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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선교여행

에반젤(복음) 2022. 3. 27. 01:59
바울의 선교여행




 

이글은 본격적으로 바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계속 연재하고 있는) 초대교회사의 일환으로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바울 선교여행 그 자체가 본 주제가 아닙니다. 바울의 선교활동 내지 선교여행이 초대교회사를 기술하는데 아주 주요한 부분이라는 입장에서 이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우선 바울의 전 생애와 그의 활동, 선교여행을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고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성서는 뭐니뭐니 해도 사도행전입니다.

   1. 여기에는 바울의 고향이 닷소라던가 (9,11; 21,39: 22,3),
   2. 가마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 (22,3 즉, 고향에서 떠나와 예루살렘에서),
   3. 히브리어를 할 줄 알고 (22,2), 로마시민권이 있고 (16,37f; 22,25-29),
   4. 예루살렘에서 스데반과 초대교회를 박해하는 내용 (7장 끝 - 8장 처음),
   5.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회심 (9장, 회고형식으로 22,5 이하에서 다시 나옴),
   6. 회심직후 예루살렘 방문 (9,26이하 제자들과 사도들을 만나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증거),
   7. 다소에 가서 선교 (9,30),
   8.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나바가 바울을 닷소에서 안디옥으로 불러와 함께 일년간 복음증거 (11,22 이하),
   9. 일차 선교여행 ( 13,1-14,28 구브로, 밤빌리아, 비시디아, 루가오니아 지역),
   10.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 (15장),
   11. 이차 선교여행 (15,35-18,22 수리아, 길리기아, 루가오니아, 부르기아, 무시아, 드로아, 마케도니아[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1년 6개월 머뭄 18,11], 에베소, 예루살렘방문, 에베소에 머뭄),
   12. 3차 선교여행 (18,23-21,26 갈라디아, 부르기아, 2년 3개월 에베소에 머뭄 [19,8.10], 마케도니아, 헬라[고린도]에 3개월 머뭄, 마케도니아[빌립보]거쳐, 드로아, 밀레도),
   13. 예루살렘에서 체포 (21,27-23,10),
   14. 가이사랴 감옥에 2년간 (23,11-26,32),
   15. 로마로 ( 27,1-28,31 말타에 3개월, 수라구사에 3일, 레기온을 거쳐, 보디올에 7일, 로마에서 2년간 복음증거)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고로 아래 그림을 보십시요. 밑줄친 지명은 로마행정구역 명칭입니다.)


행13-14에 따른 바울의 1차 선교여행

 





행15,35-18,22에 따른 바울의 2차 선교여행

 





행18,23-21,26에 따른 바울의 3차 선교여행과 로마로 압송

 




(참고로 바울의 선교여행경로가 표시되지 않은 바울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지도를 보시려면 왼쪽에 있는 조그만 지도를 클릭해보십시요)






 

바울서신 (살전, 고전.후, 갈, 빌, 몬, 롬)

바울자신의 편지에도 (행처럼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바울의 선교활동 및 이를 근거로 초대기독교사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 계시에 의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음 (갈 1,13-16).
   2. 그 후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감 (갈 1,17)
   3. 3년 후 예루살렘으로 옴, 15일 만 머물면서 다만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만 만남 (갈 1,18f)
   4.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선교여행
   5. 14년 후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사도회의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감 (갈 2,1-10)
   6. 안디옥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과 베드로와 문제생김 (갈 2,11-14)
   7.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 선교 (살전 2,2)
   8. 아덴과 고린도에 머뭄 (살전 3,1-6)
   9. 에베소에 성령강림절까지 머뭄 (고전 16,8)
   10. 마케도니아와 고린도로 갈 여행계획 (고전 16,5-7; 참고 고후 1,15이하)
   11. 바울이 드로아에 있었음 (고후 2,12f)
   12.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있었음 (고후 7,5-7)
   13. 고린도을 방문할 계획 (고후 10,2; 12,14; 13,1.10)
   14. 모금 전달차 예루살렘을 방문할 계획 (롬 15,24; 참고 1,10)
   15. 스페인 선교여행계획 (롬 15,24; 28f)


행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선교여행내용을 비교

     행은 바울의 선교활동을 빠짐없이 잘 기록하고 있어 바울서신 만 가지고 재 구성할 수 없는 그의 활동 부분들에 관한 귀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갈 2,1에는 시리아, 길리기아지방에 갔다가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사도회의를 위해 올라오는 것으로 만 되어있다. 행 13,1-14,28에 의하면 이 기간 바울은 소아시아쪽으로 가서 (소위 1차 선교여행) 선교를 하였다. 혹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체포되고 로마로 잡혀간 행의 기사는 (21장 이하) 롬 15에서 언급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금전달 여행을 한 후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선교를 떠날 바울의 계획이 (롬 15, 22이하) 실제 어떻게 되었는 지 잘 말해준다.

