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제자훈련: 옥한흠 목사
내일이면 집에 돌아갑니다. 아마 여러분들 마음이 많이 가벼우리라 생각합니다. 오 늘 다락방 가셔서 여러분들 좀 느낌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가셔서 은혜받은 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교회에서 제자훈련하면서 많이 적용하시고 이번에 실망한 것은 여러분에게 자신감을 좀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냐 나도 가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좀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락방 현장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들에게 평신도가 훈련받고 목회동역자가 되면 이정도는 할 수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 순장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목사님들 오셔서 다락방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항상 달렙니다. 중요하니까 힘이 들어도 꼬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21년동안 다락방에 한번 가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서 앉아 있는데 다락방을 인도할 순장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목사님, 더욱이 일본교회 목사님들을 앉혀놓고 다락방을 잘하겠어요? 순장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잘 모르시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서 앉아 있을 때 순장이 할하면 비정상이고 잘 못하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가지 메시지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신도가 목사와 함께 사역하는 작은 목사가 되면 놀라운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공부 지도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사역의 1/3정도의 사역밖에 되지 않습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은 목사 사역의 1/3정도밖에되지 않쟎습니까? 마찬가지로 순장들은 다락방에서 성경공부 가르치는 일 외에도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성령충만과 제자훈련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오늘저녁에는 바인더 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덮어 놓으시고 쓰지 마시고 저하고 이야기 좀 하세요.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3년하시고 나서 그 제자훈련의 완성은 성령충만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제자훈련의 마무리 작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성령이 교회에 임하신 시대에 삵디 때문에 꼭 제자들과 비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감동이 없는 제자훈련은 제자훈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가운대서 성령충만하지못한 제자훈련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성령충만한 제자훈련도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 35명의 부교역자들이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있고, 성령충만하지 못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있구요. 아직은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들도 있구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냐 아니냐는 구별하기가 참 쉽습니다. 제자훈련 받는 훈련생들의 얼굴표정을보면 알아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의 얼굴은 항상 밝고 빛이 납니다. 마음과 마음에 무엇인가 전달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지도하지 않는 제자반이지만 딱 보면 알아요. 그러나 제자훈련이 성령충만하지 못한 반에 있는 교인들을 보면 겉으로는 활짝 웃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요.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볼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진짜 목회자라고 할 수 있고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자는 진짜 목회자라고 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제일 고민이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지 못하는 교역자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고민이예요. 저는 기다려 줍니다. 일단은. 평신도를 희생해서라도 교역자가 성령충만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1년도 기다려주고 2년도 기다려줍니다. 그러나 소망이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내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 마음으로 몇사람을 내 보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예요. 더 이상 평신도를 희생시킬수가 없잖습니까? 여러분들도 돌아가서 제자훈련을 하면 어떤 목사님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실 분이 있고 어떤분은 성경공부 열심히 하는데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제자훈련은 열매가 없습니다. 노력은 많이 하고 힘은 많이 쓰는데 열매가 별로 없어요. 이런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 되지 않으면 얼마가지 못해서 목사도 지치고 교인도 지치고 다 탈진해버립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미 이것은 신학적인 배경에 따라서 대답이 조금 다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체험을 가지고 이야기할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어떤 기분이나 감정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성령충만한 체험도 있을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마음상태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기쁘고 평안이 있을수 있습니다. 체험이 없는 성령충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처음에 오순절 운동이 막 일어났을때는 성령충만하려면 무슨 체험이 있고 은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무슨 체가슴이 뜨거워지는 무슨 경험이 험이 있어야 하고 있어야하는줄 알고 고민을 했죠? 하다 못하면 방언이라고 해야하는데 그것도 없으니 고민이죠! 그래서 방언 가르쳐 준다는 사람한테도 한번 가봤죠. 그러나 성경에 보면 방언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쟎아요.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런 것은 엉터리예요. 그러니까 어떤때는 조용기목사님 처럼 기도하다가 가슴이 펄펄뛰는 은혜도 주십시요하고 기도했는데 안주시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그런것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강렬한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렬한 영감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느낌과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가 성령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어떤때는 독특한 느낌ㄷ고 있습니다. 어떤때는 눈물도 있습니다. 또 어떤때는 30분을 찬송해도 더 하고 싶은 내면의 성령의 역사도 느낍니다. 그러나 어떤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을때도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있든 없든 하나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성령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영의 내면의 음성을 항상 듣습니다. 예를들면 너무 바빠서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령은 꼭 마음속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아시죠? 만사 제쳐놓고 기도해라! 기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음성이 항상 들려요. 벌써 그런 음성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배를 항상 받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그 음성에 순종해서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 항상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다스리심을 잘 받지 않는 사람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성령의 내면의 음성이 잘 안들려요.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계속 자신의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순종하지 못하던 삶을 금년에는 순종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을 금년에는 고칲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주님앞에 드리지 못한 시간을 금년에는 기쁨으로 드릴수 있게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격과 삶에 있어서 발전과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변사람들이 벌써 눈치챌수 있을 만큼 변호가 일어납니다. 우리 목사에게도 마찬가지고 평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하나의 특징은 사역의 능력과 열매입니다. 