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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린이주일에 관한 자료들

에반젤(복음) 2022. 5. 1. 18:17

  <어린이주일>에 관한 자료들

 

 

 

   

 

*** 어린이의 낱말뜻 ***

 

1. 히브리어

  옐레드 - 소년, 아이, 자식, 아들, 새끼, 아기, 자녀

  아빌 - 어린아이, 아이

  올렐,올랄 - 젖먹이, 아이, 어린아이, 자녀, 소아

 

2. 헬라어

  네에피오스 - 어린아이, 아이

  파이디온 - 아이, 아기, 어린아이

  테크논 - 자식, 자손, 아들, 소자, 아이, 새끼, 자녀

 

 

 

1. 구약과 신약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에서와  같이  자

녀, 특히   아들을 몹시 원했다(창15:2,  30:1,  삼상1:11,20,  시

127:3, 128:3,   눅1:7,28).

2.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속전을

지불해야   만 했다(민3:40-51).

3. 어린 아이는 때때로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  되었

다   (삿13:2-7, 삼상1:11, 눅1:13-17,76-79).

4. 어린 아이의 훈련은 체벌을 동반한  엄격한  것이었다(잠22:15,

23:13,   29:15).

5. 아이에게도 본받을 것이 많다(잠20:11).

6.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복종과  존경이  명령되었다(출

21:17, 엡6:1-3, 골3:20, 딤전3:4,12, 딛1:6).

7. 어린 아이를 향한 애정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죽은 아들에  대

한 다윗의   사랑(삼하12:15-23)에서, 그리고 엘리야

(왕상17:17-24),   엘리사(왕하4:18-37),   예수(마9:23-26,    막

5:35-43, 눅8:49-56)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살려준 기록에서  극

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8. 어린 아이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관심은 공관복음서에 많이  언

급되었다 (마18:1-14, 19:13-15, 막9:35-37, 10:13-16, 눅9:46-48,

18:13-17).

9. 예수는 어린 아이의 놀이를 알고 계셨다(마11:16).

10.성경에는  모세(출2:1-10),  사무엘(삼상1:20-3:19),   예수(눅

2:7-40), 디모데(딤후1:5, 3:14,15) 등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그

려져 있다.

 

 

*** 명      언 ***

 

            인명:익명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선도하지 않는다.

 

 

            인명:루더 버뱅크

 

  만일 우리가 식물보다 우리의 후세대에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날우리는 잡초의 정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인명:격언

 

  1 년 재미는 벼농사요, 10년 재미는 나무 가꾸는  것이요,  평생

재미는사람 농사이다.

 

 

 

*** 예      화 ***

 

  5살부터 10살까지의 아이를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

접하도록인도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나는 구원 전도대가  한

일을 기뻐한다.

이것을 통해서 파산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남자와 여자로 변

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

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크리스찬이란 아이 시절에 그리스도를 영접

한 크리스찬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21살 이전에  거듭

난 자들이다. 당신의 교회가 어떤 것을 하건 간에 이들에 대한  의

무를 충분히 완수해야 할 것이다.

                                                     토레이

 

 

                제목:우리는 용감하리라

 

  로마시의 안녕과 복리를 깊이 우려하는 로마의 한 노인이 꿈  속

에서 로마시민으로 이뤄진 대군이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맨  앞에

는 역전의 용장으로보이는 노인들이 `우리는 용감했었다'라고 새겨

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것을 본 그 노인은 "암, 그렇고 말고. 그

러나 저들은 늙었고 백발이 되었으니로마의 장래를 어찌  저들에게

질머지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우리는 진정  용감하

도다'라고 쓰여진 깃발을 든 조금 젊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자 노인

은 다시 "저들은 곧 늙을 것이니 로마를 저들에게 맡길  수는없지"

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많은 무리의 소년들이 `우리는 용감하리라'

고외치며 힘있게 그들의 뒤를 따라 행진하는 것을 본 노인의  마음

은 매우 기뻤다. 로마의 장래 안녕과 복리는 확약될 수 있다고  만

족해 했다.

