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설교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2장

에반젤(복음) 2022. 9. 17. 07:26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2장
해를 옷 입은 한 여자 (계 12:1-17)


해를 옷 입은 여자에 대한 환상은 일곱 대접재앙이 주어지기 전에 반드시 깨닫고 넘어가야 할 일곱 개의 삽경 중에서 맨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일곱 개의 삽경이란 해를 옷 입은 여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육백 육십 육, 십사 만 사천, 세 천사의 경고, 그리고 두 종류의 추수 등 일곱입니다.


이 일곱 개의 삽경의 의미는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대략적으로 교회론, 육체론, 세속론, 미혹론, 성화론, 회개론, 추수론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의 문제점 때문에 연단의 대접재앙이 필요하다는 서론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는 한 마디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참 교회의 모습으로 교회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계 12:1-2)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1.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1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갈4:26, 엡5:32-33, 벧전5:23. 계19:7, 계21:9, 요3:29). 하와도 교회의 상징입니다. 아담이 깊이 잠들매 하나님께서 거기서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는데 이는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되는 귀한 예표입니다(갈4:26-28). 이 비유는 신약에서 바울이 재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엡5:31-32).


2.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해를 옷 입”었다고 했는데 해는 하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시84:11, 눅1:78-79, 마4:16, 시72:5-17, 시89:36, 시84:11). 그러므로 해를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뜻합니다(갈3:27, 롬13:14).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신비적 연합은 중생과 칭의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하나 시간적으로는 동시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비적 연합을 이루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늘에 속한 모임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교회를 소개하면서 하늘의 이적이라고 함은 교회가 하늘에 속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육신은 아직 지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골1:13-14, 골3:1-4). 그러므로 성도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골3:2-3).


4.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여기 큰 이적이라 했는데 수많은 이적 중 가장 큰 이적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입니다. 다른 이적과 말씀은 모두 이것을 예표하기 위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품입니다(고후5:17, 엡5:26-27, 계21:1-2).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거하는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엡1:22).


5.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한 여자가 있는데” 한 여자는 교회의 유일성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아담에게 한 여자만을 만드셔서 주셨습니다(말2:15). 교회의 구성원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엡2:15-22). 성령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엡4:3-6). 그러나 타락한 교회와의 교리와 직제의 일치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6. 예수 안에서 승리자입니다.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고대에서 무엇을 발아래 둠은 승리의 표시였습니다(시110:1). 그런 고고학적 증거가 그 시대의 부조 등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달은 커졌다 적어졌다 변천하는 것으로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달이 여자의 발 아래 있다는 것은 교회란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요16:33, 요일4:4, 요일5:4, 히11:38).


7.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했는데 성경에서 야곱의 아들들을 열두 별로 표시했습니다. 계1:20에 별이 교회의 사자라고 한 것처럼 열두 별은 12사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졌습니다. 맨 아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 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교리가 있습니다(엡2:20). 그런데 여자가 쓴 열두 별의 면류관에서 면류관의 의미가 그렇듯 교회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이 다스리고 지배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8. 전도와 양육의 사명을 가졌습니다.


2절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여자의 해산의 수고는 전도와 양육을 위해 애쓰는 교회의 모습입니다(갈4:19).




교회를 대적하는 사탄 (계 12:3-4)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니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교회는 지극히 영광스럽지만 사단에게 끊임없는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대적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루며 지금도 교회를 향한 방해와 박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벧전5:8-9).


교회를 대적하는 사단의 존재는 어떤 것입니까?


1. 교묘하고 괴이한 존재입니다.


3절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1절의 “하늘에 큰 이적”과 대조되는 이적, 그러나 다른 이적이지 그보다 큰 이적은 아닙니다. 큰 이적은 구원의 이적이지만 사탄의 하는 일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교회와 같이 하늘의 이적이라고 한 것은 사탄의 공중권세를 암시하는 용어입니다(엡2:2). 여기 공중권세는 세상에 대한 사탄의 통치, 사탄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귀를 세상임금이라 했습니다(요12:31).