설교를 해도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전도를 할 때 그 전도의 열매가 따라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거나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기도에 응답이 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령충만한 사람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아주 쉬워요. 여러분 스스로 얼마든지 자신을 평가할수 있어요. 그게 어려우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충만할 수 있어요. 우리주님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는 법이 없어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과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은 얼마나 구분됩니까? 그러므로 성령충만이 무엇이냐는 신학적인 논쟁은 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가셔서 성령충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평가하려면 제자훈련을 일단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제자반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잘 살펴보십시오. 나 자신이 성령충만한 지도자냐 아니냐하는 것은 반년이 지나지 않아서 다 들어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여러분의 목회생명과 관계되는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 하지 못할바에는 제자훈련을 하지 마세요. 차라리 몇십명 모아놓고 성경공부 가르치세요. 그것이 더 경제적입니다. 힘들게 소그룹 만들고 힘들게 씨름할 필요 없어요. 성령충만해서 제자훈련하는 교역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누구나 한때 성령충만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하는 목회자는 항상 성령에게 붙들려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되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명심해야할 것들을 몇가지 이야기하려고합니다. 목사님들가운데는 성령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을 믿지 아니하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성령을 믿지 않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가만히 보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신학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믿지 않는 신학은 기독교의 신학이 아닙니다. 성령은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자기 대신에 보내신 하나님입니다. 성령없이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충만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믿어야만 합니다. 마음으로 성령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대항하지 마십시오. 설영이 계시는 곳이 교회요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자훈련 할 때 소그룹에서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그 제자반에 가서 앉을 때 사람이 먼저 보이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그 자리에 계심을 보아야합니다. 그 정도로 여러분은 성령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의지해야합니다. 제가 30년 경험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구약의 어느 선지자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시죠? 우리의 능으로도 안됩니다. 우리의 힘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제자훈련이 말입니다. 내 제주가지고 안되더라구요. 내가 공부많이 한 실력으로안되더라구요. 처음에는 뭔가 되는 것 같애도 나중에는 다 쭉정이야. 오직 성령이 하시는 일 만이 열매가 나와요. 저도 실패 많이 했어요. 저 제자반에서도 쭉정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 경우를 돌아보면 잘못이 저에게 있는 것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성령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자신있게 했던 제자반은 실패하게 됩니다. 여러분 무엇이 성령을 잘 안믿는 것입니까? 성령에게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을 안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자신이 먼저 은혜받으려고 몸부림 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그만큼 안믿는 것이죠. 성령보다 지기를 믿는 것이죠. 그래서 내힘으로 내 능력으로 제자훈련 해봤더니 열매가 없어요. 사람이 안 변해요. 피곤만 해요. 어떤때는 도망가고 싶어요.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또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믿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야합니다. 그것은 성령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얼마나 하세요 여러분! 목사들은 기도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밖에 목사들이 기도를 참 안합니다. 모르겠어요. 일본교회 목사님들은 어떤지! 한국교회 목사님들 기도많이 한다고 소문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들어보면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목사니까 체면 세울정도로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마 목사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도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업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데이터를 최근에 본적이 있습니다. 평균 목사님들의 기도시간이 15-20분이었습니다. 5분기도하는 목사도 참 많아요. 그러니까 평균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2-3시간도 있어요. 그런데 30분 이내로 기도하는 사람이 70-75%정도 되요. 그러니까 평균 20-30분정도 기도한다는 거예요. 물론 기도를 시간으로는 측정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에서 밥을 할 때 제대로 되려면 어느정도의 뜸은 들여야하잖아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시간을 길게 갖습니다. 어느정도 길게 갖느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만큼 길게 갖습니다. 자기의 형편이 20분 이상 절대로 낼수 없다면 20분이 최고의 기도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하는 중에서 중요하지 않는 것 좀 제외하면 1시간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20분 기도하고 끝나버린다면 성령을 사모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참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최선의 시간을 갖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교역자들 기도 많이 안해요. 너무 기도하지 않고 하고 싶고 재미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기도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거예요. 얼마나 재미 있는 일이 많습니까? tv위성방성을 틀어놓으면 수백개의 채널이 있습니다. 180개 채널을 1분만 틀어보아도 180분이 필요합니다. 인터넷 서핑을 한다고 해보세요. 한번 들어가서 한시간 안에 끌수 있습니까? 너무 보고싶은 것이 많고 알고싶은 것이 많은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모든 문명과 모든 유행을 다 동원해서 어떻게하든지 기도시간을 줄이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유혹에 넘어가고 있어요. 신문들고 한시간을 왜 보고 앉아 있습니까? 제목만 보면 끝날 것을. 맨날 나오는 이야기 제목만 딱 보면 성령의 사람은 내용을 다 압니다. 성령의 사람은 벌써 신문에 나오지 않은 다음의 이야기도 다 압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보고 시간 절약하면 40분 가까이 기도할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신문을 위해서는 한시간을 보내면서도 기도하는데는 10분도 앉아 있지를 못해요.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그런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께서 저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기가 쉽다고 생각됩니까? 어렵다고 생각됩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저같이 몸이 좀 약한 사람일수록 더 욱 그렇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제일 쉬운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ㄱ입니다. 그러므로 거꾸로 뒤집으면 저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는 영적 전투입니다. 저에게 기도하지 못하도록 사단이 지금 마귀를 끌고 진을 치고 있는지 영의 눈으로 보여요. 제가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의 간절함이 없다면 기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을 사모합니다. 정말 눈물 겹도록 성령을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과 도움이 없으면 이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린아이처럼 성령에게 매달리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것이그렇게 어려울수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피곤할때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요. 누워있고 싶을때는 기도가 안나와요. 그렇다고 남들처럼 철야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형편에서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든지 기도를 게을리하면 저의 사역이 병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저는 최소한 하루 한시간씩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돌아오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아내와함께 30분씩 기도합니다. 