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딤전,후서 강해

디모데 전서 6장연구

에반젤(복음) 2019. 7. 15. 21:30



* 오늘의 말씀 : 자족할 줄 아는 믿음(디모데전서 6:1~10)

 

* 본문요약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상전을 공경할 자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상전이 믿음의 형제라면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그 형제가 섬김과 사랑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말씀의 교훈을 버리고 진리에서 떠난 자들은 분쟁과 다툼과 사악한 의심에 빠집니다. 그러나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여러 해로운 유혹에 빠져 자기 스스로 자기를 찌르는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찬 양 : 486(368)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533(484)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 본문해설

 

1. 종들에 대한 권면(1~2)

 

1) 무릇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상전을 모든 일에 공경할 자로 여겨야 할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사람을 자기 상전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욱 잘 섬기게 하라. 이는 그 섬김을 통해 유익을 얻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이며, 또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2.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3~5)

 

3) 누구근지 다른 교훈(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이미 교만하여져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 병이 든

사람이라. 그런데서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사악한 의심이 일어나고,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상실하여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3. 자족할 줄 아는 신앙(6~10)

 

6) 그러나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므로,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8) 우리가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줄 알 것이니라.

9)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되나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을 탐내는(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 자족할 줄 아는 마음(6) :

본래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마음의 평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던 용어입니다. 바울은 스토아 철학의 용어를 사용하여, 어떤 상황에서든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크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묵상포인트 3 참조).

 

-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9) :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되려는 욕심 때문에 해로운 정욕이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찌른다(10) :

돈을 사랑하고 돈에 탐욕을 품은 자들은, 많은 유혹과 미혹을 받아서 큰 근심과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찌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직장 상사와의 관계: 더욱 잘 섬기라

 

1) 직장 상사가 믿지 않는 사람일 경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노예로 있는 자들에게 자기 상전을 공경할 자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주인이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공경할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인의 마음을 열어 주인으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보다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단순히 직책상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겸손한 태도가 직장상사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2) 직장 상사가 믿는 사람일 경우

 

 바울은 자기 상전이 믿는 사람일 경우에, 그가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적당히 하려고 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섬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주인보다 오히려 믿는 주인에게 더욱 열심히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사장이 기독교인이거나 직장 상사가 믿는 사람일 경우, 같이 믿는 사람이니 나를 사랑으로 봐줄 것이라 여겨 대충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지적을 받으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믿는 사람이 사랑도 은혜도 없다며 여기저기에 험담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경우 그 말을 듣는 자들이 그를 보고 기독교를 불신하고 나아가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직장 상사나 동료나 부하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일 경우 오히려 더 순종하고, 더 협력하고, 더 너그럽게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주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적용 : 믿는 성도들 간의 관계와, 직장에서의 상하관계를 분명히 구분 지어야 합니다. 이 관계를 모호하게 생각하면 서로 시험 들게 됩니다.

 

 

2.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지 말라

 

 “거리에서 접촉사고가 났을 때 양보를 하지 않고 끝까지 싸움을 하려는 사람은 십중팔구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시흥3동 자율방범 대원 중 어떤 사람이 한 말입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욕심쟁이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통계자료를 보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범죄율이나 소송 건수가 믿지 않는 사람보다 전혀 적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바울은 경건에 관한 일조차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경고합니다. 교회에 다니기만 할 뿐, 말씀에 열심히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악한 영이 그들의 마음을 부패하게 만들어서 교만한 자가 되고,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 병이 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병들고 부패한 마음에서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사악한 의심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이런 자들은 사사건건 다툼과 분쟁만 일으키게 되고, 그러다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 내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자인가, 문제를 치유하고 화해하게 하는 자인가? 분쟁과 비방과 사악한 의심이 내 마음 속에 있다면 나는 크게 병든 자입니다. 주님 앞에 내 문제를 내놓고 기도하여 서둘러 치유를 받는 자가 되십시오. 더 늦기 전에, 화인 받은 양심이 되어 영영 저주 받는 자가 되기 전에 서두르십시오.

 

 

3.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은 경건에 큰 이익이 되나니

 

 본래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마음의 평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아우타르케이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스토아 철학의 용어를 사용하여, 어떤 상황에서든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크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스토아 철학의 용어를 빌어서 말하고 있으나, 내용은 크게 다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나는 이 상황에 만족 한다하며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고통을 이기는 것을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령 아주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이 고통뿐이고 희망이란 전혀 없는데도 스스로 나에게 최면을 거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고백이 아닙니다.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채찍으로 얻어맞고 발은 차꼬에 채이고, 온 몸에 쇠사슬이 묶인 채로 감옥에 갇히고도 밤새도록 주께 찬양했습니다. 그날 밤 이 광경을 보던 간수가 그의 온 집이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도 찬양을 하여 간구의 집을 구원한 것입니다. 이런 삶을 가리켜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4:11)하고 표현하였습니다.

 

적용 : 요셉이 13년간의 노예와 감옥살이를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감사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십시오.

 

 

4.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그러나 항상 현실에 만족을 못하고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을 품고 있으며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부자가 되기만을 바라고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이 부자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려 하는 자를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주께서 주신 삶을 감사하며 살면 경건에 큰 도움이 되나, 부자라 할지라도 자기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부자가 되기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해로운 욕심에 빠져 파멸과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자신의 삶에 불만을 품고 어떻게 해서든 그 고통스러운 삶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했다면 그는 결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요셉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의 이름이 아니라, 가인처럼 저주 받은 자의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돈에 탐을 내는 자들, 돈에 집착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과 많은 고통으로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찌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비극 속에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적용 :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주님 이외의 다른 것을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이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내 마음 중심에 주님을 모시십시오.

 

 

* 기도제목

 

1.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 성실하고 겸손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내 마음에 분쟁과 미움과 다툼의 악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현실에 만족할 줄 알아 늘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4. 돈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진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