예수 안에서 사탄의 통치는 무너졌지만(요12:31), 아직 세상에서는 사탄의 활동이 계속 중입니다(엡2:2).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지상에 있는 성도의 기도의 여부에 따라 세상에 있어서 사탄의 영향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2. 악하고 교만한 세력입니다.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성경에서 용의 의미는 먼저 악함입니다. 사27:1에 “리워야단”은 ‘악어’로 번역되는 단어로 벌하신다는 것을 보니 악함의 상징입니다. 붉은 용이라 한 것은 사탄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교만한 사탄을 상징하는 두로의 왕의(겔28:1-19) 나라인 베니게는 염료공업이 발달하여 ‘붉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용이기에 하나님 나라의 큰일을 방해하는 자이고 모든 세대적이고 세계적인 존재입니다.


3. 지모지략이 뛰어난 존재입니다.


머리가 일곱이요” 7은 사역의 완전수로서 머리가 일곱임은 지모지략이 완벽에 가까울 만큼 뛰어난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머리가 일곱이라는 다른 의미는 인간의 본능을 표현할 때 나오는데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알아서 행하는 본질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사악한 본질은 스스로 혹은 누구도 바꾸거나 교육시킬 수 없으며 변화되지 않는 존재요,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추방해야 하는 존재입니다(약4:7).


4. 그 권세가 막강합니다.


뿔이 열이라” 뿔은 권세와 능력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뿔이 열이었습니다. 10은 십진법에서 다 찬 만수라는 점에서 대적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특화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지만 예수님에게도 도전했습니다.


또한 10은 시험의 수라는 점에서 사단이 교회를 시험하기 위해 온갖 권세를 다 동원할 것을 보여줍니다. 로마의 10대 박해 역시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가 아니면 손 댈 수 없다는 점에서 사탄의 권세는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연단의 도구일 뿐입니다.


5. 임금의 흉내를 내고 있는 자입니다.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일곱 머리를 여러 머리라고 표현한 것은 방법의 다양성 등 머리를 쓰는 것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머리에 일곱 왕관을 썼는데 7이 완전수라는 점에서 일곱 왕관은 자신이 완전한 세상임금임을 자처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담의 왕관을 빼앗아 합법적인 세상임금 행세를 했습니다(눅4:6).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빼앗으셨습니다(요12:31-32). 그래서 쫓겨난 사탄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찾지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즉 사단은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게 세상임금 행세를 하려 할 뿐 그의 권세를 인정하지 말고 대적하는 사람 앞에서는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6. 주의 종들을 주로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


4절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했습니다. 이 구절이 하늘의 천사 3분의 1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유1:6에 “범죄한 천사들”이라 해서 복수형인 것을 보면 사탄을 따르는 다른 천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별은 주의 종들의 상징인데(계1:1:20) 사단은 주로 별들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일부의 천사를 타락시켰고, 이차적으로는 지상의 별인 주의 종들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습니다(행20:30, 계2:20).


그리고 3분의 1을 던졌는데 꼭 분량적인 의미라기보다 완전수 3중에 1을 파괴하는 것으로 본질적 변화, 여기서는 천사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단이 꼬리로 3분의 1을 던졌는데 꼬리란 세속을 비롯한 사단의 온갖 미혹을 뜻합니다. 가령 W.C.C를 반대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건전신학을 앞세우면서도 뒤로는 온갖 이단과 이교와 잡신 나아가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사단은 교회의 사역을 방해합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기 해산할 아이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예수님일 수는 없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날 자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사탄이 교회의 전도사역을 방해하고 성도의 영적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향하신 특별은총 (계 12:5-6)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앞에서 교회를 향한 사탄의 대적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강하고 집요한지 배웠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더욱 크시기 때문에(사46:3-4, 히13:5)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은총은 무엇입니까?


1. 교회를 통해 성도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5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여기에 대해 구약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로 볼 때 신약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를 낳았다는 두 설로 나뉘는데 후자로 봄이 타당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여자로 비유합니다(갈4:26-28). 그리고 여자는 어머니처럼 믿음의 자식을 낳을 뿐 아니라 양육합니다(고전4:15). 사탄의 그 방해 가운데서도 성도들을 돌보며 거듭나게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출1:8-12, 행4:1-4).