     한편 서로 모순되는 점도 있다. 행은 바울의 선교여행을 3차에 거쳐 체계적으로 한 것으로 (매 선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옴) 되어 있는 반면, 바울 자신의 편지에서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바울은 갈 1-2에서 자신의 복음은 예루살렘 교회와 독립적인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회심후 15일간 의 짧은 1차 방문 때에 베드로, 야고보만 만남 1,18;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은 [즉, 예루살렘 교회을 포함하여] 나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1,22), 행에서는 바울은 회심후 다메섹에서 돌아와 여러 제자들과 사도들을 만나고, 예루살렘에서 전도까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9,26이하).

     이런 차이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독특한 역사이해에 기인한다. 그는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도 다른 복음서와 달리 구체적으로 세계역사와 관련해서 서술한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의 탄생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호적하라고 할 때",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이다 2,1). 이런 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1부 누가복음], 어떻게 유대에서 땅끝까지 퍼져나가는지 [2부 사도행전]를 다룬 두권을 성서를 탄생시켰다.
     예수나 그의 제자들은 (바울도 상당부분) 하나님의 나라가 금방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다. (참고, 예수의 복음의 요약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이다 막 1,15, 주의 기도에서 "나라이 임하옵시고" 마 6,10; 눅 11,2 등, 바울에서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롬 13,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7;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예수님 당시 언어인 아람어로 "마라나 타", 직역하면 "주여 오시옵소서!") 고전 16,22;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5;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 살전 1,10;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5). 따라서 그들은 임박한 종말의식에 사로잡혀 어서 빨리 복음을 전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선교을 한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쓰겠다든가 교회의 먼 훗날을 생각해 본다든가 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 밖의 문제이다.
     누가는 이와 달랐다. 행의 상권에 해당하는 누가복음 맨 앞에 나오는 저술 목적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즉, 누가는 예수나 그의 제자들과 동시대에 살던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목격자되고" "일군된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을 기록한, 적어도 한 세대 후의 사람이다. 그는 세월이 지나 1차 증인들이 점점 죽어가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을 글로 남겨 후대에 계속 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때의 한 복음서 기자이다. 후대에 전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예수나 1세대 제자들이 가졌던 임박한 종말의식과 다른 신학적인 사고를 하는 때임을 말한다.
     누가는 자신의 때를 "성령이 역사하는 때", "교회의 때"이며, 예루살렘 모교회를 정점으로 복음이 땅끝까지 퍼져가는 선교의 때라고 본다 (참고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그에게서는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감에 있어서 예루살렘교회가 그 구심점이 되며, 이 교회를 중심으로 다른 모든 선교사들은 유기적으로 연결, 연대, 연합되어 있다. (이에 대해선 차후 사도행전의 신학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잠시 사족으로 행에 사용된 자료이야기를 해봅니다. 행의 저자 누가가 직접 전도여행의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의 많은 부분이 1인칭 복수로 "우리" 기술되고 있습니다 (16,10-17; 20,5-15; 21,1-18; 27,1-281,6). 따라서 누가는 적어도 전승된 여행기 자료를 자신의 저술에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우리"로 기술되는 부분의 성격 규정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그리고 행에서 복음의 전파가 대부분 '1. 유대 회당에서 설교, 2. 성공을 거둠, 3. 유대인들의 거부반응과 박해, 4. 이방 관헌이 개입해서 선교를 방해, 선교하는 이를 추방시킴'이라는 4가지 도식으로 설명되고있다는 점에서 현재 행에 있는 기사는 누가의 손이 상당히 많이 간 것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30년대 중반에서 50년대 중반까지의 초대교회사

     바울의 전도여행을 다룬 기사 가운데 바울서신과 행이 서로 다른 차이가 발견 된다면 이는 위에서 설명한 누가의 신학, 역사이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선교여행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할 때, 일차적으로는 바울 자신의 기록을 우선으로 하고, 다음으로 빠진 부분은 행으로 보충하되, 만일 둘 간의 모순이 있을 때는 행의 기사를 버리고 바울의 것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행에 의하면 유년시절을 가마리엘 문하에서 바리새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리새인교육이 예루살렘 외에서 이루어졌다는 유대교의 어떤 기록도 없음을 고려할 때. 이 말은 바울이 유년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냈음을 의미함니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대로 갈 1,22이하에서 보면 예루살렘의 교인들은 바울의 얼굴을 모른다고 합니다. 만일 바울이 유년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냈다면 예루살렘교인들이 바울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이럴 경우 일단 바울의 서신에 의거 유년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런 원칙에 의거 위의 행의 기사와 바울 자신의 기사를 상호보충 혹은 취사선택하면서 초대교회사 즉, 기원후 30년대에서 50년대 중반 까지를 어림짐작으로 그려 볼 때, 그 그림이 당시 실제 역사와 별 차이없는 그런 그림이 될 것입니다

[출처] 바울의 선교여행|작성자 성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