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제자훈련
제자훈련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교회를 교회되도록 하느냐 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교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인격으로 내면화 된 소수의 그리스도의 제자를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주님이 원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목회를 하실까? 의 문제로부터 훈련이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의 내면의 죄된 본성과 옛 습관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역에 집중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인도자나 피인도자가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거기서 얻는 비젼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주님의 동역자로 마인드 작업을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제자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제자도에서 말한 전적인 위탁의 부분과 증인의 요소와 종의 삶의 원리가 내면화 되어 삶으로 투영되어 안디옥 교회가 최초로 "그리도인"이란 별명을 얻은 것처럼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사역입니다. 수피바아지드라는 사람이 혈기 왕성한 청년이 되었을 때에 이렇게 기도하였답니다. "주여 저에게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수피바아지드는 날로 부패되어 가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열정적인 기도를 쉬지 않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장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청년 때에 그렇게 열망했던 이 세상은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시키고자 하였지만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여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수피 바야지드는 이제 기도 제목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이제 자기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면 세계는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했던 바야지드는 애써 기도하면서 지나다 보니 어느덧 노년기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니 어제의 세상이 오늘의 세상이고, 장년 때의 세상이 노년 때의 세상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변화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조금 낙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자기의 기도 제목을 또 한번 바꾸었습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여! 이제 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제게 주옵소서! 이제서야 저의 우둔함을 깨달았나이다. 제가 진작 이런 기도를 드렸다면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됩니다."라고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인생 말년에 와서야 자기의 우둔함을 깨닫고 그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생각! 그것도 가상하기는 하지만 자기로서는 적용 불가능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만난 모든 사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이것도 참으로 아름다운 비전입니다만 이제 깨닫고 보니 변화되지 않은 자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예전엔 미쳐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남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제 내 자신 먼저 변화시켜 보자!"라고 하는 감동을 받고 그의 기도 제목을 "주여 제 자신을 변화시킬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내가 변하면 나를 만 나는 모든 사람이 변화될 것이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변화된다면 이 세상은 반드시 변화될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 바로 이부분을 먼저 터득하고 주님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목회자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제자훈련을 원하는 모든 종들이 먼저 구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내면화하여 문제를 안에서 찾고 주님앞에 겸손한게 무릎 꿇은 것입니다. 내 자신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여호와의 단을 회복하는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과 관계 즉 주님과 늘 동행하면서 그 은혜로 사는 방법을 아는 인격은 그 자체가 주님의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 강조합니다만 주님의 방법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순종을 연습하면서 심령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하나님을 볼 것이며 그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기도의 패턴을 바꾸십시오. "주여 내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바울은 해산하는 고통을 감내한 다고 고백합니다. 예수의 새생명으로 태어남이 없이는 영적인 재생산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영적인 성숙만큼 질적인 제자를 양육할 수 있다고 볼때에 제자훈련을 생각하는 모든 종들은 자신을 준비시켜 나가는 훈련을 겸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로 훈련받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임으로 제자훈련을 실시하면서 참여하는 멤버쉽을 가지고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어떤 과정이나 어떤 프로그램을 마스터 했다고 끝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책에 밑줄을 긋지말고 우리의 생활을 말씀으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말씀의 사람 순종의 사람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성화되기를 열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섬기는 제자의 영광 제자훈련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 중에 동역의 기쁨이 있다. 산모가 해산하는 진통과 고통이 있다손 치더라도 새로운 생명을 낳았다는 것으로 그 모든 아픔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제자훈련의 참 기쁨은 한 영혼을 양육하여 다른 제자를 섬기는 작은 목자로 배출하였을 때 그 기쁨은 더욱 배가로 큰 것을 누리게 된다. 본 훈련원의 4단계의 훈련 과정을 이수하는데는 긴 시간과 에너지와 정열을 다 쏟아 긴 여정이긴 하여도 그 한 영혼이 반듯하게 작은 목자로 세움을 받게 될 때 목회자가 그들과 함께 동역할 수 있는 교회의 힘이요 자산인 것이다. 