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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두려움의 원인 (요일 4:16-19)

에반젤(복음) 2021. 10. 11. 10:52
두려움의 원인 (요일 4:16-19)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시간에 “두려움의 원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두려움의 원인을 약 일곱 가지로 진단했습니다. 경제적인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사랑 상실에 대한 두려움, 노쇠에 대한 두려움, 자유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휴 미실딘 박사는 인간의 두려움의 원인은 영아기의 3대 기초적 두려움의 연장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어머니와 떨어지는 두려움(Fear of falling)은 성인이 되면서 실패와 사건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둘째, 태어날 때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Fear of loud noise)은 어른이 되어도 비판과 폭력이나 침범에 대한 두려움으로, 셋째, 버려지는 두려움(Fear of being abandoned)은 고독과 불안과 헤어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문학적 이론이고 성경이 말씀하는 두려움의 원인은 다릅니다.


성경이 진단하는 두려움의 원인은?


1. 기도부족증 때문입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로서 우리의 염려가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만 나가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면 우리 무거운 짐이 사라집니다.


전자파라든지 우리 몸에 좋지 않는 정전기가 축전이 되면 몸에 병이 오고 마음도 불안하고 복잡해지는데 그래서 우리 몸의 나쁜 전기를 뽑아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맨발로 걷거나 몸에 어스선을 연결하기도 하는데 우리 마음의 깊은 불안은 하나님을 만날 때만이 빠져나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문제 역시 하나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43:1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12:2에도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입니다. 그래서 말3:17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 답게 늘 우리 몸과 마음을 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능력부족증 때문입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노르만 빈센트 필 박사는 인간의 두려움 중 40은 과거의 일 때문에, 50은 불확실한 미래로 그리고 나머지 10%는 아무 이유 없는 것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의 100% 부질없는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홍해를 건넜지만 광야와 가나안에서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노예의 특징은 두려움입니다. 죽을까봐, 맞을까봐, 음식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과 아낙 자손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결과 승리의 목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데 다른 말로 성령의 능력 받지 못해서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면 죄도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다윗은 사자와 곰을 치고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짐승이 사자인데 사자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두려움의 원인은 위기의 신호입니다.


요일4:18에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먼저 압니다. 그러므로 자꾸 두려움이 오면 죄부터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혹은 어떤 사건의 신호입니다. 욥3:25에도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한 것처럼 두려움은 위기의 신호입니다.


영적인 위기나 육체의 위기나 환경의 위기에 두려움이 먼저 옵니다. 두려움이 오면 나에게 가족에게 교회에 나라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혹 타인에게도 위기상황은 없는지 살펴보세요. 주님 저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위기상황에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보호하여 주세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이 온다면 상당한 위기상황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질병의 문제라면 상당히 질병이 중한 상태입니다. 더 기다릴 틈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정신적인 문제이지만 인체의 장기에서 더 많이 옵니다. 심장 위장 폐장 대장 신장 간장 등 장기에 이상이 오면 마음에도 이상이 옵니다. 체해서 혹은 위염으로 우울증이 옵니다. 비티민D가 부족해서도 우울증이 옵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뇌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약만 처방하면 사람이 바보가 되고 맙니다. 두려움을 위기의 신호로 아시라는 말씀입니다.


4.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또 다른 큰 동력은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심판 날에도 담대하고 우리 주님처럼 담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밤이 두려워서 만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기차에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한 어머니가 두려움을 모른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아8:6에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엊그제 새벽에 계 16장을 보았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는데 동방에서 유브라데를 건너면 가나안입니다. 이 강은 죽음의 강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면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 곁에 어서 가고 싶어집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군대가 목표하는 곳은 므깃도 산에 위치한 아마겟돈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아마겟돈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20여회 이상 일어나 수십 수백 번의 주인이 바뀐 피의 고지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소망이 생겨나면 우리 마음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님 곂에 가고픈 마음이 우리를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했듯 옷니엘이 그 난공불락의 도성 기럇 세벨을 쳐서 정복했는데(삿1:11-15)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믿음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동기는 사랑하는 갈렙의 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남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공산치하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14년을 옥살이하다 자유의 몸이 된 리챠드 범브란트(R. Wurmbrand) 목사에 의하면 성경에 “두려워 말라” 는 구절이 366회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매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365회가 아니라 366회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윤달이 들어있는 달까지 계산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도 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맗씀하십니다. 하나님 말고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움이 있다면 기도하지 않아서, 능력 받지 못해서, 죄 때문에, 질병의 문제 때문에, 사랑하지 못해서 등 어딘가 문제가 있어서, 라는 것을 깨닫고 진실로 신앙 안에서 다 해결하여 두렵지 않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