이번 세미나는 저에게 굉장히 어려운 세미나입니다. 아마 42번 세미나 한중에서 이번 만큼 어려운 세미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월요일 같은때는 기도를 못했어요. 주일날 하루종일 일하고 월요일날 쉬어야하는데 여기 내려왔고 그래서 몸이 도데체 말을 듣지 않아서 기도도 못했습니다. 일본 모고히자 세미나를 앞에 놓으면마귀의 공격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우리교회 중보기도팀과 교인들은 이 세미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계속 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을 저는느껴요. 여러분 모두 한분한분이 돌아가서 성령충만한 제자훈련하면 마귀고 손들어야합니다. 항복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결사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시면 틀림없이 여러분 기도못하도록 공격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6층에 제 기도실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한 두시간 있었습니다 모든 변명을 다 접어두고 하나님RP 나아가 무릎 꿇으면 하나님은 시간시간마다 틀림없이 은혜주시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기 원하면 성령을 사모하세요.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최우선에 둡니다. 루터의 말을 기억합니까? 나는 평소에 한시간씩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바빠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한다. 여러분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을 항상 유지하기만 한다면 제자훈련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오후에 강전도사 강의를 들으셨죠. 뒤에 있기 때문에 이말하기는 조금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저의 비서로 들어왔어요. 그 다음에는 20대 후반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제자훈련 전도..... 모든 것을 따라 다니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전도사가 지도하는 제자훈련이나 사역훈련을 보면 좀 다른데가 있어요. 그 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들도 문제의 해결을 받아요. 주님에게 헌신하지 않던 사람들이 헌신을 해요. 부부간에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문제의 해결을 받아요. 기도하지 않던 사람들이 기도를 열심히 해요. 하여튼 변화가 일어나요. 한 일년 강전도사 밑에서 훈련받고나면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달라져 버려요. 그리고 그 반에서 나온 사람들을 순장을 시켜놓으면 다른 순장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달라요. 왜 이와같은 역사가 있는가?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 하는 것을 옆에서 계속 주목했어요. 물론 가르치는 은사도 있고 열심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저는알고 있어요. 강전도사는 누구 보다도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반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매일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제자반 놓고 기도할 때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저 전체로 묶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제자반 식구들 하나하나 축복해주시옵소서. 그럼 시간도 절약되고 굉장히 좋지 않습니까? 또 어떤 교역자는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요. 그러나 그 한사람을 놓고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기도는 많이 못해요. 제자훈련을 시키면 한 사람에 대해서 영적 상태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한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요 10분을 기도해도 모자랄 정도로 기도제목이 있어요. 그런 기도에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성령의 감동이나와요. 기도는 그 만큼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교회 다른 교역자들은 기도 형편없이 한다고 듣지 마십시오. 다들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순장들 중에서 너무 일잘하고 능력있고 너무 매력있어서 불러서 누구에게 제자훈련 사역훈련 받았느냐고 물으면 강전도사 반이라고 대답해요. 눈물의 기도가 예수의 제자를 만듭니다. 눈물이 뿌려지는 곳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을 사모하세요. 성령은 먼저 여러분을 감동시키시고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또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성경말씀을 펴놓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세요. 성경을 펴놓고 머리싸움을 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에 여러분의 삶을 복종시키세요. 여러분에게 소화된 성령의말씀을 들고 제자반으로 나가세요. 제가 제자훈련 직접 가르치고 사역훈련을 할 때 제가 실수를 여러번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주에 사역반을 3반을 맡았을때는 똑같은 교제 내용을 3번 반복해서 가르쳐야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제일 큰 유혹이 뭔지 압니까? 그 교제는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두 번 쳐다 볼 필요가 없어요 다 압니다. 그러니까 전혀 준비하지 않고 그대로 들고사역반에 들어가는것입니다. 첫시간에는 좀 준비해서 들어가요. 그러나 두 번째 반 세 번째 반에는 전혀 준비하지 않고 들어가요. 그것이 잘못된 것은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시간마다 교재의 내용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안된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준비하지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해서 교재들고 들어가서 가르치고 훈련하는 반은 나중에 꼭 좋지 못한 표가 나와요. 더욱이 여러분이 제자훈련을 3년 5년 반복하다 보면 매년 같은 교재로 훈련합니다. 그러면 한 2년 정도 공부하면 3년째부터는 더 이상 예습도 필요없습니다. 그래서시간만 되면 그냥 들어갑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가 빠졌어요. 그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말씀을 펴놓고 시간시간마다 성령께서 새롭게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똑같은 말씀이지만 성령께서는 새롭게 역사합니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 중에서 제자훈련 많이 한사람들은 10년이상 15년 이상 제자훈련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교재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교역자들이 여러명 있어요. 시간마다 그 교재를 펴놓고 자기가 그 말씀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그 말씀을 통해 은혜받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다 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그 시간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느냐하는 것이 문제예요. 말씀앞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자세는 성령충만한 지도자가 되는데 필수요건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면 여러분이 QT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가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역자들은 잘못하면 QT하지 않고 그냥 들어갑니다. 그래서 훈련생들 보고 하나하나 발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교역자가 직접 자기 QT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훈련생들의 QT를 들으며 은혜 받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은혜받은 것을 나누는 것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위해서 제자반을 인도하는데 몇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자반을 지도할 때 사람보다도 그 자리에 계시는 성령을 주목하세요. 그리고 그 시간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예민하게 살피시기 바랍니다. 귀납적 성경공부는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테크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지혜와 영감이 있어야합니다. 영적인 부분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몸에 있는 무엇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영적 진리를 다루 니다. 이것은 모두다눈에 보이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절대적인 역사가 필요합ㅎ니다. 훈련생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서도 그 말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능력을 깊이 인식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성령의 말과 인간의 말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귀의 역사가 무엇인가도 여러분이 구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운 성경구절을 놓고 이야기하다가 목사님이 훈련생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자매가 그 질문을 받고 대답을 정확하게 잘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에 민감한 교역자가 그 대답에 반응하는 것과 성령에 대해 무관심한 교역자가 그 대답에 반응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집사님 정말 대답 잘하셨어요. 