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 영신/장년부 설교

주일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16절)

에반젤(복음) 2021. 10. 15. 17:25



주일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16절)

-----------------------------------------------------------------------------------------------------------------------------------------


지난 두 번의 설교 시간을 통해 신약과 구약의 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으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복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복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받는 복의 결국은 구원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구원 영생은, 죽음 이후에 누리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우리 복 받은 인생들이 육체로 사는 동안에,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느냐를 살펴보면, 그 사람이 구원영생의 복을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할수 있습니다. 이 판단은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자의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만이 판단하실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팔복에 대해 말씀 하신 후 바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팔복내용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복 받은 인생들이 나아가야 할 실천적인 지향점이 분면하게 드러 납니다.


8가지 복 중에서, 첫 번째 복음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3)는 말씀과, 8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의 말씀에 공통으로 들어간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의 복과 마지막의 복이 천국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고, 중간에 있는 2~7번째 복들은, 전부 땅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복들입니다. 위로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고, 배부를 것이고, 긍휼히 여김 받을 것이고, 하나님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복들은, 우리가 육체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누리는 복들입니다.


저는 이 팔복의 구조를 보면서 맛있는 샌드위치가 떠올랐습니다. 샌드위치의 양 겉면은 바삭하게 구어진 빵으로 덮여 있고, 그 안쪽에는 각종 야채와 햄과 소스등 내용물들이 풍성하게 들어갑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깔스운 샌드위치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팔복의 겉면에는 천국(하나님 나라)이 단단하게 감싸여져있고, 안쪽에는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의 내용물들이 충실하게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하늘의 복이 상징처럼 겉에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하여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크게 하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먹고, 마시고, 즐겨야 하는 현실적인 복들도 아주 풍성하게 담겨 있는 것이 팔복의 구조입니다.


샌드위치 구조라는 것은 하나의 기억장치이지, 정해진 정답은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만이 느끼시는 감동대로 가슴에 품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이 엄청난 복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을 제대로 알야야 합니다.


팔복은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나” 이런 식으로 한 가지씩 딱딱 떨어지는 문장이어서, 마지막 8번째 복의 후반부에 이어지는 부분을 소홀히 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덴, 이 부분에 바로 복 받은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5장 11,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아멘.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것이 우리 복 받은 사람들의 지향점입니다. 땅에서는, 욕 먹고, 박해 받고, 거짓 말에 당하고 살아도, 오직 하늘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그 날 만을 생각하며, 그 날에 주실 상과 영생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라고, 팔복을 포함한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구약 욥기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는 말씀이 있고, 신약 마태복음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구절 다 내용상의 의미는 좀 다르지만, 문자로만 본다면, 시작 보다는 끝이 중요함이 강조된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끝이 아닙니다. 시작이 믿음이라면, 그 끝은 바록 구원 영생입니다. 팔복을 포함한 모든 복을 주시는 말씀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 시작은 복이지만, 역시 그 마지막은 하나님 나라에서 상을 받는 것으로 귀결 됩니다.


우리가 당장 복을 받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하늘에서 상 받을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작 보다는 과정이, 과정보다는 결말이 갈수록 중요합니다. 그 중요성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고 내려 주시는 것이 바로 하늘의 팔복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팔복의 말씀에는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 담겨 있고, 그 다음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배열한 것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도 마태의 의도가 담겨져 있겠지만, 이 본문에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아가 어뗗가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아멘.


“너희는 세상이 소금이다”라고 했는데, 너희는 바로 팔복에서 말하는 “복이 있나니”의 주인공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려는 이 땅의 모든 신자들을 말합니다. 갑자기 소금이 나왔습니다. 소금은 소금 다워야 값진 소금이고, 무엇보다도 짠 맛이 제대로 나야 좋은 소금입니다. 13절에서와 같이 짠 맛이 안 나는 소금은 무가치하기 때문에, 길 바닥에 버려지는 신세가 됩니다.