2. 악의 세력을 깨뜨릴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철장이란 산산이 부수는 무기입니다. 시편 2편의 기록에 의하면 이 철장권세는 다윗에게 준 것으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런 권세를 가질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예수 안에서 이 권세가 주어졌다는 점입니다(계2:26-27, 막16:20). 그리고 남자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고전16:13).


3. 교회에 승리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예수님은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앉으셨지 보좌 앞이 아닙니다(막16:19). 그리고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승천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아이는 예수 안에서 함께 승천한 거듭난 우리 성도들을 가리킵니다(골1:13, 엡2:6). 성도의 영적 주소는 천국이요 하나님 앞임을 알아야 합니다.


4. 특별한 연단 가운데 있습니다.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일반적으로 양육은 산모가 받는 것이 아닌데 아이는 올라가고 여자가 양육을 받을까요? 알고 보면 교회가 곧 성도들이고 성도가 곧 교회라는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하늘에 속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상의 교회에 속해 있어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언약하고 예배하며 신앙훈련을 받던 장소입니다. 광야란 말씀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정복할 용사의 믿음으로 훈련시킨 곳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특공대와 같이 오직 믿음 오직 순종 오직 담대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히4:1-6).


그런데 본문은 광야 배경에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배경이 겹칩니다. 그리고 1260일을 양육 받는다고 했는데 그 기간이 바로 3년 반 즉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연상시킵니다. 그 기간에 제자드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배워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가 되었고, 기도 말씀 찬송 사랑 겸손 담대 전도 등등 예수님의 삶을 배워 오순절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260일은 3년 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그 양육하심이 매일 섬세하고 지속적일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3절). 이 양육은 지금도 개인의 경건과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5. 지상성도를 위한 특별한 기관입니다.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 예비하신 곳은 페트라성이 될 수 없고 진정한 페트라(반석)는 하나님이 페트라이십니다. 양육하기 위해 예비된 곳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양육을 잘 받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엡4:11-13).




교회의 영적 전쟁 (계 12:7-12)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교회론에서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교회가 처한 영적 현실은 싸우지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으면서 가장 치열하고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전쟁은 바로 사탄과의 영적전쟁입니다. 사탄이 인류를 지옥에다 넣기 위해 벌이는 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전쟁은 어떤 것일까요?


1. 신령한 전쟁입니다.


7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여기 하늘은 선과 악의 존재들이 싸우는 걸 보아 공간개념이라기보다 영적세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교회가 영적싸움을 하면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물러가게 됩니다(엡2:2). 성도의 영적전쟁은 바로 이 영역과의 충돌에서 발생합니다(계12:10-11).


이 씨름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도는 가만있는데 천군장 미가엘이 싸우는 그런 전쟁도 아닙니다. 언제나 천상의 움직임은 지상 성도의 믿음과 맞물려 있으며(눅10:17-18), 교회의 권세는 천상까지 그 영향이 미칩니다(마16:18-19). 지상 성도 역시 성령이 감동을 받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하늘의 전쟁은 교회의 영적전쟁을 시사합니다. 그것이 교회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문맥과도 어울립니다.


2. 영적전쟁은 질서의 전쟁입니다.


7-8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미가엘은 천군장으로 전쟁하는 천사입니다. "미가엘"의 이름의 뜻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 입니다. 여기서 미가엘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탄은 자신의 직무를 버리고(겔28:13-15, 시103:21-22),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월권한 교만한 자요(벧후2:4, 유1:6, 사14:12-14), 동료를 충동질하여 타락시킨 자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전쟁의 결과로 우리들에게서 교만의 영이 떠나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죄인들이 예수를 나의 주로 삼고 그 앞에 낮아지고 섬기고 회개하고 순종하고 충성하지만 사탄의 역사가 심해지면 마음이 거칠어지고 교회 역시 시험에 빠집니다.


3. 영적전쟁은 진리전쟁입니다.


9절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사탄의 이름을 약 5-6가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자들입니다. 여러 이름의 등장은 사탄의 다양한 대적을 시사합니다.