 

 

 

                제목:오빌 라이드 선교사

 

  어느 날 저녁 멕시코 과달라쟈라에 있는 선교본부에 죠세 곤잘레

스라는13세의 소년이 걸어 들어왔다. 저녁예배가 끝날  무렵  그는

앞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그 소년과 상담한  오빌

라이드 선교사는 그가아버지를 잃고 갈 곳이 없어서 제빵공장 화덕

을 온돌삼아 자는 소년임을 알았다. 그 선교사는 아내가 세상을 떠

났고 두 살난 아들은 미국으로 보냈으므로 그 소년을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여 같이 기거하며 학교를 보냈다. 선교사는 소년을  의과

대학에 보내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의사가되게 했다.

라이드 선교사가 양육한 많은 소년들은 의사, 변호사, 목사, 기

술자, 교사 등이 되어 모두 각각의 일터에서 일하며 그리스도를 증

거하는산 증인들이 되었다. 라이드 목사는 그의 시에서 "한 소년이

란 얼마나 귀한가? 누구의 손에 붙잡혔는가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파멸의 폭탄이 될수도 있다. 마귀와 죄가 열심히 그들을 부

르고 있는데 교회는 그들을 부르고 있는가? 썩을 것에는  투자하면

서 소생하는 생명을 위하여서는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가?" 라고

했다.

 

 

                제목:청소년 전도

 

  윌버트 챠프만(Wilbert Chapman) 박사가 4,500명이 모인  집회에

서 얻은통계이다. 400명은 10살 이전에, 600명은 10-14살  사이에,

600명은 14-16살사이에, 1,000명은 16-20살 사이에 예수를  영접하

였고 겨우 24명 만이 36세이후에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흥미를

느낀 챠프만 박사는 더 광범위하게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통계를 얻

었다. 25세 이후에는 천명에 겨우 한 명,35세 이후에는  5만  명에

겨우 한 명, 45세 이후에는 20만 명에 겨우 한  명,55세  이후에는

30만 명에 겨우 한 명, 75세 이후에는 70만 명에 겨우  한  명꼴로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전도자들의 생애를 조사해 보면

어린 시절에 회심을 하고 큰 일꾼이 된 경우가 많다.

 

 

            제목:유아 성장의 세가지 요건

 


            말씀:눅2:40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이 어린이 주일을  꽃주일이라고도  한

다. 어린이는 인생의 꽃과 같다는 표현이다. 이 귀한 어린이가  잘

자라기를 기도하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자라실 때의  모습을

통하여 유아 성장의 세가지 요건을 찾아 보자.

 

1. 건강하게 자라셨다.

  "아기가자라며 강하여지고" 라고 표현된 말씀은 건강하게 자라셨

다는의미이다. 성도들 가정의 어린이들, 그리고 온 세상의  어린이

 

 

들도 예수님같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하자.

  유아의 건강은 1차적으로 부모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죄값으로 기형아를 출산케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믿음

으로 출산하고 양육해야 한다.

 

2. 지혜가 충족하셨다.

  예수님은 지혜있게 자라셨다. 오늘의 어린이들도 지혜롭게  자라

야 한다.체격과 지혜가 정비례로 자라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하나

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

여 훈계를 받게 한다"(잠1:3)고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는 선

한 지혜가 충족하게 되기를 노력하며 양육하자.

 

3.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믿음 안에서  성장

하셨다는의미이다. 사무엘 처럼 하나님의 축복으로  잉태되고(삼상

1:9-20), 믿음 안에서 자라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안에서

자라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가 된다. 여기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님은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다.  오늘날의

어린이들도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

야 한다.

 

 

                제목:주님의 어린이 영접

 


                본문:막10:13-16

 

  예수님 계신 곳에 부모들이 자기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왔다. 예

수께서만져 주시면 복을 받아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은

예수님을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 부모들을 꾸짖었다. 이를

본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을 분히 여기셨으니 그  이유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가 옳지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1. 어린 아이들을 영접했다.

  이는 예수께서 비록 바쁘시고 피곤하셨지만 어른들을 대하는  것

과 차별없이 시간을 내어 어린이들을 대해 주신 것이다.  일반적으

로 어른들은 자기본위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린이는  약자

취급을 당하고 소외되며 구박의 대상이 된다. 이는 어른들의  과오

이다. 어린이는 우선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2. 인격자로 대우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이 말씀에는 반드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어린이의 인격을 높이평가한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어린이의 인권을 존중한 것이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

와 같이 동등한 기회가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3. 축복하셨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

는 어린이에게 적합한 축복의 방법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으

로 예수께서는이렇게 축복하심으로 어린 심령에 믿음을 심어  주셨

다.

