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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에 이르는 신앙

에반젤(복음) 2022. 3. 1. 02:16

[거룩에 이르는 신앙]

 

 

거듭남의 정의

 

  거듭남이 무엇인가? 거듭남이란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우리 영혼이(엡 2:1) 살리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고(고후 3:18 ; 골 3:10 ; 갈 4:19), 죄악에 물든 부패한 마귀의 성품을 지닌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적인 성품을 지닌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벧후 1:4).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속에, 내가 예수님 속에 있음을, 즉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된다(요 14:20). 당신은 이와 같이 거듭났는가?

 

  오늘날은 이와 같은 거듭남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모르는 교인이 많다. 거듭났느냐고 물으면 거듭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거듭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신앙 위인들이 말하는 거듭남의 정의를 들어 보자.

 

  조지 윗필드는 거듭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듭남”이란 그의 유명한 설교에서 거듭남이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내적 변화를 체험하고, 우리의 도덕적 행동들이 변화된 새로운 본성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3)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윗필드에 있어서 거듭남은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부패한 본성이 깨끗게 되고, 정결케 되고, 전적으로 변화”되고, “우리가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4)이다.

 

  윗필드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거의(almost)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철저한(altogether)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얻기를 기대한다면 헛된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거듭남이란 기이하고 놀라운 변화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기질이나 습관, 행동의 변화가 너무 큰 나머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죄 가운데 지냈던 생활을 잘 알던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유년기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하다가 20년 만에 만나 보고 그 변한 것에 놀라듯이 말입니다.”

 

  거듭남은 체험적인가? 윗필드는 거듭남을 경험적으로 체험해야 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거듭남”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성령에 의한 신생을 경험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대해서 회중 가운데서 너무나 적은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거듭남 혹은 신생의 교리는 대다수의 신앙 고백자들 가운데 좀처럼 고려되지 않고 있으며, 너무나 적은 사람만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거듭남이란 은혜[성령]가 “하나님에 의해서 주권적이고, 효과적인 작용에 의하여 주입되고(infused),”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셔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은혜롭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거듭남의 변화는 ‘놀라운 변화’라고 했다. “이렇게 회심할 때 영안이 열리므로 일어나는 변화는, 맹인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살다가 갑자기 눈이 떠져 밝은 대낮에 사물들을 보게 된 사람이 겪은 변화보다도 모든 면에서 훨씬 더 크고 놀라울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회심 또는 중생의 교리는 기독교의 가장 위대하고 기본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믿어야만 하는 무한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회심 또는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분명한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는 많은 헐뜯음과 반대를 받아 왔으며,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의심하기 쉬운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도 거듭남은 매우 큰 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큰 내적인 변화, 성령의 역사로써 영혼 속에 이루어지는 변화, 우리의 존재 양식 전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에 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

 

  찰스 피니에 의하면, “거듭남이란 도덕적 성품의 전적인 현재적 변화”를 말한다. 즉 “전적인 이기심에서 전적인 거룩함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청교도의 왕자라 불리는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 마음속에 비추어진 구원하는 영적인 빛에 의하여 우리 마음속의 타고난 무지와 어둠과 소경됨이 제거되고, 영적인 생명과 의의 새로운 원리가 우리에게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의지의 부패와 완고함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 속에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정서의 무질서함과 반역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회심은 “한두 가지의 변화, 혹은 스무 가지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 전체의 변화이며, 삶의 목표와 대화의 성향의 변화”라고 하였다.

 

  윗필드를 회개시킨 유명한 책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저술한 헨리 스쿠걸은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과 영혼의 연합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영혼에 하나님의 그 형상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신앙이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앙의 본질, 그것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상의 말을 종합해 보면 거듭남이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짐으로 우리 영혼 속에 일어나는 내면의 철저한 변화’를 말한다. 거듭날 때 ‘우리의 이해력과 정서와 의지 전부가 놀랍게 변화’된다. 이것은 복음주의 각성 운동 설교자들과 청교도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내용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경험한 신앙감정론]

 

제1부에서 에드워즈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안에 있다(True religion, in great part, consists in holy affections)"는 교리적 명제로 압축된다. 우리 나라 말로 정서 혹은 애정이라고도 번역되는 affection을 역자는 감정이라고 옮겼다. 에드워즈는 affection의 정의를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제2부 신앙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 즉 성령의 역사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소극적인 표지들을 12가지 들고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이런 소극적인 표지들을 가지고서 자신이 성령을 체험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어볼 만한 것이다.

