, 저런 아내하고 사십니까?.' 정말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던, 그러나 나의 삶을 완전히 뒤 바꿔버린 물음이었다.
삭개오 집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계면 쩍 은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부끄러운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겨~결혼식 날. 하나님 앞에서 한 그놈의 서~서약 때문에.' '뭐라고요?. 겨~결혼식 서~서약 때문이라고요?.'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불쌍하거나 사랑해서도 아니고, 서약 때문이라고요?.' 나는 술이 확 깨어 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는 불 꽃만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없이 내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후 밖에서는 삭개오 집사가 그의 아내를 목욕시키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결혼식 서약 때문이라.' 나는 다음 날 일찍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거창으로 오늘 당장 내려와.' '아니 무슨 일이야!. 이혼하자더니.' 아내는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그날 서울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언제냐 싶게 다시 결합했다. 내려온 아내는 까닭도 모르고 정복자처럼 굴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 큰 결심 하나를 하였다.-내일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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