 

  어린이들을 영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축복하는 사회가 복을

받을 것이다.

 

 

                제목: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본문:마18:1-7

 

  오늘은 5월 첫 주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한다.

 

1. 돌이킬 줄 안다(3절)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돌아서는 것으로서 "회개한다"는 말씀

이다. 우리가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성과

신뢰심이다. 어린아이는 잘못(죄)을 범하면 무서워하고 곧바로  용

서(회개)를 빈다. 본문은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서, 천국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돌이킬줄 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자임을

가리키고 있다.

2. 겸손하다(4절)

  회개할 줄 아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알고 더욱  겸손하

게 된다.어린 아이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자기를  낮

춘다. 그것은 힘도없고, 아는 것도 없고, 아직 철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서로 누가 큰 사람인가 하는 교만에  빠

져 있었다. 이때 예수님은 자기를 어린 아이와 같이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자기를  낮추는  자란

어떤 사람일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함과허물을  아는

자이고, 다음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신자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받

게된다.

 

3.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어린 아이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믿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

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귀찮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

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

조하고 계신다.

 

4. 이웃에게 피해(실족)를 주지 않는다(6절)

  어린 아이는 어른들처럼 이웃(형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여

기 실족케 한다는 말씀은 넘어지게 한다. 범죄케 한다는  뜻으로서

순진한 신자를유혹하여 그 믿음을 넘어지게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같은 순수한 신자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것

은 주님으로부터 용납받을 수없는 큰 범죄요, 마침내 남을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7절)고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종교 심리학자 Spencer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기독교

인이 기독교에 입신한 연령층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천명의 입신자 중 548명은 20세 이전에, 337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에, 96명이 30세에서 40세 사이에, 겨우 15명이 40

세에서 50세 사이에, 그리고 50세 이후의 입교자는 5명의 비

율이다.

 어려서 교인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이다.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라고 했고, 세례 요한도 "아이가 자라

며 심령이 강하여지며"(누가 1:80)라 하였으니 어린이 시절

에 믿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난 것을 뜻함이라 하겠다. 구

약에 있어서도 사무엘은 엘가나와 한나와의 사이에서 기도로

태어나고 자라났으므로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

니라"(삼상2:21)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분들은 어머니 품

에 안기어 어머니의 젖을 빨 때부터 그 사랑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요사이 사람들은 아이들이 체중이 늘고 키가 자라는

데 치중하지마는 실상은 몸과 지혜가 같이 자라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현모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람

은 아이가 철이 없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여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키우는 것이 지혜의 전달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키워지는 아이는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인격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젖먹이의 입으로 하여금, 주의 대적 즉 원수와 보수자로 잠

잠케 하신다(시8:2). 또 영아가 젖을 사모하는 모습을 순전

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다(벧전2:2).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의 궤계를 소멸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또 아이들의 특징으로서 배워야 할 것

은 악에게 물들지 않는 점이다. 아이들은 원한의 마음을 품

지 않는다. 이따금 욕심과 교만을 부리는 일이 있지마는 다

음 날까지 그 교만과 욕심을 품고 지내지 않는다. 언제나 겸

손해서 자기들이 만들은 조직과 규정에 잘 복종한다. 그래서

잘 단결하며 또한 이익과 손해를 타산하지 않고 정직과 진실

한 태도는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 할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어서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진실된 인

격과 겸손하게 맡은 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점을 높이 평가

해 주셨다고 보여진다.

 

 

파래야 할 땐 한껏 파랗게 싱싱하세오.

비바람이 짖궂고 어두운 밤이 되풀이 된다해도

아무도 파랗고 싱싱한 소망과 무지개 빛 꿈을

빼앗지를 못한답니다.

파란대로 완전하세오. 그리고 매일매일 힘차게

발돋음하면서 자라나세오.

파랗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것,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결실을 약속함이니 그날을 향해 한껏 자라세요.