가령 큰 용은 계13:11에 “용처럼 말하더라”한 대로 호소력에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부부를 꾀던 옛뱀도 간교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창3:1) 용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중상모략, 책잡는 자, 비방자, 대적자’ 그런 의미이고, 사탄은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히브리어로는 ‘사탄’으로 “파괴자, 대적자, 비방자, 이간하는 자, 훼방자, 고소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천하를 꾀는 자라 했으니 사탄의 꾐의 영역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5가지 이름의 가장 많은 특징은 꾀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즉 진리전쟁에 가장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꾀는 것에는 미혹도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바로 분별하여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행할 때 사탄은 우리를 더 이상 장악할 수 없어 우리 영역에서 추방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4. 영적전쟁은 은혜의 전쟁입니다.


10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하늘에 큰 음성은 살리는 소리요, 돕는 소리요, 정답의 소리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큰 음성은 구원 능력 나라 권세 등 내용으로 보아 성령의 충만을 시사합니다. 즉 영적 싸움은 찬송과 기도의 고투이기에 그 자체가 성령충만으로 이어집니다(마12:28). 행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의 깊은 옥에 갇혀 한 밤 중에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 터가 움직이며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체험적으로는 예배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5. 보혈로서 하는 전쟁입니다.


10-11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사탄의 큰 무기가 참소입니다. 참소란 법정용어로 고소 혹은 고자질입니다. 우리의 약점이 보이면 하나님께 고소하여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이 참소가 우리 양심의 법정에서도 일어나 이 정죄의식을 이기지 못하면 심령이 사탄에게 점령당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할 무기가 약 세 가지가 나타나는데 그 중 어린 양의 피는 우리를 대신하여 사신 피 즉 대속의 피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신 보혈의 공로에 서되 견고하고 담대히 서서 양심의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양심은 죄를 죄로 보지 않아도 문재이지만 지나치게 예민해도 안 됩니다(롬14:22). 보혈공로를 믿는 방패로 양심을 보호하고 또한 책망할 것이 없도록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요일3:21-24).


6. 영적전쟁은 명령으로 합니다.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여기 증언하는 말씀은 넓게는 전도이지만(고전2:1-2), 좁게는 승리의 말씀에 서서 사탄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보혈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법정만 아니라 우리 양심의 법정에도 필요하고, 나아가 사탄 앞에서도 필요합니다. 보혈로 말미암은 의에 기초하여 담대할 뿐 아니라 사탄을 패배자로 격하시키고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더욱 힘차고 분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탄을 물리치는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7. 영적전쟁은 순교신앙으로 합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삽니다. 마11:12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만큼 열심하고 그만큼 전투적이지 않으면 천국을 경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몸드려 하나님 섬기는 것이 어려운지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천국백성과 같은 자세로 기도와 찬송으로 경배하며 사는 것이 그렇게 훈련해도 서툴기만 합니다. 조금만 더 천국백성 닮아봅시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11절)한 사람들이 이깁니다. 그러기 위해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안일과 영광과 체면과 이익과 취향을 생각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8. 영적전쟁은 확보된 승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여기 두 영역의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알고 보면 지상 성도가 처한 특수한 삶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이면서 이 땅에 사는 이중적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빌1:21-24).


그러므로 승리적 부분과 전투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12절과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구원과 승리와 영광과 복을 날마다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 믿음의 의미를 모르고 구원 따로 죄 따로 이기려고 합니다. 혹은 중생 시에 주어진 예수님과 신비적 연합을 모르고 고행과 묵상을 통해 신일합일에 이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요(골3:2-3), 큰 은혜와 은사의 선물을 받은 바 된 자라는 믿음을 견지하시기 바랍니다(엡4:7-8). 이 진리에 서서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누리는 비밀이요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9. 정신 차려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땅과 바다는 육체와 세상을 상징합니다. 즉 성도가 하늘에 속했을지라도 한 편으로 세상과 육신에 속해 있으므로 전투적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탄은 이 약한 부분을 공략하려 합니다. 그래서 바다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환난과 시련의 풍파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땅처럼 역시 방심하면 온갖 근심과 죄악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우거집니다.


이런 모습이 마귀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크게 분 내어 다가오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사탄의 분노란 다 잡아먹기 위한 불같은 시험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경 속에 살고 있으므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벧전5:8-10, 눅22:31-34).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고전10:12)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앞만 보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빌3:12).