 

1.첫 번째 소극적 증거: 감정의 강도

-신앙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2.두 번째 소극적 증거: 몸의 격렬한 반응

-감정이 몸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그 감정에 참된 믿음의 본질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표지가 아니다.

 

3.세 번째 소극적 증거: 신앙과 신학에 대한 관심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4.네 번째 소극적 증거: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5.다섯 번째 소극적 증거: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신앙 감정들이 성경 본문을 마음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거룩하고 영적인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6.여섯 번째 소극적 증거: 사랑의 피상적 표현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7.일곱 번째 소극적 증거: 감정의 정도

-사람들이 여러 신앙 감정들을 동시에 체험했다는 사실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데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8.여덟 번째 소극적 증거: 감정의 체험 순서

-양심의 각성과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어떤 일정한 순서를 따라 위로의 기쁨이 뒤따른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9.아홉 번째 소극적 증거: 종교적 행위와 의무의 피상적 실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예배의 외부적인 의무들에 열심히 헌신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에 참된 신앙의 본질이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표지는 아니다.

 

10.열 번째 소극적 증거: 찬송을 열심히 부름

-사람들이 가진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11.열한 번째 소극적 증거: 자신의 구원 확신

-어떤 감정이 생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체험이 신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다고 크게 확신한다는 사실은 그 감정이 바른 것인지 또는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표지가 될 수 없다.

 

12.열두 번째 소극적 증거: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

-사람들이 밖으로 표현한 감정이 참된 성도들의 마음에 들고 호응을 얻을 만큼 크게 감화력이 있고 기쁨은 준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신앙 감정의 본질이 어떠한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제 3 부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참된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로서 다음의 12가지를 들고 있다. 『신앙 감정론』의 대부분을 차지(283-638)하고 있어서 분량 상으로 중요하지만, 내용상으로 더욱 더 중요한 부분이다.

 

1.첫 번째 적극적 증거: 성령의 내주

-참으로 영적이고 은혜로운 감정은 영적인, 초자연적인, 신적인 영향과 작용들이 그들 마음에 역사할 때 생겨나게 된다.

 

2.두 번째 적극적 증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

-은혜로운 감정이 생기는 가장 객관적인 근거가 신적인 일들이 가장 탁월하며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는 데 있어야지, 그 일들이 자기 이익과 관련되었다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3.세 번째 적극적 증거: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인식

-참으로 거룩한 감정들은 주로 신적인 일들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탁월성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달리 표현하면, 신적인 일들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탁월성이 아름답고 향기롭기 때문에, 신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거룩한 감정들의 시작이며 원천이다.

 

4.네 번째 적극적 증거: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은혜로운 감정은 지성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때 생긴다.

 

5.다섯 번째 적극적 증거: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은혜로운 감정은 신적인 일들에 대한 실재성과 확실성을 합리적이고도 영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6.여섯 번째 적극적 증거: 참된 겸손

-은혜로운 감정은 복음적인 겸손을 동반한다.

 

7.일곱 번째 적극적 증거: 성품의 변화

-은혜로운 감정을 다른 감정들과 구별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표지는 은혜로운 감정은 본성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8.여덟 번째 적극적 증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감

-참으로 은혜로운 감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 같고, 비둘기 같은 심령과 기질을 가지도록 돕고, 그것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거짓되고 기만적인 감정들과 다르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은혜로운 감정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 온유, 평온함, 용서, 자비의 심령을 자연스럽게 닮아가게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도와 준다.

 

9.아홉 번째 적극적 증거: 하나님을 두려워 함

-은혜로운 감정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기독교적인 온유한 마음을 동반하고 산출한다.

 

10.열 번째 적극적 증거: 신앙의 균형

-참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들이 거짓된 감정들과 다른 점 또 한 가지는 그것들이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1.열한 번째 적극적 증거: 하나님을 향한 갈망

-은혜로운 감정들과 다른 감정들 사이에 차이점을 크고 뚜렷하게 구분해 주는 또 하나의 다른 표지는 은혜로운 감정들이 더 높이 고양되면 고양될수록, 영적인 만족을 위한 영혼의 영적인 욕구와 갈망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거짓된 감정들은 그 자체로도 만족해한다.

 

12.열두 번째 적극적 증거: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들은 그리스도인의 행위로 드러나고 열매를 맺는다. 거룩한 감정들은 그 감정들을 경험하는 주체인 성도에게 영향력과 효력을 미치게 되며, 그 결과로 기독교의 원리와 전체적으로 일치하고, 그 원리에 따라 규정되는 행위는 성도가 일생동안 실천하고 마땅히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