성장에는 아픔이 따르는 것. 결실에 이를 때까지

많은 눈물의 나날이 있겠지만 그래도 자라세요.

파란 그대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어린아이의 특성은 순

진성과 감수성과 마음대로 쓰고 그릴 수 있는 백지적 가능성

과 조각가가 깎고 쪼아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원소재성,

유난성, 개방성, 키우고 자랄수 있는 피교육성 그리고 부모

와 스승을 믿는 신뢰및 의존성이 특성이다.

  토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작품속에서 백치의 옷을 입혀 등장

킨 인물은 어린 애기 같고 그의 이미지 속에는 예수같은 인

물이었다.  세상살이에 서툴러 놀림감이 되지만 너무도 순수

한 실존이어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끝까지 믿어주며 용서

해주고 싸매주는 딴 세상에서 온 사람같이 매력있고 사랑받

는 이 사람에게 묻는다.  "그대는 백치인가 그리스도인가?"

크리스챤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나 예수님의 어린이같

은 순수성이 있어야겠다.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 가게 된다면 남

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 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

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

려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고마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정

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

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

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어린이들

 

 

 

     신구약 성경에는 허다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정리하여 오늘의 바람직한 우리 어린이상을 그려보도록 하자.

 

        1. 구약에  나타난  어린이 들

      히브리 사람들의 가정에서 애기를 분만하게 될 때에는 산파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애기를 낳으면 탯줄을 끊고, 몸을 씻어준 다음에 소금으로  문지르고(수리아에서 지금도) 기저귀에 싼다(겔 6:4). 산모는 아들을 낳았을 때면 7일간,  딸을 낳으면 14일 간의 부정한 기간을 두었고, 아들은 33일, 딸은  67일을 지내야 산모의 피가 깨끗해지는 줄 알았다(레 12:1-5).

     아기의 이름은  대개  어머니나(창 4:1, 29:32) 아버지가 지었다(창 5:29, 16:15, 출 2:22).  자녀는 아버지의 계통을 따랐으며 아내가 임신할 수 없을 때에는 그 계집종을 남편에게 주어 그 몸에서 난 아이를 자기네 아이로 삼아 이름을 짓고 키웠다(창 30:1-8). 자녀들은 모두 어머니가 길렀고, 2-3년 동안  젖을 먹였다.

     아들을 더 귀중하게 여겼으며 어떤 문서에 보면 아들은 진짜 보물이요, 딸은 가짜 보물이라고 하였고, 맏아들이 젖떨어질 때  큰 잔치를 베풀었다(창 21:

8).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사요(4:1)  자녀를 낳지 못함은 벌로  생각하였다(창 16:4-5, 눅 1:25). 한국에서도 옛날 자식없는 집을 울타리가 없는 집과 같이 여겼고,  마을 사람들은 은연중 멸시했었다.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이들은 족장 시대에도 법적인 후사들이었다(창 15:2-3).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어린이들은 부모의 슬하에서 성장되었으므로 그  가족 제도와 전통,  풍습에 따라 그릇에 담기는 물처럼 인격 성장의 형태가  천태 만상일 수밖에 없었다. 스팔타에서는 7-8세의 어린이적부터 무사의 정신으로 키웠고,  헬라는 지식을 위주로 키웠으며, 히브리인은 유목 생활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선민의식 속에 키웠다. 그러나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세상에 갓태어난 어린 아기의 첫 교사는 바로 자기네 엄마요, 아빠였다.

     모세가 그처럼 강렬한 민족 의식을 가지고 성장한 원인은 결국 어머니  요게벳의  감화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애굽땅에서 나는 히브리 가정의 아이가 사내라면 당장 엎어 죽이던가,  나일강에 던져버리라는 바로의 엄명과 학대  속에 히브리  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내로서 태어난 모세의 운명은 풍전등화격이요, 구사일생의 기적적 생존이었다. 그토록 강인한 아버이의 사랑 없었던들, 또 바로왕의  공주의 손길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던들 모세가 어찌 살아남아 있었으랴! 그러나 그 당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이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를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저 초조하고 전전긍긍했을 뿐이라고 본다.

