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생명 자체의 증거
본문 : 시편 36 : 9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자만함이 현 시대의 풍조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아직까지 지혜로나 논리로나 풀지 못하는 큰 문제가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생명, 즉 삶 자체에 대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푸는 문제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의 생명과 삶 그 자체의 신비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1. 생명의 신비가 하나님을 증거해 줍니다.
인생과 모든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생명 그 자체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를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 나는 어디서 생겨났어? 라고 묻는 어린이에서 삶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노숙한 노인에 이르기 까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적 생명을 뜻하는 구약 성경의 루하( )라는 말이나 신약성경의 프쉬케( )라는 말은 호흡을 뜻하며 이 인생들의 호흡은 “전능자의 기운이 ...살리느니라”(욥33:4)라고 성경이 증언하기 때문입니다(창2:7). 그러므로 생명의 원천에 대한 인생들의 경외심은 인생의 모든 철학과 종교의 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여성의 출산을 통해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종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중근동 지방의 신들은 거의가 여성 신들이며 풍성한 복부, 그리고 수많은 모양의 유방을 가진 모습의 신상을 만들어 세상은 그 여성 신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유지 된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의 바알 신, 아세라 신, 등도 모두 그와 같은 여성 신중의 한 분류입니다. 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현대인들에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줍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논리적인 남성이라도 자기 부인의 첫 아기를 출산 할 때에는 그 우주관이 변한다고 합니다. 한 생명이 탄생하는 일에는 자신의 능력이 관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인간 이상의 그 어떤 창조주에 대한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힘과 지혜와 노력으로도 지금껏 풀지 못하는 생명의 신비가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됩니다.
2. 생명의 욕구가 하나님을 증거해 줍니다.
생명을 다른 말로 하면 삶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는 말하기를 나는 모든 살려고 하는 존재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존재이다. 라고 인생관과 우주관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하찮은 곤충도 살상하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불교의 사생 금지와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생명 경외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에게는 삶에 대한 번영과 보존의 희망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바로 생명의 보편적인 양태입니다. 창세기 1 : 20 - 28에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에게 그와 같은 본능과 욕구를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모든 생명에 대한 욕구의 정점이 바로 영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생은 바로 신에 속한 무한한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생에 대한 요구가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유물론자도 이 본능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에 대한 인생들의 보편적인 욕구는 바로 그 욕구의 대상에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셈이 됩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식욕이 이 있음은 음식물이 있기에 가능하며, 성욕이 있음은 이성이 있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생명의 궁극적인 욕구인 영생 욕구가 있음은 바로 영존자인신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사실의 명백한 반증입니다.
3. 생명의 사회적 요소가 하나님을 증거해 줍니다.
또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생명에 대한 사회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생명은 개체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성격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즉 서로 의존하고 공존하는 상관관계의 사회적 양식으로 그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인생을 (삶, 생활)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다른 이웃과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필요한 물질과 정신적인 자원을 공급받음으로써 유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은 독단적이며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사회적인 조건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 인생의 사회적 요소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부여하셨던 하나님의 형상의 한 요소라고 설명해 줍니다. 즉 하나님과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어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생을 창조하신 것입니다(요15:1-5). 이렇듯 하나님과의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는 수단을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하며 성경은 신앙(롬1:17)이라고 합니다. 인생들에게 누구에게나 이 종교적이며 신앙적인 본능이 주어져 있는데 그 본능은 우리에게 무언가 절대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함을 반증해 줍니다(마6:25-26; 16:26).
4. 성경은 우리의 생명을 허무한 것으로 증거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꿈, 그림자, 구름, 꽃의 시듦, 사라지는 안개(대상19:15; 욥7:9; 20:8; 약1:10; 4:14)로 증거하고 있는데 이 같은 증언이 아닐지라도 인간은 그 삶에 대해 허무감을 느낌니다. 죄, 죽음, 병, 재난, 무능력, 전쟁 등 이와 같은 삶의 허무 성으로 인해 수많은 종교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생겨났습니다. 성경은 모든 피조물도 그 허무에 의해 굴복하고 고통당한다고 말해 줍니다(롬8:119-21). 이처럼 생명의 허무성은 이 세상의 어떤 논리보다도 강력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명의 허무성은 신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눅12:4, 5; 12:20).
맺는 말
이처럼 우리 생명의 신비성, 욕구, 사회성, 허무성 등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명의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만이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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