교회의 시련과 연단 (계 12:13-14)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본문은 해를 옷 입는 여자에 대한 연속적인 설명으로 교회의 시련과 연단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방법에는 말씀을 통한 양육과 시련을 통한 양육이 있는데 앞에서는 전자였지만 여기부터는 후자입니다. 그 증거로 12:3에 양육기간을 1260일이라 했는데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이 표현은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통해 유대인들이 받은 강한 시련의 기간을 연상시킵니다(단12:7, 마카비하8:2).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 받던 애굽과 광야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박해가 그 배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교육도 3년 반이라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합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교회를 박해하는 사탄의 상징입니다. 교회를 향한 연단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히12:6, 욥7:17-18).


교회가 받는 시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이 말씀에 용이 박해한 이유가 2가지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내쫓긴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여자가 보좌로 올라간 남자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쫓김 당하여 핍박했다는 말씀에 용의 실패 분노 시기 질투 보복 등이 엿보입니다. 이 말씀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갈4:29, 요15:19, 딤후3:12).


2.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두 번째 박해한 이유는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 때문입니다(12:4-5).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죽인 이유도 그렇습니다(출1:16). 더구나 철장 권세로 세상의 악을 산산이 부수어 세상을 변화시킬 남자를 배출하는 교회니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3. 특별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큰 독수리의 두 날개와 광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능과 섭리와 사랑이 나타난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출19:4, 출32:11, 신4:37, 행13:17, 사40:31). 이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우리에게도 귀한 의미를 던져줍니다(고전10:1-4). 가나안이 의미하듯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현실에서도 그 은혜의 수준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벧전1:6-8).


4. 경외하는 백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여기 큰 독수리의 두 날개란 출32:11, 출19:4, 신4:37, 행13:17 등에 “큰 권능으로”라 했듯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심을 말합니다. 이런 능력으로 먼저 광야의 연단의 장소로 옮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연단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천국이 임할 만큼 경외하는 백성을 만드시기 위함입니다(마13:43). 그러므로 예배 100점, 말씀 100점, 기도 100점, 찬송 100점, 감사 100점, 사랑 100점, 봉사 100점, 순종 100점, 순교신앙 100점,,, 맞으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한 마디로 훈련의 위치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치는 이스라엘의 광야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곧 그들의 위치였습니다(출13:21). 가장 중요한 광야의 자기 곳은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기 곳을 삼으시고 거하시기로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막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행7:38)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파별로 자기 위치와 자리가 있었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별로 동서남북에 진을 쳤습니다(민2:1-9). 레위지파처럼 성막과 더 가까운 지파가 있었고(민2:17), 유다지파처럼 행진할 때 선두에 선 지파도 있었습니다(민2:9). 이처럼 각종 직분과 은사의 질서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군들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엡4:11-12).


6. 연단의 강도가 높아 한눈팔 사이가 없습니다.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큰 붉은 용을 여기서는 뱀과 용이라는 두 호칭을 함께 사용합니다. 즉 아이가 남자가 되고(13절), 여기서 큰 용은 뱀이 됩니다. 환상의 세계란 신비합니다. 마귀가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가도 우리의 믿음 앞에서 아주 작아져 버리기도 합니다. 실재로 온 세상을 전쟁과 세속과 온갖 흉악한 일로 휘젓고 다니던 사탄이 성도 앞에서 아이보다 못하게 약해지기도 합니다.


여기 뱀이란 에덴동산의 그 간사한 뱀입니다. 내 생각인 듯 다가와 꾀고 속이고 충동질하고 그럴듯하게 미혹하는 간사한 놈입니다. 그 뱀의 낯을 피하여 연단을 받는다는 뜻은 연단의 강도가 높아서 다른 곳에 한눈팔 사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완악할수록 훈련의 강도가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만 붙들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7. 연단은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은 단12:7에 나타난 표현으로 시리아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만행을 예언할 때 쓰였습니다(단12:7, 단8:23-25, 마카비하8:2). 그의 활동기간은 7년으로 그 중 3년 반은 평화를 준수하며 우호적이었지만, 나머지 3년 반은 유대가 배반한 줄 오해하고 증오에 가득차서 평화협정을 깨고 성전을 파괴하고 제단을 모독하며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다가, 마카비 혁명으로 그의 군대가 쫓겨나고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심판을 받아 복통으로 말에서 떨어져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는 약 3부분으로 나눠지는데 그것이 바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배경입니다.