     민족과 국가가 재난을 겪을 때에 민감하게 피해를 당하는 층은 언제나  연약한  노인과 아녀자들이다. 서민층이 아닌 왕실의 자녀까지도 그랬다.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한 살박이로 고모 여호세바 등에 업혀 난을 피해  성전  속에 숨어 6년간을 살아야 했던 열왕기(왕하 11장)서의 기록을 보면 언제나 어린이들의 피해상을 엿볼 수가 있다.

     사라가 그랬고, 라헬이 그랬듯이 하나도 아들을 낳지 못해 애태우던  여자였다.  그녀가 아들얻기를 기도하면 소원한 바대로 사무엘을 낳아 키우게  되자 젓떨어지면서부터 성막 속에 거하도록 하였다(삼상 1:22). 사무엘은 거기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랐다. 같은 성막 안에 거하던 엘리 선지자와 그 아들들은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면서도 생각과 생활 방식이 서로 달랐다.

     한 어린이는 스승과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했고, 두 어린이는 자기네  아버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코웃음치며 귓등으로 받아넘겼다. 사무엘은 자라서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겨레를 인도하는 사사(왕과 같은 통치자)를 겸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뚜렷한 상징적 인물이 되는 반면에 스승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삼상 4:17-18).

     베들레헴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며 피리를 불고 언덕에 올라 수금을 뜯으며 노래하는 목동이 바로 이새의 아들 다윗이었다. 서슬푸른 사울왕의 시야를 벗어 나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그는 그 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물인지 알지도 못하고 가서 늠름한 일곱청년들을 만났고, 맨 나중에 들에서 데려온 홍안 소년 다윗을 보았다. 그 때에 하나님은 바로 이 어린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다(삼상 16:12).

     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외모로 밖에 볼 줄 모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다윗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셨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인간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키 어려운  대목이 수두룩하다.  그 중의 하나가 어린이의 문제이다. 어린이들이 여러 가정에서 자라는데, 어려서부터 조물주를 기억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받들 수 있도록 바탕지어진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는가 하면, 야심만만한 욕심을 품고 형의 특권마저 침범해서 억척스럽게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같은 소년도 있음을 본다. 어디 그뿐인가?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출생하는 이스라엘과 또 그 추방사건, 아딸랴가 세운 몰렉 신상에게 제물로 바쳐져 지글지글 타죽는 수많은 유대국의 어린생명들이며, 늙은 야곱이 애굽에서 마지막으로 축복할 때에 요셉의 맏아들 므낫세보다 그 동생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보다 큰 자가 될 것이라고 기도한 것(창 48:17) 등등 왜  하나는 버리시고 하나는 택하시는가?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제 구약의 배경을 정리해 보면 부계의 일부다처 생활이  용인된  대가족 제도 속에, 남존여비의 사상이 철저했고, 거기서 적자와 서자의 색채구별이  선명했으며,  자녀를 온전히 가정의 전속소유물로 여겼다(비상 전시에는 잡아먹을 정도로, 왕하 6:29). 그러나 온갖 시련 속에 어린이들도 선민 의식과 신앙은 살아있어 민족의 얼과 긍지를 샛별처럼 빛냈었다(모세, 요셉, 사무엘, 다윗, 에스더 등등). 히브리 민족사는 실향, 추방, 포로, 불안, 공포, 전쟁, 위로, 희망이 엇갈리는  희로애락의 교향곡 속에 강철 같은 신앙으로 망향가를 부르는 실향민의 대열로  사진 찍혀진다. 이런 대열 속에서 다듬어지는 어린이들이 자라나 오늘의 강인한 이스라엘을 이뤄놓은 것이 아닐까!