주님께서도 제자을 부르신 목적이 주님을 대신하여 재생산의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다.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傳道)도 하며(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權勢)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주님과 함께 동거하는 삶을 통하여 양육되고 훈련되는 일이 우선이다. 훈련되고 준비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사 전 도도 하고 죄악과 마귀에게 사로 잡힌 자들에게 주님이 주신 능력과 권세와 말씀으로 치료하고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도록 제자들을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이와같은 주님이 부르신 부르심에 충실하기 위하여 필자는 분당에 개척을 하여 7년을 지나면서 10여몀의 작은 목자를 배출하여 교회의 모든 사역을 함께 감당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감격스럽고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모든 종들이 주님이 교회를 섬기면서 누렸던 그 영광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주님의 주권에 항복한다는 것이 제자훈련의 열매요 재생산의 풍성함인 것이다. 교회의 사역은 더이상 목회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젠 과감히 평신도들이 자기 위치를 찾고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공동으로 섬기는 유기체로 성경이 말하는 본래적인 체질을 바꾸어야 교회가 살고 평신도가 살고 목회자가 산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목회자가 평신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평신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과감히 사역을 위임하여 그들의 설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재생산을 위한 양육의 체제중에 제자훈련 과정만큼 단계적으로 영혼을 세우는 일에 유익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교회 안에 어떤 사역도 한영혼을 주님의 제자로 쓰임받는 동역자로 길러내야 한다. 이 사역은 인내가 필요한 사역이다. 유행처럼 지나가는 그런 사역이 아니다. 많은 교회가 제자훈련의 흉내만 내다가 말고서 제자훈련을 폐기처분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이 분부하신 대 위임명령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유행을 타지 않고 지속될 사역임 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80년대 잠시 유행처럼 스쳐지나간 한물간 사역으로 오해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성경이 시대와 유행을 타지 않고 영원한 진리인 것처럼 주님의 제자훈련 사역은 오늘의 교회가 늘 긴장을 가지고 재생산을 위하여 투자하여야 할 중요한 핵심 사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주님의 동역자로 평신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은 목회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역인 것이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 어다"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서 평신도들을 자라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 그 영광과 축복을 누리도록 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 사역은 목회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조용히 모든 사역들을 점검하고 본질을 회복하여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고 본다. 남의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그런 수박 겉 핥기식의 것 말고 모든 사역이 목회자의 몸에 체질화하여 비젼이 흔들리지 않는 자신 있는 지도자로 자신을 준비시키는 일을 먼저 해야한다. 이것 저것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 유리 방황하는 목회자들이 있을 법하다. 좋다는 세미나는 다 쫒아 다니고 좋다는 프로그램은 다 도입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역의 장을 짬밥통을 만들어 가는 현장도 목격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제자훈련의 매력과 그유익을 알기에 절대로 어떤 프로그램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사역인 것을 확신하고 이 사역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고 이 마인드로 목회를 하기로 목표를 설정했다. 인간의 약함으로 열매가 더딜 수가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은 12명의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훈련으로 세계를 복음화 하지 않았던가! 이런점에서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본 훈련원의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더욱 충성스럽게 사역을 돕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가고 있음을 감사한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하여 주님의 심장으로 겸손하게 반응하며 섬기기를 원한다. 여기에 뜻이 있는 동역자들의 마음과 생각과 지혜를 모아 주님의 이 뜻을 성취해 나갈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해 아래 새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에게 주님이 거져 주신것들을 함께 나누어 우리의 목회의 현장을 기름지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일에 함께 동역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겉사람을 부수어가는 제자훈련 왜 목회가 힘든가? 왜 신앙생활이 고달픈가? 왜 교회안에서 헌신으로 시비가 있는가? 단 한가지 이유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그의 사역을 방해하며 저지하는 요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발견해야합니다. 바울 사도가 내 속에 한법 육신의 범과 또 다른 법인 성령의 범이 내속에서 싸워서 아무 것도 이룰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신앙의 갈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갈등은 주님의 제자들 이 품고 살아가는 겉사람과 속사람의 동거 떄문에 일어나는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히고 주님을 섬기면서 나의 겉사람이 내 속에 있는 영의 지시와 통제에 거역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영적인 삶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육의 본질을 지닌 겉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영을 사용하여 주님과 함께 교통할 수 있으며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감동하고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속사람인 영으로 다른 지체의 영을 만지며 또한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영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만져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계시를 영으로 만지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깨어지지 못한 겉사람 때문에 영을 사용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때에 모든 것이 주의 영으로 공급되며 헌신하는 것이 아니고 영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인 육의 것으로 하였기에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전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이 헛 수고요 열매없는 봉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주 넘어지고 다른 지체와 충돌가고 자신의 희생으로 자만하고 또한 달느 사람의 나태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바리세인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영은 생명이요 육은 무익한 것입니다. 