집사님 성경많이 아시네요. 언제 그렇게배웠어요? 집사님이 성경을 그렇게 잘아는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나븐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빠졌어요. 이런 대답을 한번 들어보세요. 집사님의 대답을 들으니까 집사님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군요. 집사님의 대답같은 것은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집사님에게 가르쳐 준것입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다 잘못된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 예민한 교역자의 대답은 어느쪽입니까? 잘아시죠? 그러므로 평신도의 입장에서 목사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평신도들도 성령에 예민할 수도 있고 둔감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좋은 일 은혜스러운일 아름다운 일은 항상 성령께서 하셨다고 이야기하는 지도자 밑에서 훈련받는 훈련생은 앞으로 다락방을 해도 항상 그런식으로 성령의 은혜에 민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서 체험되는 모든 은혜를 사람의 공로로 돌리지 마세요. 전적으로 성령에게 돌리십시오. 그럴수록 성령을 더 강하게 기쁘게 역사합니다. 제자반을 인도하면서 또하나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에 강조를 두십시오. 성령의 사람은 찬양하기 좋아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찬양하는 시간을 아주 잘 준비해갑니다. 여러분 가운데 찬양잘 하시는 분도 계시죠?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못하는 분이 계시죠? 아마 연세드신 목사님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요사이 가스펠송은 상당히 리듬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50대 60대 목사님은 따라가지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반박자가 늦습니다. 그러나 찬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찬양하는데 은사가 없다면 훈련생중에서 찬양에 은혜가 있는 사람, 음악을 전공한 사람을 뽑아서 사전에 준비시키십시오. 그래서 무슨 찬송 무슨 찬송 부르도록 정해주고 찬송인도는 그 사람이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찬양을 잘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가사도 외우십시오. 그래서 훈련생들이 여러분을 볼때에 목소리를 별로 좋지 않고 박자는 반박자 늦어도 아주 은혜충만해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성령의 은혜를 받습니다. 목사는 찬양잘 못한다고해서 입다물고 있다면 성령의 은혜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박수도 치고 어떤때는 손을 들고 어떤때는 일어나 춤도 추어야합니다. 성령충만한 찬양은 정말로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찬양이 제자반에 참 중요합니다. 제자훈련시간이 두시간이라고 합시다. 적어도 찬양할 시간을 20분은 가져야 합니다. 너무 성경공부하는데만 시간 다 빼앗기고 기도도 못하고 찬양도 못한다면 제자훈련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시간의 디자인을 잘해야합니다. 120분을 가지고 어떻게 시간을 균형있게 잘 잡을 것인가를 사전에 잘 생각해야합니다. 제자반에 모이면 적어도 30분 기도시간을 가지도록 해야합니다. 처음에 한 10분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말씀공부한 후 그 말씀공부 내용을 그대로 펴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적어도 20분 이상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제자반은 20분 기도로 안됩니다. 한 사람 한사람 돌아가며 기도해도 적어도 10분 걸리고 어떤제목으로 합심해서 기도해도 5분이상이 걸립니다. 그리고 훈련생 하나하나의 문제를 놓고 오픈하며 나눈 내용을 종합해볼 때 꼭 기도해야할 사람이 여러명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고 돌아가며 기도하면 20분은 금방지나갑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말씀배우고 기도하는데 전력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면 기도하는중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심령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병이 고침받습니다. 사단의역사에서 자유합니다. 이와같은 은혜가 있을 때 제자훈련이 성령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저 교재 공부하는데만 시간다 보내고 오늘 시간 너무 많이 갔네요. 주기도문 하고 끝냅시다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하고자 하시면 장애요인 몇가지를 제거해야합니다. 남이 모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죄인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끊지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주님앞에 철저히 정리하셔야합니다. 우리목사들도 인간입니다.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시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남자로서 여제자반을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여자들중에는 목사의 관심을 끌수 있는 여자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들가운데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아주 외국에가서 오래 해어져 있는 자매도 있을수 있습니다. 과부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 한것은요. 목사의 마음에 관심이 가는 여자가 은혜를 더 잘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리구요.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목사는 그럴수록 그 자매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잘 못하면 나중에 심각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요소를 제거해야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목사는 제자훈련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 사람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요. 큰 거짓말이 아니예요. 사소한 거짓말이예요. 그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버리니까 지난시간에 이야기한 것이 조금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그 다음 시간에 와서 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두번도 아니고 자주 반복되면 우리 목사님은 한번씩 거짓말 잘한다는 생각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제자반이 성공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마십시오. 제 친구중에는 갑자가 세미나를 마치고 가서 너무 흥분해서 제자반을 7개만든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어떻게 일주일에 7시간이 지도할 수 있습니까? 그 목사는 지금 7반해서 84명의 평신도 사역자가 나오면 교회가 금방 달라질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한 것입니다. 빨리빨리 제자를 만들어 빨리 부흥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7개도 작아요 할수 있다면 70개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줄이고 3개만 해라. 너 나중에 아무것도 못한다. 큰일난다. 난 너 장례식에 안갈거야.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7개 반을 운영하면 설교준비는 언제할 것인가? 나는 설교 준비 특별히 필요 없어. 우리 교회 교인들은 마음이 너무 좋아서 10년전 원고 빼서 약간 수정하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어. 그런데 몇 달후 전화걸었더니 그 목사 미국에 가고 없어요. 왜 미국갔느냐고 했더니 비서가 몸이 안좋아서 갔데요.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대요. 그 후에 그 목사님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났어요. 8년동안 제자훈련을 절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만났어요. 또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7반을 또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으로 볼 때 제자훈련은 3반이상은 하기 어렵습니다. 3반도 굉장히 힘듭니다. 잘못하면 설교준비할 시간이 없을 만큼 피곤합니다. 잘못하면 기도할 시간을 다 빼앗겨버립니다. 피곤하면 집에 와서 들어누워야하쟎아요. 쉬어야하잖아요. 그러니 기도시간도 짧아지고 설교준비도 짧아지고 합니다.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제자훈련을 잘하면 잘할수록 설교는 더 중요해집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면 모든 성도들의 영적 식욕이 달라집니다. 옛날에는 설교할 때 졸던 사람이 이제는 눈을 또록또록 뜨고 목사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설교를 해주어야합니다. 제자훈련 잘했는데 설교잘 못하면 성도들 다 도망가버립니다. 그러므로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처음 시작한 한 반을 아주 중요하게여겨야합니다. 처음하는 첫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첫반이 성공하면 그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제자훈련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갖게 됩니다. 제자훈련을 받는 분들을 통해 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 제자반을 실패하면 그 다음에 제자훈련을 끌어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처음 제자반에 생명을 거십시오. 정말 미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다해야합니다. 내일이면 집에 돌아갑니다. 