 

      2. 신약에  나타난  어린이 들

      신약 시대의 어린이는 역시 4복음을 중심하고 묘사된 어린이들이 확대되어 우리 눈앞에 어른거린다. 조국의 국권을 상실당하고 신민직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무리들, 그 군종 속에 수없이 많은 불구자와 병자들, 배고픈 사람들,  얼마나 찌들게 가난했으면 한 벌 옷으로 3대나 내려가며  계속 입었다고 했을까! 유대나라에 파송된 로마 군병들마저 얼마나 궁쪼가  들었기에 사형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눠가지고 속옷마저 저마다 가지려고 제비를  뽑았을까?(요 19:24).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소년, 병으로 숨졌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간질병으로 귀신에게 시달림받던 소년 등등, 많은  어린이들 중에 벳세다 들녘에서 때묻은 수건에 싸왔던 오병이어를 주님께 아낌없이 바친  이름 모를 어린이를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교회  학교에서 너무나 많이 그 얘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홑이불을  감고 신변이  위험해진 정보를 예수님께 알려드리려고 달려 나갔다가 로마  군병에게 붙잡혀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밤길을 달아난 다락방집 아들 마가 요한이라는 소년의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막 14:52).

     여기에는 헬라 사람과 국제결혼한 유니게의 가정에서 혼혈아로 자란  디모데라는 소년의 이색적인 소개도 있다. 또 신약에서 대표적인 어린이 중의  하나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요한도 자녀가 없는 가정에 만득자로 태어났다. 모세는 주위 사정에 할 수 없어 나일강에 내다 버려진 목숨이었으나 요한은 부모의 교육적인 의도로 요단강 기슭 갈대 숲속의 자연 속에서 키워지는  어린이었다. 메뚜기를 잡아먹고 석청을 손가락으로  후벼내어 빨아먹는 야생아, 자연아였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순한 광야의 아들로  자라 주의 길을 예비할 심신 단련을 받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민중과 군인과 세리들의 가슴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린이 예배와 설교

 

                 1  .     어  린  이     예  배

      교회의 어린이 교육 분야에서 예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다.  일주일에 한 두 시간씩 행해지는 교회의 교육시간 중에서 예배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 된다. 어느 교육학자가 얘기 했듯이 예배는 어린이들에게 있어  훌륭한 학습환경이다. 기독교교육의 의도하는 것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배가 실제적인 교육의 현장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배의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습관적,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버리기 일쑤이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 조차도  어린이 예배의 행위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해 버린다. 아니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예배를  관리하고 있다. 예배의 질서 확립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것은 "예배본다"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예배의 행위에 대해 말할 때 "예배본다",  "예배드린다"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처음엔 "예배본다"는 말이 습관처럼 여겨졌으나 차츰 "예배드린다"는  말로 굳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 맞는 말은 아니다.  예배는 봐서도 안되고 드려만 져서도 안된다. 예배는 행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의 행위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할 때 "예배한다"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보는 행위는 미신적인 행위에 비교할 수 있다.  무당이 굿을 하고, 푸닥거리고,  상을 차려놓고 보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구약적인 제사 행위이다.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렸던 구약시대의 제사행위가 곧 드리는  예배였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배의 행위는 달라졌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만이 아닌 받는 행위와 더불어 예배의 모든 절차가 진행된다. 찬송과 기도와  헌금을 드리고 말씀과 축복을 받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닌 주고 받는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예배도  이런 올바른 예배행위의 이해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일부 교회교육의 현장에서는 이런 올바른 예배행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어린이 예배인지 성인예배인지조차도 구별하기가 힘들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주기도문만 하면 예배의 행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인도하는 자나 참여하는 어린이들도 참 예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젠 어린이  예배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이 예배를 통해 어린이들 스스로 신의 실존을 깨닫게 하고 신과의 교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어떤 가정의 두 어린이가 교회학교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이야기이다.

     "전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제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교회의 예배는 참 좋아요." 초등부에 다니는 어린이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유년부에 다니는 어린이의 이야기는 그와 대조를 이뤘다. "전 예배시간이  지긋지긋해요.  설교도 재미가 없고 지루해서 혼이 났어요. 다시는 교회에 다니지  않을 거예요."  이 두가지의  대답을 통해 어린이들이 예배를 통해 느끼는 결과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린이예배를 훌륭한 학습의 장으로 생갈할 때 학습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않느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신비함을 볼 때 경탄을 금치 못한다. 닭이  모이를 쪼아 병아리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볼 때,  꽃이 피는 모습을 볼 때,  해뜨고 지는 모습 등을 볼 때 탄성을 지른다. 어린이의 예배를 통해서도 이런 경이로운 느낌을 받도록 지도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예배시간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사와 함께 있는 어린이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어린이 예배의 순서를 연구하고, 예배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며, 모두가 참여자가 될 때 어린이 예배는 자연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학교의 현장에서 교육의 전반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지도자들로부터  어린이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2  .     어  린  이     설  교

