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에서의 화해[창 33장]
[내용개요]
고난을 통해 야곱의 인격을 변화시키셨던 하나님은 이제 복수심으로 가득한 에서의 마음까지 변화시키셨다. 본장은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나 과거의 은원을 푸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야곱과 에서가 만나서 지난날이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 사랑으로 화해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며(1-11절), 야곱이 함께 살자는 에서의 제의를 거절하고 숙곳에 정착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12-17절).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 자녀와 구분되어야 함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야곱이 세겜의 땅을 매입하고 하나님께 단을 쌓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18-20절).
[강 해]
얍복 나루에서 홀로 밤을 새우며 천사와 씨름하듯 처절하게 기도한 끝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야곱은 본장에서 큰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창33장은 야곱과 에서의 재회와 화해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1. 야곱과 에서의 상봉
1) 에서를 만나기 직전의 야곱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사백인을 거느리고 다가오는 형을 보자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아내와 자녀들을 나누어 뒤에 서게 하고 자기가 그들을 앞서 나갔습니다. 요컨대 자기는 죽더라도 처와 자녀들은 보호하겠나는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와 사백 명의 군사는 허세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에서의 마음을 돌려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a. 한 생명이라도 보존하기 위함(전11:2)
b. 하나님께 위탁해야 함(사40:11)
2) 형에게 절하는 야곱
형 에서를 만난 야곱은 에서에게 나아가 일곱 번 절을 하고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인사는 고대 근동의 큰절을 가리키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깊이 숙여 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위선이나 야비한 목적으로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화해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온 성의를 다한 것입니다.
a. 복종을 나타냄(대하24:17)
b. 아첨을 의미함(삼하15:5-6)
3) 화해하는 에서와 야곱
야곱이 형 앞에서 자신의 과거 잘못을 사과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에서에게서 나타난 반응은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너그럽게 동생의 사죄를 받아들이는 에서에게서 넓은 아량과 관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에서의 용서도 용서이거니와 화해를 위한 야곱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의 눈물 어린 해우 뒤에는 화해를 위해 목숨을 건 야곱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 형제는 서로 화해하고 뜨거운 정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a. 야곱이 에서에게 겸손함(창33:3)
b. 사력을 다해 기도했음(창32:25)
2. 예물에 대한 피차 호의
1) 형에게 호의를 베푸는 야곱
형 에서의 마음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야곱은 형에게 보낸 선물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계속 그것이 형의 소유임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과거 야곱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입니다. 과거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축복을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의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과거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a. 진심으로 잘못을 회개해야 함(요일1:9)
b. 하나님의 은총(대하6:42)
2) 야곱에게서 선물을 받는 에서
재산의 많은 부분을 선물하는 야곱에게 에서는 자신도 재산이 많음을 밝히고 그 선물을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선물을 형에게 주는 이유가 결코 형이 궁핍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강권하여 형 에서가 선물을 받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에서는 물욕 때문이 아니라 형제 재회의 기쁨에 대한 증거로 생각하며 받았습니다.
a. 삶의 자원으로 주심(마6:32)
b. 앞잡이가 되어 주겠다고 함(창33:12)
3) 에서의 호위를 거절함
야곱에게서 선물을 받은 에서는 야곱에게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에서의 제안을 야곱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정중하게 거절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호위되고 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a. 어린이들은 육체적으로 연약함(욥33:25)
b. 가축들도 지쳤기 때문임(창33:13)
3. 세겜에 정착하는 야곱가
1) 숙곳에 이른 야곱
형 에서의 호의를 정중하게 사양한 야곱은 다시금 세일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형 에서는 곧장 세일로 가고 야곱은 숙곳으로 갔습니다. 숙곳은 요단 골짜기에 있으며 가나안 정복 후에는 갓 족속에게 분할되었습니다(참조, 수13:27). 야곱은 이 숙곳에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지었는데 이는 그가 오래 머물려고 작정하였음을 의미합니다.