복 받은 사람이 소금처럼, 짠 맛, 제 맛을 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소금이 겉보기에 좋아보여도, 짜지 않으면 버려지는 폐품이 되는 것처럼, 복을 받은 믿음의 신자들도, 겉보기 보다는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 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을 잘 설명한 성경의 비유들을 보면, 겉사람과 속사람, 알곡과 가라지, 듣는 자와 행하는 자, 주여주여만 하는 자와 냉수 한 그릇이라도 베푸는 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 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예수님의 모습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라고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모습은, 사진이나 영화에 나오는 훈남의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는데, 나귀 새끼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추측해보면, 예수님이 매우 마른 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겉모습만 보면 예수님 조차도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 모습을 치장하고, 가꾸려는 사람보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시고, 사용하시고, 기억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 속에는, 겉 모습이 어떠하든, 짠맛이 강하고 오래 가는 소금처럼, 너희 내면의 믿음이 견고해져서 계속해서 자라 가라는 의미입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야 진짜 소금 중의 소금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인물을 보면 겉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로부터 로마제국이 기르는 개들(마치 일제 강점기 시대의 부역자들처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세금징수원(세리) 출신이었습니다. 마가는 초대교회 지도자중 한 사람인 바나바의 생질(조카) 이었지만, 예수님이 택한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누가는 의사(醫師,Doctor)라고 알려져 있으며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함께 한 동행자 였지만, 그 역시 예수님이 택한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12 사도중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았던 제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12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당하지 않고 섬(밧모섬)에 유배되어 일생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전기인 복음서를 기록한 네 명의 저자 중, 두 명이 사도가 아니었지만, 성경이라는 진리의 말씀을 기록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도라고 해서, 또는 사도가 아니라고 해서, 특별하다는 출신성분으로 시작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곧 결과로 확정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작은 미약하고, 처음 출발은 늦었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신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겉모습에 치중하며 살아가라는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겉모습인 외모 때문에 성형 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중대사가 되고, 겉모습인 자존심 때문에 하우스푸어, 카푸어로 파산지경으로 살아가고, 겉모습을 자랑하려고 sns에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상을 올리는 것에 중독이 되어가고, 겉모습을 비관한 나머지 추악하고 무서운 범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순간 폼나게 살면 뭐가 남습니까?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는 인생은 다 길 바닥에 버려진 쓸모 없는 소금 같은 인생이 됩니다. 겉모습에 치중하면 결과는 이렇게 뻔합니다. 우리가 복 받은 인생이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겉 모습이 아니라 속 사람을 보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짠 맛이 안 났던 소금은 없습니다. 짠 맛이 강하게 나던 소금이라도 어떤 환경, 어떤 유통, 어떤 관리를 받았는가에 따라서, 짠 맛이 유지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가차 없이 버림을 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소금과 같이 복도 마찬 가지입니다. 주신 복이, 받은 복이, 매 번 그대로 유지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복을 담아 두는 우리 마음의 창고가 건강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굳건해야 합니다. 순종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감사로 만족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소망으로 삶이 기뻐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소금으로 사는 인생이요, 복에 복을 누리며 사는 천국백성의 인생입니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어요,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겁니다. 위로와 평안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겁니다. 짠맛을 유지하려고 예배시간에 은혜를 구하고, 삶 속에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읽으 실 때, “너희는 복받은 인생이라, 너희는 구원 영생을 약속 받은 인생이라”는 말씀으로 치환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나. 그 복, 그 약속의 짠맛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내 마음을 살피고, 주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는 소금 인생, 복된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음 말씀은 14~16절 말씀입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에 이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빛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착한 행실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이 빛인지 어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이 내면의 성숙,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라는 말씀 이었다면, 빛이라는 의미는 외면적인 언행, 적극적인 행실을 내세워서,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이, 내면과 외면을 균형있게 맞추는 것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 받은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너무나도 중요 합니다. 그 사람이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기에, 그 사람이 하는말,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뭇 사람들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 합니다. 누구에게나 칭찬 받을 만한 좋은 행실을 하는 사람이 교인이라는 사실과 결합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르구나, 믿는 사람들은 역시 뭔가 다르긴 하구만”이런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칭찬 받지 못하는 나쁜 행실을 하는 사람이 교인이라는 사실과 결합되면,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교회 다는 사람들이 먼저 사고를 치는 구만, 교회 다닌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역시 예수쟁이들은 크게 한건 하는구나” 말할 수 없는 비난과 조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교회 전체와 예수님의 이름을 높임 받게 하거나, 욕과 저주를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은행 창구에서 친절한 행원이 있으면, 그 은행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칭찬합니다. 반대로 불친절한 행원이 있으면 그 은행 전체를 거론하며 마구 욕을 해댑니다. 회사도, 식당도, 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사람의 말과 행실이 그 집단 전체를 평가하는 냉엄한 잣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가져오는지 늘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에게는 행동 기준과 지침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오직 착한 행실로 모든 면에서 모범을 부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빛 되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읽고 배우고,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을 보고 배우면 됩니다. 그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언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고,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칭찬 받고,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16절 마지막 부분에,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행에 주의 하고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은, 내가 칭찬 받고 높임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게 하는 것이 우리 복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는 착한행실로 이어질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권면을 드립니다.


첫째말을 함에 있어서는, “예/아니오”를 분명하게 하십시오. 거짓과, 불의와, 모함과, 뒷담화, 이런 말들이 오고 갈 때는, 내 위치와 상황 때문에 주저주저 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아니오, 맞으면 예로 분명하게 나의 노선을 말하십시오. 할 말을 못하거나, 안 하거나, 머뭇거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세상의 빛이 된 우리는, “예/아니오”를 분명하게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행동함에 있어서는 겸손, 또 겸손 하시고, 무례한 행동, 남을 낮게 여기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또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셔서, 특별히 음란함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그리고 악인들과 어울리는 허랑방탕한 모임을 단호하게 거부 하십시오. 삶의 선택의 순간에 성령님을 늘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 하십시오.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때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겉 모습만, 무뉘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이 소금 같이 사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언행일치, 신행일치를 이루어가는 것이 세상의 빛 같이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소금과 빛처럼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복(팔복+모든 복)을 주셨습니다. 믿음 주시고, 영생의 소망 주시고, 은혜 주시며, 날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피와 살을 내어주시며 희생으로 얻은 이 고귀한 복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열심히 살아내서, 오직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아름다운 결말이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받은 그 복으로 하나님께 영과 돌리며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아내야만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이 소금과 빛같이 거룩하고 착한 행실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승리의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복 받은 인생이 되어,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예수님만을 믿으며, 성령님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