      아동 설교이든 장년 설교이든 설교를 맡은 이들의 책임은 무겁다. 어떤 이들은 설교 준비는 하지 않고 성경책 하나만 들고 올라 서서  "주여 믿습니다"하고  생각나는대로 외쳐대며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전한다는 답변으로  회피하는 설교자들도 많다. 특히 아동설교를 맡은 이들은 설교 준비에 소홀하기 쉽다. 어른들이야 무슨 얘기를 하든지 다 알아서 새길 줄 알지만 어린이들의 두뇌는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설교를 부탁받으면 성경말씀 한 귀절 읽고 이야기 한 가지 들려주고 이야기에 근거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여서는 곤란하다.

 

가. 어린이주일 교회교육 프로그램

 

 

     어린이 주일은 교회학교 연중 행사표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의  하나일것이다. 아마 이 날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지나쳐버릴 교회학교는 하나도 없겠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은 일반 교육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육 면에서  보다 더  그 의의가 큰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프로그램을 검토하여  참신하고도 기독교 교육적인 방향으로 이것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하려는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며 개개 교회학교의 실정에 맞추어 취사 선택 혹은 개조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 주일을 뜻있게 보내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하나의 "특수 주일"로서의 이 주일을 대하는 기본적인 원칙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기독교의 정신과 교회의 목적에 일치해야 하며 또한 그것은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한다. 즉 어떠한 행사를 마련하건 간에 그것은  종교적이며 계시적이며(어린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펼쳐 보이는  방향의 것) 예배하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또한 기독교 교육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주일의 행사의 목적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오락을 준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어린이들의 생의 변화까지도 이룰 수 있는 데까지 그 목표가  높아져야 한다. 교회의 교육적인 사명을 높이고 전체교인들로 하여금 기독교 교육의 프로그램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만 맞는 것으로 준비되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어린이 주일의 순서가 어린이 위주였으나 참다운 교회 교육적인  면에서 본다면 교회의 전성원인 어린이, 젊은이, 남녀 장년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활동 가운데서 어린이의 위치와 중요성이 강조되는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다. 즉 교회가 마련하는 가족적인 분위기 가운데 전체 교우가 참여함으로써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한  식구라는 의식을 개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그 주일의 특성을 십분 살린 것이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것이 어린이 주일에 적중할 리도 없으며 어린이  날에  관한 것이 부활절에 맞아들리 없는 것이다. 어린이도 하나님이 주신 인격성을 구비했다는 점과 이 어린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에 따라 헌신의 서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이 주일의 프로그램들은 한 두 어린이를 중심해서 계획되어서는 안되며 되도록 많은(전체) 어린이가 참가하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즉 그 날 행사의 강조점이 어느 개인에게 주어져서는 안되며 그룹 전체에 미쳐야 한다. 따라서 활동의 형식은 어디까지나 그룹 형식이 좋을 것이다.

     어떠한 프로그램이든지 그것이 교회교육적인 것이 될 때 성구를  포함시키는 것이 좋으며 그렇게 관습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히 그  사용법에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구는 전체 순서 중에서 동떨어진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적을 향한 포괄적인 것으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주어지는 성구는 각  연령가  어린이에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아름답고 단순하고 통일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조화"는 기독교 종교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 날의 프로그램들은 변화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해에 행해지는 여러 다른 행사가 천편 일률적이어서는 안되며 또한 같은 행사를 같은 방법으로 미래의 어린이 날에 반복하는 것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 날의 프로그램은 행복한 요소와 즐거운 요소가 담뿍 실려져야 하겠다. 어린이 날에 대한 기독교적인 깊은 메세지를 가져다 준다는 것과 맑고 깨끗한 즐거움을 준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 모순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어린이 주일의 프로그램은 가정과 교회와의 유대보다 깊고 굳게 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 날의 행사를 통해서 교회에 속한 각 가정은  기독교 교육  특히 어린이의 종교교육에 대한 교회와 가정의 임무를 인식할 수  있으며 교회와 가정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식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개체교회에서 실시할 수 있는 어린이 주일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