a. 에서의 거주지인 세일로 가지 않음(창33:17)
b. 야곱이 숙곳에 간 이유(창33:17)
2) 단을 쌓는 야곱
세겜에 정착한 야곱은 하몰 가에게서 밭을 사서 그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단의 이름은 '엘엘로헤이스라엘'로서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단을 쌓은 것은 오랫동안의 여로 가운데서 평안히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부여하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상기하면서 그 하나님의 축복을 기념하고자 단을 쌓고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a. 하몰 족속의 거처(창33:19)
b.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곳(창12:7)
결론
야곱의 결사적인 기도는 20년 동안이나 야곱을 죽이려고 이를 갈면서 벼르고 있던 형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로써 에서와 야곱은 사이 좋은 형제 지간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본장을 통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화목시키기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로선 그리스도를 본받아 화평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라헬과 요셉은 뒤에. 야곱의 뿌리 깊은 편애가 드러나고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야곱은 사랑하는 자들 순서로 가장 뒷편에 라헬과 야곱을 배치시켰다.
3절.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고대 근동에서 왕이 점령자에 대한 예의 표시였던 이 행동은 먼 발치에서부터 일곱 번 절하면서 점점 가까이 나가는 방식이었다.
4절.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헤어진 서러움과 재회의 기쁨이 어우러진 자연 발생적 인사와 교제.
8절.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원문 <hZ<h' hn<j}M'h'AlK; *l] ymi:미 레카 콜-하마하네 하제>의 직역은 '이 모든 무리들이 너에게 무엇인가?. 야곱의 예상을 넘어서는 선물 앞에 에서가 의아하여 묻는 말이다.
10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복수할 줄 알았던 형에게서 자애로 일관한 관대함을 맛보게 되니 야곱은 형의 얼굴에서 자비의 하나님을 느낀 것이다.
12절. 너의 앞잡이. 문자적인 뜻은 '네 앞에서'이다. 에서가 동생 야곱의 길 안내자 되길 자청한어구.
13절.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이미 전문 목축업자가 된 야곱으로서 가축의 생리를 익히 알아 에서 군대의 빠른 행군에 보조 맞추어 나갈 시 무리가 갈 것임을 염려한 것이다.
14절. 세일. 모압 남부와 아카바만 사이를 잇는 광대한 저지대.
17절. 숙곳. 이 지명을 가리키는 원어 <ht;Kosu:쑤코트>는 '우리, 장막'을 뜻함. 얍복 강으로부터 북방향으로 16km 떨어진 곳에 위치. 야곱은 이곳에서 수년을 거주하게 된다.
20절. 단을 쌓고. 조부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곳에 야곱은 동일한 단을 쌓았다. 섭리로써 자신과 가족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표시를 드린 것이다. 엘엘로헤 이스라엘. 원어 <laer:c]yI yhela> lae:엘 엘로헤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자'.
[신학주제]
야곱의 세겜 정착. 본장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야곱은 세겜 땅에 정착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장막을 친 곳(참조, 창12:6)이었다. 그러나 야곱이 세겜에 장착한 이유는 먼저 에서의 환대에 대한 응답의 표시였고, 둘째는 세겜이 물이 많아 가축을 기르기에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곱의 세겜 정착은 그가 아직 세속적인 관심에서 떠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그 곳에 하나님을 위해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는 단을 쌓은 것으로 봐서 벧엘의 서원(참조, 창28:20-22)을 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이유로 세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곱의 행위는 믿음 속에서도 여전히 세상의 풍요로움에 안주하려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서원을 지키지 않은 야곱의 행동은 곧 불행한 결과를 낳고 실패로 끝나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무시한 야곱의 세겜 정착은 인간의 독단적인 계획의 무기력함과 끝끝내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사건이다.
[영적교훈]
야곱이 그토록 염려하던 형 에서는 기적적으로 야곱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화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야곱의 눈물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시는 하나님(참조, 출10:1)께서 에서의 마음을 온유하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참된 평화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를 수 없다. 오직 인간의 마음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성도는 그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우정과 재물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로 화평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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