제자훈련 하는 모든 종들은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겉사람 과 속사람을 일치시키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일치가 없다면 아직 도 제자가 아닙니다. 아니 제자훈련을 시킬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이 겉 껍질이 강하고 두꺼울수록 무능한 그리스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옆에 서있기만 해도 우리의 심령이 손상을 입고 생명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롬7:22)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엡3:16)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이처럼 성경은 우리의 속사람과 겉사람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거하시는 그 사람의 영은 속사람이고 그 사람 밖은 겉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겉옷을 입은 것 처럼 겉 사람의 옷을 입고 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과 영과 생명을 두신 지성소는 바로 우리의 속사람인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습니다. 이 지성소가 있는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속사람 밖에는 우리의 감정 생각 경험 지식이 감싸고 있으며 이 것을 덮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입니다. 만일 겉 사람이 무너지지 아니하면 속에 있는 모든 생명이 감금된 감옥과 같아서 밖으로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겉사람을 뚫고 나오는 훈련을하지 못한다면 제자훈련은 실패합니다. 가롯유다는 육이 무너지 않아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내 속에 속사람이 겉 사람을 뚫고 나오는 훈련 그것이 제자훈련이라는 것입니다. 겉사람인 육이 어떻게 뭉개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서 내속에 영이 풍성하게 활동하느냐의 관건이 사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임을 명심할 일입니다. 제자훈련의 기본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히딩크의 용별술보다 더 큰 열매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부서집시다. 깨어집시다. 더많이 뭉개집시다. 그런후에 당신 안에 영이 능력을 행할 것입니다. 내가 약할 때 그 능력으로 강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의 훈련이 겉사람 이 부서지는 연습인 것입니다. 맛에는 오미(五味)가 있습니다. 이 맛은 세계인이 함께 다 느끼는 맛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이 오미보다 더 오묘한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발효된 맛, 삭은 맛입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짱아치, 김치 등 한국 음식의 90% 이상이 발효된 음식입니다. 김치는 재료가 다 발효되어 전혀 새로운 하나 의 오묘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 발효된 과정, 발효의 맛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상한 심령입니다. 성도가 발효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맛을 내지 못하는 한국 음식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발효가 되지 않은 김치를 즉석에서 먹어보면 매운맛, 신맛, 단맛, 짠맛, 그대로 다 납니다. 그러나 그 오미가 삭혀지면 맛이 없어지고 오묘한 삭은 맛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마늘이 들었어도 삭혀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더 맛나게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발효된 심령으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개밥에 도토리 굴러다니듯 혼자 굴러다니면 안됩니다. 자기 맛은 죽고 남의 맛을 더 돋구어 주는 발효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맛이 발효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여전히 자기 생각, 자기 기준, 자기 공로, 자기 칭찬을 요구합니까? 이런 것은 아버지 앞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맏아들의 생각은 아버지가 기뻐하는 생각 속에 전부 들어가서 삭혀져야 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세속적인 생각, 자기 중심의 감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가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 안에 서 육의 겉사람이 모두 삭혀지면 우리 안에 영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령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진정한 영의 해방이 육의 겉껍질이 삭아 녹아지고 역사하는 상한 심령으로 훈련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소엽교수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더 많이 부서져야 하리 이생의 욕심이 하얗게 부서져 소금이 될때까지 무너져야 하리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 이기적 자아가 푸르런 상처러 질펀히 눕기까지 깨어져야 하리 더 많이 깨어져야 하리 교만한 마음이 산산히 부서져 흰 파도 될때까지 씻겨야 하리 더 많이 씻기고 또 씻겨 때가 낀 영혼이 말끔히 씻기어 하늘에 그 얼굴 비추기까지 나는 바다되어서 이땅의 모든 것 미련없이 다버리고 하늘의 평화를 얻으리라 슬픔도 괴롬도 씻기고 부서져서 맑고 깊은 바다되어서 모든 부패를 삭히어 주는 맑고 깊은 바다되어서 그 영혼의 바다에 사랑의 별 하나 뜨게 하리 깨지고 부서지고 뭉개져 버린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바로 천국은 그런 자의 것입니다. 주님은 이시간도 다 뭉개져 버린 채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제자를 통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신는 누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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