 

      1  .     예  배     프  로  그  램

 


       1) 어른과 함께 드리는 예배

     어린이 교회학교의 예배는 때때로 어른과 함께 드림으로써 그 의의를 깊이 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어린이 주일과 같은 특수 주일 때 가능하며 또 효율적이다. 주일학교의 예배 시간이 아니라 이 날 만큼은 교회의 정식 예배시간에 어른들과 함께 어린이들은 앞 자리에 질서있게 자리잡으며 담임 교사들이 함께 앉는다. 예배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담임 교사들이 함께 앉는다. 예배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담임 목사가 맡으며 일반 예배와 다름없이 도입하고 예배순서의  첫부분에  어린이를 위한 순서가 진행된다. 즉 어린이 중심의 찬송, 목사나  교사가 맡은 아동 설교, 어린이 찬양대의 특별 찬송, 어린이 교회학교 각 부가  준비한 순서들(예 : 성구낭독, 어린이 헌장낭독, 시 낭독 등),  부모대표의 말씀  등이다.  이같은 순서가 지나면 교사는 조용히 어린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퇴장하며 예배는 어른들만을 계속되게 한다.

     2) 어린이들만의 예배

     어린이 교회학교만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에는 할 수 있는한 모든 순서를 어린이들이 맡아 보도록 계획한다. 이 경우 예배의  주제는  어린이들이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헌신의 순서가 되어야 하며 크리스챤 어린이로서 이웃에의 봉사를 다짐하는 순서가 되어야 한다.

     3) 헌신과 입교의 뜻을 가진 예배

     어린이 주일 예배는 어린이를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를 받아들이는  순서를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 그 형식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7세가 된 어린이들을  호명하여 꽃을 달아주고 경제적으로 허락이 되는 교회에서는 목사의 서명이 된 성경책을 나누어 주는 것도 그 한 가지이다. 또한 이 날의 프로그램 속에  유아세례를 포함시키는 것도 어느 모로는 의미있는 일이다.

 

        2  .     학  습     활  동     프  로  그  램

 


    

  1) 반별 좌담회

     초등부는 각 반별로 교회의 어른(교직자나 평신도 중에서)을  초대하여 한 자리에 앉아 그 분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좌담회의 사회를  어린이가 맡도록 사전에 지도하면 더 좋을 것이다.

     2) 부별 전시회

     각 부별로 학습활동에 관한 전시회를 마련하여  부모나  형제를 초대한다. 이 전시물의 내용은 비단 이미 학습한 가운데서 얻어진 산물만이 아니라 앞으로 학습할 것도 미리 보여 주는 방향으로 한다. 어린이 주일에 대개 학년 초에  있으므로 그 한 해의 학습활동에서 다룰 목표나 문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샘플적인  작품을 준비할 것이다. 이런 계시물은 개인의 작품보다도 공동작품이  더 의의가 있는 것이다.

     3) 어린이날 "패전트"

     어린날의 의의를 나타낸 패전트(간단한 연극, 무대없이 하는 극)를 준비한다. 이것을 하는 경우에는 등장 인원수가 되도록 적어야 하며 플로트가 너무 복잡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용은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도록 힘쓴다는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특히 등장하는 어린이에게 지나친 비중을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3  .     가  정     프  로  그  램

 


     

 1) 부모를 학급에 초대한다.

     학습별로 부모님들에게 편지를 내어서 일반 학습 시간이나 특수한 순서(예배, 전시회, 패전트 등)에 초대한다. 초대장을 낸 후에 교사가 한 번 각 가정을 방문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2) 부모님 환영 순서 마련

     학급별이나 혹은 전체적으로 부모님을 환영하는 순서를 갖는다. 그 내용으로는 꽃달아 드리기, 간단한 예물(학습시간에 어린이들이 만든 것)드리기, 환영노래잔치 등이 있을 것이다.

   

 3) 어린이 교육을 위한 부모들과의 상담 시간 마련

     어린이 주일 한 주일이나 혹은 특정한 시간에 상담 기간을  설정한다.

     부모들에게 상담에 관한 안내장을 내고 어린이들의 가정에서의 문제를 교사와 더불어 상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