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실/구원의 확신

[스크랩] 구원론 2 (계 5:2-4)

에반젤(복음) 2022. 3. 1. 02:14
구원론 2 (계 5:2-4)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계시록 5장이 말하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무엇인지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에 아버지의 손에 들린 인봉한 두루마리 책은 신령한 관점에서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객관적 구속사이지요.

그럼 인봉한 책의 인봉을 떼고 책을 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각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은혜, 즉 주관적 구속사를 가리킵니다. 이미 이룬 객관적 구속의 역사를 각인에게 적용하는 일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4.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확신해야 합니다.


2-3절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이 구절에서 천사의 외친 내용도 중요하지만 천사의 모습 또한 그 상징성 때문에 중요합니다. 힘 있는 천사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천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천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이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뿐 아니라 장차 더 온전히 누리게 될 은혜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천사의 큰 음성은 또 무엇입니까? 큰 음성은 큰 확신을 의미합니다. 큰 음성은 큰 확신을 기반합니다. 확신 없으면 큰 음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은 종교개혁자들이 들고 일어선 신앙의 표어입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모습이 상징하는 바를 종합해 보면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길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인죄론의 기초가 잘 놓여야 합니다. 그래서 구속을 집행하실 예수님을 소개하기 전에 서론적으로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1,500년 동안 율법을 주시고 그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처절한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이 진리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 앞에 무력한 존재임을 그렇게 오래도록 체험하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은 그들의 무력함을 처절하게 체험했습니다. 이 처절한 실패 끝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롬3:19-20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렇게 자기 부족을 알게 하여 자긍하지 못하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상당한 고민의 과정을 거칩니다.


4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이 통곡하면서 울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를 성취할 집행자가 없으므로 그로 인한 악의 최후 심판과 성도의 최종적인 구원이 성취되지 못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이것을 각인의 구원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많은 고민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다른 우리의 현실과 육신의 생각과 싸워가며 진리에 서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과연 바울처럼 요한처럼 스데반처럼 프랜시스처럼 많은 하나님의 일군과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없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수많은 날을 번민 가운데 보내는 경험이 없다면 아직도 참된 진리의 구도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민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은혜는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예수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되겠네. 주 에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찬송가 544장)



이 찬송과 같이 이 믿음 가지고 생활화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죄의 압박감이 너무도 심하여 진리보다는 나를 바라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마음을 씻고 씻어도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갈 수 있는 심령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했던 마음의 일을 돌아보고 오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오늘 행한 일을 돌아볼 때 자신 있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빛이 비칠 때 그 빛 아래서 소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오직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 의지하여 담대한 믿음으로 나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 공로 의지하여 담대해야 나갈 수 있어요. 담대하지 않고 시시한 믿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히4:16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지니라” 했고,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했습니다. 예수 공로 의지하는 이 길밖에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뻔뻔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믿음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나의 옛사람은 예수 안에서 죽었고 또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영광의 예수 보좌에 예수와 함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고 감사와 찬양으로 생활화하는 데까지 늘 믿음의 확신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롬6:11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 복음 진리에 서서 이 복음을 나에게 적용하는 믿음의 훈련을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일어나 거울을 보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승리자다. 나는 복된 자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나는 지금 예수와 함께 영광 중에 있으며 재림의 날에 주님과 함께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 이 자리에 성령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복음을 노래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이루에게 주신 일이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예수를 주로 부르고 늘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추한 자신과 실패하는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복음의 진리에 견고히 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 예수님께서 이루신 복음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는 구원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