아마 여러분들 마음이 많이 가벼우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다락방 가셔서 여러분들 좀 느낌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가셔서 은혜받은 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교회에서 제자훈련하면서 많이 적용하시고 이번에 실망한 것은 여러분에게 자신감을 좀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냐 나도 가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좀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락방 현장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목사님들에게 평신도가 훈련받고 목회동역자가 되면 이정도는 할 수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 순장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목사님들 오셔서 다락방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항상 달렙니다. 중요하니까 힘이 들어도 꼬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21년동안 다락방에 한번 가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서 앉아 있는데 다락방을 인도할 순장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목사님, 더욱이 일본교회 목사님들을 앉혀놓고 다락방을 잘하겠어요? 순장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잘 모르시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서 앉아 있을 때 순장이 할하면 비정상이고 잘 못하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가지 메시지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신도가 목사와 함께 사역하는 작은 목사가 되면 놀라운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공부 지도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사역의 1/3정도의 사역밖에 되지 않습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은 목사 사역의 1/3정도밖에되지 않쟎습니까? 마찬가지로 순장들은 다락방에서 성경공부 가르치는 일 외에도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성령충만과 제자훈련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오늘저녁에는 바인더 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덮어 놓으시고 쓰지 마시고 저하고 이야기 좀 하세요. 예수님이 제자훈련을 3년하시고 나서 그 제자훈련의 완성은 성령충만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제자훈련의 마무리 작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성령이 교회에 임하신 시대에 삵디 때문에 꼭 제자들과 비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감동이 없는 제자훈련은 제자훈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가운대서 성령충만하지못한 제자훈련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성령충만한 제자훈련도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 35명의 부교역자들이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있고, 성령충만하지 못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있구요. 아직은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들도 있구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냐 아니냐는 구별하기가 참 쉽습니다. 제자훈련 받는 훈련생들의 얼굴표정을보면 알아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의 얼굴은 항상 밝고 빛이 납니다. 마음과 마음에 무엇인가 전달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지도하지 않는 제자반이지만 딱 보면 알아요. 그러나 제자훈련이 성령충만하지 못한 반에 있는 교인들을 보면 겉으로는 활짝 웃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요.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볼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진짜 목회자라고 할 수 있고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자는 진짜 목회자라고 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제일 고민이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지 못하는 교역자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고민이예요. 저는 기다려 줍니다. 일단은. 평신도를 희생해서라도 교역자가 성령충만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1년도 기다려주고 2년도 기다려줍니다. 그러나 소망이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내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 마음으로 몇사람을 내 보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예요. 더 이상 평신도를 희생시킬수가 없잖습니까? 여러분들도 돌아가서 제자훈련을 하면 어떤 목사님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실 분이 있고 어떤분은 성경공부 열심히 하는데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제자훈련은 열매가 없습니다. 노력은 많이 하고 힘은 많이 쓰는데 열매가 별로 없어요. 이런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 되지 않으면 얼마가지 못해서 목사도 지치고 교인도 지치고 다 탈진해버립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미 이것은 신학적인 배경에 따라서 대답이 조금 다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체험을 가지고 이야기할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어떤 기분이나 감정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성령충만한 체험도 있을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마음상태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기쁘고 평안이 있을수 있습니다. 체험이 없는 성령충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처음에 오순절 운동이 막 일어났을때는 성령충만하려면 무슨 체험이 있고 은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무슨 체가슴이 뜨거워지는 무슨 경험이 험이 있어야 하고 있어야하는줄 알고 고민을 했죠? 하다 못하면 방언이라고 해야하는데 그것도 없으니 고민이죠! 그래서 방언 가르쳐 준다는 사람한테도 한번 가봤죠. 그러나 성경에 보면 방언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쟎아요.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런 것은 엉터리예요. 그러니까 어떤때는 조용기목사님 처럼 기도하다가 가슴이 펄펄뛰는 은혜도 주십시요하고 기도했는데 안주시더라구요. 그러나 저는 그런것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강렬한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렬한 영감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느낌과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가 성령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어떤때는 독특한 느낌ㄷ고 있습니다. 어떤때는 눈물도 있습니다. 또 어떤때는 30분을 찬송해도 더 하고 싶은 내면의 성령의 역사도 느낍니다. 그러나 어떤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을때도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있든 없든 하나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성령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영의 내면의 음성을 항상 듣습니다. 예를들면 너무 바빠서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령은 꼭 마음속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아시죠? 만사 제쳐놓고 기도해라! 기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음성이 항상 들려요. 벌써 그런 음성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배를 항상 받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그 음성에 순종해서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 항상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다스리심을 잘 받지 않는 사람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성령의 내면의 음성이 잘 안들려요. 그리고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계속 자신의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순종하지 못하던 삶을 금년에는 순종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을 금년에는 고칲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주님앞에 드리지 못한 시간을 금년에는 기쁨으로 드릴수 있게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격과 삶에 있어서 발전과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변사람들이 벌써 눈치챌수 있을 만큼 변호가 일어납니다. 우리 목사에게도 마찬가지고 평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하나의 특징은 사역의 능력과 열매입니다. 설교를 해도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전도를 할 때 그 전도의 열매가 따라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거나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기도에 응답이 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령충만한 사람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아주 쉬워요. 