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실/구원의 확신

[스크랩] 구원론 3 (계 5:5-6)

에반젤(복음) 2022. 3. 1. 02:12
구원론 3 (계 5:5-6)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서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계속하여 요한계시록 5장이 말하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각인에게 적용하시는가?


6. 전도를 통해서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5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을 위로하고 대답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웬일이죠? 2절에서 분명히 천사가 질문했는데 답은 천사가 하지 않고 장로가 합니다. 그리고 여기 장로가 대답함과 그 대답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 장로는 넓게는 구원 받은 자의 대표이지만, 좁게는 전도자입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라 한 것을 볼 때 이 땅에는 하나님이 쓰시는 많은 전도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 사역에 있어서 전도자의 전도사역이야 말로 참으로 중요한 역할입니다.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모세와 선지자 즉 하나님의 종들의 전도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장로가 전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복음입니다. 먼저 유대 지파의 사자란 창49:4-5의 야곱이 유다를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축복한 대로 여기 사자는 주석을 참고하면 왕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즉 이스라엘의 왕이요, 왕 중의 왕이신 메시야가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히7:14).


그리고 다윗의 뿌리는 눅20:44에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뇨” 하신 대로 다윗의 주되신 예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계22:16에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은 다윗의 근원이기도 하시고 족보상으로는 자손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의미하는 바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 예수 복음을 장로 중 한 사람이 전해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고전1:21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10:14). 죄인이 살고 죽는 것이 우리들에게 달렸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화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고 예수를 보지 못한다면 성경을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구원을 각인에게 적용하십니다.


7. 기도를 통해서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서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여기 한 어린양이 나타나는데 어린 양이 누구이며 어린 양이 서 있는 위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 어린 양은 누굴까요? 요1:29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외친 대로 어린 영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어린 양은 죄인의 죄를 대신 진 대속의 제물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 서 있는 위치가 나타납니다.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장로들 사이입니다. 이 중간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보자의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천국에 가보니 어린 양 예수님이 중보자시더라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도 아니요 베드로도 아니었습니다. 딤전2:5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은 거기서 무엇을 하실까요?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중보자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구원이 집행되더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안전하게 삽니다. 우리는 중보자는 아니지만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들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중보자 되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하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의 무슬림이 큰 문제인데 사람의 논리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려고 하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그들도 하나님 앞에 나오고 중동복음화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기도입니다. 이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계속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8.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진행하십니다.


6절 하반 절에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여기 일곱 뿔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뿔은 대개 힘이나 권세를(민23:22, 신33:17, 단7:7, 슥1:21), 그리고 일곱은 완전성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시기 때문에 단순한 전능성이 아니라 구속의 사역에 대한 전능성입니다.


왜 구속사역에 전능이 필요합니까? 사9:6에 성탄의 주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했듯이 성탄 자체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또 전적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심도 전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완악해서 예수 믿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가 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곱 눈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한 대로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일곱이라 함은 성령의 전지성, 즉 성령께서 아버지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는 데 근거를 둔 말씀입니다(고전2:10). 이처럼 구원을 집행하시는 데 있어서 예수님은 성령의 전지를 가지셨습니다.


왜 전지하셔야 합니까? 이 전지성의 언급은 아버지의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하시고 또한 각인의 영적 상태를 아셔서 때를 따라 적절히 역사해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그런 전지성이 없이 어떻게 죄인 한 사람 한 사람 다 부르셔서 온전케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전지전능의 은혜를 어떻게 누릴까요? 우리 인간이 할 일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도 믿었습니다. 딤후1:12에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우리가 믿을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손길이 나타나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온전히 구원하시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가운데서도 불신의 생각이나 불신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객관적 사역을 각인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이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구원의 집행은 전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믿고 우리 함께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 귀한 사역에 힘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