이처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양육은 시련적인 연단의 의미와 함께 어떤 섭리적이고 단계적인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교육도 그들의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계획표라 할 수 있는데, "비로소" "이때로부터"(마16:21) 등의 낱말로 그 분기점이 표시되듯 모두 때에 의해서 사역하셨습니다.


먼저 세례요한이 죽자 비로소 그 때부터 회개를 외치시며 천국복음을 증거하시기 시작하셨고(마4:17), 제자들을 부르사 천국복음을 가르치시며 메시아의 표적을 행하시면서도 자기를 감추시다가, 사역의 후반기에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셨고(마16:16-17)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마16:21). 그리고 마지막 잡히시던 날 밤 전과는 달리 사랑을 많이 강조하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는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 받는 일에 집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행1:4-8). 이렇게 때가 분명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훈련은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신의 성품인 온전한 사랑에 도달하기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벧후1:5-7).




사탄의 훼방을 이기라 (계 12:15-16)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헬라어로 마귀를 디아볼로스(diabolos)라고 하는데 ‘훼방자’, '파괴자'라는 의미입니다. 사탄은 그 이름 그대로 이 순간에도 온갖 심술을 부려 교회를 대적하며 온갖 훼방을 치고 있습니다. 이걸 알려주는 중요한 문구가 15절의 “여자의 뒤에서”라는 문구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위치는 언제나 뒤편입니다(마16:23). 사탄은 여자 곧 교회의 뒤에서 온갖 꿍꿍이짓을 다해 훼방을 치고 있습니다.


사탄의 훼방은 어떤 것일까요?


1. 이교와 이단과 이설의 훼방입니다.


15절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기 위해서 뱀이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합니다. 여기 뱀은 에덴동산에 나타났던 꿰는 뱀입니다. 물의 긍정적 의미는 진리이지만(엡5:26) 부정적으로는 거짓과 비진리입니다. 온갖 자유주의신학 이교 이단 공산주의 진화론 거짓된 이론 등 거짓된 사상으로 기독교에 도전합니다. 이런 세속화의 이론들의 교회 침범으로 교회가 무너져 내립니다.


2. 세속화의 훼방입니다.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한 또 다른 의미입니다. 물의 다른 부정적인 의미는 세속적인 사랑입니다(잠5:15-18, 잠9:15-17). 심지어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고 소돔과 고모라식 윤리관이 법으로 통과되어 강요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거리낌 없이 성을 주고받으며 그런 양심이 보편화되어 교회 역시 롯의 가정처럼 능력을 상실해갑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전략 가운데 성의 해방이 중요한 전술 중 하나라고 합니다.


3.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16절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이 말씀은 민수기 16장의 고라의 반역사건이 그 배경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땅이 사람이 아닌 뱀이 토한 강물을 삼킵니다. 여기서 땅은 육신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특별한 안전장치는 육체의 가시입니다(고후12:7).


4. 주의 종들을 넘어뜨립니다.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여기 여자의 남은 자손이 누구인지 2가지 힌트를 줍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누굴까요? 넓은 의미에서는 주의 종들입니다.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막14:27) 하신 말씀처럼 주의 종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5. 말씀의 무지와 육신적 약점을 노립니다.


17절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넓게는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를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그 증거로 육신적 방종을 억제하기 위해서 계명이 주어졌고(시119:9-11), 미련한 우리에게 신령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의 증거 즉 복음과 이를 위한 표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요20:30-31, 요19:25, 요11:15, 42, 마9:6-7, 눅10:17-20, 요9:32-33). 이 두 가지는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또 다른 안전장치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삼하11:2-5) 잠시 방심하는 순간 사탄은 틈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분노한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을 공격하려고 “바다 모래 위에”(17절) 섰는데 모래는 말씀의 기초가 없거나(마7:26), 육신의 안일의 상징입니다(행27:17). 거기에 용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근신하지 못하고 시험에 빠지는 등 실수하기를 기다려 그들이 정해 주신 한계를 넘어 올라오는 대로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계13:1). 이처럼 몸의 존재는 사명 감당하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기도 합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3장부터는 세상정욕과 육신의 정욕에 대한 환상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