여러분 스스로 얼마든지 자신을 평가할수 있어요. 그게 어려우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충만할 수 있어요. 우리주님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시는 법이 없어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과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은 얼마나 구분됩니까? 그러므로 성령충만이 무엇이냐는 신학적인 논쟁은 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가셔서 성령충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평가하려면 제자훈련을 일단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제자반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잘 살펴보십시오. 나 자신이 성령충만한 지도자냐 아니냐하는 것은 반년이 지나지 않아서 다 들어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여러분의 목회생명과 관계되는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 하지 못할바에는 제자훈련을 하지 마세요. 차라리 몇십명 모아놓고 성경공부 가르치세요. 그것이 더 경제적입니다. 힘들게 소그룹 만들고 힘들게 씨름할 필요 없어요. 성령충만해서 제자훈련하는 교역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누구나 한때 성령충만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하는 목회자는 항상 성령에게 붙들려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는 교역자가 되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명심해야할 것들을 몇가지 이야기하려고합니다. 목사님들가운데는 성령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을 믿지 아니하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성령을 믿지 않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가만히 보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신학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믿지 않는 신학은 기독교의 신학이 아닙니다. 성령은 삼위하나님 중에 한분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자기 대신에 보내신 하나님입니다. 성령없이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충만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믿어야만 합니다. 마음으로 성령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대항하지 마십시오. 설영이 계시는 곳이 교회요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자훈련 할 때 소그룹에서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그 제자반에 가서 앉을 때 사람이 먼저 보이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그 자리에 계심을 보아야합니다. 그 정도로 여러분은 성령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의지해야합니다. 제가 30년 경험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구약의 어느 선지자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시죠? 우리의 능으로도 안됩니다. 우리의 힘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제자훈련이 말입니다. 내 제주가지고 안되더라구요. 내가 공부많이 한 실력으로안되더라구요. 처음에는 뭔가 되는 것 같애도 나중에는 다 쭉정이야. 오직 성령이 하시는 일 만이 열매가 나와요. 저도 실패 많이 했어요. 저 제자반에서도 쭉정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 경우를 돌아보면 잘못이 저에게 있는 것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성령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자신있게 했던 제자반은 실패하게 됩니다. 여러분 무엇이 성령을 잘 안믿는 것입니까? 성령에게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을 안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자신이 먼저 은혜받으려고 몸부림 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그만큼 안믿는 것이죠. 성령보다 지기를 믿는 것이죠. 그래서 내힘으로 내 능력으로 제자훈련 해봤더니 열매가 없어요. 사람이 안 변해요. 피곤만 해요. 어떤때는 도망가고 싶어요.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또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믿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야합니다. 그것은 성령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얼마나 하세요 여러분! 목사들은 기도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밖에 목사들이 기도를 참 안합니다. 모르겠어요. 일본교회 목사님들은 어떤지! 한국교회 목사님들 기도많이 한다고 소문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들어보면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목사니까 체면 세울정도로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마 목사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도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업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데이터를 최근에 본적이 있습니다. 평균 목사님들의 기도시간이 15-20분이었습니다. 5분기도하는 목사도 참 많아요. 그러니까 평균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2-3시간도 있어요. 그런데 30분 이내로 기도하는 사람이 70-75%정도 되요. 그러니까 평균 20-30분정도 기도한다는 거예요. 물론 기도를 시간으로는 측정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에서 밥을 할 때 제대로 되려면 어느정도의 뜸은 들여야하잖아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시간을 길게 갖습니다. 어느정도 길게 갖느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만큼 길게 갖습니다. 자기의 형편이 20분 이상 절대로 낼수 없다면 20분이 최고의 기도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하는 중에서 중요하지 않는 것 좀 제외하면 1시간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20분 기도하고 끝나버린다면 성령을 사모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참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최선의 시간을 갖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교역자들 기도 많이 안해요. 너무 기도하지 않고 하고 싶고 재미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기도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거예요. 얼마나 재미 있는 일이 많습니까? tv위성방성을 틀어놓으면 수백개의 채널이 있습니다. 180개 채널을 1분만 틀어보아도 180분이 필요합니다. 인터넷 서핑을 한다고 해보세요. 한번 들어가서 한시간 안에 끌수 있습니까? 너무 보고싶은 것이 많고 알고싶은 것이 많은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모든 문명과 모든 유행을 다 동원해서 어떻게하든지 기도시간을 줄이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유혹에 넘어가고 있어요. 신문들고 한시간을 왜 보고 앉아 있습니까? 제목만 보면 끝날 것을. 맨날 나오는 이야기 제목만 딱 보면 성령의 사람은 내용을 다 압니다. 성령의 사람은 벌써 신문에 나오지 않은 다음의 이야기도 다 압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보고 시간 절약하면 40분 가까이 기도할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신문을 위해서는 한시간을 보내면서도 기도하는데는 10분도 앉아 있지를 못해요.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그런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께서 저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기가 쉽다고 생각됩니까? 어렵다고 생각됩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저같이 몸이 좀 약한 사람일수록 더 욱 그렇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제일 쉬운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ㄱ입니다. 그러므로 거꾸로 뒤집으면 저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는 영적 전투입니다. 저에게 기도하지 못하도록 사단이 지금 마귀를 끌고 진을 치고 있는지 영의 눈으로 보여요. 제가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의 간절함이 없다면 기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을 사모합니다. 정말 눈물 겹도록 성령을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과 도움이 없으면 이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린아이처럼 성령에게 매달리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것이그렇게 어려울수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피곤할때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요. 누워있고 싶을때는 기도가 안나와요. 그렇다고 남들처럼 철야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형편에서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든지 기도를 게을리하면 저의 사역이 병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저는 최소한 하루 한시간씩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돌아오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아내와함께 30분씩 기도합니다. 이번 세미나는 저에게 굉장히 어려운 세미나입니다. 아마 42번 세미나 한중에서 이번 만큼 어려운 세미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월요일 같은때는 기도를 못했어요. 주일날 하루종일 일하고 월요일날 쉬어야하는데 여기 내려왔고 그래서 몸이 도데체 말을 듣지 않아서 기도도 못했습니다. 일본 모고히자 세미나를 앞에 놓으면마귀의 공격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우리교회 중보기도팀과 교인들은 이 세미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계속 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을 저는느껴요. 여러분 모두 한분한분이 돌아가서 성령충만한 제자훈련하면 마귀고 손들어야합니다. 항복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결사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시면 틀림없이 여러분 기도못하도록 공격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6층에 제 기도실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한 두시간 있었습니다 모든 변명을 다 접어두고 하나님RP 나아가 무릎 꿇으면 하나님은 시간시간마다 틀림없이 은혜주시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기 원하면 성령을 사모하세요.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최우선에 둡니다. 루터의 말을 기억합니까? 나는 평소에 한시간씩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바빠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한다. 여러분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을 항상 유지하기만 한다면 제자훈련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오후에 강전도사 강의를 들으셨죠. 뒤에 있기 때문에 이말하기는 조금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저의 비서로 들어왔어요. 그 다음에는 20대 후반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제자훈련 전도..... 모든 것을 따라 다니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전도사가 지도하는 제자훈련이나 사역훈련을 보면 좀 다른데가 있어요. 그 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들도 문제의 해결을 받아요. 주님에게 헌신하지 않던 사람들이 헌신을 해요. 부부간에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문제의 해결을 받아요. 기도하지 않던 사람들이 기도를 열심히 해요. 하여튼 변화가 일어나요. 한 일년 강전도사 밑에서 훈련받고나면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달라져 버려요. 그리고 그 반에서 나온 사람들을 순장을 시켜놓으면 다른 순장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달라요. 왜 이와같은 역사가 있는가?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 하는 것을 옆에서 계속 주목했어요. 물론 가르치는 은사도 있고 열심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저는알고 있어요. 강전도사는 누구 보다도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반 한사람 한사람을 놓고 매일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제자반 놓고 기도할 때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저 전체로 묶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제자반 식구들 하나하나 축복해주시옵소서. 그럼 시간도 절약되고 굉장히 좋지 않습니까? 또 어떤 교역자는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요. 그러나 그 한사람을 놓고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기도는 많이 못해요. 제자훈련을 시키면 한 사람에 대해서 영적 상태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한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요 10분을 기도해도 모자랄 정도로 기도제목이 있어요. 그런 기도에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성령의 감동이나와요. 기도는 그 만큼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교회 다른 교역자들은 기도 형편없이 한다고 듣지 마십시오. 다들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순장들 중에서 너무 일잘하고 능력있고 너무 매력있어서 불러서 누구에게 제자훈련 사역훈련 받았느냐고 물으면 강전도사 반이라고 대답해요. 눈물의 기도가 예수의 제자를 만듭니다. 눈물이 뿌려지는 곳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을 사모하세요. 성령은 먼저 여러분을 감동시키시고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또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성경말씀을 펴놓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세요. 성경을 펴놓고 머리싸움을 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세요. 그리고 그 말씀에 여러분의 삶을 복종시키세요. 여러분에게 소화된 성령의말씀을 들고 제자반으로 나가세요. 제가 제자훈련 직접 가르치고 사역훈련을 할 때 제가 실수를 여러번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주에 사역반을 3반을 맡았을때는 똑같은 교제 내용을 3번 반복해서 가르쳐야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제일 큰 유혹이 뭔지 압니까? 그 교제는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두 번 쳐다 볼 필요가 없어요 다 압니다. 그러니까 전혀 준비하지 않고 그대로 들고사역반에 들어가는것입니다. 첫시간에는 좀 준비해서 들어가요. 그러나 두 번째 반 세 번째 반에는 전혀 준비하지 않고 들어가요. 그것이 잘못된 것은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시간마다 교재의 내용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안된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준비하지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해서 교재들고 들어가서 가르치고 훈련하는 반은 나중에 꼭 좋지 못한 표가 나와요. 더욱이 여러분이 제자훈련을 3년 5년 반복하다 보면 매년 같은 교재로 훈련합니다. 그러면 한 2년 정도 공부하면 3년째부터는 더 이상 예습도 필요없습니다. 그래서시간만 되면 그냥 들어갑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가 빠졌어요. 그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말씀을 펴놓고 시간시간마다 성령께서 새롭게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똑같은 말씀이지만 성령께서는 새롭게 역사합니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 중에서 제자훈련 많이 한사람들은 10년이상 15년 이상 제자훈련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교재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교역자들이 여러명 있어요. 시간마다 그 교재를 펴놓고 자기가 그 말씀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그 말씀을 통해 은혜받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다 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그 시간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느냐하는 것이 문제예요. 말씀앞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자세는 성령충만한 지도자가 되는데 필수요건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면 여러분이 QT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가집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역자들은 잘못하면 QT하지 않고 그냥 들어갑니다. 그래서 훈련생들 보고 하나하나 발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교역자가 직접 자기 QT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훈련생들의 QT를 들으며 은혜 받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은혜받은 것을 나누는 것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위해서 제자반을 인도하는데 몇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자반을 지도할 때 사람보다도 그 자리에 계시는 성령을 주목하세요. 그리고 그 시간 서로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예민하게 살피시기 바랍니다. 귀납적 성경공부는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테크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지혜와 영감이 있어야합니다. 영적인 부분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몸에 있는 무엇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영적 진리를 다루 니다. 이것은 모두다눈에 보이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절대적인 역사가 필요합ㅎ니다. 훈련생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면서도 그 말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능력을 깊이 인식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성령의 말과 인간의 말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귀의 역사가 무엇인가도 여러분이 구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운 성경구절을 놓고 이야기하다가 목사님이 훈련생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자매가 그 질문을 받고 대답을 정확하게 잘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에 민감한 교역자가 그 대답에 반응하는 것과 성령에 대해 무관심한 교역자가 그 대답에 반응하는 것은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집사님 정말 대답 잘하셨어요. 집사님 성경많이 아시네요. 언제 그렇게배웠어요? 집사님이 성경을 그렇게 잘아는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나븐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빠졌어요. 이런 대답을 한번 들어보세요. 집사님의 대답을 들으니까 집사님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군요. 집사님의 대답같은 것은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집사님에게 가르쳐 준것입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다 잘못된 대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 예민한 교역자의 대답은 어느쪽입니까? 잘아시죠? 그러므로 평신도의 입장에서 목사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평신도들도 성령에 예민할 수도 있고 둔감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하면서 좋은 일 은혜스러운일 아름다운 일은 항상 성령께서 하셨다고 이야기하는 지도자 밑에서 훈련받는 훈련생은 앞으로 다락방을 해도 항상 그런식으로 성령의 은혜에 민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에서 체험되는 모든 은혜를 사람의 공로로 돌리지 마세요. 전적으로 성령에게 돌리십시오. 그럴수록 성령을 더 강하게 기쁘게 역사합니다. 제자반을 인도하면서 또하나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에 강조를 두십시오. 성령의 사람은 찬양하기 좋아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찬양하는 시간을 아주 잘 준비해갑니다. 여러분 가운데 찬양잘 하시는 분도 계시죠?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못하는 분이 계시죠? 아마 연세드신 목사님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요사이 가스펠송은 상당히 리듬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50대 60대 목사님은 따라가지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반박자가 늦습니다. 그러나 찬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찬양하는데 은사가 없다면 훈련생중에서 찬양에 은혜가 있는 사람, 음악을 전공한 사람을 뽑아서 사전에 준비시키십시오. 그래서 무슨 찬송 무슨 찬송 부르도록 정해주고 찬송인도는 그 사람이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찬양을 잘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가사도 외우십시오. 그래서 훈련생들이 여러분을 볼때에 목소리를 별로 좋지 않고 박자는 반박자 늦어도 아주 은혜충만해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성령의 은혜를 받습니다. 목사는 찬양잘 못한다고해서 입다물고 있다면 성령의 은혜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박수도 치고 어떤때는 손을 들고 어떤때는 일어나 춤도 추어야합니다. 성령충만한 찬양은 정말로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찬양이 제자반에 참 중요합니다. 제자훈련시간이 두시간이라고 합시다. 적어도 찬양할 시간을 20분은 가져야 합니다. 너무 성경공부하는데만 시간 다 빼앗기고 기도도 못하고 찬양도 못한다면 제자훈련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시간의 디자인을 잘해야합니다. 120분을 가지고 어떻게 시간을 균형있게 잘 잡을 것인가를 사전에 잘 생각해야합니다. 제자반에 모이면 적어도 30분 기도시간을 가지도록 해야합니다. 처음에 한 10분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말씀공부한 후 그 말씀공부 내용을 그대로 펴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적어도 20분 이상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제자반은 20분 기도로 안됩니다. 한 사람 한사람 돌아가며 기도해도 적어도 10분 걸리고 어떤제목으로 합심해서 기도해도 5분이상이 걸립니다. 그리고 훈련생 하나하나의 문제를 놓고 오픈하며 나눈 내용을 종합해볼 때 꼭 기도해야할 사람이 여러명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고 돌아가며 기도하면 20분은 금방지나갑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말씀배우고 기도하는데 전력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면 기도하는중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심령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병이 고침받습니다. 사단의역사에서 자유합니다. 이와같은 은혜가 있을 때 제자훈련이 성령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저 교재 공부하는데만 시간다 보내고 오늘 시간 너무 많이 갔네요. 주기도문 하고 끝냅시다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하고자 하시면 장애요인 몇가지를 제거해야합니다. 남이 모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 있습니까/ 죄인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끊지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주님앞에 철저히 정리하셔야합니다. 우리목사들도 인간입니다.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시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남자로서 여제자반을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여자들중에는 목사의 관심을 끌수 있는 여자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들가운데는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아주 외국에가서 오래 해어져 있는 자매도 있을수 있습니다. 과부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 한것은요. 목사의 마음에 관심이 가는 여자가 은혜를 더 잘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리구요.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목사는 그럴수록 그 자매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잘 못하면 나중에 심각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요소를 제거해야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목사는 제자훈련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 사람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요. 큰 거짓말이 아니예요. 사소한 거짓말이예요. 그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버리니까 지난시간에 이야기한 것이 조금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그 다음 시간에 와서 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두번도 아니고 자주 반복되면 우리 목사님은 한번씩 거짓말 잘한다는 생각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제자반이 성공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마십시오. 제 친구중에는 갑자가 세미나를 마치고 가서 너무 흥분해서 제자반을 7개만든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어떻게 일주일에 7시간이 지도할 수 있습니까? 그 목사는 지금 7반해서 84명의 평신도 사역자가 나오면 교회가 금방 달라질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한 것입니다. 빨리빨리 제자를 만들어 빨리 부흥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7개도 작아요 할수 있다면 70개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줄이고 3개만 해라. 너 나중에 아무것도 못한다. 큰일난다. 난 너 장례식에 안갈거야.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7개 반을 운영하면 설교준비는 언제할 것인가? 나는 설교 준비 특별히 필요 없어. 우리 교회 교인들은 마음이 너무 좋아서 10년전 원고 빼서 약간 수정하면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어. 그런데 몇 달후 전화걸었더니 그 목사 미국에 가고 없어요. 왜 미국갔느냐고 했더니 비서가 몸이 안좋아서 갔데요.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대요. 그 후에 그 목사님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났어요. 8년동안 제자훈련을 절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만났어요. 또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7반을 또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으로 볼 때 제자훈련은 3반이상은 하기 어렵습니다. 3반도 굉장히 힘듭니다. 잘못하면 설교준비할 시간이 없을 만큼 피곤합니다. 잘못하면 기도할 시간을 다 빼앗겨버립니다. 피곤하면 집에 와서 들어누워야하쟎아요. 쉬어야하잖아요. 그러니 기도시간도 짧아지고 설교준비도 짧아지고 합니다.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제자훈련을 잘하면 잘할수록 설교는 더 중요해집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을 하면 모든 성도들의 영적 식욕이 달라집니다. 옛날에는 설교할 때 졸던 사람이 이제는 눈을 또록또록 뜨고 목사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설교를 해주어야합니다. 제자훈련 잘했는데 설교잘 못하면 성도들 다 도망가버립니다. 그러므로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처음 시작한 한 반을 아주 중요하게여겨야합니다. 처음하는 첫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첫반이 성공하면 그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제자훈련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갖게 됩니다. 제자훈련을 받는 분들을 통해 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 제자반을 실패하면 그 다음에 제자훈련을 끌어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처음 제자반에 생명을 거십시오. 정말 미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제자훈련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다해야합니다 |
출처: 행복†충전소 원문보기 글쓴이: DM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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